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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웅 2007. 5. 3. 23:15

저는 60의 촌노입니다

덧없이 나이만 들었지 아버님의 시신도 모시지 못하고 기일도 알지못합니다

명절날 아침 엎드려 용서를 빌지만 불효자의 눈에는 한없이 눈물만 흘러 내립니다

선친께서는 일강점시 강제로 태평양전쟁에 징병되어 그야말로 개,돼지 같이 노예취급을 받으면서 일제의 총알받이 노릇을하다 구사일생  해방과 함께 생존 귀환 하셨습니다

 

귀국선에서 몸을내린 순간 이번에는 군출신이라고  국방경비대에 차출 귀향은 미뤄진체 경비 보초로 근무해야 했습니다

1년여 근무후 다른 동원자들 처럼 희생되신것으로 알고 계시는 어머니와 식구들이 사는 철원집으로 휴가를 가셨습니다

그 휴가가 없었다면 저는 이세상 구경[1948년,출생]도 못했을 것입니다

 

아버님과 혼인으로 위안부 동원을 피한 어머님과 달콤한 며칠을 보내면서 그만 보안이 유지되지 못하고 국방군의 신분노출로 공산당에게 체포,구금  강제동원의 후유증으로 얼굴에 화상상처에 고름을 흘리시면서도 탈출까지 감행 하시다가 결국은 희생되셨습니다

그시절 철원 공산당의 만행이 너무 두려운 어린 어머님은 아버님의 시신도 기일도 알아볼 엄두도 내지 못했답니다

지금도 그애기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시는 어머님을 위해서도 기필코 아버님의 명예를 찾아드려야 하겠습니다

 

이토록 2000만 조선백성중에  일제에 동원되고  국방 경비대로 동원되고 그것이 죄가 되어 이념도 모른체 사상이 불순하다고 같은 민족인 공산당의 손에 저의 선친은 희생되셨습니다

그런데 2005년 한일회담 문서공개와 함께 참여정부에서 일제 강제동원관련 피해자 지원법을 만들면서 아버님은 지원이 제외 되었습니다

이유는 생환 하였으므로 일제의 `일본국민을 전쟁에 동원되었다는 이유로 보상하지 않는다 ,란 내선일체의 논리를 법안에 적용 했습니다

 

한일회담시 청구권 요구시에는 생환자 몫으로 1억8천불이라는 거금을 요구해 3억불이라는 무상자금을 받아내어 이나라의 경제개발에 우선 투입한 자료가 현존 하는데도 말입니다

저는 선친의 영혼을 일제의 내선일체에 묶으려는 정부를 강력히 규탄하며 아버님의 명예회복을 위하여 끝까지 투쟁할것입니다

 

그 한 방법으로 진실화해 위원회에 국방경비대의진상을 조사의뢰 했습니다만 그숫자가 너무적어 조사를 진행할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저와 유사하거나 혹은 일제 강제동원 생환자,국방경비대시절의 비화등 선친에 명예를 찾고자 하시는 분들과 대화하고 의견을 나누고 싶습니다

 

 018  332  9291  태평양전쟁피해자 생환유족  이관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