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이현웅 2011. 3. 10. 21:39

기고] 국내 강제동원도 보상받아야 한다 / 히구치 유이치
한겨레
» 히구치 유이치 재일조선인운동사연구회장
한-일 강제병합 101주년의 3·1절 직전인 지난 2월27일, 대한민국의 헌법재판소는 박아무개(군인)씨의 “국내 강제동원자에게 의료지원금을 지급하지 않는” 데 대한 헌법소원에 대해 재판관 6 대 3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결정의 골자는 정신적 고통으로 볼 때 고통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는 국외 강제동원 피해자를 우선적으로 처우하는 것은 자의적 차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 과연 그러한가. 한반도내 동원과 국외 동원은 차이가 있는가. 수년간 연구를 통해 얻은 결론은 “절대 그렇지 않다”이다.

 

 

일제의 조선인 강제동원은 일본 정부의 국가총동원법에 의거한 일제 전체의 틀 속에서 이뤄진 것이다. 일제의 입장에서 보면 조선은 전시물자와 인적 동원의 중요한 기둥이었다. 한반도 내외를 구분하여 강제동원을 했지만, 중요성에서 차이를 둔 것은 아니었다. 일본으로 동원이 이뤄지는 한편 한반도에서는 미곡 생산과 중요 공장으로의 동원이 세부계획을 통해 실시되고 있었다. 도별 동원 할당은 조선외, 조선내(道外), 도내(道內)라고 구분되어 할당되어 일람표로 작성됐다. 이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동일한 동원정책 속에 자리한다.

 

일제는 조선 내외의 강제동원에 대해 일본보다 조선내를 우대한 것은 아니다. 노동의 강제성, 민족차별, 노동임금·대우 차별 등 강제동원의 조건은 조선 내부나 일본 국내 모두 기본적으로 동일했다. 조선 내부가 더 편했고 일본 본토가 가혹했던 것이 아니다. 조선내 동원도 힘들었다. 식량사정은 오히려 조선내가 더 열악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일본 외무성 외교자료관에는 조선총독부가 일본 정부에 보고한 동원상황 보고서(본방 노동법제 및 정책관계 잡건)가 소장되어 있다. 이 자료를 보면, 도별 도내알선노무 수급조정계획 및 실적은 1942년 33만3976명, 1943년 40만8976명이었다. 1944년 도내 동원계획 인원은 86만8284명이고, 도외 동원은 58만5000명이었다. 양자를 합하면 무려 145만3284명에 이른다. 1944년의 현원 징용은 한반도 전역의 118개 공장과 광산에서 이뤄졌다.

 

일본의 전시체제기 강제동원은 “몽땅 동원”이라고 불릴 정도로 엄혹했다. 일단 피동원자로 지정되면 거부할 수 없도록 엄격하게 적용됐다. 동원되고 난 뒤의 처우도 열악하였다. 일본을 위시한 국외로 동원된 사람들보다는 “편했다”고 할 수 없는 노동이었다. 더욱이 조선내 식량사정이 악화되고 있어서 강제동원된 사람들의 식량사정도 극히 열악했다.

 

피동원자는 생업에 종사할 수 없었으므로 생활이 더욱 어려워졌다. 따라서 징용을 기피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에 대해 조선총독부는 엄중히 대처했다. 징용자로서 근무성적이 좋지 않은 자는 “불량 응징사”라 하여 “특별연성소에 입소시켜 황국신민으로서의 자각·반성”을 촉구하도록 했다. 강제로 실적을 내도록 하는 방침이다. 징용에 응하지 않는 사람은 “체형처분”한다는 방침도 명시했다.(<아사히신문> 서부판 1945년 2월21일)

 

일본 제국주의 아래에서 조선인에 대한 정책은 일관됐다. 일본·사할린·남양 등은 단지 지리적·거리상으로 멀고 가까운 문제에 불과했다. 이는 병사로 동원된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배치된 부대 위치에 따라 처우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조선내의 조선인 징병부대도, 일본에 배치된 조선인 병사도 모두 동일한 피해자이다. 병사로 동원되든 노무자로 동원되든 일제에 의해 동원됐다는 기본 요인은 동일하다. 전시체제하 일본의 노무동원정책은 동원지의 지리적 조건에 의해 이해돼서는 안 된다.

 


필자는 일본인으로서, 마땅히 일본 정부가 독자적으로 입법조처를 마련하여 한반도 내외로 동원된 피해자들에게 일률적으로 전후보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한·일 양국에서 한반도내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이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가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

히구치 유이치 재일조선인운동사연구회장

총리실 산하 지원위원회(위원장 박인환)가 피해당사자 대표, 대한변호사협회 대표, 지원위원회 대표로 구성되고 본인이 부위원장으로 임명된 민간 주도의 일제강제동원 피해자 지원재단준비위원회를 설립하고, 2012년 3월말까지 재단설립을 약속하고도, 현재까지 재단을 만드는 것을 거부하고, 최근에는 기존 재단준비위원회를 무시하고, 정부에 협조적인 피해당사자 대표, 지원위원회 대표, 행정자치부와 총리실 공무원으로 구성된 정부 주도의 재단준비위원회를 만들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바, 이는 지금까지 정부측이 재단 설립을 방해하고 급기야는 정부 의도에 맞는 재단을 만들려는 잘못된 시도임을 반성하고, 기존의 일제강제동원 피해자 지원재단준비위원회를 활성화 하여야 할 것이다.
이 사실을 모든 국민들께 알리기 위하여 아래와 같은 소식을 전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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