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세상이야기

東源 2014. 4. 9. 18:43

陶淵明과 歸去來辭






    도연명(陶淵明. 365~427)은
    약 1600여년전의 중국 東晉과 宋나라 사람이다.
    그는 전원과 술을 벗 삼아 살아간 유명한 시인 중의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집앞에 버드나무 다섯그루를 심어놓고 스스로 五柳선생이라
    칭했다



    우리나라 삼국시대 문화예술의 독보적 역할을 한 것은 불교였다.
    동진의 중 마라나타 가 백제에 불교를 전한 것이 384년인데,
    이때 도연명은 20세였다.



    도연명은 29세 때 벼슬길에 나갔다.
    관리생활을 하다가 곧 그만 두었다.
    그러나 집안이 어려워 친지의 천거로 나이 40세 무렵이던
    405년에 다시 관직에 나아가 팽택현령(彭澤縣令)을



    맡게 되었다.
    이때가 동진(東晋) 시대였다.
    도연명은 현령이 된지 80여일 만에 스스로 물러났다.



    항상 전원생활에 대한 사모의 정을 달래지 못한 그는
    41세 때에 누이의 죽음을 구실삼아 펑택현[彭澤縣]의
    현령(縣令)을 사임한 후 재차 관계에 나가지 않았다.
    이때의 퇴관성명서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 유명한
    《귀거래사(歸去來辭)》이다.



    역사서에는 상관의 순시 때에 출영(出迎)을 거절하고,
    “나는 5두미(五斗米)를 위하여 향리의 소인(小人)에게
    허리를 굽힐 수 없다” 라고 개탄하였다고 적혀 있다.



    도연명은 손수 농사를 지으며,
    가난과 병의 고통 속에서도 친구들과 술을 나누면서
    우리가 보기로는 전원에서 낙천적 생활을 했다.
    그는 62세 경에 죽었다.



    그가 고향에 돌아와 죽을 때까지의 시기(405~427)는
    한반도에서 고구려 광개토왕 · 장수왕, 신라 실성왕,
    눌지왕이 왕위에 있던 때이다.





歸去來辭 (귀거래사)



    歸去來兮
    귀거래혜
    자, 돌아가자.


    田園將蕪胡不歸
    전원장무호불귀
    고향 전원이 황폐해지려 하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


    旣自以心爲形役
    기자이심위형역
    지금까지는 고귀한 정신을 육신의 노예로 만들어 버렸다.


    奚而獨悲
    해추창이독비
    어찌 슬퍼하여 서러워만 할 것인가.


    悟已往之不諫
    오이왕지불간
    이미 지난 일은 탓해야 소용 없음을 깨달았다.


    知來者之可追
    지래자지가추
    앞으로 바른 길을 쫓는 것이 옳다는 것을 깨달았다.


    實迷塗其未遠
    실미도기미원
    내가 인생길을 잘못 들어 헤맨 것은 사실이나,
    아직은 그리 멀지 않았다.


    覺今是而昨非
    각금시이작비
    이제는 깨달아 바른 길을 찾았고,
    지난날의 벼슬살이가 그릇된 것이었음을 알았다.


    舟遙遙以輕
    주요요이경양
    배는 흔들흔들 가볍게 흔들리고


    風飄飄而吹衣
    풍표표이취의
    바람은 한들한들 옷깃을 스쳐가네,


    問征夫以前路
    문정부이전로
    길손에게 고향이 예서 얼마나 머냐 물어 보며,


    恨晨光之熹微
    한신광지희미
    새벽빛이 희미한 것을 한스러워한다.


    乃瞻衡宇
    내첨형우
    마침내 저 멀리 우리 집 대문과 처마가 보이자


    載欣載奔
    재흔재분
    기쁜 마음에 급히 뛰어갔다.


    僕歡迎
    동복환영
    머슴아이 길에 나와 나를 반기고


    稚子候門
    치자후문
    어린 것들이 대문에서 손 흔들어 나를 맞는다.


    三徑就荒
    삼경취황
    뜰 안의 세 갈래 작은 길에는 잡초가 무성하지만,


    松菊猶存
    송국유존
    소나무와 국화는 아직도 꿋꿋하다.


    携幼入室
    휴유입실
    어린 놈 손 잡고 방에 들어오니,


    有酒盈樽
    유주영준
    언제 빚었는지 항아리엔 향기로운 술이 가득,


    引壺觴以自酌
    인호상이자작

    술단지 끌어당겨 나 스스로 잔에 따라 마시며,


    眄庭柯以怡顔
    면정가이이안
    뜰의 나뭇가지 바라보며 웃음 짓는다.


    倚南窓以寄傲
    의남창이기오
    남쪽 창가에 기대어 마냥 의기 양양해하니,


    審容膝之易安
    심용슬지이안
    무릎 하나 들일 만한 작은 집이지만 이 얼마나 편한가.


    園日涉以成趣
    원일섭이성취
    날마다 동산을 거닐며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본다.


    門雖設而常關
    문수설이상관
    문이야 달아 놓았지만 찾아오는 이 없어 항상 닫혀 있다.


    策扶老以流憩
    책부노이류게
    지팡이에 늙은 몸 의지하며 발길 멎는 대로 쉬다가,


    時矯首而遐觀
    시교수이하관
    때때로 머리 들어 먼 하늘을 바라본다.


    雲無心以出岫
    운무심이출수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를 돌아 나오고,


    鳥倦飛而知還
    조권비이지환
    날기에 지친 새들은 둥지로 돌아올 줄 안다.


    影以將入
    영예예이장입
    저녁빛이 어두워지며 서산에 해가 지려 하는데,


    撫孤松而盤桓
    무고송이반환
    나는 외로운 소나무를 어루만지며 서성이고 있다.


    歸去來兮
    귀거래혜
    돌아왔노라.


    請息交以絶遊
    청식교이절유
    세상과 사귀지 않고 속세와 단절된 생활을 하겠다.


    世與我而相違
    세여아이상위
    세상과 나는 서로 인연을 끊었으니,


    復駕言兮焉求
    복가언혜언구
    다시 벼슬길에 올라 무엇을 구할 것이 있겠는가.


    悅親戚之情話
    열친척지정화
    친척들과 정담을 나누며 즐거워하고,


    樂琴書以消憂
    낙금서이소우
    거문고를 타고 책을 읽으며 시름을 달래련다.


    農人告余以春及
    농인고여이춘급
    농부가 내게 찾아와 봄이 왔다고 일러 주니,


    將有事於西疇
    장유사어서주
    앞으로는 서쪽 밭에 나가 밭을 갈련다.


    或命巾車
    혹명건차
    혹은 장식한 수레를 부르고,


    或棹孤舟
    혹도고주
    혹은 한 척의 배를 저어


    旣窈窕以尋壑
    기요조이심학
    깊은 골짜기의 시냇물을 찾아가고


    亦崎嶇而經丘
    역기구이경구
    험한 산을 넘어 언덕을 지나가리라.


    木欣欣以向榮
    목흔흔이향영
    나무들은 즐거운 듯 생기있게 자라고,


    泉涓涓而始流
    천연연이시류
    샘물은 졸졸 솟아 흐른다.


    善萬物之得時
    선만물지득시
    만물이 때를 얻어 즐거워하는 것을 부러워하며,


    感吾生之行休
    감오생지행휴
    나의 생이 머지 않았음을 느낀다.


    已矣乎
    이의호
    아, 인제 모든 것이 끝이로다!


    寓形宇內復幾時
    우형우내복기시
    이 몸이 세상에 남아 있을 날이 그 얼마이리.


    曷不委心任去留
    갈불위심임거류
    어찌 마음을 대자연의 섭리에 맡기지 않으며.


    胡爲乎遑遑欲何之
    호위호황황욕하지
    이제 새삼 초조하고 황망스런 마음으로 무엇을 욕심낼 것인가


    富貴非吾願
    부귀비오원
    돈도 지위도 바라지 않고,


    帝鄕不可期
    제향불가기
    죽어 신선이 사는 나라에 태어날 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懷良辰以孤往
    회양진이고왕
    좋은 때라 생각되면 혼자 거닐고,


    或植杖而耘
    혹식장이운자
    때로는 지팡이 세워 놓고 김을 매기도 한다.


    登東皐以舒嘯
    등동고이서소
    동쪽 언덕에 올라 조용히 읊조리고,


    臨淸流而賦詩
    임청류이부시
    맑은 시냇가에서 시를 짓는다.


    聊乘化以歸盡
    요승화이귀진
    잠시 조화의 수레를 탔다가 이 생명 다하는 대로 돌아가니,


    樂夫天命復奚疑
    낙부천명복해의
    주어진 천명을 즐길 뿐 무엇을 의심하고 망설이랴.


     

    挽 歌 詩(만가시)

     

      有生必有死(유생필유사) 태어나면 반드시 죽게 마련이니

      早終非命促(조종비명촉) 일찍 죽는 것도 운명이 아니겠는가.

      昨暮同爲人(작모동위인) 어제 저녁에는 다같이 사람이었다가

      今旦在鬼錄(금단재귀록) 오늘 아침에는 저승에 있네.

      魂氣散何之(혼기산하지) 혼은 흩어져 어디로 가버리고

      枯形寄空木(고형기공목) 마른 몸만 관속에 들어가 있는가.

      嬌兒索父啼(교아색부제) 아이들은 아비를 찾으며 울부짖고

      良友撫我哭(양우무아곡) 친구들은 나를 잡고 곡하는구나.

      得失不復知(득실불복지) 이제는 이해득실 알지 못하니

      是非安能覺(시비안능각) 시비인들 어찌 알 수 있겠는가.

      千秋萬歲後(천추만세후) 천년만년이 지난 먼 훗날에는

      誰知榮與辱(수지영여욕) 영화나 치욕을 그 누가
      알기나 하겠는가.

      但恨在世時(단한재세시) 단지 한스러운 일은 살아 있을 때

      飮酒不得足(음주부득족) 마음껏 술 마시지 못했음이라.






      우리의 삶은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짧은 순간을 지나가면서 그 짧은 시간을 초, 분,
      그리고 시로 나누고. 또 일(日)이다, 월(月)이다,
      년(年)이다 하며,
      시간에 매듭을 지어 구분하는 습관에 익숙하다.
      이것은 무한한 시공 속에서 보면, 한낱 부질없는 짓에
      지나지 않는다.
      유한한 삶을 사는 우리가 이를 깨닫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도연명이 자기의 죽은 뒤를 상상하고,
      글까지 남겼다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차분한 생활에서 얻을 수 있는 지혜로운 마음에서
      느끼는 자유,
      즉 “마음의 평화”를 가져온 상태였으리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