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내 사랑 예수/죽음같이 강한 사랑(아가서강해)

Horace 2018. 12. 9. 10:00

죽음같이 강한 사랑(20):2018 12 9

너무나 사소한 것의 중요성

Importance of something so trivial

아가서5:6~8

Song of Songs 5:6-8

 

지난 주일에는 우리의 관계는 언제나 죽을때까지 위기나 갈등을 겪을 수 밖에 없다고 하였습니다. 없다면 가장 위험할 수조차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그 위기가 아주 조그마한 것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게 되면, 이해되기 어려운 부분들을 탐구해 가노라면 그런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어떻게 그 갈등의 위기를 해결해 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이겠지요.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그러한 질문들에 빛을 얻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Last week, I shared that our relationships are always vulnerable to crisis or conflict until death. And this is even a necessity. To not have any trouble is more dangerous. However the important point was the way in which we overcome the troubles. Today I want to highlight on the fact that the trouble/crisis can occur from such trivial matters. When we look at the text today and dive deep into the hardest elements, that’s what we will find. But the focus of today’s text should also be about overcoming those crisis of conflict. Let’s allow the text to reveal those answers for us today.

 

1. 매까지 맞고 겉옷을 벗김 당할 만했나? 1. Is it worth getting beaten and having your veil taken away?

 

방문의 문틈으로 손을 넣어서까지 들어오려고 하시다가 들어오지 못하자 떠나 버린 남편을 이제 찾아 나서게 되는 여인의 모습이 오늘 본문의 모습입니다.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도대체 무슨 잘못을 그렇게도 했길래, 이 너무나도 사소한 것 같은 일(문늦게 열어주는 일)로 인해서, 여인이 그 남편을 찾아 나섰다가, 오늘 본문 7절을 보면, 성 안을 순찰하는 자들에 의해서 매를 맞아 상하기까지 하고, 성벽을 파수하는 자들에 의해서 겉옷을 벗김 당하는 수모를 당하기까지 하는 것일까요? 물론, 성폭행을 당한 정도는 아닙니다. “겉옷이란, 장식용 숄(수건) 정도라고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어쨌든, 곤욕을 당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질문은 이것입니다: 문 열어주는 것 조금 늦었다고 이런 곤욕과 상처까지 당한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여기서 우리는 이 연애시가 단순한 남녀간의 연애시 정도에 멈추는 것이 아님을 다시금 인정해야 합니다. 보통이 남녀간의 갈등이 아니고, 바로 성도들과 하나님(그리스도)의 관계에 있어서 생기게 되는 갈등입니다. 이 아가서에서도 그리스도로 여겨지는 남자가 무슨 잘못을 한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 남자는 문을 열려고 하다가 못 열게 되니까 어디로 간 것일까요? 62절을 보면, “자기 동산으로 내려가 향기로운 꽃밭에서 이르러서 동산 가운데서 양떼를 먹이며 백합화를 꺾고 있습니다. 사실, 이 일을 위하여서 밤새도록 수고하다가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하였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The text today shows us of the woman chasing after her husband. She goes out searching for her beloved, who have turned away after trying to wedge himself in, but having left to wait. But isn’t this strange? What did the woman do so wrong? If anything, she opened the door slightly late, a trivial act, but because of this trivial act, when she goes out to search for her beloved; “The watchmen found her (me), as they went about in the city; they beat her (me), they bruised her (me), they took away her (my) veil, those watchmen of the walls.” (5:7). The ‘veil’ here is like a thin piece of cloth, so it wasn’t as if she was sexually abused, but she suffered a harsh time. But is this reasonable? How do we understand what she did (opening the door slightly late) deserved such harshness? We have to remember here that this relationship isn’t a portrayal of a male and female relationship, so it is not a trivial incident between male and female. The conflict portrayed here is between God (Christ) and His members (believers). Even when we read the text closely, we cannot find any fault from the husband (Christ). Then where did he disappear off to? We read later in chapter 6:2; that He “(My beloved) has gone down to his garden to the beds of spices, to graze in the gardens, and to gather lilies.” He appears to have gone back to work, what he was doing beforehand, working until “... his (my) head is wet with dew, his (my) locks with the drops of the night” (5:2).

 

주님께는 잘못이 없습니다. 잘못이 있다면 주님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바로 우리들에게 잘못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서 명령하시기를,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4:30), “성령을 소멸시키지 말라”(살전5:19)고 하신 것을 어겼기 때문에, 우리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 갈등과 위기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성령을 근심케 하고 소멸시키는 일은 어떤 것일까요? 흔히들, “성령의 세미한 음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성령은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영과 생각 속에서 활동하시고 작용하십니다. 여러분들이 말씀을 듣다가 어떤 생각이 스쳐지나갑니다. 그 생각들 속에는 우리 주님께서 우리들 각자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 어떤 형제는 말씀을 듣는 중에 금식기도를 한 주간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이전부터도 그런 생각을 해오다가 설교중에 더욱 분명해집니다. 그런 생각이 들 때에, 마땅히 그렇게 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있지 않는 한에 있어서는 빨리 그 음성에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8:5~6)고 합니다. 평안을 누리는 길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Christ did no wrong. Christ has no fault. If there was a fault, it cannot be Christ’s. Between Christ and us, the fault always lies with us. We failed that which the Lord has commanded us to: “not grieve the Holy Spirit of God,” (Ephesians 4:20), and to “not quench the Spirit.” (1 Thessalonians 5:19), and because we have failed, we face conflict and crisis in our relationship with Him. How do we grieve and quench the Spirit? We commonly use the phrase: ‘Holy Spirit’s still small voice’. Because the Holy Spirit is a spirit, who works in our spirit and mind, we have to listen to him. What thoughts go through your minds when you hear a sermon? He may be telling you a message! A member last week thought to fast and pray for one week. He had thought of doing this for a while, but whilst listening to the sermon, he was more convicted to fast. When we get these thoughts, when we hear the ‘still small voice’ of the Holy Spirit, if there aren’t any valid reasons not to follow through, we have to respond and obey His voice! Apostle Paul puts it like so; “For those who live according to the flesh set their minds on the things of the flesh, but those who live according to the Spirit set their minds on the things of the Spirit. For to set the mind on the flesh is death, but to set the mind on the Spirit is life and peace.” (Romans 8:5-6). The way for peace is here. Listen to the Holy Spirit and respond. Do not grieve the Holy Spirit, do not quench the Spirit!

 

2. 순찰자와 파수군들은 누구인가? 2. Who are the watchmen, the watchmen of the walls?

 

그런데, “마땅히 그렇게 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령, 그 형제분의 가정에 화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들이 있다면, 그 일들 가운데서 경중을 따져보는 지혜가 필요하겠지요. 과연 어떤 일이 더욱 우선적인가? 어떤 일에 순종하는 것이 영의 일이고, 하나님의 나라의 일인가? 이런 질문을 할 때, 우리의 양심이 하나님 앞에서 선할 때에 우리는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여인을 길거리에서 잡아서 매질을 하고 상처를 입히고 겉옷까지 벗기는, “순찰자들파숫군들이 도대체 누구일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어떤 이들은, 성을 대표하는 세상의 질서를 지키는 자들이 이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사용하시는 앗수르나 바벨론을 예로 들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우리의 양심의 역할이 바로 우리의 영혼의 질서를 잡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감찰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매질을 당하고 겉옷을 벗기는 수모를 당하는 모습은, 주님과의 관계의 위기 속에서 양심의 고통과 아픔을 겪고 있는 모습으로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해석을 좋아합니다. 만일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 어떤 위기가 생겼을 때마다 우리의 생활 속에서 사업의 실패나 낭패를 당하는 일들로 본다면, 우리 주님을 너무 잔인하고 냉혹한 존재로 이해하는 것이겠기 때문입니다.

 

But what about when there is a ‘valid reason’ not to? Let’s discuss the brother we just took an example from. What if he had urgent family matters? He would need great wisdom to discern what to do. To know what takes priority. To discern which act is the work of the Spirit and is for the Kingdom of God! When we ask these questions, if we have a righteous conscience towards God, then we will be able to make a rightful decision.

Here we have to discover who these ‘watchmen of the walls’ are, who beat the wife, bruised her and took her veil from her. Some theologians thinks they are those who keep the order of the world (represented as the city in the text). For example, they are the Assyrians or the Babylonians whom God used to punish the Israelites. But we must realise that our role of conscience is an inspector set by God to keep the order of our soul. So the beating and the embarrassment of having our veils taken away can represent the struggle and fight of our conscience in the time of trouble in relationship with Christ. I like this explanation. Because we tend to mistakenly think that when we have relationship troubles with Christ, we suffer through hardship in our lives, our businesses, or other pitiful incidences. If we relate these troubles with troubles with Christ, then Christ becomes too much of a cruel and cold character who only punishes, which we know He is not!

 

3. 갈등의 위기는 어떻게 극복되는가? 3. How to overcome the crisis of hesitation?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이런 관계의 갈등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8절이 우리들에게 많은 힌트를 제공해 줍니다: “예루살렘 딸들아 너희에게 내가 부탁한다 너희가 내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무나, 함께 신앙생활하는 교우들에게 도움을 구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지금 당하고 있는 아픔이나 상처를 부끄럽지만 교회공동체에 알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하는 것에 대해서 너무 부끄러워하거나, 주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이런 실수나 잘못을 말하면서 도움을 구하면 그것을 이용해서 나를 오히려 욕하거나 오히려 낭패에 빠뜨리는 것이 아닐까 하고 염려하기까지 합니다. 사실, 그런 교회공동체라면,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교회는 완전한 자들의 모임이 아닙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모두 공사중인 자들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의인들이지만, 여전히 남은 죄가 있는 죄인들입니다.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도 내어놓고 고백하며 진실로 기도해 주기를 부탁하는 공동체가 생명이 있는 공동체입니다. 자신은 완벽한 것처럼 부족한 것을 말하면 안되는 것처럼 생각하면서, 서로에게 과장된 자신의 모습만을 보여주는 것은 신앙과 교회의 본질을 모르는 것입니다.

 

Fundamentally, what is important is how we overcome these times of conflict and trouble in our relationship with Christ. Verse 8 gives us a clue: “I admire you, O daughters of Jerusalem, if you find my beloved, that you tell him, I am sick with love.” (5:8). That is to seek the help of fellow believers. The troubles you face may be embarrassing, but share it with your church community. We are usually very embarrassed to do so, and so we hesitate. We worry if we share our vulnerability, that vulnerability may be used against me some day. If that is the case, then such church community should not exist! The church is not made up of perfect believers. We are all in need of work, we are all flawed, vulnerable and require fixing. We are made perfect in Christ, but we are sinners still left with ‘in-dwelling’ sin. When we share our weaknesses and open up our vulnerabilities, asking for prayer with all of your hearts; and when the church community can listen and embrace and pray for them, that is the life giving community! We should not think that we must hide our imperfections and only show off our perfection. That is not showing and sharing your true selves. That is not the Church, and you do not understand the foundation of faith and the church.

 

이런 면에서 저는 강조하고 싶은 것이 교회는 목욕탕이라는 것입니다. 저의 처갓집이 목욕탕이어서 갖게 된 이미지입니다. 목욕탕 이전에는 사상교회가 맨처음 개척했던 곳을 구입해서 목욕탕으로 개조했습니다. 목욕탕에 들어가서 옷도 벗지 않고 넥타이를 매고는 탕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참 우스꽝스러운 모습입니다. 교회는 영적 목욕탕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서, 영적으로 목욕을 하는 것입니다. 발을 내어 밀고 서로 씻어주는 날이 주일입니다. 자신의 문제를 내어놓고 서로를 위해서 기도해주고, 격려해 주고, 그러면서 주중에도 서로를 기억하면서 염려해주다가 주일에 만나서 주님 안에서 예배하게 된다면, 우리들의 예배는 참 복된 예배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천국제자들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어떤 관계의 위기 가운데 있습니까? 아주 조그마하고 미세한 일들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극복해 낼 때야말로 우리의 관계는 보다 성숙한 관계로 자라게 됩니다.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 가는지 한 가지만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강조합니다만, 앞으로도 더욱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이 묵상들을 통해서 더욱 성숙한 우리들의 관계, 주님과 우리의 관계가 되기를 소망하는 이유입니다.

 

Thinking of all this, I want to make a point that the church is like a bath-house (목욕탕). My father-in-law used to run a bath-house. What must you do when you enter one of these bath-houses? Have you ever seen anyone who goes into the baths with all of their clothes on? It is an amusing but a foolish sight. The church is a spiritual bath-house. We come together once a week to spiritually bathe together. We wash each other, even our feets. That is the Lord’s day. To come openly with your troubles, your worries, to come without hiding anything and to have the community pray for you, to encourage you, to encourage one another. And then throughout the week, that same community will remember you and pray for you again. And to be able to come together again the following week to worship together. Oh, what a glorious worship that would be.

Dear members of KDC, what kind of relationship crisis are you facing? Remember those crisis can start from something trivial, so be very mindful. And remember only when you overcome those crisis/trouble, we will be able to grow into more mature relationship. We looked at one way of overcoming times of crisis through the text today, but we will look at more the following weeks. I hope and pray that through these readings and teachings, that we will together be able to grow, to mature in our relationship with each other within Chr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