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내 사랑 예수/죽음같이 강한 사랑(아가서강해)

Horace 2019. 1. 10. 18:35

아가서강해(22): 2019113

그리스도의 뛰어나심(2)

아가서5:10~16

 

배우고 가르치자면서 2019년도 한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무엇을 배우고 가르쳐야 하겠습니까? 성경과 신앙고백을 구체화시킨, 소교리문답과 새가족양육교재들을 제시하였습니다. 이것들을 읽고 익히며 또한 다른 새가족들에게까지 제시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금 아가서강해를 재개하게 됩니다만, 10절을 지난 해 마지막으로 상고하였는데, 이 부분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연애시적으로 표현하는 것임을 강조하였습니다. 흰 것은 그리스도의 신성, 붉은 것은 그리스도의 인성을 강조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설명을 처음 듣게 되신 분들은 좀 당황스러울 수도 있고, 기존 교우님들도 오랜만에 본 강해로 되돌아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 내용이 가물가물할 수도 있겠다 여겨져서 지금까지의 내용들을 간략하게나마 요약하겠습니다.

 

1. 지난 아가서강해의 요약

 

아가서의 연인들끼리 그 관계를 탐색하고 사랑을 확인하며 주고받는 내용은,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 특별히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탐색하고 그 사랑을 확인하며 주고받는 신앙고백적인 내용임을 말씀드렸습니다. 햇볕에 그을려 얼굴이 검어진 여인이 자신의 못남을 알고서도 사랑해주는 자신의 연인이 너무나도 향기롭고, 사과나무이며 또한 깃발임을 발견하는 과정은, 죄인된 우리들이 제사장되시고, 선지자 되시며 또한 왕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발견해 가는 과정임을 강조하였고, 주저주저하면서도 드디어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감성과 이성, 그리고 의지, 곧 전 인격을 만족시켜주실 수 있는 분임을 발견하고 드디어 결혼의 언약까지 맺게 되는 것도 묵상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언약을 맺은 부부관계가 잠시의 소홀함으로 깨어지게 되어 위기가 도래하고 그만 남편이 실망했는지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그 남편을 찾아나선 것은,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우리가 그만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소홀히 여김으로 인하여 야기된 관계의 위기를 어떻게 회복시켜 가느냐 하는 것을 보여준다고 하였습니다. 남편을 찾는 중에, 순찰하는 자들과 파숫군들에게 손찌검을 당하는 상처를 입습니다. 그래서 다른 여인들에게 자기 남편을 찾는데 도와달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소원하게 될 때 하나님의 징계와 매를 맞게 되는 경우도 있고, 그럴 때 기존 성도들의 조언을 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도 말씀드렸습니다. 그 관계의 위기의 회복을 위하여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강조하였습니까? 그 여인들이 질문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냐는 것을 두 번이나 질문합니다. 바로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줄 알고 믿고 언약을 맺었느냐는 것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뛰어나심을 다시금 회상하고 그분과의 첫사랑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0절에 여인이 자신의 사랑하는 자가 어떤 자인지를 고백하는 부분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자신의 사랑하는 이가 희고도 붉고 많은 사람 가운데 뛰어나다는 것”, 우리의 연인이 되시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가지신 유일하신 분, 우주 만물 가운데서 가장 뛰어나신 분이심을 회상하면서 고백하고 있다고 하였던 것입니다(유색인종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면 안됩니다!). 문제의 답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것을 인식하고 진정으로 고백할 때, 우리의 문제들을 해결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의 삼중 직분

 

11절부터 16절까지는 그리스도의 직분과 사역을 고백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앞에서 이미 발견하였던 향기, 사과나무, 깃발되시는 예수님을 회상하고 고백하였던 것과 일치됩니다. 사역은 다음 주일에 살펴보고, 오늘은 직분에 초점을 맞추겠습니다. 11절의 머리는 순금같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왕되심을 가리킵니다. 다니엘이 보았던 느붓갓네살의 신상의 머리가 황금이색이었던 것을 연상시킵니다. 머리털은 어떻습니까? “고불고불하다는 것은 풍성하다는 것이며, “까마귀같이 검다는 것은, 그만큼 젊고 생명력으로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요한계시록에서 계시된 그리스도의 머리털은 흰 양털 같고 눈 같다(1:14)고 하는데 그리스도의 위엄과 영원성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저의 머리털은 무엇을 상징할까요?^^).

 

둘째로, 12절은 그리스도의 선지자되심을 회상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눈은 시냇가의 비둘기 같은데 우유로 씻은 듯 하고 아름답게도 박혔구나.앞서서 115, 411절에서 비둘기의 눈을 여인의 순결함을 비유하는데 사용하였기 때문에, 이 구절에서도 그리스도의 순결함을 말하는 것처럼 여겨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순결함을 무시하지 않더라도 훨씬 그 이상임을 우리는 강조해야 합니다. 팔레스타인의 시냇가는 특별한 시기에만 물이 그득합니다. 특별히 우유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표현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풍요로움을 말합니다. 우유로 씻었다는 것은, 그만큼 풍성하고 가득찬 지혜의 눈길을 말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의 눈은 불꽃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선지자직분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는 이유입니다.

 

또한 13절은 뺨과 입술을 묘사하는데, 그것을 향기로서 표현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기를 바랍니다. ‘향기는 우리의 감성과 직접 연결되고, 감성의 문제는, 제사장되신 그리스도 안에서만 해결된다는 것을 앞에서 우리는 살펴보았습니다. 남편의 뺨이 향기로운 꽃밭과 풀언덕과도 같다는 것입니다. 어떤 냄새일까요? 풀언덕을 뒹굴어 보셨습니까? 꽃밭에 들어가서 꽃 속을 거닐어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 싱그러운 냄새들이 코끝을 간지럽게 하면, 온몸 전체가 힐링되는 것을 느끼지 않습니까? 우리의 상처, 우리의 감정과 영혼의 깊은 상처들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대제사장되시는 그리스도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통해서 우리의 영혼을 치유하려고 하지 않고, 다른 향기들을 찾으려 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선지자(8:22),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하냐 그곳에는 의사가 있지 아니한가 딸 내백성이 치료를 받지 못함은 어찜인고?하고 탄식하였던 것입니다.

 

사실, 이것들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바입니다. 저는 그리스도의 삼중직분에 대해서 반복적으로 강조해 왔습니다. 그러므로,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를 우리의 왕이요, 선지자요, 제사장으로 믿고 의지하며 순종하는 데까지 이르는 것입니다. 왜 이 점을 이 시점에서 강조하는가 하면, 아가서의 이 여인은, 사실, 이것들을 고백하면서도 순종하는 데까지 이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62절에 보면, 자신의 남편이 어디에 있는지를 여인은 압니다. 애당초(1:8) 자신의 연인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어딘지에 대해서 물었고 답을 들었습니다. 또한 그곳을 찾아서 만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알고 있으면서도 그곳에 가기까지 하고 언약의 고백을 떠올리리까지 하면서, 온전히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왜 그런 지에 대해서 앞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두 번이나 연속해서 남자의 사랑의 고백으로 격려를 받고서야 7장 마지막 부분에서 그 관계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당장이라도 그 관계가 회복될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왕이심을 믿고 순종하십시오. 선지자이심을 믿고 하나님의 뜻을 여쭤보십시오. 친히 제물되시어 당신 자신을 십자가에 바치시고 하늘성소 그 지성소에 친히 들어가신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영혼을 의뢰합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4:16). 그러할 때, 우리의 그리스도와의 관계의 위기도 회복되어지고, 우리들끼리의 관계들도 더욱 온전하게 회복되어져 갈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만 우리의 진정한 왕이시며, 선지자이시고, 또한 제사장이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