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내 사랑 예수/죽음같이 강한 사랑(아가서강해)

Horace 2019. 1. 27. 09:19

아가서강해(24): 2019 1 27

그분은 백합화 가운데서 양떼를 먹이시는데....

He feeds his flock among the lilies (NKJV)

아가서6:2~4

Song of Songs 6:2-4

 

어린 시절에 읽었던 책들 중 감동적인 것들 중 하나가, 샘터사에서 나왔던 <노란 손수건>이라는 책입니다. 그 안에 담겨진 10편의 이야기들 중 책제목으로 뽑힌노란 손수건과 관련된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미국 어느 시골을 달리는 버스 안. 다양한 사람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한 판의 어수선함이 끝나자, 사람들의 시선은 구석진 자리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창밖만 응시하고 있는 우울한 남자에게로 향합니다. 한 젊은이가 용기를 내어 그에게 말을 붙였습니다. 그는 이제 막 교도소 문을 나서는 죄수였습니다. 오래 전에 그는 잘못을 저질렀으며, 그 죄값을 치르고 이제 그가 예전에 사랑했던 여인이 살고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문제는 그녀가 아직도 그를 기다려 줄지, 였습니다. 그는 출소하기 직전에 그녀에게 보낸 편지에서, 며칠쯤 그 집 앞을 버스로 지나갈 터인데, 만일 아직도 자신을 사랑한다면 노란 손수건 하나를 집 앞 참나무에 달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과연 나무에는 손수건이 달려 있을 것인가? 버스가 모퉁이를 돌아 그녀가 사는 집 쪽으로 다가서기 시작했습니다. 버스 안의 사람들은 모두 일어서서 숨을 죽인 채 집 근처의 나무를 살폈습니다. 한 사람이 소리쳤습니다. "손수건이에요!" 동시에 모든 사람이 환호성을 올렸습니다. 아담한 집 밖에 선 참나무에는 가지가지마다 수많은 노란 손수건이 매달려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습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이 노란손수건이라는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어떤 본문입니까?

 

One of the most memorable books I read in my youth was a book called 'Yellow Ribbon'. It contained 10 short stories, one of which was the title of the book 'Yellow Ribbon'. The story goes;

 

On a bus driving through the country roads of America, there were all sorts of people seating, chatting, travelling. There sat a man looking out the window, looking a bit blue. Another passenger took courage and approached the man by the window and started talking. They found that the man had just been released from the prison, after serving his time for the crime he committed many years ago, and was on his way back to the place where the woman he love used to live. The problem was that he did not know whether she still loved him after all these years. So he sent her a letter before his release asking her to tie a yellow ribbon on the tree outside her house, if she still loves him. He was too afraid to look out the window as the bus approached her house. Will there be a yellow ribbon? The other passengers on the bus, after listening to the story, were all on the lookout, and one shouted: "yellow ribbons!" Everyone cheered! The man looked up to find that the tree was not tied with just one yellow ribbon, but completely covered with yellow ribbons, all swaying like leaves by the wind. I remembered this little story while meditating on today's passage.

 

1.고백은 너무도 아름답지만1. Confession may be beautiful, but...

 

우리는 전체 아가서 가운데서 이 본문의 위치를 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아가서의 스토리전개를 잊어버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한 두 남녀가 상호간의 사랑을 확인하고 결혼언약까지 맺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거듭나고 회심하게 된 것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강조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결혼후의 생활은 우리의 잘못으로 인하여 위기가 오게 됩니다. 혹자는, 하나님에게 잘못을 돌리고, 불평하면서 그 탓을 하려고 하지만, 하나님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전혀 잘못이 없습니다. 우리가 게을렀고, 주의를 다른 곳에 돌리고 좌우로 치우치게 된 것입니다. 그래도,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을 다시금 찾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것조차도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임을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주님을 찾아나서서 이전의 사랑했던 주님을 그리워하면서 그 머리와 눈, , 그리고 손과 발, 몸을 그리면서, 함께 찾아달라고 간구하는 마음이 분명한데, 사랑하는 주님을 아직 만나고 재결합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We need to remind ourselves where we are in the story of the song of songs. Remembering the whole story, how it has been progressing. Where the story took us to. Two people in love have affirmed their love and made the covenant in marriage. This was representing the becoming of a christian with true conversion. But we saw due to our fault, the marriage faces trouble. We may turn that blame to God, complain to him, but God, our Lord Jesus Christ has no fault, hasn't done anything wrong. It was us who were lazy and idle, it was us who turned our attention to something else and sway and falter! But in order to overcome these troubles, we had the heart to find our Lord again. Even this was God's doing. And we search for him, reminding ourselves of who he is, remembering the love, remembering his head, eye, cheeks, hands, feet and body, searching for him with all our hearts, and yet, the woman still has not met with her beloved and has not been reunited.

 

오늘 본문의 2절과 3절을 어떤 이들은, 다시금 두 연인이 만나게 된 것을 그리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613절을 보면, “돌아오고 돌아오라 술람미 여자야 돌아오고 돌아오라고 반복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직 이 여인이, 주님과 갈등을 겪는 성도가 아직 제자리에 돌아와 있는 것이 아닌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6장과 7장에 묘사되어 있는 남편의 여인에 대한 노래가 제대로 이해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확실한 것은, 이 여인이 연인이 되시는 주님이 어디에 계신지를, 그리고 그분과 더불어 맺은 언약관계를 또한 분명하게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18,216절을 보면 분명하게 그렇습니다). 우리도 그럴 수 있는 것입니다.

 

The text today, verses 2 and 3, some people state that the two lovers have reunited. However as we read later in Song of Song 6:13, "Return, return, O Shulammite, return, return, that we may look upon you", the woman, the believer who is still struggling, has not yet come back and reunited with the Lord. With this in mind, the song the husband sings of his wife slightly differently in chapter 6 and 7 can be better understood. What we know here in the text is that the woman knows where her beloved, our Lord, is and knows the covenant she has made with him; she knows the relationship she has committed herself into (as is also described in Song of Songs 1:8, 2:16). And we can be just like the woman.

 

2.신앙은 아는 것 그 이상 2. Faith is more than just knowledge

 

주님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주님의 사랑에 대해서 확신하지 못하면서 주저하면서 깊은 교제의 만남과 관계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확신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가장 흔한 것은, 아마도, 너무나도 잘못이 크기 때문에, 주님이 이번에는 용서해 주실까 하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이번에도 용서해 달라고 하면 너무 뻔뻔스럽다고 스스로 또한 여겨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더욱 담대하게 확신으로 나아가고 하는 용기가 없기도 한 경우들이 있습니다.

 

We can know about our Lord, we can know a lot about our Lord, but knowing about Him and knowing about His love, not knowing Him and not knowing His love, makes us hesitant to fall into a deep and meaningful relationship with Him. It also hinders the assurance of the love of Christ. There are couple of reasons for this doubt. Most common reason is, usually, feeling afraid that your sin is too big to be forgiven, or being afraid to ask for forgiveness again and again for the same sin, lacking the courage to have confidence in his forgiveness.

 

어느 권사님의 가정에 복면강도가 들어왔습니다. 잠자고 있던 권사님이 일어나 보니 복면한 사람이 가슴에 칼을 겨누며 말하기를 "조용히 하시오!" 라고 했습니다. 권사님은 태연한 자세로 강도의 손을 잡고 "하나님, 이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고 앞으로는 이런 짓을 하지 않게 해주세요" 하고 기도하였습니다. 기도를 마친 권사님은 강도에게 말하기를 "나는 ㅇㅇ 교회 권사인데 무슨 일로 오셨나요?" 라고 묻자 강도는 권사님의 행동에 당황하면서 말하기를 "나는 며칠 전에 교도소에서 출감해 나왔는데 갈 곳은 없고 직장도 없는지라 손수레를 하나 구해서 장사하면서 살아가야겠구나 생각하다가 이렇게 권사님의 집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강도의 말을 들은 권사님은 손수레 값을 주면서 말하기를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말고 부디 성공하여 잘 살아보라" 고 했습니다. 강도는 권사님의 말에 감동되어 복면을 벗고 엎드려 절하며 말하기를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강도가 밖으로 나가자 권사님도 따라 나왔습니다. 날씨도 차가운데 들어가시라 했지만 괜찮다며 사거리까지 나온 권사님은 부디 성공하라며 손을 흔들어주며 헤어졌습니다. 그러나 권사님은 즉시 그 옆에 있던 파출소에 들어가 신고하여 그 강도를 잡게 했습니다. 권사님의 얼굴을 본 강도는 어이없어서 입술을 깨물며 지긋이 떨었습니다. '조금 전만 하더라도 천사 같은 모습으로 기도해주며 성공하라 했었는데...' 이 사실을 알게 된 경찰들은 "저런 게 무슨 교회 권사야?" 하면서 욕했습니다. 그 권사님이 경찰에 신고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 강도가 다시금 자기 집에 올 것이라고 두려워했을까요? 아니면 혼을 내주어야 한다고 속으로 생각했었던 것일까요? 저는, 이 권사님이 세상적인 지식이나 기지는 있었는지는 몰라도 주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에 대한 진정한 확신과 담대함이 부족했었다고 생각합니다.

 

A masked robber came into a house of one believer in the middle of the night. When that believer woke up, she saw the masked robber with a knife by her chest telling her to 'be quiet!'. She calmly held the robber's hands and prayed; "Dear God, please take pity on this man and help him not to do this pitiful act again." After her prayer, she told the robber; "I am a member/권사 of 00 church, what business do you have here?" The robber replied; "I was released from the prison few days ago, but I have no place to go, no job, so I thought to obtain a cart to start a selling business, and came into your house." Hearing the story, she gave him enough money to buy a cart and told him; "I hope you never have to rob again and please succeed in your ventures." Surprised and touched by her generosity, the robber took off his mask, fell to his face and thanked her, pledging he won't forget her generosity. The man came out of the house, and she followed. It was a cold night, and the man told her to please go back inside, lest she catches a cold, but she insisted on walking him out to the main road, waving goodbyes, encouraging him. But as soon as they parted ways, she went into the police station on the main road and reported the robber and they were able to apprehend him quickly. The robber, upon seeing her face again, dumbfounded and agitated said; "moments ago, you had the face of an angel, blessing me, praying for me to do well..." When the police officers heard the whole story, they criticized the woman saying "what kind of a christian is she?"

 

In this story, was what she did wrong? Was it wrong of her to report a crime? Why did she report the robber? Did she think that the robber might come back, and so was she scared? Or do you think she wanted to teach him a hard lesson? I think, although she may have had the wisdom of this world and wit, she did not have enough assurance and confidence in the protection and guidance of God.

 

3.주님의 관점을 지금 인정하고 받아들이자 3. Accept the Lord’s perspective of you

 

우리는 우리 자신들도 이런 위선적인 모습을 가질 수 있는 자들임을 인정해야 하겠습니다. 다윗처럼 간음죄와 살인죄에 언제든지 빠져들 수 있는 자들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우리가 너무나도 특별하고 예외적인 자들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지난 주 수요일예배때, “여백의 충만이라는 제목으로 강조하였습니다. 우리의 죄인됨을 철저하게 인정하고 순간마다 은혜를 구하지 아니하면, 우리도 또한 언제든지 사악하고 못된 범죄 가운데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것을 인정하면서 주님의 충만한 은혜를 구하는 것이, “여백의 충만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다른 성도들에게 대해서도 판단하거나 교만하지 않고, 그 연약함을 인정하면서 감싸주고 위로하고 서로 죄인된 자들로서 사랑하는 것이 이런 충만이요, 참된 해방과 자유의 삶이 가능해지는 첩경인 것입니다.

 

We need to admit that we too can have these hypocritical side. We are just like David, who can slip and commit the sins of adultery and murder. We cannot think of ourselves as special, and delude ourselves in thinking we are exceptional, that we are not hypocrites, that we cannot be hypocrites. on last Wednesday service, I preached on the "fullness of margins". We need to completely admit of being a sinner and ask for grace continually, otherwise we can fall back into doing hideous and heinous crime at anytime. We have to accept and admit this and ask for the fullness of grace of God; that is the "fullness of margins". So do not criticize anybody else, accept their weaknesses, embrace them, console them, and help them. We are all sinners, and showing love like this is true fulness and the path that enables true liberation and freedom of life.

 

사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그런 자들로 세우시기 위해서 64절부터 710절까지 당신의 연인이 되는 교회를 향하여 사랑의 고백을 연이어서 하고 있습니다. “내 사랑아 너는 디르사 같이 어여쁘고 예루살렘같이 곱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하구나.디르사는, 사마리아 이전에 북이스라엘의 수도였던 곳입니다. 예루살렘은 남유다의 중심지입니다. 성도를 이렇게 도시로 비교하는 것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너희는 산위에 동네라고 하는 것과도 일치됩니다. 우리는 비록 주저하고 있는데, 주님께서는 우리를깃발을 세운 군대같이 당당한 모습으로 보아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악으로 두려워 떨고 있는데, 주님께서는 우리를 의인으로 여겨주시고, 우리를 격려해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런 격려의 음성을 계속해서 들으시면서, 주님과의 참된 교제를 누리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Our Lord, Jesus Christ, wants us to become such believers, and so he expresses that desire through chapter 6:4 until 7:10. It is a confession of his love for his church. "You are beautiful as Tirzah, my love, lovely as Jerusalem, awesome as an army with banners." (6:4) Tizrah was the capital of Northern Israel before Samaria. Jerusalem is the capital of Southern Judah. Describing the believers with such cities, is like Jesus calling his disciples as "a city set on a hill" (Matt 5:14). We may be unsure and hesitant, but our Lord sees us to be "awesome as an army with banners." We may be trembling with our sins, but our Lord sees us as clean and righteous and encourages us. Hear his encouragement, listen to his words. I hope and pray we can truly experience fellowship with Christ togeth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