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내 사랑 예수/천국실험

Horace 2019. 2. 28. 14:06

제국과 천국(8):2019224

예루살렘,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그곳

신명기12:1~28/사무엘하5:6~10

 

가인의 에녹성, 니므롯의 바벨론, 히엘의 여리고성, 그리고 로마제국의 천국제자들(로마서12:2), 제국에서의 천국시민에 합당한 생활(빌립보서1), 제국의 광인을 치료하는 천국의 능력(거라사광인), 제국 속에서의 신앙고백(가이사랴 빌립보)이란 제목을 가지고, 제국과 천국을 대조시켜 가면서 구약과 신약을 상고하였습니다. 오늘은 드디어 예루살렘이란 도시에 대해서 상고하겠습니다. 이번 주 수요일의 안디옥이란 도시와 다음주일의 새예루살렘을 상고하고는 본 시리즈를 마치고자 합니다. 오늘 설교의 주제는, 예루살렘이란 도시를 통해서 배울 교훈으로서, 이와같이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더욱 은혜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1.이방인의 도시 예루살렘

 

먼저, 예루살렘은 이방인들의 평범한 도시들 중의 하나였습니다. 물론,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바쳤던 멜기세덱의 도시가 살렘이었다고 하니, 예루살렘을 말하는데, 신비한 면이 없는 면이 아닙니다. 그때에는 아직 가나안 전역에 죄가 관영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세댁’()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훗날 여호수아와 함께 이스라엘백성이 가나안땅을 정복하여 땅을 기업으로 분배하였을 때, 베냐민지파에게 할당되었습니다(18:8). 하지만, 이 성을 베냐민지파 사람들은 완전히 정복하지 못하여서 그 안의 여부스족속 사람들을 쫓아내지 못한 채로 함께 지냈습니다. 묘하게도, 유다지파사람들이 베섹왕 아도니베섹을 붙잡아서 엄지손가락과 발가락을 잘라버리는데, 아도니베섹이 말하기를, “옛날에 칠십 명의 왕들이 그들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이 잘리고 내 상 아래에서 먹을 것을 줍더니 하나님이 내가 행한 대로 내게 갚으심이로다고 말하였습니다. 천벌을 지금 받는구나 하면서 후회했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끌려가서 죽임을 당하는 것이 어디입니까? 바로 예루살렘입니다. 심판의 도시이기도 한 셈입니다. 이렇게 한편 유다지파에 의해서 정복이 되었지만, 여부스족속을 쫓아내지는 못하고 그곳에 베냐민지파 사람들과 여부스족속이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그곳이 정복되어 이스라엘의 수도가 되고 다윗성 혹은 시온성이라고까지 불려지게 된 것은, 가나안땅을 정복한지 500년이나 지난 뒤였습니다. 그 동안 그저 평범한 한 이방인들의 도시였었다는 것입니다. “네가 건축하지 아니한 큰 성을 주리라고 약속하셨고, 정복까지 하셨는데도, 차지하고 누리지 못한 성이 바로 예루살렘이었습니다. 500년 동안이나 말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있는 것이 아닙니까? 이미 주셨고, 또한 차지하였는데도 누리지 못하는 것 말입니다.

 

2. 다윗의 성 예루살렘

 

그런데, 다윗의 때부터 그 예루살렘을 완전히 정복하여 이스라엘의 수도로 삼게 됩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부스사람들이 다윗이 이곳을 정복하지 못할 줄 알고, 놀려대기를, “맹인과 다리 저는 자라도 너를 물리치리라고 한 일 때문에, 속담이 생겨다고 합니다. “맹인과 다리 저는 사람은 집에 들어오지 못하리라는 속담입니다. 장애인들은 다윗성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뜻일까요? 훗날 다윗은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이 장애인인데도 솔로몬으로 하여금 그 상에서 식사를 함께 하도록 유언하였습니다. 장애인이라도 언약의 사람이라면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오히려 조롱하는 자는 다윗성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좋겠습니다. 그만큼 거룩한 성이라는 뜻입니다. 오히려 거룩한 성을 예표하는 성이란 뜻으로 보면 더 좋겠습니다. 신약시대에는 지상의 어떤 곳이 성소라거나 성지라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당을 성전이라도 부르면 안 되는 것입니다.

 

원래, 신명기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에 들어가게 되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두시고자 하시는 한 장소에 제물들을 가지고 가서 예배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백성들이 예배의 장소로 정하는 곳은 처음에는 실로였습니다(18:1). 이곳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두시고자 하신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곳에 언약궤를 두고 예배를 드리기를 5백년 정도나 하였다니, 뭔가 이상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것은, 이스라엘백성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두시는 한 장소를 찾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지를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저 장소의 문제가 아닙니다. ‘거룩한 공동체에 대한 갈망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어떤 장소나 지역이 거룩하다는 식으로 하나님의 뜻을 오해하였습니다. 성도의 만남과 교제가 거룩한 것인데, 그곳이 성소요, 그곳이 성전인데, 그만 오해하였던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가 그러하지 않습니까? 이 지상에서도 우리는 천국을 찾아야 하는데, 제국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는 중에도, 하나님의 뜻을 어느 누구보다도 더 분명하게 느꼈던 사람이 바로 다윗이었습니다. 바로 그가 지금 여부스족이 차지하고 있는 예루살렘의 영적 의미를 발견하고는, 그것을 차지하면서, 어떠한 더러움이나 조롱도 예루살렘성에 침범하지 않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불렀던 노래들이 시편의 그 많은 시온시편들입니다. ‘시온이라는 말은, ‘요새, ‘양지바른 곳이라는 뜻이랍니다. 이 시온은 그저 팔레스타인 지역에 있는 다윗성, 예루살렘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그것을 상징으로 하여,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가 있는 모든 것이 바로 시온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우리 성도들의 모임과 만남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가 있다면 그곳이 바로 시온이 되는 것입니다.

 

3.애굽이냐? 새예루살렘이냐?

 

그런데, 그런데, 다윗의 성, 그 예루살렘은 이러한 시온’, 진정한 시온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이곳에서 선지자들을 죽이는 일이 벌어졌고, 기어이는 인류의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을 죽이는 곳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1118절에서는, 이곳을 소돔이요, ‘애굽이라고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저주와 심판이 임하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한 마디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간직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예루살렘을 진정 주님의 임재와 통치가 있는 곳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를 못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일까요?

 

감히 말씀드리거니와, 우리에게 주님께서, ‘그리스도인되게 하시는 은혜를 주셨는데도, 그것을 간직하여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지 못한다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우리가 시온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소돔이 되고 애굽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 이것을 언약적 저주라고 합니다. 언약의 사람들이 언약대로 살지 못하게 되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이라는 도시 자체가 우리에게 이러한 언약적 저주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다음 주일에는 언약의 축복을 상고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언약의 저주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은혜를 주셨는데, 그것을 알지 못하고 누리지도 못하고 살아간다면, 오히려 주신 것도 빼앗아 버리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약의 사람들로서, 애굽을 이룰 것이냐, 아니면 새예루살렘을 이룰 것이냐는 선택이 우리들에게 놓여져 있습니다. 제국을 택할 것이냐, 아니면 천국을 택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번 주일에는 하나님나라큐티를 통해서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설교한 것을 묵상하였는데, 그 설교의 마지막이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하면서 돌아서라고 하였던 것을 묵상하였습니다. 저도 오늘 스펄존목사의 한 설교제목을 인용하면서 마치겠습니다. 제국에서 천국으로 돌아서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불태워질 것입니다(Turn, or Bu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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