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내 사랑 예수/죽음같이 강한 사랑(아가서강해)

Horace 2019. 6. 13. 21:57

아가서강해(25):2019526

우리의 교회(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아가서6:4~13

 

가정의 달의 마지막 주일인 오늘은, ‘우리의 교회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준비하였습니다. 애당초는 부부관계에 대하여 말씀을 전할까 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부부관계가 궁극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바는, 바울사도가 에베소서5장에서 강조하는 것처럼, 부부가 한 몸이 되는 것은, 우리 성도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는 비밀을 담고 있기 때문에, 이 관계를 좀 더 깊이 상고하는 것이 좋겠다고 여겼습니다. 부부관계를 말하던 중에, 바울사도는,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32)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부부관계가 어떻게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를 나타내는 것일까요? 그리스도는 신랑이요, 교회는 신부라는 점을 인정하면,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닌 비밀입니다.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아가서인 것을 이전에도 강조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향하여 어떤 사랑을 가지고 계시는가, 그리고 그것에 대한 성도의 반응은 어떠해야 할지, 그것이 우리의 가정에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게 됩니다.

 

1. “내 완전한 자는 하나뿐”(4~9)

 

본문의 맥락은, 부부간에 갈등으로 인하여 지금 헤어져 있는 상황입니다. 여자의 게으름 때문에 남자가 집을 나갔습니다. 남자는 남자의 본업에 충실합니다. 기어이 여자가 남자를 찾아 나섰습니다. 남자가 어떤 모습으로 본분에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으면서도, 여자는 자신의 실수에 대한 죄송함 때문인지, 쭈빗거리면서, 남편에게 달려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의 교회와 그 안의 성도들이 참 많습니다.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죄송해서 떳떳하게 주님 앞에 서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 여인을 향하여, 자신에게로 나아오라고 하면서, 남자는 여인에 대한 극진한 사랑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네 눈이 나를 놀라게 하니, 너무 사랑스러워서, 사랑의 노예가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게 되면, 사랑하는 대상이 너무나도 신비스럽게 보이기 때문에, 그 눈을 함부로 쳐다보지도 못합니다.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여인의 머리털을 길르앗산 기슭에 누운 염소떼같다고 합니다. 염소떼의 물결처럼 곱슬곱슬해서, 온유하고 부드럽고 순종의 모습을 묘사합니다. “목욕하고 나오는 암양 떼로서, “새끼없는 것은 하나도 없이 쌍태를 가진이빨은, 하얗게 가지런한 이빨모습을 묘사하는데, 건강한 묵상의 태도를 가리킨다고 하였습니다. 묵상이 실천적이어서 삶의 열매를 많이 맺혔다는 것입니다. 또한 석류 한쪽같은뺨은, 건강미를 가리킨다고 하였습니다. 영적으로 활력이 있고 강건하다는 것입니다. 건강한 성도의 모습이 이렇습니다. 그래서 누구와도,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고 합니다. “왕비가 육십 명이요 후궁이 팔십 명이요 시녀가 무수하더라도” “내 비둘기, 내 완전한 자는 하나뿐이라고 고백합니다. 어떤 이들은 오해합니다. 나는 수많은 인생들 중의 하나일 뿐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무한하시기 때문에, 나 하나를 사랑하는 것에도 무한한 사랑을 나타내십니다. 아브라함도 사랑하시고, 모세도 존귀히 여기시고, 다윗도 그러하시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독특하고 특별해서, 나 혼자만을 사랑하시듯이 당신의 사랑을 나타내실 수 있습니다. 바람을 피우시지 않으시면서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사랑을 체험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 “해같이 달같이 군대같은 여자”(10~12)

 

10절은, 남편의 말인지, 아니면, 예루살렘 여인들의 말인지, 분명치가 않습니다. 누구의 말로 보든지, 여인의 당당함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의 묘사가 신약의 어디에서 등장하는 것같습니까? , 요한계시록121절입니다. “해를 옷 입은 한 여자말입니다. “그 발 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썼지요. 아기 메시야를 출산하는 구약교회의 모습을 가리킵니다. 바로 이 아가서에서 인용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모습이 이렇게 당당하다는 것입니다. “깃발을 세운 군대같이 당당한 여자”! 교회가 이렇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사랑의 깃발로 삼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는 모습입니다. 사실, 이 모습은 4절에서도 언급되었습니다. 반복된다는 것은, 강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도들로서 알아야 할 것이 이것입니다. 믿음의 싸움에 있어서 부부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이 무엇인지를 서로가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남자가 우선이니, 여자가 더 똑똑하다느니, 쓸데없는 자존심 싸움만 하게 됩니다. 자녀를 양육하는 것도 영적 싸움이고, 재산을 관리하는 것도 영적인 싸움입니다. 이런 문제들에 있어서도 한 마음이 되어질 때 가정이 평화롭습니다. 교회의 일들도 모든 것이 영적 싸움입니다. 그리스도를 깃발로 세워서 싸워야 하는 그런 싸움입니다. 목사의 깃발을 들거나 장로의 깃발을 들거나, 모두가 어리석은 짓입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 모두는 모두 당당해야 할 것입니다.

 

3. “돌아오라 돌아오라”(13)

 

사실, 참된 성도들은, 이런 영적 싸움이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낍니다. 11절을 보면, 여인이 골짜기의 푸른 초목을 보려고 포도나무가 순이 났는가 석류나무가 꽃이 피었는가 알려고 내가 호도동산으로 내려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12, “부지중에 내 마음이 나를 내 귀한 백성의 수레 가운데에 이르게 하였다고 합니다. “부지중이라고 하였지만, 앞의 맥락, 곧 남편에게로 나아가기를 주저하고 있기는 하지만, 남편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있는 점(62, 어디에?)을 고려하면, 이 여인은 모르는 척하면서 남편 가까이로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백성의 수레 가운데에 이르렀다는 것은, 그 수레 가운데 있는, 왕되신 남편에게로 나아간 것입니다. 그러자, “돌아오라는 말을 네 번이나 반복하면서, 호소하는 것이 13절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사귐과 교제가 온전치 못하다 싶을 때마다, 그리하여 무언가 주저함과 거리감이 있을때마다, 이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돌아오고 돌아오라 술람미 여자여 돌아오고 돌아오라 우리가 너를 보게 하라.이것은 수레를 중심으로 행진하고 있는 백성들이 그 대열에 참여하라고 호소하는 것이면서, 또한, 그 수레의 중심에 있는 왕 되신 그리스도의 호소이기도 합니다.

 

이 호소가 우리의 가정과 교회에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첫째, 부부가 하나 되도록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서두에도 말씀드렸듯이, 부부가 한 몸이 되는 것은, 그리스도와 성도의 연합의 비밀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부되게 하시는 궁극적인 목적이 여기에 있습니다. 단순히 부부의 행복만을 위해서 부부되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비밀을 따라서 살 때, 부부간에도 진정한 행복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같은 침대에 잠을 잔다고 하더라도, 허무하고, 허전한 마음이 들 때가 기어이는 찾아옵니다. 죽음이 서로를 갈라놓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원까지 행복한 부부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둘째, 성도가 하나 되도록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진정한 성도라면, 교회의 문제가 느껴진다고 여겨질 때마다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옵니다. 그런 자들이 진정한 성도입니다. 십자가 밑에 문제를 내어놓고, 그리스도의 보혈 아래에서 해결하는 것입니다. 이런 성도들이 많은 교회가 참교회이고, 행복한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러하기를 기원합니다.

 

사랑하는 천국제자들교회 교우들이시여, 우리의 모든 가정이 나름 문제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자녀들을 주님 안에서 양육하며, 주님 안에서 부모를 공경하며, 주님 안에서 스승을 삼고, 주님 안에서 교회를 섬길 때, 우리의 가정들은 진정으로 복되고 행복한 가정들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