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내 사랑 예수/중생과 회심

Horace 2021. 2. 27. 08:27

천국제자들교회 주일설교: 2021228

요한일서강해(7): 계명과 사랑

요한일서23~11

 

현대선교사의 아버지로 불리는 사람이 윌리엄 케리입니다. 구두 수선공으로 일하면서도 독학으로 여러 나라의 언어를 꾸준히 공부해서 실력이 대단했답니다. 어느날 캐리의 친척이 자신이 들어가기로 한 옥스퍼드의 한 대학에 캐리를 데리고 갔는데, 학교를 방문하던 중, 한 유명한 어학교수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눴답니다. 대화중에 그 교수는 캐리의 어학실력에 주목을 하고는 자네가 이 학교에 들어오면 이 나라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겠네 여왕도 기뻐하실거야라면서, 원하기만 하면 자신이 추천사를 써주겠다고 했습니다. 곧 합격이 보장된 것입니다. 그런데, 캐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지금 여왕보다 더 높으신 분의 초청을 받아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헌신하였답니다고 거절하고는, 인도로 선교사의 길을 떠났답니다. 오늘 선교나 전도에 대한 이야기를 드리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 읽고 있는 서신은 가장 위대하신 분이 우리로 하여금 기쁨이 충만한 삶으로 초대하였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것입니다. 삼위 하나님과의 사귐으로의 초대이고, 그 삼위하나님과 연합한 성도들과의 사귐으로 초청한 초대장입니다. 그분의 초대장 속에 담겨있는 약속을 믿고 순종하며 살아가면, 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 복을 전하는 심정으로 오늘 말씀을 준비하여 선포합니다.

 

1. 계명의 기능:

 

우리가 하나님의 초대장을 받지 못하게 하고, 받아도 그것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것, 그 첫 번째는 지지난 주일에 상고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빛이신 줄을 모르고 어둠 가운데서 사는 것, 곧 죄가운데 사는 것이고, 빛 가운데서 살다가 갈등이 생길 때에도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받지 못하고, 자신에게는 죄가 없다고 하는 것 때문입니다. 오늘은 그 두 번째 방해요소를 상고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형제사랑에 부족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요한일서23절부터 11절까지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읽어보시면, 형제 사랑에 대해서는 9절부터 11절까지에 잠시 나오고, 3절부터 8절까지는 계명에 대해서 강조합니다. , 4절에 보면, 빛이신 하나님을 아노라 하면서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거짓말하는 자요 그 속에 진리가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빛이시라는 것과 계명을 지키는 것은 동일한 일입니다. 빛이 계명이고, 계명이 빛인 것입니다. 이것은 빛과 계명의 기능이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환하게 비춰주는 것이 빛이고 계명입니다.

 

그렇다면, 계명은 내용은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9절부터 강조하는 형제사랑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좀 더 강력하게 강조하기 위해서 7-8절을 기록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새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해놓고 8절에는 새계명이라고 합니다!),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계명이니 이 옛계명은 너희가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계명을 쓰노니 그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둠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췸이니라.” 알 듯 모를 듯 싶습니다. 여기서, “는 누구입니까? 예수님이십니다.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들을 씻어주시는 보혈을 흘리신 예수님이십니다. 사랑이 어째서 옛계명이면서 새계명입니까? 옛계명이란 원래부터 인간들에게 마땅히 살아가도록 주신 명령이었다면, 그것을 따라 살아가지 못하여 죄 가운데서 인생들이 이제는 새롭게 그 사랑을 이루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 가능해졌는데, 그것이 예수님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계명이 된 것입니다. “어둠이 지나고 참 빛이 벌써 비췸이니라.” 우리가 이제는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2. 계명의 본질: 사랑

 

사랑할 수 없던 자들이 이제는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을 믿습니까? 이게 복음입니다. 거짓된 문화만 이루면서, 욕망의 탑을 쌓아가다가 함께 무너져서 멸망당할 수 밖에 없던 인생들이 이제는 진정한 문화, 참된 문화를 세워갈 수 있는 직분자들로 세워진 것입니다. 다시금 에덴동산을 건설해갈 수 있도록 회복되어졌습니다. 이게 제가 번역한 그리스도와 문화의 핵심메시지이고, 수난 당하시는 그리스도의 핵심포인트입니다. 우리를 그런 자가 되게 하시기 위하여, 참된 문화를 건설하고, 참된 기쁨을 충만하게 누릴 수 있도록, 사랑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자되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수난 당하셨던 것입니다. 슬픔의 사람으로서 고뇌하시고 고통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것을 우리가 떠올릴 때, 어떤 의무나 부담으로 생각하는 경향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닙니다. 사랑은, 의무 이전에 넘침입니다. 은혜가 넘칠 때에 사랑이 가능한 이유가 이것입니다. 우리 힘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선한 소망을 주시고, 사랑의 힘을 주실 때에 우리가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3. 사랑의 특징: 넘침

 

혹시 이렇게 생각하면, 내 안에서 사랑이 넘칠 때까지 기다리고 가만히 있어야 되겠다는 식으로 오해할 수 있겠다 싶어서, 사랑의 참 모습을 성경의 예를 들어서 강조하고 싶습니다. 요즘 우리가 묵상하는 창세기에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얻어서 나이가 드니, 장가를 보낼 때가 되어서, 그 며느리를 구하러 종 엘리에셀을 시켜서 하란으로 보냅니다. 종이 약타 열 마리에 보물들을 싣고서 하몰성읍에 도착을 하였는데, 누가 아브라함의 친척인지, 며느리 될 사람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지친 몸을 쉬면서 기도합니다. 하나님, 여기 우물이 있는데, 누가 물을 길으러 오면, 물을 달라고 할 터인데, 물만 주는 것이 아니고, 약대들에게도 물을 먹여주는 처자라면, 하나님께서 정하신 배필인 줄 믿겠습니다. 그 기도를 하자마자(이거 참 놀라운 우연입니다!), 리브가가 물 길러 나왔는데, 웬 나그네가 자기에게 물을 달라고 부탁합니다. 물을 줍니다. 그런데 또 어떻게 했지요? , 그렇습니다. 다시 물을 길러 내려가서 여러 번이나 물을 길러 낙타 10마리가 다 물을 마실 수 있을 정도로 길어왔던 것입니다. 그 뒤의 이야기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압니다.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사랑은 낙타에게도 물을 주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오리를 가자면 십리를 가고,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도 내어놓는 것입니다. 속옷을 가지고자 하면 더 좋은 겉옷도 내어놓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깎아서 쌀을 되어 주는 것이 아니고, 덤으로도 주는 여유가 사랑입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사랑은, 8-11절에 기초해서 생각해 보고 적용합시다.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이 말씀을 요즘 상황에 맞춰서, 이렇게 고쳐봅니다: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불편하게 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감염된 것 같다 여겨지면, 집에서 영상예배드려야 할 것입니다. 불편하지 않게 하는 배려가 사랑인 것입니다. 또한 둘째, 불편한 중에도 힘을 내어서 예배를 함께 드리고자 힘쓰는 것도 사랑입니다. 그것이 10절에서 말하는 부끄러움이 없게 하는 사랑입니다.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그렇죠? 11절이 인상적입니다!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느니라.세상 가장 바보가 사랑할 줄 모르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어둠 때문에 눈이 멀어 있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천국제자들교회 성도 여러분! 지식을 많이 가진 자가 지혜로운 자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자가 지혜로운 자입니다. 우리가 사랑할 수 있게 된 자 되었음을 믿고, 더욱 사랑에 힘써서 주의 새계명을 따라서 더욱 지혜롭고, 더욱 기쁨이 충만한 하루하루가 되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