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내 사랑 예수/시간과 영원

Horace 2021. 3. 3. 09:48

천국제자들교회 수요예배: 202133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42):남유다왕국의 요아스왕과 북이스라엘왕국의 요아스왕

왕하13:10-19

 

1. 지난 수요일에는 북이스라엘왕국의 여호아하스왕(혁명가 예후왕의 아들)의 생애를 간략히 상고하였습니다. 선왕때부터 국토가 졸아들기 시작하고 국력이 거의 쇠진할 정도였다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을 방어하거나 왕궁을 수호하는 병력조차 겨우 마병 오십명과 병거 열대와 보병 만명외에는 여호아하스에게 남겨두지 아니하였더라”(13:7)고 할 정도였습니다. 아람왕 하사엘과 그 아들 벤하닷의 계속되는 침략과 괴롭힘 때문에, 죽을 지경이었던 때가 여호아하스때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에 놀라운 일이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여호아하스왕이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에 응답하셔서, 하나님께서 한 구원자를 보내셨다고 합니다(13:4-5). 누구의 언약을 기억하셨기 때문입니까? 다윗의 언약이 아니라, 바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 때문에”(13:23)입니다. 그래서, 강조했었습니다. 분명히 그 한 구원자는 엘리사였을 것 같은데, 이름을 밝혀두지 않은 것은,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 궁극적으로는 엘리사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 자신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지금까지의 시리즈 설교의 핵심적인 주제입니다. 구속사의 주인은 바로 하나님 당신이십니다! 당신의 백성의 병거와 마병은 하나님 당신이신 것입니다!

 

2. 오늘은 그 여호아하스왕의 아들인 요아스왕에 대해서 상고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북이스라엘왕국에 요아스란 왕이 등극할 때, 이미 남유다왕국에는 요아스라는 왕이 있었다는 것입니다(아달랴의 혁명과 7년동 안의 성전생활 후 왕이 된 요아스의 성전과 연관된 치적과 위선의 삶을 기억하십니까?). 두 명의 아하시야, 두 명의 요람(여호람), 두 명의 요아스가 각각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에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니, 10, “유다의 왕 요아스의 제삼십칠 년에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남쪽의 요아스가 죽기 3년 전에, 북쪽에서 다른 요아스가 왕이 되어서 17년 동안 통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관심을 가지는 주제는, 바로 이 북쪽 이스라엘왕국 요아스왕의 구속사적 의미입니다. 특별이 이 왕 때에 엘리사가 거의 60여년 동안의 사역을 마치고 이제 죽음을 맞이하기 때문입니다.

 

3. 오늘 본문을 보면, 요아스왕에 대해서 두 가지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가운데서 행하였더라는 것이고, 둘째는, “유다왕 아마샤와 싸운 그의 업적에 대해서입니다. 둘째의 업적은 148절부터 16절까지 기록되어 있는데, 예루살렘까지 정복한 업적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상한 것은, 그 부분을 바로 오늘 본문에 포함시켜야 할 것 같은데, 그렇게 하지 않고, 오히려 남유다왕국의 아마샤에 대해서 기록하면서 북이스라엘의 요아스에 대한 기록을 마무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부분을 먼저 드려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4. 남유다의 아마샤는 그렇게 악하지도 그렇게 선하지도 않은 왕인 것 같습니다. 반역한 자들을 처단하였지만 그 아들들까지 처단하지는 않았다고 하니, 현명한 측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은 참 비참합니다. 무리가 반역해서 라기스까지 도망친 그를 추적하여 죽여버립니다(14:19). 아마도 그의 이런 비참한 종말은 북쪽 이스라엘의 요아스와 무리하게 전쟁을 치르다가 수도 예루살렘까지 내어주게 되는 결과에 따른 것일 터입니다(14:8~11). 이것을 거꾸로 이야기하면, 아마샤와 더불어 전쟁을 치루고 승리하여 예루살렘까지 정복하게 된 요아스왕의 치적은 놀라운 것이라고 해야 합니다.

 

5. 특별히 1325절 기록은 특별합니다: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하사엘의 아들 벤하닷의 손에서 성읍을 다시 빼앗으니 이 성읍들은 자기 부친 여호아하스가 전쟁 중에 빼앗겼던 것이라 요아스가 벤하닷을 세 번 쳐서 무찌르고 이스라엘 성읍들을 회복하였더라.이것은 참으로 엄청난 치적입니다. 남쪽 유다의 수도 예루살렘을 정복한 것도 엄청나고, 북쪽 아람왕국을 세 번이나 물리쳤던 것도 참 대단합니다. 그러므로, 이 세 번의 승리에 대해서 오늘 본문 속에 포함시켜 놓고, 북이스라엘의 요아스왕을 평가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이상한 것입니다.

 

6. 먼저, 이스라엘의 모든 왕들을 평가할 때 반드시 따라오는 것이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그 가운데 행하였다는 평가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북이스라엘은 여전히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세워놓고 여러 가지로 율법을 변개하여 혼합종교를 만들어서 예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에, 엘리야와 엘리사와 같은 참으로 위대한 선지자들을 하나님께서는 보내셨다는 것은 참으로 기이한 일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의 기이함(, 요아스의 치적을 두가지만 기록하고 오히려 보다 더 중요한 것을 뒤편으로 넘기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엘리사의 죽음의 의미를 강조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되어집니다. 오늘 본문과 같은 기술방식은 참으로 기이하기 때문입니다. , 오늘 본문의 요아스의 생애를 요약해놓고 있는 것은, 다음 주일 상고하게 될 엘리사의 죽음의 기록에 대한 서론격이라는 것입니다. 그 서론의 의미로서만 오늘 잠시 상고하고, 말씀을 맺겠습니다.

 

7. 그 서론격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첫째, 그는 엘리사를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13:14)으로 부른 첫 번째 왕입니다. 그 앞에 예후도, 또한 여호아하스도 긴 세월 동안 엘리사의 사역을 지켜보았을 것인데, 그렇게 부르지 않습니다. 이런 면에서, 이 요아스의 신앙은 상당히 칭찬을 받아야 하고 또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자의 사역을 인정해주는 것이 참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요아스로 말미암아 아람국과의 전쟁에서 세 번이나 승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던 것이 아닐까요? 또한, 남유다의 아마샤를 물리치고 심지어는 수도 예루살렘까지 정복할 수 있는 특권을 주셨던 것 아닐까요?

 

하지만, 둘째, 그의 생애에 아쉬웠던 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온전히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여로보암의 길을 갔던 것이 그 증거입니다. 화살을 세 번만 내리쳤을 뿐입니다. 아쉽습니다. 예루살렘을 정복했다면, 그곳을 자신의 왕도로 삼고 정착했어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쉽습니다. 한 마디로, 남쪽 유다왕국의 요아스는 위선의 왕이었다면, 북쪽 이스라엘의 요아스왕은 아쉬움의 왕입니다.

 

셋째, 이런 아쉬움의 면에서 보자면, 우리 자신의 현재 모습 그대로입니다. 우리의 모습이 아쉬운 부분이 참 많기 때문입니다. 육체적인 면에서도 그렇고 영적인 면에서도 그렇고, 개인적인 면에서도 그렇고, 공동체적인 면에서도 그렇습니다. 아쉬움의 천지입니다. 우리가 요아스입니다.

 

넷째, 그렇기 때문에, 요아스왕이 불렀던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 우리들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일종의 멘토가 필요하고, 그 멘토였던 엘리사가 궁극적으로 보여주었던 메시야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서만 우리의 모든 아쉬움들이 채워질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인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 그 모든 순종으로 우리가 완전하게 의롭다고 여겨집니다. 아쉬운 의로움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로 우리가 옷입혀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으로 우리가 충만해집니다. 우리 안에서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넘치고 흘러 넘쳐서 이웃에게 나아가도록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이런 충만함을 미리 예표적으로 보여주는 엘리사의 죽음에 대해서 다음 주일 상고하겠습니다. 이 죽음은, 구속사적 사건의 진행 속에서, 진정 엘리사의 승천보다 더욱 의미가 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