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내 사랑 예수/시간과 영원

Horace 2021. 3. 10. 13:52

천국제자들교회 수요예배: 2021310

결론: 여호와의 화살을 여호와를 위하여 내리치라

열왕기하13:14-19

 

1. 북이스라엘의 요아스왕은, 남유다의 요아스왕과 비교해서, 아쉬움의 왕이라고 지난 주 수요일에 상고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의 앞부분에서 그의 삶을 정리하는 글에서조차 언급되지 않았지만 너무나도 중요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먼저 시비를 걸었던 것은 아니지만, 남유다의 아마샤왕의 도전을 받아서 전쟁을 치루게 되고, 그 결과 남유다의 예루살렘을 차지하기조차 하였습니다(14:13~14), 남북통일의 기회로 삼지 못하고 그냥 물러나고 맙니다. 남북통일까지는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예루살렘성전의 금은과 모든 기명을 탈취하였다고 하는데(14), 언약궤는 가져오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것이 아쉽고 또한 아쉬운 것입니다. 그것과 함께 율법책도 가지고 와서 엘리사와 함께 북이스라엘을 혁신시켰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 아쉬움은 오늘 본문에서도 너무나도 분명합니다. 화살로 엘리사가 땅을 내리치라고 하니, 세 번만 내리침으로 인하여, 결국 아람과의 전쟁에서 세 번밖에 승리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 13장의 마지막 절 2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런 기록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오늘 우리들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가, 오늘 상고해 보겠습니다.

 

2. 무엇보다도 엘리사가 화살로 땅을 치라고 한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 화살이 어떤 화살이었습니까? 15절에 보니, “활과 화살을 가져오라고 엘리사가 말한 뒤에 왕의 손으로 활을 잡으소서하였고, 왕이 활을 잡은 손 위에 엘리사가 자기 손을 얹습니다. 일종의 안수를 한 셈입니다. 그러면서, 특별히 그렇게 하는 의미를 강조하는 것이 17절입니다. 동쪽 창을 열어서 쏘라고 하면서, 말하기를, “이는 여호와를 위한 구원의 화살 곧 아람에 대한 구원의 화살이니 왕이 아람 사람을 멸절하도록 아벡에서 치리이다고 합니다. 아벡은 수도 사마리아에서 동쪽으로 아람군대가 북이스라엘 깊숙이 쳐들어와서 전쟁을 치루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왜 엘리사가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 그가 지금 화살에 안수하고 화살을 동쪽으로 쏘라고 하고, “아람에 대한 구원의 화살이라고 분명히 규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동쪽일까요? 아람이 동쪽에 있습니다(북쪽지경으로 향하는 길목). 그런데 아벡은 서쪽에 있습니다. 서쪽만 아니라, 아람국 자체에 대한 의미를 지금 이 화살에 분명히 담는 것입니다. 또한 분명히 강조하는 바는, “여호와를 위한 구원의 화살이라고 구체적으로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화살로 땅을 치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의 원수인 아람군대와의 싸움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싸우는 열정과 관심을 나타냅니다. 이것을 우리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공동체,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과 명예에 관계됩니다.

 

3. 이 점을 고려한다면, 그 화살로 세 번 정도 내리쳤다는 것은, 대강, 흉내만 내고, 형식적으로 내리쳤다는 것입니다. 열정이 없었습니다!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대적들에 대해서 분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그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을 당하는데, 그저 시큰둥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엘리사가 노하였습니다. 대여섯번을 내리칠 열정과 담대함, 그리고 믿음이 있었더라면, “그리하였더라면 왕이 아람을 진멸하기까지 쳤을 것인데, 그냥, 너무나도 아쉽게도 세 번만 승리하고 또 다시 어려움을 당하게 되는 일들이 반복되겠노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쉬움의 왕밖에 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위대한 선지자, 엘리사와의 마지막 대화가 이렇게 끝나는 것도 참 아쉬운 일입니다. 위대한 시대를 살았던 사람인데, 그냥 아쉬움으로 끝나버린 왕이 바로 요시아왕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되지 않아야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일까요?

 

4. 엘리사를 이 마지막 순간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구속사적 사건의 교훈을 깨닫는 것부터 중요합니다. 엘리사를 찾아와서 요시야왕이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표현은 사실 엘리사가 자기 스승 엘리야가 승천하게 될 때 부르짖었던 말입니다. 이것을 부르짖으면서, 엘리사의 생애는, 진정한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 무엇이며 누구인지를 체득해 갔었습니다. 실패도 있었고, 지나친 민족주의적 열정에 의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오해와 왜곡도 있었습니다. 낭패를 당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특별하신 간섭 가운데서 참된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은 (엘리야와 같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야말로 참된 병거와 마병임을 깨닫습니다. 그런데, 요시야왕은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사역자를 인정해주는 데까지는 나아갔는데, 너무나도 아쉽게도, 그것을 넘어서지 못하였습니다. 그러한 그를 깨우쳐주기 위하여 엘리사는 요시야왕에게 활과 화살을 가져오라고 하였습니다. 그 앞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셨다면) 어쩌면 불말과 불병거가 내려와서 회오리바람 속에서 승천하게 되는 것을 보여줄 수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더욱 위대한 일을 보여주고자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활과 화살병거와 마병과 비교하면, 참으로 초라한 것 같지만, 병거와 마병이든, 활과 화살이든, 그것들을 잡고 구원의 역사를 이뤄 가시는 하나님은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이것을 우리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엘리야나 엘리사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 뒤에서 역사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중요합니다. 이것을 보아야 합니다. 이것을 보는 것이 믿음입니다.

 

5. 이 점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엘리사의 죽음의 효과입니다. 특별히 엘리야의 승천과 비교하면, 외형적으로는 초라한 것 같습니다. 죽음을 보지도 않았고, 엄청난 위엄과 화려함의 연출이 불말과 불병거의 등장과 회오림 바람 속에 승천하는 엘리사의 승천과 비교하면, 엘리사의 죽음은 또한 번 허무함의 반복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경을 그렇게 보면 안됩니다. 성경의 역사, 특별히 구원의 역사는, 비록 간혹 되돌아오는 것 같고, 우회로를 도는 것 같아도, 점진적이고 발전적이라는 것입니다. 엘리사의 죽음이 엘리야의 승천보다 더 위대한 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엘리야의 승천으로 인하여 그것을 보고 죽었던 어떤 사람이 되살아났다는 일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승천의 외현적인 영광은 없었다 하더라도, 시신이 묻혀있는 그 무덤에서, 죽은 사람이 되살아나는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것이 더 위대한 일이겠습니까? 엘리야의 승천은 엘리야 개인에게 그쳤습니다. 하지만, 엘리사의 죽음은 그 죽음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을 살려내었습니다.

 

6. 물론, 엘리야의 승천도 예수님의 사역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메시야로서 선재하셨던 영원의 세계가 실존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그 영원의 세계로부터 예수님께서 오실 것을 가르쳐 줍니다. 변화산상에서의 변모하심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불말과 불병거를 타고 승천하였던 엘리야가 예수님의 변화의 모습에 영광을 비춰주고 있습니다. 그렇듯이 엘리사의 죽음은 그 영광으로 회복되는 길이 바로 죽음임을 가리켜줍니다. “엘리사의 뼈에 장사지내신 시체가 닿자, “곧 회생하여 일어섰더라고 합니다. 우리가 예수의 죽음의 의미를 제대로 알기만 해도, 우리의 죽은 영혼이 곧 회생하여 일어서게 될 것입니다. 불말과 불병거가 올라갔던 그 영원세계로 곧 들어가게 됩니다. 활과 화살로 싸워야 할 믿음의 선한 모든 싸움을 마치고 생명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을 쓰게 될 자들로 변화될 것입니다.

 

7. 이런 놀라운 은혜가 우리 모두의 것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이 은혜를 우리가 진정으로 사모하는 자라면, 우리의 남은 날들을 어떻게 행해야 하겠습니까? 바로 요아스처럼이 아니라, 여호와의 화살로 여호와를 위하여, 담대하게 믿음으로 열정적으로 내리쳐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비결입니다.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으로 승리하는 비결인 것입니다. 우리의 승천은 엘리야처럼 죽음을 맛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죽음을 통하여, 이 죽음 때문에, 이뤄질 것입니다. 예수의 영의 불말과 불병거를 타고 엘리야와 같은 그 하늘에 우리도 올라갈 것입니다. 그때까지 여호와의 화살로 하나님의 싸움에 우리가 맡은 싸움을 싸워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