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내 사랑 예수/천국실험

Horace 2021. 4. 10. 11:50

개혁신학적 꿈이해(서론)

 

요즘 계속되는 창세기묵상을 통해서 꿈에 대한 관심을 더욱 깊이하게 됩니다. 요셉의 이야기에서 꿈이야기는 빼놓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은 꿈이란 현상을 성경의 빛 가운데서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관심을 가지는데도 마땅히 그 성경적인 조언을 듣기는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프로이드라는 세속적인 철학에 기초한 꿈해석방법이 현시대를 거의 지배하고 있고, 그 영향에 의해서 개혁교회들 안에서는 이 영역에 대해서는 금지령 비슷한 것이 내려져 있고, 그래서, 이 꿈현상에 대해서는 주로 은사주의와 신비주의집단 등에서만 비성경적으로 이해되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입니다.

 

우리들의 일상적인 꿈들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접근하기 위해서는 성경에 나오는 꿈들에 대해서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선결되어야 할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성경에서는, 첫째, 인간의 욕구의 무의식적 발현으로서 꿈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이 경우에는 두 가지 종류로 나눠지는데, 전도서53절이, “걱정이 많으면 꿈이 생긴다고 한 것이 그러한 것입니다. 프로이드가 꿈의 원리를 설명하는 것이 이미 이 구절에 의하여 입증됩니다. 꿈이란, 인간욕구의 실현되지 못한 것들을 무의식의 꿈속에서 이루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런 꿈을 인정하면서도 그 이상의 꿈들을 말합니다. 소위 예지몽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직접 주셨다고까지는 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간접적인 일반은총의 역사적 측면에서, 인간의 무의식이 지니고 있는 통찰력에 의해서,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 예감케하는 그런 꿈을 꾼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대표적인 예로는, 요셉이 소년 시절에 꾼 꿈(37)이나 감옥에 갇혔을 때 술관헌과 떡관헌의 꿈들(40), 또는 기드온사사시대에 미디안족의 군인들 한 명이 꾼 꿈(7:13)들을 들 수 있겠습니다. 이런 꿈들은 길조의 경우이든 흉조의 경우이든, 반드시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꾸게 하셨다기 보다는, “간접적으로, 곧 우리의 일반적인 정신기능들 중의 하나인 무의식의 작용으로 통해서 꾸어질 수 있는 예지몽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꿈들은 우리가 우리 자신들의 꿈을 잘 이해하고 분석할 줄 안다면,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잘 활용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는, 윤리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꿈입니다. 예로 들면, 욥기에 엘리후가 욥을 책망하면서 말하기를, “하나님은 한 번 말씀하시고 다시 말씀하시되 사람은 관심이 없도다”(33:14)면서, “사람이 침상에서 졸며 깊이 잠들 때에나 꿈에나 밤에 환상을 볼 때에 그가 사람의 귀를 여시고 경고로써 두렵게 하시”(15-16)는데, 그 목적이 이렇습니다: “이는 사람에게 그의 행실을 버리게 하려 하심이며 사람의 교만을 막으려 하심이라 그는 사람의 혼을 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하시며 그 생명을 칼에 맞아 멸망하지 않게 하시느니라”(17-18)고 합니다. 구체적인 예로서는, 느부갓네살왕이 거대한 나무와 순찰자의 꿈(4:1-37)을 꾼 것입니다. 경고를 알아듣지 못하고, 심지어는 해석까지 해주었는데도 그 뜻에 순종하지 못하여 짐승처럼 7년을 보내게 된 뒤 다시금 제정신을 차리게 되었던 그 꿈 말입니다. , 하나님의 사랑의 경계로 멸망의 길을 가지 않도록 윤리적으로 각성되게 하는 꿈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위에서 언급된 첫 번째 꿈에서도 두 번째의 예지몽과도 비슷하지만, 이것은 인간의 무의식적 통찰이라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직접 반복해서 주신다는 면에서 그 기원에 있어서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꾸어지는 꿈들 중에서도, 무의식적 통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윤리적 각성을 위해서 우리들에게 직접 주시는 꿈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로는, 말 그대로 예언적인 꿈들입니다. 구약의 경우에는, 느부갓네살의 꿈과 다니엘에게 직접 해석까지 해주는 꿈(2:1-45)인데, 이것은 단순한 예지몽 정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인류의 역사와 구속의 사건을 위해서, 곧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위해서 그 역사적 발전과 단계를 위하여 주시는 꿈들입니다. 신약의 경우에는 요한계시록이 대표적이고, 구속사적 계시의 측면이 있기 때문에, 흔히 꾸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특별한 시대와 계획을 위해서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함부로 이런 꿈을 꾼다고 주장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특별히 꿈을 해석하려고 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은 모세가 이미 경고한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복술자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의 중에 용납하지 말라”(18:10,11)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중에서 길흉을 말할 때에, 꿈해석을 통해서 길흉을 말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이 주의에 귀기울이지 않았떤 것 같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몽사를 얻은 선지자는 몽사를 말할 것이요 내 말을 받는 자는 성실함으로 내 말을 말할 것이라 겨와 밀을 어떻게 비교하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반석을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 하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거짓 몽사를 예언하여 이르며 거짓과 헛된 자만으로 내 백성을 미혹하게 하는 자를 내가 치리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으며 명하지 아니하였나니 그들이 이 백성에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23:28,29,32) 그리하여서, 꿈현상에 집중하면서, 이미 주어진 말씀에 주목하지 않은 채로, 신비주의와 은사주의에 빠져드는 사람들에게 적절한 경고가 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들을 대할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바로 말씀 자체가 우리들에게 답변을 주고 있습니다. “네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완전하라. 네가 쫓아낼 이 민족들은 길흉을 말하는 자나 복술자의 말을 듣거니와 네게는 네 하나님 여호화께서 이런 일을 용납지 아니 하시느니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 네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찌니라.”(18:13-15). 물론, 이것은, 강조하고 강조해야 할 놀라운 말씀입니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꿈현상과 그 해석에 대해서도 이 말씀이 기초가 되고 토대가 되고 또한 원리가 됩니다. , 이 구절을 인용함으로써, 우리의 꿈현상에 대한 이해의 노력을 취소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말씀에 집중하는 것이 우리의 꿈이해에 어떤 영향을 올바르게 미쳐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개혁신앙을 가진 자들로서, 그 개혁신앙의 빛 가운데서, 꿈이해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할 너무나도 중요한 기본적인 전제가 된다고 하겠습니다. 이것을 전제로 하여, 구체적인 꿈이해를 위한 노력을 시도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