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내 사랑 예수/아침에서 아침으로

Horace 2021. 4. 24. 09:16

아침묵상(210424):

애굽의 제사장의 토지는 요셉이 사들이지 않았다!

 

창세기4722절은 제사장들의 토지는 사지 아니하였다면서 제사장들은 바로에게서 녹을 받음이라 바로가 주는 녹을 먹으므로 그들이 토지를 팔지 않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말을 26절에서 모세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셉이 애굽 토지법을 세우매 그 오분의 일이 바로에게 상납되나 제사장의 토지는 바로의 소유가 되지 아니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니라.”

 

요셉이 제사장의 토지를 사들이지 않았던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왜 이런 사실을 모세는 두 번이나 언급하고 있는 것일까요? 모세가 이런 언급으로 강조하고자 하였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지금 가나안땅으로 들어가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제공해 주는 것이었을까요? 특별히 그들은 가나안의 모든 종교들을 파괴시키고 뿌리를 뽑아야 할 사명들이 주어졌는데 말입니다.

 

먼저, 가나안종교는, 아브라함에게 그 땅이 약속되어졌던 당시와 비교하면 그 악이 온땅에 관영하였던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하나님의 일반은총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을 통하여 직접 전달되어진 특별계시로서의 성경을 가지지 않은 자들의 종교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일반사회와 국가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무대를 설정하는데 사용되어진 것들이 그런 일반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셉 당시의 애굽종교를 보면, 자세한 연구가 없더라도, 야곱에 대한 바로의 대우를 고려한다면, 그 바로의 권위를 세워주었던 애굽종교는, 근본적인 면에서는, 여호와신앙과 무관한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종교일반의 기능을 충분히 담당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종이었던 요셉, 감옥에 있었던 요셉을, 아무리 그 바로의 꿈들을 해석해 주었다고 하더라도, 당장에 애굽에 총리로 세웠던 것은, 그 당시 애굽사회의 일반적인 윤리의식의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게 합니다. 그리고 그 윤리의식의 형성과 유지, 그리고 보존을 위해서 그 당시의 애굽종교가 적극적인 역할을 하였다고 우리는 추측할 수 있겠습니다.

 

요셉이 제사장의 토지를 사들이지 않았던 것은, 바로의 위세에 눌렸다고도 할 수 있고, 바로의 2인자로서 천상천하의 존재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바로의 권세 위에는 오르지 못하였던 요셉의 한계를 보여주었다고도 할 수 있지만, 긍정적인 면에서는, 애굽을 비롯한 일반세계의 종교의 기능의 긍정적인 면을 인정해 주었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점을 지금 모세가 1차 청중으로 여기고 있는, 가나안 땅을 향하고 있는,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주는 메시지였을 것입니다. , 너희들이 가나안땅에 들어가서 부숴버리고 파괴해야 할 것은, 모든 종교적 현상들이나 흔적들이 아니다. 악이 관영하여, 도대체 인간의 인간됨을 말살시키고 있는 그런 유형의 종교현상들을 파괴하고 멸절시켜야 한다.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만일, 오늘 본문을 이렇게 본다면, 요셉이 제사장의 토지를 사들이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바로 우리 시대에도 적용해서 충분히 고려할 메시지가 있습니다. 기독교신앙과는 다른 종교들은 무작정 배타적으로 생각하고 멸시나 조롱의 대상, 비하하는 자세는 잘못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하여 역사하신 점들을 감안하면서, 그 종교 자체의 입장에서 그 종교제도와 윤리들을 고려하면서 격려하고 권장할 것은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의 혁신을 요구할 때, 기독교의 윤리와 잣대를 그들에게 갖다대는 것보다는, 그것들 자체의 윤리와 잣대로 그들의 개혁과 혁신을 요구해야 할 것입니다. 요셉이 하였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을 것입니다. 모세가 그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이렇게 두 번이나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