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내 사랑 예수/중생과 회심

Horace 2021. 4. 30. 22:20

천국제자들교회 주일설교: 202152(어린이주일)

요한일서강해(13): 기름부음이 가르쳐주는 대로 

요한일서2:26~29

 

(어린이주일멘트)가상현실이 점차 현실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 자체가 가상현실화된 것을 시물라찌옹이라고 합니다. 아바타나 매트릭스같은 영화가 그런 가상현실 속에서 스토리들을 실감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증강현실이라고 해서 그 가상현실이 현실사회 속에 혼재되어 있는 상황이 적극적으로 개발되어가고 있고, 가까운 미래에서는 현실 자체가 가상화되어지는 그런 사회가 예측되기도 합니다. 실재하지 않는 것이 실재하는 것보다 더욱 현실적이어서 그런 가짜 현실 속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 “시물라찌옹이라고 합니다. 우리 크리스챤들에게 이런 미래에 대한 예상이나 예측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또한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 것일까요? 이런 가상현실 속에서 사용될 화폐들로서 우리는 가상화폐가 중요성을 가질 것이라고들 합니다. 요즘 가상화폐 문제가 젊은이들 사이에, 일종의 절망적 투자의 형태를 취하고 있어서 연일 뉴스가 나옵니다. 저는, 이런 현상을 신학적으로나 신앙적으로 분별하는 것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사실, 오늘 본문이 종말에 암약하게 될 적그리스도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하는 것인데, 이 본문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의 적그리스도의 활동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런 초현대화된 사회에서만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활동하고 있는 것이 적그리스도입니다.

 

1. “너희를 미혹하는 자들”(적그리스도)

 

오늘 본문의 26절은, “너희를 미혹하는 자들에 관하여라고 합니다. 마지막 때에 많이 등장하게 되겠다고 한(18), 적그리스도에 대하여 썼다고 합니다. 지난 주일에 기름부음에 대해서 말한 이유가 바로 이 적그리스도를 제대로 분별하기 위해서였음을 강조하였습니다. 그 당시의 적그리스도의 미혹은, 예수님에 대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것이 적그리스도의 가르침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잘못 믿는 경우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 잘못 믿는 것을 두 가지만 강조합니다. 첫째,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하나의 도덕적 본으로만 보는 것입니다(자유주의적 관점). 그 죽으심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것, 곧 우리가 죽어야 할 것을 대신해서 죽으신 것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신 것을 믿지만 도덕적 본은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보수주의자들). 둘 다 잘못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대신해서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본으로서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친히 강조하시기를,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찌니라고 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따르지 않으면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거짓된 것입니다. 나를 위해서 대신해서 죽으셔서 나의 죄값을 모두 치루셨다는 것을 믿지도 않으면서 도덕적으로 십자가를 본으로 여기는 것만큼이나 잘못인 것입니다.

 

이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면서 살아가는 삶이 바로 지금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현실 속에 구체적으로 적용시키지 않으면서, 그것이야말로 적그리스도의 정신을 따라서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도, 이웃과의 관계 속에 적용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일같이 주님의 나를 향하신 뜻을 분별하면서, 인내하고 나아가서 그 뜻에 순종해야,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게 됩니다. 신앙은 추상적이지 않습니다. 구체적입니다(5월 하Q본문인 고린도후서묵상).

 

2. 기름부음이 가르쳐주는 것

 

그런 구체적인 삶을 강조하기 위해서 사도요한이 강조하고 있는 것이, 27절에서,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라고 합니다. 지난 주일에 강조했던 것처럼, 이 기름부음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는 성령의 내주하심을 강조합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또한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우리를 지도하시는 것입니다. 기름부음이라고 한 것은, 이런 역사하심의 풍성하심과 부요하심, 그리고 사명과 과제를 받은 직분자임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라고 합니다. 우리가 배울 필요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를 가르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필요한 것이 이런 확신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진리를 배우되, 하나님의 진리로서 깨닫는 것, 우리의 양심에 거리낌이 없이 하나님께로 임한 진리를 따라서 거듭나게 되고, 십자가의 도야말로 영원한 진리임을 깨닫는 것, 이것이 필요합니다. 소위 자유주의신학도, 심지어 보수정통주의조차도 비판할 수 있는 확신이 바로 여기에서 나옵니다. “천국의 제자들이 바로 이런 확신을 가지게 된 자들입니다.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들이기 때문에,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 교우들이 이런 확신들이 있기를 목사로서 사모합니다. 그런 목표를 가지고 가르칩니다.

 

3. 기술사회 속에서의 적그리스도

 

그런 확신을 갖고, 오늘 말씀을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최첨단의 기술사회인 우리들의 삶에 이 말씀을 적용시킵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는 소위 기술사회라고 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가상현실, 증강현실, 위장된 현실로서의 시물라시옹 속에서 가상화폐가 대세가 되어질 것입니다. 중앙집중적인 현대의 화폐제도와 지방분권적인 가상화폐가 적절하게 타협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중에, 더욱 강화되는 것은, 최첨단의 전자기술입니다. 기술이 신성화되어지고, 현대인들은 기술을 통해서 자유해진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착각 속에서 오히려 노예가 되어집니다. 이 최첨단의 기술 사회 속에서, 적그리스도가 활동하면서, 하나님 대신에 기술과 그 기술을 통해서 일종의 신성화된 시스템 속에서 유토피아를 찾을 것입니다. 이것이 현대사회가 추구하고 있는 방향입니다.

 

문제는, 교회와 크리스챤들도 이런 기술체제 속에서 자족하는 경향들이 있습니다. 시스템이 잘 돌아가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4차산업에 대응해야 한다고 합니다. 기술과 시스템의 노예가 되어갈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합니다. 최첨단의 기술로 교회의 행정과 조직과 프로그램들이 제공되는 것이 전적으로 무시되어서는 안 되지만, 그렇게 시스템이 잘 돌아가면 만사형통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생각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개인이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해지고, 성령의 역사하심에 의해서, 바로 그 은혜로, 사랑의 수고와 헌신을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저는 시1331-3절이 이런 기술사회 속에서 잊어버리지 않아야 할 구절이라고 생각합니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성도의 교제가 영생이라고 합니다. 지난 주일 본문의 마지막 구절에, 기름부음으로 약속하고 있는 것을 영원한 영생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과 일관됩니다. 스마트폰으로 사람들의 인간관계가 소통이 될 것이라고 하지만, 오히려 역설적으로 이렇게 소통을 위한 기술이 개발되어가지만, 오히려 고독사가 더 늘어가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입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28절에서 말씀하신 것 같이, “그가 강림하실 때에...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될 수 있는 길은 무엇이겠습니까? 형제의 연합을 위하여 우리의 기술들을 최선을 다해서 사용하는데 있을 것입니다. “가르침을 받은 대로 그대로 주 안에서 거하는 길이 이 사랑의 길 외에 어디에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