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내 사랑 예수/연속적 중생론 오해와 진실

Horace 2021. 5. 2. 08:54

중생에 대한 바빙크의 견해

Cornelis Pronk, The Messenger, 2009, p.4.

Internet sourc: christianstudylibrary.com

 

2008년에 바빙크의 4권으로 된 개혁교의학의 영어번역이 완성되었는데, 1895~1901년 그것이 처음 출판되고, 1906~11년에 중판되고 확장된 판이 출간된 이후 화란개혁교회의 신학교들과 목사회들에서 하나의 표준적인 신학작품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바빙크의 중요성

 

북아메리카의 많은 이들이 바빙크의 개혁교의학의 등장을 환영하는데, 우리 자유개혁교회도 이 작품이 영어로 번역되었다는 것에 대해서 특별히 기뻐해야 합니다. 바빙크의 신학은 1834년의 압솨이딩의 선조들에 의하여, 그리고 압솨이딩 교회들과 돌레안티 교회들의 연합에 동참하지 않음으로써 그 전통을 계속하였던 압솨이딩의 후예들에 의해서 올바르다고 여겨졌던 신학적 입장들을 여러 다양한 주제들에서 반영하고 있습니다. 바빙크는 이 병합에 동참하였고, 특별히 사회적 문화적 사안들의 영역에서, 아브라함 카이퍼의 신칼빈주의적 관점의 많은 것을 채택하였을지라도, 그것이 구원론에 이르게 되면 그는 본질적으로 압솨이딩의 아들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 새로운 연맹 안에서의 긴장들

 

이것은, 그의 덜 알려진 작품인, 영어로는 Saved by Grace, the Holy Spirit's Work in Calling and Regeneration이라고 번역된, Roeping en Wederge-boorte를 읽어보면 너무나도 분명합니다.

 

바빙크는 새롭게 조직된 연합된 개혁교회들 안에 있는 다양한 분파들을 결합시키기 위한 노력으로 이 논문을 썼습니다. 이 교회들은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일에 있어서 사용하시는 방법에 관해서 다양한 관점들을 취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1892년에 있었던 그 합병 이전에도 이미, 압솨이딩 교회들은 돌레앙티의 교회들이 비성경적이고 비개혁적인 것으로 간주하였던 관점들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비난하였습니다. 그것은 언약과 선택, 영원칭의, 즉각적인 중생, 그리고 세례의 근거로서의 가정적 중생에 대한 카이퍼박사의 가르침들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이 반대들과 다른 반대들을 다루면서, 제안된 통합을 방어하였던 자들은 이 통합은 개혁신앙의 고백들과 교회정치에 기초되어진 것이기 때문에 특별한 교리들에 관계해서 오류가 있는 가르침들에 대해서 어떤 고소들이라도 적절한 교회의 회합들에서 후에 논의되어야 한다고 답변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논의하였는데, 거의 처음 순간부터 그렇게 하였습니다. 너무도 그러하였기 때문에, 1903년에는 그 통합이 두 집단 모두가 살아갈 수 있는 것에 의해서 교리적인 동의가 성립되지 않는다면, 해체되어버릴 위험 속에 있었습니다.

 

이곳이 헤르만 바빙크가 들어온 곳이었습니다. 그 통합에 직면하는 위험을 인정하면서, 그는 부르심과 중생에 대한 이 책을 집필하기로 결심하였고, 두 집단들에 의해서 개진되어온 다른 입장들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고자 하였습니다. 논의되는 주제들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의 빛이 어떠한지를 비춰보기로 하였던 것입니다.

 

직접적인 중생이냐 간접적인 중생이냐?

 

논쟁의 핵심에는 카이퍼의 직접적인 중생에 대한 가르침이 있었는데, 그것으로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것과 무관하게 이뤄진 중생을 의미했습니다. 그의 반대자들은 간접적인 중생을 주장하였는데, 다른 말로 하자면, 그들은 새출생(new birth)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을 통해서나 그것을 수단으로 하여서 이뤄진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카이퍼는 직접적인 중생에 대한 그의 주장을 인간의 전적 무능력이라는 성경적 교리에 기초하였습니다. 영적으로 죽은 죄인들은 복음을 들을 수도 없고 반응할 수도 없기 때문에, 그는 주장하기를, 성령께서는 말씀의 개입이 없이도 중생시킨다고 하였습니다. 성령은 새생명의 씨앗이나 곡식을 택자로서의 죄인 안에 심으시는데, 그 씨는 선포된 말씀에 의해서 뒤에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택자들은 출생시에 이 씨앗을 받게 되는데, 그들은 그들이 이미 중생하였다는 가정 위에서 세례를 받게 되고, 그들이 말씀을 듣게 되는 때에는 그것을 이해할 수 있고,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데, 그 믿음은 회개와 더불어서 중생의 열매인 것입니다. 따라서, 구원의 서정에 있어서, 중생은 부르심 앞에 오게 됩니다.

 

이 가르침이 함축하는 것은 심대하여서 그 이유 때문에 새로 조직된 그 연합체 안에서 많은 긴장을 야기시켰습니다. 바빙크가 그의 책 Saved by Grace: the Holy Spirit's Work in Calling and Regeneration을 집필하였던 것은 이 논쟁을 배경으로 해서였습니다. 카이퍼를 구체적으로 거명하지 않으면서도, 바빙크가 카이퍼의 관점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는 정당하고 평화적인 방식으로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성령께서 때때로 말씀과는 개별적으로 역사하실 수도 있고 그렇게 하신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도르트 신학자들의 직접적 중생론

 

이 작품 속에서 바빙크의 주논제는 간접적 중생론을 방어하는 것에 있지만, 그는 중생에서 성령께서는 말씀을 통해서(per verbum/through the Word)라기보다는 때때로 말씀과 함께(cum verbo/with the Word) 역사하신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는 설명하기를, 도르트총회와 그 후에, 많은 화란의 개혁주의신학자들이 구원에 있어서 성령의 주권에보다는 인간의 역할에 더욱 강조하였던 알미니안주의를 염려하였기 때문에, 성령의 직접적인 작용에 강조하였다는 것입니다.

 

바빙크는 이것과 관련해서 Gisbertus Voetius, Franciscus GomarusAlexander Comrie와 같은 위대한 나데르 레포르마치의 신학자들을 인용합니다. 바빙크에 따르면, 이 사람들은 중생을 성령의 직접적인 작용으로서 말하였지만, 중생에 인간의 결정에 의존한다고 주장하였던 펠라기안들과 항변자들의 오류를 반박하기 위한 노력 가운데서 그렇게 하였습니다(Saved by Grace, p. 54). 아마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중생시키시는 수단이라고 주장하였던 이들은 도르트회의에서 항변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이것으로 의미하였던 바는, 복음의 설교가 단지 죄인들을 설득시켜서(persuade) 그것으로 제공된 구원을 받아들이게 하는 수단으로서만 봉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말씀의 효력은 궁극적으로 말씀이 요구하는 바에 따르고자 하는 인간의 능력과 의지에 의존합니다. 바빙크가 설명하는 바는,

 

항변자들과 더불어서, 중생, 믿음, 그리고 회심은 그래서 인간에 의해서 성취되어야 했던 하나의 조건에 의존하고 묶여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말씀과 함께 성령의 특별한 효력으로 작용하는 것이 죄인의 심령 속에서 발생했어야 한다는 것을 부인하였습니다. 그들은 말씀과 더불어서(alongside)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어떤 작용도 부인하였던 것입니다. 대신 그들이 주장하였던 것은, 말씀 안에서, 그리고 말씀에 의해서 성령의 도덕적인 작용이 회심되기를 바라고 새롭게 되기를 바라는 어떤 사람을 회심시키고 새롭게 하는데 충분하다는 것이었습니다”(Ibid., p.48).

 

이 심각한 오류를 반박하기 위해서, 그 개혁신학자들은 때때로 직접적인 중생이라는 용어를 활용하였지만, 바빙크가 강조하고 있는 바는, 그들이 결코 이 표현을, 성령의 중생의 역사로부터, 은혜의 방편으로서의 말씀을 배제시키려는 노력 가운데서는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서정을 그들이 취급하는 가운데서, 그들은, 예외없이, 부르심을 중생 앞에 두었던 것입니다.

 

카이퍼의 직접적인 중생론

 

카이퍼가 자신의 직접적인 중생에 대한 가르침을 지지하기 위해서 수많은 정통주의 신학자들에 호소할 수 있었다는 것이 부인되어서는 안 되지만, 우리는 인정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그가 이 개념을 도르트의 선조들이 가졌던 이유와는 다른 이유들로 이 개념을 사용하였다는 것입니다. 카이퍼는 그의 전반적인 전타락적 선택설적 신학체계에 필요한 한 요소로서 이 개념을 필요로 하였습니다. 만약, 그가 가르쳤던 대로, 은혜의 언약이 택자들로만 되어지는 것이고, 또한 만약 그들이 영원 전부터 칭의되는 것이라면, 그들은 또한 영원 전부터 중생하였고 그렇게 중생된 자로서 태어나게 된다는 결론이 뒤따릅니다. 여기에 있는 위험은, 모든 언약의 자녀들이 자신들의 잃은 바 된 상태에 전혀 직면해 본 적도 없이 태어날 때부터 중생된 자로서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중생해야 할 필요에 전혀 직면해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바빙크는 이 위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가정된 중생론)이라는 가르침은 많은 사람들이 잃어버린 바된 자들이면서도 자신들이 천국을 향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들을 양산할 수 있습니다. 그 강조하는 바가 믿음에 대해서보다는 중생에 대해서 옮겨질 때, 우리는 자신이 어렸을 때 중생하였고, 새생명은 조만간에 곧 그 자체를 믿음과 회심으로 드러낼 것이라는 생각으로 재빨리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새생명이 드러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결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중생하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고 반드시 영원한 구원으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Ibid., pp.92-93).

 

유아구원의 문제

 

바빙크는 유아구원의 관한 문제를 광범위하게 다룹니다. 확실하게 그의 반대자들은 주장하기를, 유다들의 경우에, 중생이 부르심에 앞서고 그러면 그것이 말씀의 도구가 없이 발생한다는 의미에 있어서 직접적인 것으로 보아야만 할 것입니다. 바빙크에게 있어서, 이런 추론은 틀린 것입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만약 유아들이 아무런 지식도 없는 채로 은혜 가운데서 하나님에 의해서 영접되고 중생되어진다면, 그러면 이것은 언제나 복음이 선포되는 것과 함께 은혜의 언약이 이미 객관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전제하게 됩니다...(그래서) 그들이 언약의 자녀로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면 중생에 참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정확하게 언약의 자녀로서 그들은 하나님에 의해서 부르심을 받습니다....그들의 부모과 함께 신자들의 자녀들로서 그들에게 약속이 오고...오직 복음 안에서 알려지고 제공되어집니다. 크리스챤 부모들의 자녀로서, 말씀의 가르침과 분리되어 있는 채로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과 연결되어 있는 자들로서, 그들은 내적으로 성령에 의해서 부르심을 받고, 그래서 그리스도의 중생 안으로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입니다”(Ibid., pp.81-82).

 

이런 식으로, 바빙크는 확실히 은혜언약의 경계선들 안에서 중생이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의 맥락에 의해서, 그 맥락을 통해서, 그리고 그 맥락 안에서 부르시는 부르심을 포함한다고 말하는 것을 위해 하나의 강력한 사례를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더욱이나, 중생은 말씀과 그 약속으로부터 분리되어질 수 없기 때문에, 언약의 자녀들은 그들이 실제로나 가정적으로 중생하였다는 것에 기초하여서가 아니라, 그 약속들에 기초하여서 세례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바빙크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성례들은 만약 그것들이 말씀과 분리되어 있다면 아무 것도 아니며 성례들도 아닙니다. 성례들은 말씀을 인치는 것이며, 말씀에 뒤따르는 것이고, 또한 결코 떨어질 수 없도록 말씀에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Ibid.).

 

유아기에 죽게 된 유아들의 구원에 관한 질문에 대해서, 바빙크는 도르트신경117절 안에 있는 위로의 선언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비록 그가 첨가하기를, 그 총회가 이 위로를 일반적인 부모들에게까지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경건한 부모들에게 제공하는 것이라고 하였을지라도 말입니다. 왜냐하면, 결국 그가 설명하는 것은, “자기 자신들의 선택과 구원에 전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부모들은 자신들의 자녀들의 운명에 대해서 참된 관심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위로를 가질 필요도 없고 가질 수도 없는 것입니다”(Ibid., p.83).

 

바빙크의 이 중요한 책에 더 많은 것이 말해질 수 있고 말해야만 할 것입니다만, 저는 저에게 할당된 분량의 공간을 거의 채웠습니다. 글을 매듭지으면서, 저는 위에서 언급된 중차대한 사안들에 대하여 갖고 있는 압솨이딩과 돌레앙티의 관점들 사이에서 중재하고자 하는 바빙크의 노력에 대해서 서너가지 비판적인 언급을 하고자 합니다.

 

몇 가지 비판적인 언급들

 

1. 비록 바빙크가 어떤 사람이 자신 안에 새출생의 씨앗을 가질 수 있지만 회개와 믿음에 이르기 이전에 죄 가운데서 살아가는 것을 계속할 수 있다는, 카이퍼의 잠재적인중생의 개념을 거부하고 있다 할지라도, 그는 성령에 의해서 적용된 말씀으로부터 직접적으로 결과하는 하나의 신적인 행위로서보다는, 말씀에 의하여 활성화되기를 기다리는 하나의 씨앗을 심는 것으로서의 중생의 개념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J. 반 헬더런박사(W.H.Velema와 함께 Beknopte Dogmatiek을 저술하였는데, 그것은 Concise Reformed Dogmatics로 번역출간된 책의 저자), 바빙크가 원리상, 중생은 믿을 수 있는 능력을 심어주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하고 말씀이 이 능력을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카이퍼의 개념에 동의한다고 썼습니다(Concise Reformed Dogmatics, p.587). 반 헨더런은 생명의 시작으로서의 중생과 벨직 신앙고백서, 24항에서 정의된 대로 그 생명의 그 후의 발달 사이에 있는 구별에 동의하면서, 중생을 그 시작단계에 제한시켜버리는 것에 대해서 경계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는 중생을 말씀의 선포 아래에서 그리고 그 선포를 통한 성령의 사역으로 고려하면서, 바빙크의 카이퍼의 견해와의 연결칼빈과 보조를 맞추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한 걸음 후퇴하는 것으로보고 있습니다(Ibid.).

 

2. 비록 구원의 서정에 대해서 바빙크는 카이퍼에 의해서 가르쳐진 것보다 고전적인 압솨이딩의 입장을 선호하고 있지만, 나의 의견으로는, 그는 후자(카이퍼의 견해)에 대해서 너무 지나치게 동조하면서, 그 새로운 연맹 안에서 둘다 합법적인 신분을 제공해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1905년에 있었던 우트레히트 총회의 결론들(Conclusions)을 볼 때 아주 분명합니다. 그 결론들의 한 부분은 이렇습니다:

 

우리의 교회의 신조들에 따르면, 하나님의 약속 덕분에 언약의 씨앗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화되어진 것만큼 중생되어진 것으로 간주되어야 합니다. 그 반대가 그들이 분별할 수 있는 나이에 이르렀을 때 그들의 고백과 행위 안에서 보여지기까지는 말입니다. 하지만, 세례가 신자들의 자녀에게 가정된 중생의 토대 위에서 집행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덜 정확합니다. 세례의 토대는 하나님의 명령이고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이것은 타협한 것이고 의도적으로 그렇게 타협한 것입니다. 작고하신, 카나다개혁교회의 J.파베르교수가 1998년 연합개혁교회의 청중들에게 한 한 강연에서 말하였던 대로, “1905년의 총회는 헤르만 바빙크가 그 영적 아버지인 하나의 평화주의자 공식(a Pacification Formula)을 받아들였습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이전의 압솨이딩 신학자들과 이전의 돌레앙티의 신학자들의 두 가지 서로 다른 접근들을 바로 옆에다 나란히 두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타협이었습니다. 하지만, 1905년은 평화를 가져왔습니다. 그것은 1892년의 통합을 구제하였고 강고하게 만들었습니다”(Spindle Works, 인터넷에서 다운로드).

 

하지만, 과연 그랬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것은 잠시동안의 상대적인 평화를 가져왔습니다. 그 두 개의 관점들은 서로의 옆에서 생존하려고 힘썼습니다. 하지만, 그 두 개의 파당 사이에서는 상당한 정도의 갈등이 계속되다가, 1942년에 그 고르디안 매듭이 끊어졌습니다. (2차대전중에!) 만난 화란 개혁교회의 Sneek-Utrecht 총회는 사실상 언약과 세례 그리고 관련된 사안들에 관하여 카이퍼의 관점들이 유일하고 합법적인 입장임을 선포하였고, 그 입장에 대해서 교회의 모든 직분자들과 회원들은 그것을 표준으로 받아들인다고 서명하여야 했습니다.

 

파베르박사가 인정하였던 것처럼, 1942년 총회는 오직 1905년의 카이퍼의 견해의 부분만을 채택하였고, 압솨이딩의 교리적 관심과 강조는 내쳐버렸습니다. 그것이 언제나 교단들이 지나치게 서둘러서 교리적인 차이점들과 다른 차이점들이 신중하게 해소되지도 않은 채로 합병될 때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1892년의 그 자유연합교회의 선조들은 이것을 알고 있었고 그것에 따라서 행동하였습니다. 그들은 그 차이점들이 중요한 것이었고 그러므로 협상불가능한 것이을 확신하였던 것입니다. 자녀들이시여, 그러므로, 역사의 빛으로부터 배우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