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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race 2021. 5. 4. 06:55

무의식에 대한 바빙크의 견해

한병수교수: Unconsciousness and Religion in Bavinck and Freud, KPJT, vol.50.No.4, p.192-197.번역: 손성은목사

 

바빙크의 무의식에 대한 정교한 취급은 191577일 암스텔담 자유대학에서 학자들간의 컨퍼런스에서 전달된 그의 심리학에 관한 강의, ‘무의식에 대하여’(Over Het Onbewuste)에 나타납니다. “그 자체를 통해서 알려지는 하나의 원리”(principium per se notum)로서의 의식에 관한 Ernst Haeckel의 관점을 배척하면서, 무엇보다도 먼저, 바빙크는, 어거스틴에 의해서 내적 감각(sensus interior)으로, 그리고 칸트에 의해서 내적 의미(inneren Sinn)로 불리는, 의식(bewustzijn)은 독립적인 것이 아니고 성질 혹은 능력인데 그것으로 인간 존재가 영적인 어떤 것을 취하여서 그것을 그의 심리적 소유로 만들 수 있는 것”(de eigenschap of geschikheid, waardoor de mensch iets geestelijk in zich opnemen en toto zijn psychisch eigendom kan maken)입니다. 혼을 의식과 동일시하였던 첫 번째 인물인 데카르트와는 달리, 바빙크는 의식과 혼 사이에 있는 분명한 구별을 가정합니다. 항상 그 구별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뒤 그는 인간 존재와 의식을 무엇이 서로 간에 연결시키고 있는가를 질문합니다. 이 질문에 답하면서, 바빙크는 폰 하르트만과 일치해서 지적하기를 모든 종류의 과정이 인간의 몸과 두뇌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인정하고 있다면서, 그 과정이 완전히 의식의 바깥에서(buiten het bewustzijn) 일어난다고 합니다. 우리의 존재와 우리의 (자기-) 의식은, 인간의 정신(mind) 속에서의 이런 무의식적 과정에 의해서 서로 간에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바빙크에 따르면, 무의식의 개념은, 동일한 언어로서 직접 가르쳐진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대부분의 철학자들에 의해서 내적인 전제들(εμφυτοι προληψεις), 공통되거나 조그만 개념들(κοιναι of φυσικαι εννοιαι), 큰 일들에 대한 조그만 개념들(notitiae parvae rerum maxiarum), 내적인 덕의 씨앗들(semina innata virtutum)로서 언급되어 왔습니다. 바빙크는 우리들에게 플로티누스가 무의식의 활동들을 논의하였고 그것들에 크게 주목하였던 이가 라이프니쯔라면서 지각(perception)과 통각(apperception) 사이를 구분합니다. 하지만, 그는 무의식 이론에 대한 현대적 기원을 순서상 정신(mind)에 앞서고 있는 것으로서, 맹목적이고 비논리적인 의지(den bliden, alogischen wil)라는 쉘링의 관점에서 찾고 있습니다. 쉘링은 이미 그의 System des transchendental Idealismus(1800)에서, 스스로 작동하고 있는 모두 감춰져 있고 신비한 힘의 무의식적 방식을 지적하였던 것입니다. 무의식의 개념에 미친 쉘링의 영향력 아래에서, 19세기의 많은 심리학자들은 ‘onbewuste’(무의식)이라는 단어를 기억되지 않은 것, 의도되지 않은 것, 주목되지 않은 것, 자동화된 것, 재산출 된 것, 생산적인 것, 물리적 실재, 절대적인 것”(the unremembered, the unintened, the unnoticed, the automated, the reproduced, the productive, physical reality, the absolute)과 동일시하였습니다. 바빙크는 무의식에 대한 이 잘 정의된 개념들은 혼의 활동들 안에서 무의식의 현상을 적절하게 이해하는데 있어서 유용하다는 점을 받아들입니다. 무의식의 영역에서, 그는 우리의 본유적인 능력들, 성질들, 습관들, 기질들, 경향들, 조건들과 본능적인 행위들을 인정하면서, 그 모든 것들이 의식과 의지에 앞서고 있는 것으로 봅니다. 우리의 의식 생활에 대한 무의식의 관계에 있어서 그는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우리의 의식생활이 언제나 지속적으로 무의식에 의해서 태어나며 활성화되어진다고 하는 것은, 규범입니다. 우리가 각성하게 되고, 관찰하게 되며, 우리의 감정, 우리의 열망, 우리의 생각하는 것과 말하는 것, 종교, 도덕, 과학, 예술, 우리의 통찰들과 편견들에 있어서 우리의 모든 확신들, 우리의 공감들, 우리의 혐오감들은, 우리의 혼속에 있는 의식의 훨씬 아래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바빙크가 우리의 종교적 확신에 대해서 무의식의 엄청난 중요성을 인식하였다는 것을 주목할 가치가 있습니다. 하지만, 종교의 기원(oorsprong van den godsdienst)에 관하여, 그는 사회적 진화론에 썩 만족하지 못하였는데, 그것은 주장하기를, 사람들은 수많은 사회적 규범들, 범주들, 관찰모델들, 규칙들, 그리고 논리적 윤리적 미적 법칙들에 의하여 묶여 있고 제약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들 자신의 자유로운 방식으로 관찰하지도 못하고, 생각하지도 못하며, 느끼거나 의지하지도 못한다고 합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이 제약들이 제2의 본성이나 인간 존재의 초자아가 되는 것은 불가피합니다. 하지만, 바빙크는 한 인격(a person)의 본질적인 통일성에 있어서 어떤 분할도 기본적으로 거부합니다. 그것은 프로이드가 인격(personality), 자아, 초자아, 그리고 이드로 나누는 삼분설을 포함합니다. 인격(personality)의 다양한 이원론들을 보고는, 그는 탄식하기를, “인간 존재는 얼마나 자기 자신을 기만하고 있으며, 자자아에 대해서 얼마나 진정으로나 알고 있는지!” 라고 합니다.

 

바빙크는 추적하기를, 모든 사교(邪敎)현상을 사람 안에 있는 무의식적 심리의 힘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시도가 15세기와 16세기의 독일 마술사이면서 사교적 저자인, Agrippa von Nettesheim안에서 발견된다고 합니다. 그 마술사는 말하기를, “모든 경이로운 일들의 기원은 우리들 안에 있습니다”(in us ist der Urheber aller Wunderdinge)고 합니다. 바빙크는 전체 문명세계가 이 심리주의를 환영하였는데, 그것을 수단으로 해서 사람들은 현재와 미래의, 영의 세계와 무덤 너머의 다른 세계의, 자연의 비밀, 혼의 비밀을 꿰뚫어보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에 따르면, 폰 하르트만이 절대적인 무의식으로서의 한 행위자(one Agent)의 존재와, 인간과 자연 그리고 역사 속에 있는 모든 일들의 원인으로서의 인간의 무의식의 존재를 견고하게 주장한 것이 이 심리주의로부터 말미암습니다. 이것은 범신론이나, 하나의 세계혼(a world soul)의 이론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한편으로, 바빙크는, 폰 하르트만을 한 명의 범신론자로 비난함으로써, “무의식지향의 심리주의나 무의식이론 그 자체의 잠재적인 위험을 폭로하였습니다. 하르트만은, 그의 Philosophie des Unbewussten(1869)에서, 무의식에 대한 그의 철학으로 유신론을 범신론으로 대체시켰고, 또한 범신론과 사교주의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피조 세계 전체에 있어서 무의식의 힘과 중요성에 대한 폰 하르트만의 강조에 대해서 바빙크가 반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주목할 만 합니다. 하지만, 폰 하르트만의 문제는, “무의식의 광범위한 능력이 하나님의 지성을 정확하게 전제하거나 요구하지 않는가하는 질문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는 어떤 종류의 무의식도 없으며 단지 초의식(超意識, superior/uber-bewusst)이 있을 뿐인 것입니다. 동일한 맥락에서, 바빙크는 윌리엄 제임스에 대해서 말하기를, 현대의 종교심리학은 우리들에게 어느 정도 종교가 무엇이며, 어떻게 그것이 인간 본성 안에 뿌리를 두고서 연결되어 있는가에 대해서 가르쳐주지만, 그 내용, 그 진리, 그 합법성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것은, 종교의 사실상의(de facto) 사안에 관하여, 현대심리학, 특별히, 정신분석학을, 고소하는 것입니다. 바빙크에 따르면, 인간들과 짐승들 안에서의 대부분의 무의식적 행동들은 목적적이되, 하나의 목적을 스스로 갖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은 의식”(hooger bewustzijn) 곧 하나님에 의해서 그 목적을 향하게 되는 것입니다. 피조물 안에 있는 무의식의 고안자로서의 하나님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어떤 종류의 무의식이론도 우리들을 그 적절한 이해와 자연적 목적으로 인도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한편, 바빙크는 무의식이론의 합리적인 함축성을 감지하고 있습니다: 그 이론은 혼이 없는 심리학(Psychologie ohne Seele)은 성립불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면에서, 무의식의 현대적 이론은 단지 (ziel)에 대한 옛이론의 회복일 뿐입니다. 그는 혼의 생활에 있어서 어떤 종류의 상태들과 활동들이 실제적으로 무의식적인 것을 부인하지 않습니다만, 그렇지만, 혼을 더욱 잘 파악하기 위해서 새로운 무의식의 이론이 창안해 내는 것은 필요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주장합니다. 그 이유는, 무의식에 관한 새로운 이론의 도움이 없어도, 혼은 그 자체의 기능태와 활동들과 더불어서 그 자체를 충분하게 설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의식의 이론이 경험적인 정당성만 아니라 성경적인 정당을 갖게 되는 것을 불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무의식의 내용에 의존합니다. 이것과 관련해서, 바빙크는 Sidis는 그의 무의식의 관점에서 도덕성이 결핍되어 있음을 비난하고, 프로이드도 그가 성적인 욕망을 심리분석의 최종적인 단계에서 무의식의 근본적인 내용으로서 인정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비난하고 있습니다. 무의식의 이론이 성경적으로 용납될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이것입니다: 성경적인 무의식의 이론은 혼이 의식보다 더욱 부요하고 더욱 깊다는 관점을 취하고, 이 생각을 그의 죄론, 중생론, 그 신비적 연합이론, 영감론, 그리고 망상론에 대해서 기본적인 것으로 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빙크는 무의식을 의식(지각과 주의)의 중심 바깥에 놓여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적으로 그것 바깥에 놓여져 있지 않는 것으로서의 혼의 현상들의 중요한 집단들에 대한 이름으로서 정의합니다. ‘무의식이론에 대한 경험적인 정당화 가운데서, 바빙크는 혈액순환, 호흡, 소화, 팬토마임, 운동들, 웃음, 울음, 그리고 공포의 부르짖음과 같은 우리의 모든 식물적(vegetative) 생명이, 혼의 무의식적 활동들을 드러내는 것임을 인정합니다. 이것에 대해서 바빙크는 혼의 무의식적 활동을 첨가하고 있습니다(한역주; 앞 문장에서 분명히 혼의 무의식적 활동을 언급해놓고, 뒷문장에서 첨가한다는 말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첨가한 것이 무엇인가?). 그는 계속해서 말하기를, 비밀한 일은 하나님에게 속하고 계시된 것은 우리들에게 속한다고 한, 2929절의 성경적 구별은, 범신론과 사교주의만 아니라, 불가지론과 영지주의를 또한 거절하고 있음을 계속해서 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