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자료2-유럽국가/스페인

Horace 2006. 9. 6. 01:54

 

 

 

하나님 보다도 가우디가 더욱 생각나게 하는 성당건물들. 바르셀로나의 추억들도 정리해야 하겠다.

 

바르셀로나를 방문한 뒤에 쓴 글 한쪽을 아래에 붙여놓는다.

 

*   *    *

 

                              예술이라는 이름의 종교적 허영

 

  4일동안 바르셀로나를 방문하였다. 한서교회의 장로장립권사임직식에 초청을 받았기 때문이다. 장립과 취임축하 뿐만 아니라, 유럽 각지에서 온 동문목사님들과의 교제도 기대하였고 또한 은근히 바르셀로나의 가우디건축물들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정성과 사랑으로 동문들을 섬긴 스페인제일장로교회(반맹은목사)와 한서교회(장종목목사)에게 심심한 감사를 남기고 싶고, 교회를 맡아 섬기는 목사님들과 이번에 임직받은 분들의 섬김과 헌신으로 양교회가 더욱 풍성한 사랑과 인내로 바르셀로나에 십자가의 복음을 심는 전초부대들이 되기를 기원한다(우리 런던양무리교회는 이런 섬김과 봉사를 언제쯤 감당할 수 있을까?

 

  몬주익공원의 황영조선수의 동상도 보지 못했다. 그 영광의 순간, 일본선수를 추격하여 따라잡았던 질주로도 실은 찾아보지 못했다. 숙소가 바르셀로나에서 50여킬로 떨어진 산타 수산나라는 해변관광지의 호텔에 잡아서 마음껏 마음대로 오고 갈 수 없었던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시간배려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대신, 오전 중에는 동문목사님들과 오랜만에 마음껏 이것저것 얘기들을 나누면서 교제를 하였다. 감사한 일이다. 그런 중에도 틈틈히 바르셀로나 여러 곳을 둘러볼 수 있었던 이번 방문은 나름대로 <회심과 문화>의 문제를 좀 더 구체적으로 해 볼 수 있었던 기회이기도 하다. 그것을 조금씩 적어보기로 하겠다.

 

  바르셀로나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구입한 것이 일종의 one Day Travel Ticket이었다. 전철과 버스를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것인데, 4.80유로니 런던의 것과 비교하면 훨씬 쌌다. 가우디의 Sagrada Familia를 향하였다. 언젠가 동일형제가 이곳을 방문하였다면서 보내왔던 기념엽서에 웅장하게 새겨져 있었던 성당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비가 치적거리면서 내렸지만, 기대되는 마음에 중국인들이 팔고 있는 우산조차 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만큼 들떠 있었나 보다. 8유로정도의 입장료를 지불하고는 들어섰다. 1882년에 공사가 시작되어서 2022년도에 완공될 예정인데, 100년 이상이 진행된 공사이지만, 사실, 언제 마칠지를 모른다고 한다. 건물내부에서는 인부들의 제각각 맡은 일들에 전념하는 모습들이 보였다. 이러저리 널려져 있는 건축자재들이며 공구들이 어지러웠다. 비가 오는 데도 여전한 수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서, 이곳저곳을 둘러보면서 사진을 찍었다. 내부 모습은 별로였다. 아직 공사중이어서 그 묘미를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완성되지 않은 채로이지만, 외부의 건물장식의 기기묘묘한 모습의 구석구석은 감탄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섬세한 손길들로 그것들을 만들었을 바르셀로나장인들의 정성이 느껴져 왔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을 상상하였던 천재건축가 가우디의 그 상상력 속에 빨려들어가는 것 같았다. 이런 인상은 필설로 다하기 어렵다. 100년전에 지었던 건물의 장식부분과 지금 막 빗어나오고 있는 작품들의 묘한 대비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저 감탄에 감탄을 거듭할 뿐이었다.

 

  하지만, 아직 공사가 완공되지 않은 것 때문일까. 공사가 마쳐지지 않았는데도 가우디의 박물관이며 곳곳에 넘치는 장사 속 때문일까.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기 위해서 세워지는 건물에서 인간을 찬양하는 소리들이 너무 크게 들리고 부각되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근무하는 스텝에게 물었다. 이 건물에서 현재 어떤 형태로든 미사나 예배가 진행되느냐. 아뿔싸! 그런 것이 없다는 대답이다. 그러니, 결국 100년 이상을 이 건물을 지어오면서 예배(혹은 미사)를 드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공사 중에 위험하다는 생각 때문이서였을까? 아예, 회중들이 없기 때문일까? 충분히 예배(미사)를 드릴 공간이 있을 법도 한데(가령, 가우디작품전시실 같은 곳), 그런 시도가 없었다고 한다. 흐음그래, 역시, 가우디의 천재성을 예배하는 곳이 되었나 보군.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세우는 건물인데, 결국 인간의 예술작품을 찬양하는 곳으로 전락되어 버린 느낌이다. 그러고 보니, 가우디의 예술정신이 무엇을 목표로 하는 것일까 다시금 반추해 보게 되었다. 그가 펼쳐 보였던 상상력의 목표가 무엇이었을까? 예술을 위한 예술? 상상력을 위한 상상력? 인간의 창조성을 위한 창조? 이 구석 저 구석 건물을 둘러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이상하게도 영혼의 밑바닥에선 슬픔과 함께 분노가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종교와 신앙을 빙자하여 인간의 영광과 자부심을 드러내고 있는 현장 속에 있는 느낌 때문이었다. 예술을 예술로 느낄 수 있는 예술적 심미안이 아직 나에겐 결핍된 것일까?

 

  그런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하면서 최선을 다하여 아름답게 치장하고 장식하고 그 예식과 절차들을 화려하게 꾸미다가, 그만, 예배드리고 있는 그 대상을 잊어버리고, 그렇게 장엄하고 아름답게 예배드리고 있는 자신들의 모습에 도취되어 있는 인간의 모습들이 연상되는 것이 나의 심미안의 부족때문만일까?

 

  Sagrada Familia – 바르셀로나 첫방문지는 그렇게 해서 감탄의 최정상에서 바로 심연으로 나락으로 떨어진 루시퍼를 연상하는 곳이 되었다. 바로 그 화려한 성당문 앞에서 여행객들에게 적선의 손길을 내밀고 있는 서너 여인들의 모습 속에서 화려한 예루살렘성전에서 쫓겨난 주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다고 이것으로 바르셀로나구경을 다 끝난 것이 아니었다. 단지 시작했을 뿐이다.   

예술이라는 이름의 종교적 허영- 우리에게는 종교라는 이름의 예술적 허영이 또한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오싹 두려움이 다가온다. 주여, 우리에게 어떤 허영에서든지 구원하소서. 우리가 지금 허영의 시장에 있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