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이야기

에이스안경원 2008. 6. 10. 12:25
1996년 2월 6일 집권여당인 민주자유당(민자당)이 명칭을 바꾸어 출범한 정당.
 
전신인 민자당은 3당합당의 한 주역이었던 노태우 전대통령의 비자금 비리가 폭로되는 등 5·6공화국의 비리의혹과
 
김영삼 정부 출범 후의 연속되는 대형사고 등으로 국민적 지지를 받지 못하여 1995년 6·27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
 
이에 대외적인 이미지 쇄신과 총재인 김영삼 대통령의 당지도력 강화를 목적으로 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꾸는 한편,
 
1996년 2월 6일 제1차 전당대회를 통하여 당헌 및 정강 등을 개정했다.
신한국당은 출범 2개월 후인 1996년 4월 11일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의 7석을 포함해 지역구 121석을 획득
 
하고 전국구 18석을 합해 139석을 확보함으로써 비록 과반수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야당을 누르고 제1당이 되었다.
이후 제15대 대통령선거를 약 5개월 앞둔 1997년 7월 21일 전당대회에서 이회창 고문을 신한국당 대통령 후보로 선
 
출했다. 이는 집권 여당 사상 최초로 대의원들이 대통령 후보를 직접 선출한 자유경선이라는 의의를 남겼지만, 경선
 
과정중 각 후보간의 분열로 생긴 당내 결속력 약화 등 경선후유증을 낳았다. 당내 분열은 당시 경선에서 2위를 차지
 
한 이인제 경기도지사가 경선결과에 불복하며 신한국당을 탈당해 1997년 11월 국민신당을 창당하는 것으로까지 이
 
어졌다. 신한국당은 1997년 9월 30일 전당대회를 열어 이회창 대표위원을 총재로, 김영삼 대통령을 명예총재로 각각
 
선출해 당 쇄신에 나섰으나 김영삼 대통령의 이인제 국민신당 후보 지원 여부를 둘러싸고 이회창 후보와 김영삼 대통
 
령 사이의 갈등이 극한에 달해 급기야 이회창 후보가 김영삼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하는 사태로 나아갔다. 결국 1997
 
년 11월 김영삼 대통령은 대통령선거를 엄정하고 공정하게 관리하고 국정수행에 전념하겠다며 신한국당을 탈당했다.
 
신한국당은 제15대 대통령선거를 불과 1개월여 앞둔 11월 21일 소수야당인 민주당과 합당해 통합신당인 한나라당으
 
로 재출발했으나 12월 대통령선거에서 패배해 재집권에는 실패했다. → 민주자유당, 한나라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