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이스안경원

에이스안경원 2011. 12. 6. 13:54
안경계 > People&People
2008-05-16
21세기 안경인
조영민 안경사

안경사를 말하는 건 ‘깊이와 신뢰’

“꿈꾸는 안경사가 되어 세상을 향해 도전”

강원도 동해시 조 / 영 / 민 안경사



원도 동해시 대동의 조영민 안경사(민안경원)를 만나러 가는 길. 낯선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엔 늘 기대와 걱정, 설렘이 어지럽게 엉킨 실타래가 되어 머릿속을 통통 튀어다닌다. 어쩌면 인터뷰를 앞둔 마음은 고개를 숙이고 비를 맞고 있는 게으른 꽃봉오리를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봄이 다 가도록 이처럼 기다리게 만드는 그 봉오리 속엔 평범한 꽃잎과 꽃술 대신 무언가 다른 것이 들어있다가 깜짝 놀래켜 줄 것만 같다.

“아휴, 많이 소란스럽죠?”라며 정감어린 강원도 억양이 녹아있는 말로 맞이해 주는 조영민 안경사. 아파트 상가 쇼핑몰에 자리한 민안경원은 후면과 좌측면만 막혀있을 뿐, 다른 두 면은 허리 높이의 진열장으로 구획 된 반 개방형 공간이었다. 그러나 작은 안경원의 소란 속에서도 조영민 안경사는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는다.

“보다 넓고 깨끗한 안경원으로 옮기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여기저기 알아보고 있는데 아직 쉽진 않네요”라는 그의 꿈도 다른 안경사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하지만 안경사를 안경원의 규모와 매출로 말할 순 없잖아요? 보건의료인으로서의 깊이와 고객에 대한 신뢰를 가지지 못한다면 모두다 껍데기일 뿐이죠”라며 정색을 한다.



희망을 준 두 글자 “가족”


19년 전 한창 진로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아버지께서 지인을 통해 안경사의 일과 비전을 보시고 권해주셨다. “학교 다닐 때엔 어떤 소양을 갖춘 안경사가 되어야 겠다는 목표가 없었어요. MT나 축제 같은 일에 더 열심이었죠. 학창시절을 돌아보면 학교 인근의 ‘한우리’라는 고아원 돕기 모임을 만든 게 보람있는 일이었습니다”라고 돌아보는 조영민 안경사.

졸업 후 면허를 취득했지만 준비가 덜 된 안경사에게 세상은 쉽지 않았다. 빠른 시간 안에 상품지식과 시력검사, 조제가공을 배우기 위해 도소매업체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6개월 동안 렌즈정리, 주문, 청소, 배달 등을 했어요. 좀처럼 시력검사나 조제가공의 기회가 주어지질 않더라구요. 그러던 중 소매를 담당한 선배의 도움으로 하나 둘 배워갔습니다.” 조영민 안경사는 이후 대구, 강릉 등에서 종사자 생활을 하다 95년도에 동해에 개원하며 정착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후에도 시련은 있었다.

“2000년까지 입주를 목표로 하던 아파트가 IMF로 부도 나면서 입주가 무산되고, 안경원 운영은 점점 어려워졌어요. 새 기계의 할부금을 감당하기도 힘들었습니다. 1년 내내 술을 마시며 지냈던 것 같아요.”

위기와 방황을 거듭하던 조 안경사를 붙들어 준 건 아내였던 최진숙 씨였다. “결혼을 하면서 안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아내가 금융관리를 해주면서 하나, 둘 부채를 정리했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저축이 가능해지더군요.”


돈으로 살 수 없는 자부심, “안경사”


결혼 10년 째에 접어드는 조영민 안경사에게 아내 최진숙 씨와 더불어 초등학교에 다니는 길성, 희성 형제가 큰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5시간의 산행도 견디는 아들을 보며 약골이 많은 요즘 아이들과는 다른 것 같아 흐뭇합니다. 자라는 아이들에게 열심히 일하는 엄마, 아빠로 기억되고 싶습니다”라는 조 안경사.

조 안경사에게 안경사란 직업은 단순히 시력 검사를 해주고, 안경을 조제해주는게 전부가 아니다. “안경만 건네주는 게 아니라 사후 시력관리까지 해 주어야 진정한 보건의료인이라고 할 수 있겠죠. 어떻게 하면 시력이 더 나빠지지 않을 수 있는지, 눈과 관련된 건강정보를 제공하는 것까지 안경사로서의 역할이 아닐까요?”라는 그는 “안경사의 업무영역에 대체의학을 접목시켜 보려고 노력 중입니다. 손님의 종합적 건강진단과 시건강을 보살펴 주는 게 미래형 안경사라고 생각해요”라고 당당하게 밝힌다.

이런 자부심을 가진 조영민 안경사에게 일부 안경사의 도를 넘어선 가격경쟁은 안타깝기만 한 현실이다. “근무환경이나 돈벌이를 따진다면 더 나은 직업도 많아요. 의료기사의 한 부분을 맡고 있는 안경사가 세일에 치중하고 만원짜리 서클렌즈 몇 개 팔았는지 계산할 때, 사람의 눈 마저도 돈벌이를 위한 부품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죠.”

“세일 현수막을 붙여놓고 가판에서 판매하는 싸구려 선글라스를 수리해 주는 보건의료인이라고 자조하면 뭐하겠어요. 우리가 먼저 바꿔야 세상이 우리를 바라보는 인식도 달라질 것입니다. 크기와 판매액으로 말하는 안경사가 아니라 깊이와 신뢰가 있는 안경사가 되어야 합니다”라고 힘주어 말하는 조영민 안경사의 표정서 굳은 결의가 느껴진다.

“솔직히 국민의 생명과 직결 된 병원이야말로 쉬지 말아야 할 곳이지만, 우리나라는 왜 병원과 의사는 쉬는데 안경원과 안경사들은 쉬지도 않고 일을 하는거죠? 누가 그렇게 만들었나요”라고 우리의 현실에 대해 반문하는 조영민 안경사. 우리가 만든 현실을 탓하기만 할 게 아니라 우리업계의 미래를 바꾸기 위해서 모두가 같이 노력해 줄 것을 요구한다.


올해로 마흔이 된다는 조영민 안경사는 “아직은 어려보이는 얼굴이라서 젊은 손님들이 제 서비스를 부담스러워 하지는 않아요. 그러나 10년 후에도 과연 그럴 수 있을까요? 모든 직종에서 젊은 사람들은 나이 든 사람에게 서비스를 받는 걸 꺼려하는 편이잖아요. 아무래도 자기와 비슷한 연령대에게 서비스를 받는 걸 편하게 여기는 거죠. 저도 이제부터 실버층을 위한 공부를 준비해야 할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지금은 비록 쇼핑센터 안의 작은 안경원이지만 “직원 한 명이 한 달에 적어도 7일을 쉴 수 있고, 4대보험에 가입되며 상여금을 3백%이상 지급되는 안경원을 만드는 것이 저의 최종목표예요”라는 그에게서 ‘도전하는 꿈의 크기가 삶의 크기’라는 말을 엿볼 수 있었다. 조영민 안경사의 멈춤없는 도전이 만나게 될 희망찬 미래를 그려보며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한 줄기 햇살이 따라왔다.

김정원 기자 (kjw1978@opt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