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소통/생생스토리

국민권익위원회 2009. 5. 7. 11:04

어느 추운 겨울이었다. 당시 나는 매일 쏟아지는 민원에 파묻혀 있었다.
그 때 한 할아버지의 안타까운 사연이 담긴 편지 한 통을 받았다.

 

네 번이나 묏자리를 옮긴 기구한 사연

 

 

일흔을 넘긴 할아버지는 조상들이 물려주신 농토에서 농사 짓는 것을 천직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물려받은 농토가 있어 할아버지와 자식들이 어렵고 힘들었던 세월을 무사히 지내올 수 있었다는 생각

에 항상 조상들께 감사하고 섬기는 마음으로 한해 한해를 지내왔는데, 얼마 전 정부로부터 할아버지의

부모님과 조부모님의 묘를 옮기라는 통보를 받았다.

 

벌써 네 번이나 묘지를 옮겼는데 또 옮기라고 하니 할아버지는 가슴이 아팠다.

 

남들은 일생에 한번이나 있을까 하는 일이 할아버지에게는 네 번씩이나 벌어지니 부모님과 조부모님께 불효를 저지르는 것 같았다. 그래도나라에서 하는 일이라 어찌할 수 없다는 생각에 논 2필지 대금을 주고 새로 옮길 묏자리를 구했는데, 글쎄 그 자리에는 허가를 해 줄 수 없다고 한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지 할아버지는 인간으로 태어나 인륜이 천륜이라고 생각하고 자식으로서 부모님과 조부모님이 지하에서나마 편히 쉬실 수 있도록 무덤이이라도 아무 탈 없이 만들고 죽어야겠다는 생각뿐이라고 했다. 그러니 제발 자식 된 도리를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애원했다.
‘세상에 이런 일이’에나 나올 만한 일이었다.

 

처음 묘를 옮기게 된 것은 부모님과 조부모님의 묘지는 따로 떨어져 있었으나 조부모님 묏자리에 대학교가 들어오게 되어 부모님과 조부모님을 한곳에 모시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얼마 후 그 자리가 공설공원묘지자리로 확정이 돼 다시 묏자리를 옮기게 됐고, 세 번째 옮긴 곳은 고속도로 공사지에 편입돼 또다시 이장을 하게 됐다.


그런데 고속도로 공사를 하던 구간에서 백제유물이 발굴돼 설계변경을 하게 됐고, 하필이면 할아버지의 부모님과 조부모님이 계신 곳이 설계 변경된 구간에 편입되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부모님과 조부모님의 묘를 이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로써 다섯번이나 조상의 묘지를 옮기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할아버지가 이번에 마련한 묏자리는 도로에서 불과 150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라 장사葬事등에 관한 법률에 의하여 허가를 해 줄 수 없는 곳이었다. 한평생을 농사만 지으며 살아오신 할아버지는 보상받은 돈에 조금 더 보태 이번 묏자리를 마련한 것인데 이곳에 허가가 나지 않는다면 도대체 조상들의 묘를 어디에 모셔야 하느냐고 한탄했다.

 

 

군의원 설득해 군 공원묘지로 이장

정말 난감한 일이었다. 할아버지의 딱한 사정에 마음은 너무 아팠지만, 달리 어찌 도움을 드려야 할 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할아버지를 만나 뵙게 됐다.


우선 할아버지가 조상의 묘를 옮기고자 하는 곳을 직접 찾아가 보았다. 할아버지가 새로 묘를 쓰고자 하는 자리는 평지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게다가 법적인 문제로 인해 그곳에는 묘지를 쓸 수가 없는 곳이었다. 그렇다고 그 먼 곳까지 가서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무언가 다른 방법은 없을까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할아버지는 공원묘지에 묘를 쓰는 것에 대해 동의했다. 그러나 당시 군 공원묘지는 생장이 아니면 묘지를 쓸 수 없도록 조례로 정하고 있었다. 나는 할아버지가 국가 공익사업으로 인해 4번씩이나 조상의 묘를 이장하고 그때마다 눈물을 삼켜야 했을 할아버지의 심정을 헤아려 할아버지를 도울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겠냐고 담당자들을 설득했다. 이제 고속도로 공사도 묘가 있는 곳까지 진행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더 이상은 지체하고 있을 수 없었다. 군공원묘지에 할아버지의 부모님과 조부모님 묘 4기를 쓸 수 있도록 군 의원들을 설득해 줄 것을 요청한 결과, 며칠 후 마침내
군으로부터 할아버지의 부모님과 조부모님 묘를 군공원묘지에 쓸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때 느꼈던 안도의 한숨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만약 할아버지의 민원이 잘 해결되지 않았다면 할아버지의 부모님 묘가 강제수용이 되어 영영 없어져 버렸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철렁했다. 할아버지 조상의 묘가 사사로운 일로 옮겨진 것이 아니라 공공의 일로 옮겨진 것이다 보니 이 일이 해결되지 않으면 할아버지의 원망이 더 깊어질 것이었다.
우리 위원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절실히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에, 어떤 일이 있어도 할아버지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할아버지는 이제나마 마음 편히 눈을 감을 수 있게 되었다며 감사의 말을 전해 왔다. 할아버지의 부모님묘가 더 이상 이장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도대체 뭔 소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