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렴韓세상 /청렴韓세상

국민권익위원회 2009. 7. 23. 11:06

청백리 류관 선생의 얼과 살아 있는 청계천 산책

 

오늘 출발은 지하철 신설동역이다.

 

'선초삼청(鮮初三淸)'이라는 말이 있다.
'조선 초기 세명의 청백리'라는 뜻으로 황희(黃喜), 맹사성(孟思誠), 류관(柳寬) 등 세분을 일컫는 말이다.
이 가운데 황희와 맹사성은 어린이 위인전으로도 소개될 만큼 널리 알려져 있고 영당(황희)과 고택(맹사성) 등 그 유적지를 찾는 발길도 끊이질 않는다.


상대적으로 류관 선생은 앞의 두분과 마찬가지로 정승까지 지내며 청렴하게 살았음에도 이름조차 생소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류관(1346-1433) 선생은 1371년(고려 공민왕20년) 문과에 급제하여 조선의 개국원종공신에 책록되었다.
대사성, 형조전서, 대사헌 등을 지냈으나 특유의 강직한 성품으로 태종1년에는 불교를 배척하는 상소를 올리고 이어 간관을 탄핵하였다는 이유로 파직되어 유배되기도 했다.
사면 후에는 다시 예문관대제학으로 춘추관지사를 겸하여 <태조실록> 편찬과 <고려사> 개찬작업에 참여한다.
1426년 우의정으로 관직에서 물러나 황희와 더불어 세종대의 대표적인 청백리로 꼽힌다.
1433년 세상을 떠나 경기도 양평군 강하리에 부인과 합장되었다. 호는 하정(夏亭)이다.

 

그러나 황희, 맹사성만큼 잘 알려져 있지 못해도 류관 선생의 청백리 정신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살아 숨쉰다.
특히 서울 청계천 주변에 그 분을 기릴 수 있는 자리가 곳곳에 산재해 있으니 일상 속의 산책도 의미있는 길이 된다.

 

1. 하정로(夏亭路) 

지하철 2호선 신설동역에서 밖으로 나오면 용두역 방향으로 이어지는 왕복 6차선 도로를 만나게 되는데 그 도로의 이름이 바로 '하정로'다.

 

 

원래의 명칭은 신답로였지만 류관 선생이 이 지역에 살았던 것을 기려 그 호를 따서 하정로라고 이름짓게 된다.
신설동로터리에서 신답철교에 이르는 총연장 1.75km의 도로다.
신설동역이 1, 2호선의 환승역이므로 1호선 신설동역을 이용해도 쉽게 갈 수 있다.

 

 

2. 우산각 공원 

 

하정로에서 곧바로 작은 골목길로 접어들면 동대문도서관에 이르게 된다.
도서관 바로 앞에는 작은 공원이 있는데 이름하여 '우산각어린이공원'이다.

 

 '우산각(雨傘閣)'이란 류관 선생이 살았던 집의 이름이다.
본래의 우산각은 이 자리가 아니라 지금의 낙산공원 입구(종로구 창신동)에 있었는데 매우 허름한 초가집이었다고 한다.
한번은 장마를 맞아 지붕에 비가 새자 선생은 방 안에서 우산을 펼치면서 부인에게 '우산이 없는 집은 어찌 버티겠소?'라고 물었다.
이에 부인이 "우산이 없는 집엔 다른 준비가 있답니다"라고 쏘아붙이자 선생이 껄껄 웃었다 하며  <우산각>이란 명칭이 붙고 그 일대가 <우산각골>이라고 불리우게 되었다고 한다.


 

 

훗날 선생의 6대 외손인 지봉 이수광이 그 뜻을 기리기 위해 '비만 가린다'라는 뜻으로 그 자리에 '비우당(庇雨堂)'을 지었다.
비우당은 일제강점기에 모두 훼손되어 사라졌으나 1996년 복원되었다.
그리고 이곳 동대문도서관 앞 공원도 옛 마을 이름을 따 '우산각 어린이 공원'이라는 이름을 지니게 된다.

 

 

우산각 공원 바로 옆에는 서울풍물시장이 자리하고 있어 잠시 둘러보기만 해도 흥미로운 볼거리가 된다.
청계천 개발과 함께 주변 상인들이 이주한 곳인데 주말이면 공원 주변으로도 노점상이 펼쳐져 더욱 눈이 즐거운 산책길이 된다.
70년대 잡지, 화로, 등잔 같은 TV 시대극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물품들이 곳곳에 널려 있어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3. 비우당교(庇雨堂橋) 

 

우산각 공원에서 약 5분 정도 걸어 내려오면 드디어 청계천과 마주치게 된다
이곳에서 왼편을 바라보면 아치형의 다리가 보이는데 그곳이 바로 '비우당교'다.
위에서 말했듯 '비우당'은 류관 선생의 고택인 '우산각'을 칭하는 것으로 그 청빈한 삶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조성된 다리라고 한다.

 

 

비우당교를 지나 본격적인 청계천 산책이 시작된다.
늘 수많은 시민들이 산책을 하고 팔뚝만한 물고기가 노닐어 여유와 휴식이 넘치는 길이다.
원하는만큼 언제, 어디서 산책을 중단해도 상관없는 길이지만 곳곳에 산재해 있는 청백리 류관 선생의 흔적을 떠올릴 수 있다면 결코 평범한 산책길은 아닐 것이다.

꼭 멀리 있는 유적지나 박물관을 찾아나서지 않아도 옛 청백리들의 얼은 우리 곳곳에서 살아 숨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선생은 관직에 있을 당시 죄인에 가한 무리한 고문을 폐지했고, 궁정에서 잔치를 벌이고 술 마시는 것을 금했으며, 허례허식을 폐하자고 주장하였다.
당대 최고위직에 있으면서도 출퇴근시 수레나 말을 쓰지 않고 지팡이를 써 걸어다녔으며, 초가집 한칸에 베옷과 짚신으로 담박하게 살았다고 한다.
현대의 어떤 정치인보다도 인권을 소중히 여기고 백성의 눈높이에서 생각하고 행동했던 셈이었으니 오늘날에도 류관 선생의 청빈함과 애민정신은 더욱 각별하게 다가온다.

 

 

  

 

 

 

 

 

 

 

청계천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니 다음에 갈때는 두루두루 살펴볼께요.
좋은 글이네요.
항상 다니던 청계천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는지 국민권익도 몰랐답니다. ^^;
다시 한번 신명식 기자님께 감사~ ^^
하정 류관선생은 저도 처음 들어봅니다만, 청계천 여행에서 이런 청백리와 매칭이 될 수도 있군요.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좋은 글입니다. 블로그에 담아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