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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권익위원회 2011. 5. 11. 16:50

 

기업과 시장, 그리고 정의: 세 번째 이야기, 자유와 시장

 

장대철(KAIST 경영대학)


본 고에서는 지난 호에 이어서 기업과 시장에 있어서 정의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논의하기 위해서 정의의 3가지 요소(행복 극대화, 자유 존중, 미덕 추구) 중의 두 번째인 자유와 시장에 대해서 다루고자 한다.

 

기업과 시장에 있어서 자유

미국에서 상위 1%의 부자가 미국 전체의 부 중에서 1/3 정도를 소유하고 있으며 이는 하위 90%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부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그리고 상위 10%의 가정이 미국 전체 소득의 42%, 그리고 전체 부의 71%를 소유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불평등은 부당하며 부자에게 세금을 부과해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은 부자들이 강요와 사기로 돈을 번 것이 아니라 시장경제에서 자유로운 선택으로 부를 얻었다면 이러한 불평등은 전혀 부당하지 않다고 말한다. 과연 누가 옳은 것인가?

 

자유지상주의자들의 주장은 무엇인가?

자유지상주의자들은 현대 국가가 흔히 실시하는 정책과 법 가운데 다음 세 가지를 반대한다.
 
첫째, 온정주의. 자유지상주의자들은 ‘사람들을 다치지 않게 보호한다’는 법에 반대한다. 안전벨트나 오토바이 헬멧 착용을 의무화하는 법을 반대하는 것이다. 어떤 위험을 감수할지를 결정할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제3자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한, 그리고 자신이 자신의 피해에 대한 피해 비용을 부담하는 한, 국가는 개인의 신체나 목숨과 관련해 이래라 저래라 할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둘째, 도덕법. 자유지상주의자들은 법이라는 강압적인 힘을 이용해 미덕을 권장하거나 다수의 도덕적 신념을 표현하는 행위에 반대한다. 예를 들어, 매춘은 많은 사람들에게 도덕적으로 못마땅한 행위이겠지만 그렇다고 성인들의 합의로 이루어지는 매춘을 법으로 금지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사회구성원 다수가 동성애를 반대할지라도 동성애자들에게서 성 상대자를 고를 권리를 법으로 박탈하는 것은 옳지 않다.

셋째, 소득과 부의 재분배. 자유지상주의자들은 과세를 이용한 부의 재분배를 비롯해 누가 누구를 도와야 한다는 일체의 법 규정에 반대한다. 부자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할지라도, 그런 일은 개인에게 맡길 일이지 정부가 강제할 것이 아니다. 재분배를 위한 과세는 강압 행위이며 심지어는 절도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되어 로버트 노직은 자유시장에서 사람들의 선택을 존중하는 정의론을 주장하면서, 분배 정의가 구현되려면 두 가지 필수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첫 번째 조건은 돈을 벌 때 사용한 자원이 애초에 합법적인 소유물이었는가를 묻는다. 두 번째 조건은 시장에서 자유로운 교환으로 또는 다른 사람이 자발적으로 건네준 선물로 돈을 벌었는가를 묻는다.
두 질문에 모두 그렇다고 답할 수 있다면 현재의 소유물을 가질 자격이 있으며, 국가는 소유자의 동의 없이 그것을 빼앗을 수 없다. 따라서, “노동으로 얻은 수입에 세금을 부과한다면, 그것은 강제노동과 마찬가지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즉, 내가 나를 소유한다면, 나는 내 노동도 소유해야 한다. 내가 내 노동을 소유한다면 내게는 그 열매를 가질 자격이 있어야 한다. 만약 누가 열매의 일부를 가져간다면 이것은 국가가 나의 일부를 소유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소유하는가?

과세에 대한 자유지상주의자들의 주장에 대해서 반대론자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1) 첫째, 과세는 강제 노동만큼 나쁘지 않다.
(2) 둘째,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그 돈이 더욱 절실하다.
(3) 셋째, 마이클 조던이 혼자서 경기를 치를 수는 없다. 따라서 마이클 조던은 그의 성공에 기여한 사람들에게 빚을 진 셈이다.
(4) 넷째, 마이클 조던이 자신에게 부과된 세금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보기 힘들다. 그는 민주사회 시민으로서 조세법 제정에 의견을 낼 수 있으며 어쨌든 법을 따라야 한다.
(5) 다섯째, 마이클 조던은 행운아다. 조던은 공중으로 날아올라 공을 골대에 집어넣는 능력을 포상해주는 사회에 사는 행운을 누린 것이다. 따라서 그가 재능으로 벌어들인 돈을 모두 다 가질 자격이 있다고 말하긴 어렵다.

이에 대해서 자유지상주의자들은 다음과 같이 반론한다:
(1) 첫째, 도둑이 1000달러짜리 TV를 가져갈지 현금 1000달러를 가져갈지를 고민할 때 현금보다 TV를 가져가는 것이 피해자에게 더 좋다는 것은 본질을 흐리는 것으로 가져가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2) 둘째, 가난한 사람들이 돈을 절실하게 필요로 할 것 같다. 하지만 기부금을 강요할 수는 없다. 부자의 재산을 훔쳐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것은 그 주체가 로빈 후드이든 국가이든 관계없이 결국 도둑질이다.
(3) 셋째, 마이클 조던의 성공이 다른 사람에게 달려있다는 이야기는 맞지만 그 사람들도 자신의 기여에 대해서 이미 대가를 받았고 조던보다는 적었겠지만 그건 업무에 대한 보상으로 자신이 수락한 대가이기 때문에 조던의 수입에 이들의 몫이 있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다.
(4) 넷째, 자유지상주의자들은 민주적 합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만약 시민으로 산다는 이유만으로 다수에게 자유재량권을 부여하고 아무리 부당한 법이라도 준수하겠노라고 미리 동의해야 한다는 것은 개인의 권리를 원천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민주적 합의 아래 재산을 빼앗아도 좋다면, 자유도 빼앗을 수 있다는 뜻인가?
(5) 다섯째, 조던이 재능을 연마해 얻은 수익을 가질 자격이 없다면, 그 재능은 자기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조던이 재능과 기술을 소유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을 소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조던을 소유하고 있다는 말인가? 자유지상주의자들은 “시민에 대한 소유권을 정말로 정치 공동체에 넘기고 싶은가?”라고 반문한다.

“X에 대한 소유권이라는 개념의 핵심은 ( … ) X를 어떻게 처리할지 결정할 권리다.”라고 노직은 말한 것과 같이 ‘자기소유’라는 개념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개인의 권리에 탄탄한 기반을 제공하려는 사람들에게는 특히 그러하다. 그리고 이러한 개념은 궁극적으로 자신의 장기를 자발적으로 팔 권리와 안락사 및 자살 권리까지 이어지게 된다.

 

시장에서의 거래는 공정한가?

이와 같은 자기소유의 개념은 궁극적으로 시장에서의 거래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국방의 의무를 대리인을 통해서 수행하거나 대리모를 이용해서 자식을 낳는 대리인 고용 문제까지 연결된다.

자유시장 옹호는 전형적으로 두 가지 주장에 근거하게 된다.
첫째, 시장을 옹호하는 자유지상주의자들은 자발적 교환을 허용하는 것이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길이며, 자유시장에 간섭하는 법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둘째, 시장을 옹호하는 공리주의자들이 내세우는 근거로 자유시장이 전체의 행복을 증진시킨다는 것이다. 두 사람이 거래할 때 둘 다 이익을 얻기 때문에 거래가 당사자에게 모두 이익이 되고 어느 누구에게도 해를 입히지 않는 한 전체 공리는 당연히 높아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장회의론자들은 이러한 주장에 의문을 품는다.


첫째, 이들은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선택이 겉보기처럼 늘 그렇게 자유롭지는 않다고 주장한다. 즉, 대안이 제한된 상화에서는 자유시장이 그다지 자유롭지 못한데 극단적으로 노숙자는 노숙행위를 선택했지만 그것이 자유로운 선택이라도 보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노숙자가 노숙을 하는 것을 아파트에서 자는 것보다 더 좋아한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경제적 이유로 노숙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처럼, 자유의사로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라도 사실은 어쩔 수 없이 필요에 따라서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압력을 받는 상황에서의 선택이나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의 합의는 진정한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존 롤스는 이러한 관점에서 자유시장주의자들 주장에 반대한다.

둘째, 시민의 미덕과 공동선을 내세운 반박이다. 군 복무와 같은 일은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고 단순히 여러 직업의 하나가 아니라, 시민의 의무라는 것이다. 또한 특정재화나 사회적 행위는 돈으로 사고 팔 경우 타락하거나 질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기나 임신을 상품으로 취급하는 행위는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비하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인간은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이지, 사용하는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존중과 사용은 가치를 부여하는 서로 다른 방식이다. 그런데 이 둘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인가?

하나의 답은 인간은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기 때문에 존엄성을 지닌 존재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강력하게 옹호한 사람이 임마누엘 칸트이다.

 

또 다른 기준은 재화와 사회적 행위를 올바르게 평가하려면 그것이 추구하는 바를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회적 행위의 준거를 찾으려 할 때, 그 행위의 주요 목적부터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정의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 이론의 핵심이다.

 

요약하면, 군 복무와 같이 국가에 봉사하는 일은 모든 시민이 수행해야 하는 의무일까 아니면 광업이나 어업처럼 위험한 일을 하는 힘든 직업의 하나이어서 노동시장의 원리를 따라야 하는 것일까? 좀 더 포괄적으로 생각하면, 민주사회의 시민이라면 서로에게 어떤 의무를 지며, 그 의무는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자유시장에서 우리의 선택은 얼마나 자유로운가와 세상에는 시장이 존중하지 않는, 그리고 돈으로 살 수 없는 미덕과 고귀한 재화가 과연 존재할까를 알기 위해서는 롤스와 칸트,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론에 대해서 알아보아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 더욱 자세하게 논의하고자 한다.

 

기업과 시장, 그리고 정의: 두 번째 이야기, 공리주의
http://blog.daum.net/loveacrc/3463

기업과 시장, 그리고 정의: 첫번째 이야기
http://blog.daum.net/loveacrc/3082

좋은 글입니다. 사회 그리고 구성원으로서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이 도덕이냐는 것과 그 도덕이 추구하는 공감대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을 최대다수의 행복으로 연결할 수 있는 방법...어렵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