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慶州-月城)이씨

경주이씨 시조.중시조.중흥조.인물. 대중소파.세와 대.촌수.보학 등

조천록 상(上) 기문(記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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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9. 21.

● 조천록(朝天錄) 상(上)


 

명나라에 다녀올 때는 천자를 뵙고 온 기록이란 뜻으로 조천록(朝天錄)이란 이름을 많이 썼고  청으로 바뀐 뒤는 오랑캐 멸시 의식에 복수의식까지 겹쳐 연경(燕京. 북경)을 다녀온 기록이란 뜻으로 연행록(燕行錄)이라 이름했다.

  

『조천록(朝天錄)』은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 1556~1618)이 1598년 정응태(丁應泰)의 무고사건을 해결하기 위하여 파견된 진주사(進奏使)의 정사로서 북경에 다녀오면서 남긴 기록이다.

 

날짜별로 정리가 되어 있는데, 한시(漢詩)와 산문(散文)이 섞여 있다.

 

보고들은 것이 많고, 서사가 필요한 경우에는 일기의 형식으로 적었고, 감흥이 주를 이루거나 부사ㆍ서장관과 시를 주고 받은 경우에는 시로 일기를 대신했다.

 

함축적인 시어만 가지고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되면, 시 중간에 협주(夾註)로 구체적인 정황을 보였으나 다른 사행록에 비하면 정보량은 많이 부족하다.

 

일기 말미에는 들은 것을 기록한다[記聞]하며, 노정 중의 인상깊은 일화를 적어 놓았다.

 

이 『조천록』은 1629년 간행이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고, 문집인 『白沙集』에는 별집 제5~6권에 실려있다.


연행의 동기가 된 정응태의 무고는 크게 다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조선의 군신들이 명나라 장수 양호(陽鎬)와 결탁하여 천자를 기만하고 항거하려 했다.

 

둘째 왜구룰 유인하여 군사를 일으켜 중국을 범하고 요하(遼河)를 탈취하여 고구려의 옛땅을 회복하려 했다.

 

셋째 신숙주의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에는 조선과 일본의 사신들이 서로 지극히 친절하다고 적혀있다.

 

넷째 연호를 기록함에 일본의 연호는 크게 쓰고 중국의 연호는 작게 표시하여 일본을 더 높이고 있다.

 

다섯째 임금을 태조(太祖)ㆍ세조(世祖)라 하여 천자의 칭호와 같이 ‘祖’자를 사용한다는 것 등이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하여 조선은 1차로 7월 1일에 최천건(崔天健) 일행을, 2차로 8월 1일에 이원익(李元翼) 일행을, 3차로 10월 21일에 이항복(李恒福) 일행을 파견한 것이다.

 

결국 조선 정부의 지속적인 노력과 부사 이정구가 작성한 무술변무주(戊戌辨誣奏)의 논리로 해명에 성공하여, 정응태를 파면시키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 6개월여의 중국 사행기록(使行記錄)이다.

 

대부분 해월. 월사와 시문을 지으며 차운하는 것을 기록한 일기로  일기 말미에는 들은 것을 기록한다[記聞]하며, 노정 중의 인상깊은 일화를 적어 놓은 것이다.

 

[무술년 10월]

[무술년 11월]

 

12월 3일

월사공이 영설(咏雪) 시 다섯 수를 보여 주므로 여기에 차운(次韻)하여 부치다.

 

12월 6일(정사)

월사(月沙)가 강을 지나면서 읊은 운(韻)에 차하다.

 

월사가 남변(南邊)의 분명한 첩보(捷報)를 듣고 기뻐서 읊은 운에 차하다.

 

12월 7일(무오)

 

12월 8일(기미)

월사의 운에 차하다.

 

월사가 연도(沿道)에서 부쳐 준 운에 차하다.

 

12월 9일(경신)

월사가 두령(斗嶺) 위에서 새벽 서리를 읊은 운에 차하다.

 

해월(海月)이 통원보(通遠堡)에서 지은 시운에 차하다.

 

12월 10일(신유)

12월 11일(임술)

12월 12일(계해)

 

12월 13일(갑자)

월사공이 누차 시를 지어 보이면서 화답을 요구하였는데, 나는 붓을 던져 버린 지 오래인지라 그것을 흉내내기가 피곤하여 시로 거절하다.

 

요양에서 소견을 기록하여 월사와 해월 두 군자(君子)에게 보이다.

 

황 서장관(黃書狀官)이 벽간(壁間)에 있는 관동지(關東誌)를 보고 느끼어 시를 지었는데, 나는 항상 그곳에 한 번 노닐고 싶어 하면서도 노닐어 보지 못했으므로, 인하여 그 시운을 따라서 우언(寓言)으로 장구(長句)를 짓다.

 

재차 앞의 운을 사용하여 기록해서 해월에게 바치고, 겸하여 월사에게 적은 것을 보여서 함께 짓기를 요구하다.

 

12월 19일(기사)

장난삼아 해월의 운에 차하다.

 

12월 20일(경오)

해월이 납일(臘日)에 해주위(海州衛)를 지나면서 소견을 기록한 운에 차하다.

 

월사가 납일(臘日)에 바람이 거세게 불자 추위가 무서워 나가지 못하고 홀로 앉아서 읊은 운에 차하다.

 

해월이 주필산(駐蹕山)을 보고 느낌이 있어 지은 운에 차하다.

 

12월 21일(신미)

우가(牛家) 도중(途中)에 눈보라가 매우 사나웠다.

 

설중(雪中)에 수레 끄는 사람을 슬퍼하다.

 

12월 22일

해월이 천비묘(天妃廟)를 지나면서 지은 운에 차하다.

 

해월의 꿈을 기록한 운에 차하다.

 

12월 23일(계유)

해월의 고평야(高平野)의 운에 차하다.

 

길을 가다가 자못 피로와 목마름을 느꼈으나 물을 전혀 마실 수가 없었다.

 

그러자 황 서장(黃書狀)이 말하기를,

“겨울 추위가 아직 이러한데도 물을 마실 수 없으니, 만일 날이 더 다스워지면 반드시 목마름이 한층 더할 터인데, 어떻게 해갈을 한단 말인가.”

하였다.

 

이때 마상(馬上)에서 모두 중국 식품(食品)의 아름다움을 한창 논하였는데, 이 역관(李譯官)이 뒤에서 이야기를 받아서 말하기를 

“염려하지 마십시오. 손으로 동정산(洞庭山)의 황귤(黃橘)을 쪼개어 향기를 사람에게 뿜어 대고, 짙푸른 큰 화배(畫杯)에다 추로(秋露)와 같은 청주(淸酒)를 가득 따르면 어떻겠습니까?” 하니, 

황 서장이 그만두라고 손을 내저으면서 말하기를,

 

“이 첨지(李僉知)는 여러 말 하지 말라. 사람으로 하여금 실소(失笑)케 하는구나.”


하였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포복절도하고 나서 한 절구(絶句)를 읊어 월사에게 보이다.

 

12월 24일(갑술)

월사의 학야 도중(鶴野道中)의 운에 차하다.

 

월사가 꿈에 은대(銀臺)에 들어간 것을 읊은 운에 차하다.

 

12월 25일(을해)

해월이 광녕에 묵으면서 일을 기록한 운에 차하다.

 

12월 28일(무인)

 

12월 30일(경진)

해월의 제석(除夕)에 회포를 기록한 운에 차하다.

 

월사의 서악묘에서 노닐며 지은 시운에 차하다.

기해년 정월 1일(신사)

 

정월 2일(임오)

해월의 관왕묘(關王廟)의 운에 차하다.

 

해월의 서악묘(西岳廟)의 운에 차하다.

 

해월의 홍라산(紅螺山)의 운에 차하다.

 

정월 3일(계미)

정월 4일(갑신)

정월 5일(을유)

정월 6일(병술)

정월 7일(정해)

 

정월 8일(무자)

망부대(望夫臺) 정녀사(貞女祠)에서 월사의 서악묘(西嶽廟)의 운에 차하다.

 

정월 9일(기축)

망해정(望海亭)

 

정월 10일(경인)

월사가 입춘일(立春日)에 적괴(賊魁) 정성(政成)을 사로잡았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여 읊은 운에 차하다.

 

해월의 장성(長城)의 운에 차하다.

 

해월의 영춘희(迎春戲)의 운에 차하다.

 

정월 12일(임진)

정월 13일(계사)

 

정월 14일(갑오)

청절사(淸節祠)를 배알하다.

 

정월 15일(을미)

 

정월 16일(병신)

장난삼아 월사에게 주다.

 

정월 17일(정유)

정월 18일(무술)

정월 19일(기해)

정월 20일(경자)

 

정월 23일(계묘)

월사의 망해정의 운에 차하다.

 

월사의 진황도(秦皇島)의 운에 차하다.

 

월사가 정오에 진무대(眞武臺)에서 쉬면서 지은 운에 차하다.

 

월사의 영평부(永平府)의 운에 차하다.

 

월사가 오체(吳體)를 본받아 지은 만류장(萬柳莊)의 운에차 하다.

 

월사가 상원일(上元日)에 진점(榛店)에서 묵으며 지은 운에 차하다.

 

월사가 도중(途中)에 읊은 운에 차하다.

 

월사의 풍윤 관등(豊潤觀燈)의 운에 차하다.

 

월사의 계문 연수(薊門煙樹)의 운에 차하다.

 

정월 23일(계묘)

정월 26일(병오)

정월 27일(정미)

정월 29일(기유)

2월 5일(을묘)

 

2월 8일(무오)

월사의 조조(早朝)의 운에 차하다.

 

월사의 운에 차하다.

 

월사가 거울을 보고 스스로 탄식한 운에 차하다.

 

월사의 옥하(玉河)에서 밤에 읊은 시운에 차하다.

 

월사의 천단 기억(天壇寄憶)의 시운에 차하다.

 

2월 8일(무오)

2월 18일(무진)

2월 24일(갑술)

2월 25일(을해)

 

2월 28일(무인)

월사의 연관(燕館)에서 회포를 기록한 시운에 차하다.

 

하루는 월사, 해월과 함께 우연히 행록(行錄)을 펼쳐 보고 있던 차에 해월이 명령을 내려 말하기를,

 

“두 분이 서악묘(西嶽廟)의 시만 있고 동악묘(東嶽廟)의 시는 없으니, 악신(嶽神)이 앎이 있다면 어찌 한을 품지 않겠는가.

 

전운(前韻)에 따라 동악묘의 시를 지어서 서악묘의 시에 짝지우는 것이 좋겠다.”

고 하므로, 마침내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