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운함, 억울함, 복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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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2019. 9. 10.

 

자신이 누군가를 중요하게 여기는 만큼 상대가 자신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상황적 증거를 목격하는 순간 치밀어 오르는 감정이 바로 서운함이다. 그리고 그 서운함에 대한 근거가 있다는 판단이 들면 들수록 그 감정은 억울함이란 감정으로 발전해나간다.

 

그리고 이런 서운함이나 그것이 좀 더 커져서 억울함을 느낄 때, 사람들은 흔히 '상처를 입었다' 라고 생각한다. 물론 상처는 꼭 그것을 통해서만 입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많은 상처들이 서운함과 억울함을 통해 생겨나고 있다. 특히 자신이 상대를 중요하게 여기는 관계, 주로 가족이나 친구들 사이에 흔히 나타나는 상처의 원인이 바로 서운함이다.

 

서운함은 내가 너를 중요하게 여기는 만큼 네가 나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구나, 바로 이것이다.

 

그것을 파악할 수 있는 간접적인 상황적 증거는 생각보다 자주 발생하며, 우리는 그런 순간마다 그 정확한 원인은 몰라도 마음 한 구석에 뭔가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 들면서 기분이 상하게 된다. 그 순간 이미 상처를 입은 것이다.

 

자신과의 약속을 그리 중요한 이유도 아닌데 깰 때약속에 늦을 때, 밥값을 내는 것을 아까워할 때, 대충 생일 선물을 사올 때, 꼭 알려줘야 할 것 같은 자신에 대한 정보를 미리 알려주지 않아서 제 삼자를 통해 들었을 때대 놓고 우선순위에서 밀릴 때, 나를 배려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만 하려고 할 때 등이 바로 그런 상황적 증거가 나타나는 순간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들에 놓였을 때 우리는 보통 어떻게 반응하게 될까?

 

내가 상처를 입었다고 말을 할까? 아마도 만약 그런 식으로 대응했다면 많은 상처들이 그냥 그 정도 수준에서 마무리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받은 상처를 최대한 상대에게 돌려줘야 속이 풀리기 때문이다. 서운함이 억울함으로, 억울함이 복수심으로 변화된 것이다.

 

일단 복수심이 들면 이때 가장 중요한 목적은 바로 상대도 자신이 받은 상처만큼, 아니 더 이상 크게 상처를 받게 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만족감이 든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문제는 상대가 최초의 상처를 준 이유는 보통 그저 '부주의함', '무신경함' 등과 같은 성격적 이유이거나 혹은 그 순간 다른 감정에 빠져서 무의식적으로 행동하다가 보니 그렇게 된 것이란 점이다. , 상대는 일부로 상처를 준 것은 아니다. 그저 무의식적으로 준 것이다. 하지만 그에 따른 복수는 의식적이다. 그래서 훨씬 더 의도적이고 심지어 잔인할 수도 있다.

 

네가 나와의 약속을 깼으니 나도 너와의 약속을 꼭 한번 깨고 말겠어 라는 마음을 먹고 그것을 하게 되면 상대도 우리가 받은 상처와 동일한, 아니 의도적으로 이뤄졌기에 훨씬 더 큰 상처를 받게 된다. 그런데 그때 상대가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행동이 있으니 반성을 하고 그냥 넘어갈까?

 

아니다상대 역시도 우리와 똑같이 서운함 그리고 억울함을 느끼게 된다. 심지어 자신이 과거에 했던 별 것도 아닌 행동에 대한 복수심으로 그런 식의 복수를 했다는 것을 짐작하게 되면 실망감과 분노까지 느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결국 서로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결국 관계가 파탄이 나고 만다. 이것이 바로 부부와 같은 가장 신뢰가 충만해야 할 관계가 무너져서 결국 이혼을 하는 이유이며, 친구들 사이에서 절교가 일어나는 원인이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일까? 부부관계나 친구의 관계가 파탄이 나는 것은 서로에게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왜 그렇게 자신이 손해를 보는 짓을 하게 되는 것일까? 단순한 인간의 어리석음일까?

 

,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엔 좀 더 깊이 숨겨진 욕구 하나가 있다. 그리고 누구나 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 그런 행동들을 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관계에서 우위에 서고 싶다는, 상대를 아쉬워하는 사람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아쉬운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구이다.

 

관계의 우위, 이 욕구는 인간의 아주 근본적인 것 중에 하나이다. 거의 식욕과도 같은 수준의 욕구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에게 있어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는 생존 그 자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관계는 단순히 맺는 것만으로 끝이 아니다. 오히려 관계를 잘못 맺게 되면 생존에 방해만 된다. 그래서 관계를 맺을 때는 반드시 자신에게 좀 더 유리하게 맺어야 한다. 적어도 동등한 수준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관계를 맺을 때 우위에 서는 것은 너무도 중요한 조건이다. 우위에 서야 그 관계가 유리하게 유지될 수 있기에 그렇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끝없이 상대에 대한 관계적 우위에 서고 싶다는 욕구를 느낀다.

 

그런데 내가 상대를 중요하게 여기는 만큼 상대가 나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이 관계에서 자신이 밀리고 있음이 증명되는 순간이다. 그러니 상처를 받고, 그 기울어진 축을 다시 원위치로 만들고 싶다는 욕구로 인해서 상대에게 동일한 상처를 입히려고 한다.

 

, 가족이나 친구 등의 중요한 관계에서 발생되는 복수심은 관계를 최대한 자신의 쪽으로 유리하게 맺고 싶다는 욕구로 인해서 생겨나는 감정이다. 그래서 진짜 복수심이 아니고 그저 나를 좀 봐달라고 말하는 내면의 소리인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엔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상처를 입었다고 해서 상대에게 복수하면, 상대도 상처를 입고는 사과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화를 내기 시작한다이미 설명했듯이 무신경하거나 그때 어딘가 다른 감정에 사로잡혀서 그 순간 그런 실수를 한 것인데, 상대가 동일한 상처를 되돌려주게 되면 뜬금없이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 들게 들기에 당연히 그렇게 행동한다.

 

다른 해결방법이 없을까? 이렇게 되면 부부관계나 친구관계가 남아날 수가 없다. 그래서 다른 지혜가 필요하다. 그리고 대안이 있다. 아니, 대안의 수준이 아니라 제대로 된 해결책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입은 상처에 대해서 정확히 상대에게 설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내용은 네가 왜 나에게 상처를 줬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다는, 따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어떤 상처를 입고 있는지를 상대방에게 이해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나에게 왜 상처를 줬는지에 대해서 따지는 순간 상대는 방어적으로 나오게 된다. 그리고 계속 핑계만 대려고 할 것이다. 이것은 대화가 아니다. 그런데 그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 그렇다. 누군가 자기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 따지면 일단 무의식적으로라도 방어부터 하게 되는 것이 사람의 본성이다. 그리고 상대방이 따지는 것 중에서 틈이 있으면 또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서 어떻게든 반론을 하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의 과거 모습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 내야 한다.

 

"너는 예전에 안 그랬니?" 이렇게 10년 전, 20년 전 얘기가 흘러 나온다.

 

이것은 대화가 아니다. 대놓고 싸우자는 것이다. 이런 상황으로 흘러가지 않으려면 나를 상처입힌 상대방을 질책하는 것이 아니라 내 상처와 내 감정에 대해서 말해야 한다. 그러면 상대방은 비록 자신의 의도가 아니었을지라도, 내가 상처를 입은 것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공감을 할 것이다. 그리고 결국 미안하다고 할 것이다. 만약 이렇게 했는데도 상대가 미안하다고 하지 않는다면 당신, 그 사람과 관계를 끊어야 한다. 처음부터 사람 잘못 골랐다.

 

물론 그렇게 잘 넘겨도 그런 상황은 충분히 재발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상대가 의도적으로 그것을 하지 않았음에 대한 것 정도는 알기에 두 사람 사이의 시간이 쌓일수록 조금씩 덜 서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런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게 될 수 있는 날도 올 수 있다. 그것은 틀린 것이 아니라 나와는 다른 것이기에 그렇다. 상대는 처음부터 그렇게 태어나고 자란 사람인 것뿐이다.


이것만 해낼 수 있다면 부부간의 관계이든 친구와의 관계이든 절대로 나빠질 이유가 없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서로에 대한 이해가 쌓이면서 점점 더 깊은 이해와 공감이 일어날 수 있다. 단 한 사람이라고 해도, 이 세상에 그런 관계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삶은 수십 배 풍요로워질 수 있다.

 

여기까지도 매우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최종 해결책은 아니다. 이보다도 한 단계 더 좋은 방법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 해결책이다. 그래서 이 방법은 지혜를 넘어서 진리에 가깝게 된다.

 

상처에 관한 유일한 진실은 모든 상처는 내가 입은 것이란 점이다. 칼이 나를 찔러도 내가 약해서 찔린 것이란 뜻이다. 그러니 비록 상처의 원인이 칼이라고 해도 결국 상처를 입은 것은 모두 내 탓이다.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어떤 종류의 상처를 입는 순간에서도 서운함이 생겨나지는 않는다. 잠시 기분이 나쁠 수는 있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그리고 그 후 그 어떤 억울함도 복수심도 생겨나지 않는다.

 

물론 이런 단계까지 성장하는 것은 몹시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상처를 입을 때마다 언제가 그 상처를 준 대상에 대해 책임을 미루려는 태도 자체를 버리려고 하는 노력을 하는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지금 당장은 너무도 먼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쌓이면 쌓일수록 그 근처까지는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그 방향을 알고 가는 것과 전혀 모르고 가는 것은 삶 자체가 달라질 수 있는 문제이다.

 

우린 언제 어디에서든 상처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스스로를 완성시키지 않는 한 영원히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그런데 상처는 단단할수록 더 잘 입게 된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진짜로 상처를 입지 않고 싶다면 물과 같은 액체가 되어야 한다. 얼음은 깨지지만 물은 결코 칼로 벨 수 없다.

 

삶은 많은 것을 채워서 단단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것을 버림으로써 최대한 부드러운 존재로 변해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것만이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