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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ercola 2022. 5. 11. 20:10

역사와 전통이 오래되고 세계사에서 교육되는 대학들의 경우, 세계적인 합의나, 여러 국가의 공식적인 회담으로, 그 역사와 전통을 공식적으로 부정하기 전에는, 그 기득권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을 역사교육에서 경험해오고 있습니다.

 

 

[1]. 1988년, 900주년의 볼로냐대학:세계 대학의 경축 사절들로부터 대학들의 ‘모교’라는

독보적이고 자랑스러운 지위를 재확인받았다.

 

1988년 개교 900주년을 맞이하는 볼로냐대학은 세계 대학의 경축 사절들로부터 대학들의 ‘모교’라는 독보적이고 자랑스러운 지위를 재확인받았다. 오늘날 볼로냐대학은 학부 11개, 학과 33개, 그리고 8만 명이 넘는 재학생을 자랑하는 매머드 대학이다. 이런 외형적 규모 외에 ‘모교’의 전통이 ‘매머드한’정신적 유산으로 남아 있고, 이것이 볼로냐대학의 확고한 정체성을 형성한다. (50쪽)

 

. 출처: 유럽을 만든 대학들. 볼로냐 대학부터 유럽대학원대학까지, 명문대학으로 읽는 유럽 지성사/통합 유럽 연구회 지음/책과 함께/2015년 05월 15일 출간.

 

2. ...19세기에는 잠시 쇠퇴기를 거쳤으나, 1988년에는 전 세계의 학계 대표자가 볼로냐 대학이 지닌 모든 대학의 모태라는 영광스런 지위를 경축했다.

 

 

볼로냐의 법률 학교에서 유럽 최초의 대학이 성장한다.

1088년은 볼로냐 대학이 교회의 관리에서 독립된 기관으로 태어난 해로 널리 간주된다. 볼로냐 대학은 세계 최초의 대학 중 하나이며, 서유럽에서는 가장 오래된 대학이다.

볼로냐 대학에서 기록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학자는 이르네리우스로, 1084년에서 1088년 사이의 한때에 법학부를 창설했다. 이르네리우스는 이 학교에서 수업을 했으며 『로마 법 대전( )』의 전문가가 되었다. 이 법전은 비잔틴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529년에서 534년에 걸쳐 집필하게 했으며, 최근 11세기에 들어 재발견되었던 것이다. 이르네리우스의 최고 업적은 유스티니아누스의 법전에 대한 주석서 『숨마 코디키스』를 저술한 것으로, 이는 유럽 사회의 문화적 발전에 있어 중요한 단계였으며,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성문법 체제의 초석이 되었다.

볼로냐 대학은 과학과 인문학 분야에서 탁월함의 중심지라는 명성을 얻었다. 로마법을 편찬하고 그 권위를 신성 로마 황제의 권위와 연계시킨 업적을 기려, '붉은 수염왕' 프리드리히 1세 황제는 1158년 볼로냐 대학에 특권을 부여했다. 외부 압력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학문과 연구의 전당으로서의 지위를 인정해 준 것이다. 볼로냐 대학은 당시로서는 특별할 정도로 개화된 편이었다. 11세기 후반에는 베티시아 고차디니라는 한 여성이 수업을 들었다는 얘기가 있다. 소문에 따르면 그녀는 교편을 잡고 수많은 대중 앞에서 강의를 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19세기에는 잠시 쇠퇴기를 거쳤으나, 1988년에는 전 세계의 학계 대표자가 볼로냐 대학이 지닌 모든 대학의 모태라는 영광스런 지위를 경축했다.

"모든 대학은… 학생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유럽 대학 대헌장, 1988년

 

.출처: 볼로냐가 학생 도시가 되다(죽기 전에 꼭 알아야 할 세계 역사 1001 Days, 2009. 8. 20., 마로니에북스)

 

. 필자의견: 역사와 전통이 오래되고 세계사에서 교육되는 대학들의 경우, 세계적인 합의나, 여러 국가의 공식적인 회담으로, 그 역사와 전통을 공식적으로 부정하기 전에는, 그 기득권이 그대로 유지되는 경우가 볼로냐 대학의 사례입니다.

중국의 경우 공산화에 이어, 문화대혁명으로, 공자님을 봉건왕조들의 잔재로 격하한적도 있었지만, 문화대혁명이 실패로 끝나고 모택동 주석도 이 부분에서 비판을 받았습니다. 세계사에서 교육되는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의 수천년 역사와 전통,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인 한나라 태학(이후의 국자감, 원.명.청의 국자감에서 이어진 경사대학

당과 베이징대의 자격)의 자격과 역사교육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대중언론에서도 대학역사를 언급할 때 태학.국자감(베이징대), 볼로냐.파리대학은 반드시 언급해야 할 대학들.

http://blog.daum.net/macmaca/2099

 

[2]. 2차대전이후, 군사와 영토이외, 서유럽의 세계사적 전통들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대한 처분이 내려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1]. 2차대전후, 이탈리아, 독일 일본등이 패전국이 되었는데, 승전국인 연합국의 경우, 신대륙 이민자들의 나라인 미국의 군사력과 영국의 군사력이 중심이 되어, 중국과 카이로선언.포츠담선언을 발표하고, 독일점령상태의 프랑스를 해방시키고, 이후에 구소련이 연합국에 합류하여, 연합국이 승전국이 되어, UN에서는 중국(1970년대이후 중화인민공화국이 자유중국 장개석 총통의 지위를 대체하여 UN의 유일한 대표가 중국이 됨), 프랑스, 구 소련(러시아로 이어짐), 영국, 미국(UN표기순서임)이 UN안보리 5대 상임이사국이 되었습니다. 물론 UN에서는 이탈리아, 독일, 일본의 패전국이 UN적국으로 되고, 일본은 군대를 못가지고 전쟁도 못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근대세계의 지배세력이던 서유럽의 지배력이 약화되었지만, 패전국들은 핵무기등을 개발하지 못하고, 독자적인 강한 군대를 못가지고, 미국이 독일, 이탈리아, 일본에 주둔하면서 미국주도의 NATO, 미일 안보조약으로 미국의 군사력이 서방세계의 중심이 되는 형식으로 세계질서가 재편되었지만, 세계사의 오랜 역사와 자격들은 그대로 유지하는 방식(패전국에 관대한 처분으로 이해할 수 있음)으로, 오랜 역사의 종교, 대학역사등은 세계사에 그대로 기득권을 유지해오고 있습니다. 서유럽의 가톨릭(교황중심), 볼로냐.파리대학의 자격등이 대표적입니다. 동아시아의 경우, 중국의 공산화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때 동아시아에 성립된 세계종교 유교(서유럽은 가톨릭), 한나라 태학(이후의 국자감, 원.명청의 국자감은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로 이어짐)등의 오래된 세계사 자격도 그대로 이어지며 교육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2차대전의 승전국인 영국의 왕은 독일 하노버 왕가 출신이고, 미국의 경우 독일 이민자의 후손이 가장 많은 인구분포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탈리아 계도 적지 않습니다. 이런 영국 역사와 미국 이민역사때문에, 이탈리아와 독일에 관대한 처분을 시행한 것으로 필자는 판단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군대를 못가지고 전쟁도 못하게 하고, 한국에 주권이 없도록 조치하고, 대만을 중국에 반환하고, 쿠릴 열도를 구 소련에 할양하는 사후처리 과정을 가졌습니다. 

 

1. 영국의 왕은 역사적 과정에 의해 독일 하노버 왕가의 후손이 계승하고 있습니다.

 

가. 하노버왕가

 

하노버왕가

[ House of Hanover ]

요약 영국의 왕가(1714∼1901).

1701년의 왕위계승법에 의하여 앤 여왕이 죽은 뒤, 독일의 하노버가()에서 영입한 조지 1세에서 시작된다. 동왕()과 조지 2세는 독일 출생으로, 영국의 정치에는 관심이 적어 의회정치 및 책임내각제의 발달을 촉진하였다. 다음의 조지 3세는 왕권의 회복을 도모하여 의회를 조종하였으나, 결국 미국독립의 실태()를 초래하였다. 그 뒤 조지 4세, 윌리엄 4세를 거쳐 빅토리아여왕이 즉위하여, 64년의 치세 중에 영국의 최번영기를 맞이하였다. 다음 에드워드 7세의 즉위와 함께 색스 코버그 고타왕조라 개칭하였으나, 그것은 독일계의 명칭이었기 때문에 제1차 세계대전으로 독일이 적국이 됨에 따라 조지 5세 시대인 1917년 윈저왕조로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0년 가까운 치세기간 중에 왕권은 국정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관행()이 점차 강하여져서 ‘국왕은 군림하나 통치는 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확립되었다.

. 출처: 하노버왕가[House of Hanover]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나. 영국의 하노버왕가와 대영제국의 탄생

 

권리장전에 의해 계승자로 정해졌던 앤 여왕이 1714년 사망하고, 제임스 1세의 증손자인 조지 1세가 영국의 왕으로 즉위하였고, 이때부터 하노버 왕조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독일계 신교도였던 조지 1세는 정부 및 신하들과의 의사소통에 능하지 못했고, 그의 즉위 중 대부분을 독일에서 보내고 행정은 로버트 월폴(Robert Walpole)를 총리로 선임하여 권한을 위임하였다.

조지 3세(George III, 1738-1820)는 영국에서 태어난 최초의 하노버 왕이었고, 그는 1756년부터 1763년 벌어진 7년전쟁 기간 중 왕위에 올랐다. 7년 전쟁은 슐레지엔 영유를 둘러싸고, 영국ㆍ프랑스ㆍ프로이센ㆍ오스트리아ㆍ러시아,ㆍ스페인ㆍ포르투갈 등이 참여한 대규모 전쟁으로, 유럽 뿐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 인도, 아프리카의 식민지에서도 전투가 발생하였다. 영국ㆍ프랑스 양국의 오랜 싸움의 일환이기도 했던 7년 전쟁을 끝으로, 영국은 대식민제국으로서의 지위를 확립하였다. 1763년 파리조약을 통해 북아메리카 13개의  식민지와 인도에서의 독점적 지위를 가지게 되었다. 이후 1776년  미국독립혁명이 발발하였고, 프랑스의 미국에 대한 군사적·재정적 지원으로, 미국은 1782년 영국의 식민지로부터 독립하여 독립 국가가 되었다.

1797년부터 1815년까지 벌어진 나폴레옹 전쟁에서 영국은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러시아, 네덜란드, 포르투갈 등과 동맹을 맺고 프랑스에 대항하였다. 1803년 프랑스는 영국 본토를 침공하려는 계획을 수립했지만 해군의 열세로 인해 실패하였고, 1805년 호레이쇼 넬슨(Horatio Nelson) 제독의 함대가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프랑스-스페인 연합군을 격파하면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영국은 나폴레옹 전쟁의 승자가 되었지만, 전쟁 기간 동안 약 약 22억 달러의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 나폴레옹 전쟁 기간 중 내부적으로 영국은 1800년 제정된 연합법(Union Act with Ireland)을 통해 영국과 아일랜드 왕국을 합병하였다.

1837년 국왕 윌리엄 4세가 사망하자 당시 18세의 조카 빅토리아 여왕(Queen Victoria, 1819~1901)이 즉위하였다. 당시 영국은 대영제국이라 불리며 전 세계에 식민지를 경영하던 시기로, 이 시기는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Era)‘라고도 불린다. 빅토리아 시대 동안 영국은 1765년  제이스 와트의 증기기관 발명 이후 석탄·철강·방직 등을 중심으로 대량 생산이 가능하게 되면서 1830년까지 산업혁명의 중심지가 되었다. 산업혁명과 식민지 경영을 통한 경제적 이익을 통해 영국은 세계 최강대국으로 자리 잡았다. 한편, 정치적으로 영국은 1832년 선거법의 개정으로 투표권을 중산층에게까지 확대하였으나 노동자들은 여전히 투표권을 가지지 못했다. 이에 반발한 노동자 계급을 중심으로 1830년대 후반부터 1850년대 초까지 투표권 획득과 사회적 개혁을 촉구하는 차티스트운동이 발생하였다.

. 출처: 영국의 하노버 왕가와 대영제국의 탄생(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다. 독일 하노버왕가는 1917년에 윈저왕가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윈저왕가

 

[ House of Windsor ]

요약 영국의 왕가(1901∼).

1901년  하노버왕가의 여왕 빅토리아가 죽자 작센-코부르크-고타 가문에서 왕위를 이었으며, 1917년에 윈저왕가로 이름을 바꾸었다. 작센-코부르크-고타는 빅토리아의 남편 앨버트 공(1819∼1861)의 성이다.

에드워드 7세(재위 1901∼10), 조지 5세(재위 1910∼1936), 엘리자베스 2세(재위 1952∼) 등이 배출되었다.

. .출처: 윈저왕가[House of Windsor]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2. 미국 인구분포, 독일계가 1위

 

2020/06/22, LA중앙일보 봉화식 기자 보도뉴스. 

 

USA 인구 분포, 인종별로 독일계가 1위

트럼프 대통령 포함 14.7%…5000만명 육박

 

인종별 미국 인구 분포

 



미국은 17세기 초반 종교의 자유를 위해 영국에서 온 청교도들이 정착해 세운 나라다. 그렇지만 일반의 인식과는 달리 21세기 센서스에서는 독일계 혈통이 압도적 1위로 나타났다. <표>

가장 잘 알려진 독일계 미국인은 11월 재선을 노리는 도널드 트럼프(74) 현직 대통령이다. 그의 성은 원래 ‘드룸프’지만 발음하기 쉬운 미국식 발음 ‘트럼프’로 고쳤다.

네덜란드계에 이어 평균 신장이 가장 크다는 아리안의 피가 섞인 그는 키가 6피트 3인치(약 191cm)에 체격도 상당히 크다. 모친은 스코틀랜드계이며 세번째로 결혼한 수퍼모델 출신의 퍼스트레이디 멜라니아는 슬로베니아(옛 유고연방) 사람이다.

 

2018년 기준 3억2000만 미국 인구 가운데 독일계는 전체의 14.7%인 4700만명을 차지했다. 독일을 제외한 지구촌 게르만족의 3분의 1이 북미지역에 사는 셈이다.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오는 독일인과 저먼타운이 급증하자 의회는 1795년 공문서에 독일어를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다. 현재 서부지역을 중심으로 가정통신문과 공문서에 스페인어가 함께 인쇄되는 것과 상황이 비슷했던 셈이다.

한때 미국의 공식언어를 독일어로 바꿀지 여부를 의회가 투표에 부쳤다는 말도 퍼졌지만 루머로 판명됐다. 다만 독일계 주민들의 파워와 언어가 영향력이 컸다는 점은 분명하다.

2차대전 때 연합군 총사령관은 독일계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였다. 노르만디 상륙작전 성공으로 아돌프 히틀러의 독일군을 섬멸한 ‘아이크’는 미국의 대통령까지 올랐다. 기묘한 인연으로 회자된다.

2위는 13%인 아프리카계 흑인으로 4160만명으로 추정됐다. 흑인은 국가가 아닌, 아프리카 대륙 전체를 기준으로 한 숫자다. 3위는 멕시칸계(11%·3520만명)으로 나타났다. 150년 전까지 서부지역이 멕시코 영토였던 점을 감안해도 결코 적지 않은 숫자다.

멕시코계 미국 시민권자는 ‘치카노’라는 고유명사로 구분되며, 전체 히스패닉(라틴계)은 18%인 6000만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보인다. 멕시코계 불법체류자는 400만명이며 전체 라틴계 가운데 푸에르토리코 출신만 500만명이 넘는다.

4위는 존 F 케네디·로널드 레이건·빌 클린턴 등 대통령을 다수 배출한 아일랜드계로 10.6%(3390만명)에 달했다. 한때 같은 영연방이었던 5위 앵글로-색슨(7.8%·2490만명)과 합치면 독일계보다도 많다. 그렇지만 아일랜드 공화국이 독립 이후 별도 국가로 세분화해 집계하고 있다.

그냥 ‘미국인’으로 신고된 혼혈은 2300만명이며 이어 이탈리아·폴란드·스코틀랜드계가 뒤를 이었다.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이민 역사가 가장 오래된 중국이 385만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한인 시민권자는 전체의 0.5%가량인 160만명(불법체류자 제외)으로 드러났다.

또 주목할만한 현상은 라틴계의 급상승이다. 20년 전만 해도 흑인과 비율이 같았지만 현재 5%P 차이로 앞섰으며 그 격차도 점점 벌어지고 있다. 범 히스패닉계 전체를 합칠 경우 이미 백인을 빼고 1위 인종으로 떠올랐다.

반면 아시아계는 한국·중국·일본·필리핀·베트남 등을 모두 합쳐도 아직 전체의 6% 미만이다.

 

[3]. 2차대전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일본의 항복에 얽힌 관계. 

 

1]. 일본 항복때, 한국과 관련하여, 중요한 점은 카이로 선언이후 프랑스.구소련(러시아).폴란드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승인하여, 대일선전포고한 국제법상의 해당자격은 그대로 유지되는 점입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통성은, 1988년에 시행된 현행헌법에 반영되어 대일선전포고나, 강제불법의 을사조약.한일병합이 무효라는 임시정부 선언이 국내법의 헌법으로 작용하는 점입니다. 일본은 2차대전 항복으로,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이 반영되어, 해방당시부터, 대학(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등 각종 일본 강점기 잔재들인 초급대 출신 대학, 중.고등학교(일제 강점기에 세워진 전국 각지의 공립학교들), 종교{일본 신도(일본 불교의 한 형태), 불교, 기독교(일본의 소수종교로 일제 강점기 한국에 강제 포교됨)}등 전방위적으로 심어진 일제잔재의 모든 주권은 한국영토에 없었습니다. 

 

2]. Royal성균관대는 太學등의 별칭있고,왕립대학이며, 대한제국의 皇대학 전통과 자격을 가지고 있음. 해방후의 주권없는 일제잔재 중심 비신분제 국립대학과는 성격도 다름.

카이로선언이후 프랑스.소련.폴란드등이 승인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제법.국내법적 위상을 상기하고, 패전국 일본잔재로 한국영토에 주권이 없어온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패전국 일본잔재로 적산재산 형태)를 국립대로 강행할때, 전국적인 반대와 서울대생들의 등록거부.자퇴등이 있었던 상황도 인식해야합니다.

국제법상 일본이 항복후,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에 따라, 한국영토에서 일본의 모든 주권은 없어왔음.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이 없어왔음. 현행헌법 임시정부 구절(한일병합 무효, 을사조약등 불평등 조약 무효, 대일선전포고)에도 맞지 않는게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임.해방후 미군정부터 국사 성균관(성균관대)교육을 시켜온 나라 대한민국임.

국사 성균관(성균관대)나라.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 승계 성균관대는 국내외에서 6백년 넘는 역사를 행정법.국제관습법으로 인정받고 있음.Royal성균관대.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 서강대는 국제관습법상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패전국 일본 잔재이자, 불교 Monkey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 없어왔음

*성균관대로 정통을 승계하기로 하자, 미군정이 향교재단의 재산으로 성균관대 재정에 기여토록 하는 법을 추가로 만들어 주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때 대통령령으로 시작된 한국민족문화대백과발행으로 행정법상 조선 성균관 승계를 추가로 법제화. 성대 6백주년 행사때는 대통령.국무총리.교육부 장관 참석하였습니다.

.*성균관대,개교 6백주년 맞아 개최한 학술회의. 볼로냐대(이탈리아), 파리 1대(프랑스), 옥스포드대(영국), 하이델베르크대(교황윤허,독일),야기엘로니안대(폴란드) 총장등 참석.

http://blog.daum.net/macmaca/1467

 

@한국 유교 최고 제사장은 고종황제 후손인 황사손(이 원)임. 불교 Monkey 일본 항복후, 현재는 5,000만 유교도의 여러 단체가 있는데 최고 교육기구는 성균관대이며,문중별 종친회가 있고, 성균관도 석전대제로 유교의 부분집합중 하나임.

 

[4]. 일본강점기때 폐지.왜곡된 성균관. 해방후에 설립(재건승계)된 성균관대학교가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성균관을 승계하였다는 정부출연 연구기관.백과사전.성균관대 학교당국의 현대 한국사적 입장에 대한 학술적 고찰. 그리고 한국사의 성균관대(성균관에서 이어짐)와 세계사를 연계하여 해방이후 합법적으로 설립된 敎皇聖下 윤허대학인 예수회의 서강대와의 Royal.Imperial 특성의 공통점 고찰.

http://blog.daum.net/macmaca/733

 

1]. 필자는 세계인에 보편적인 교과서(세계사,한국사), 국내법.국제법, 백과사전 및 역사와 전통 중심으로 대학을 판단하고 있습니다.

2차대전이후, 대중언론을 바탕으로 한 여러가지 신문들의 평가도 세계인들에게 광범위하고 신속하게 인지되는 현대입니다.

그런데, 국사 성균관(성균관대), 한나라 태학.이후의 국자감(베이징대로 승계), 볼로냐.파리대학의 교과서 자격은 변하지 않더군요. 세계종교 유교와 로마 가톨릭도 그렇습니다.교황성하의 신성성도 변하지 않더군요. 과거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교과서 교육은 거의 변할 사유가 없을것입니다. 한국에서는 Royal성균관대(한국 최고대), Royal 서강대(세계사의 교황 윤허반영, 국제관습법상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학부 나오면 취업률과 유지취업률이 가장 좋은 자료에 주안점을 두고 있습니다(대학원에 가서 신학.법학.의학, 문사철 및 경제.경영,기초과학.공학등을 전문 연구하는 Royal성균관대.Royal서강대 출신들이 일정인원이상 배출되는게 바람직합니다). 베이징대, 볼로냐.파리대같은 세계사 교과서 자격을 승계하였거나, 동일대학名가진 대학들 말고, 영국 옥스포드, 독일 하이델베르크(교황윤허),스페인 살라망카,포르투갈 코임브라,오스트리아 빈대학처럼 역사와 전통이 있는 대학들과, 2차대전후의 강대국중 하나인 미국 하버드의 역사는 앞으로도 유지될것입니다.

1. 2차대전 결과와 상관없이,세계사와 한국사를 바꾸지 못하면, 교과서(백과사전,학습서), 학술서적상의 기득권 대학 학벌들은 바뀌지 않습니다.

http://blog.daum.net/macmaca/1812

 

2]. 해방이후,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성균관을 승계하여 국사 성균관 자격을 가져온 성균관대를 상대로 주권.자격.학벌없는 서울대뒤로 형성된 수많은 대학들이 대중언론에서 어떻게 나타나도, 국사 성균관(성균관대)자격과 역사.전통을 극복해오지 못함.

3]. Royal성균관대(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교육기관 성균관승계,한국 最古.最高대).Royal서강대(세계사반영,교황윤허,성대다음예우)는 일류,명문.주권,자격,학벌없이 대중언론항거해온 패전국奴隸.賤民불교Monkey서울대.주권,자격,학벌없는 서울대.추종세력 지속청산!

http://blog.daum.net/macmaca/2967

 

 

[5]. 구한말 의병과 고종의 밀칙받은 유림들의 항거로 임시정부가 수립된것임.

고종밀명받은 유림들.대한독립의군부조직,대규모 독립운동획책,발각.

고종의 승하때문에도 일어난 3.1운동임. 그리고 3.1운동이후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한민국임시헌장에서도 "대한민국은 구황실을 우대함"이라는 조항을 넣었습니다. 이를 볼때, 을사조약이후의 의병활동, 고종의 을사조약 무효론에 입각한 외교활동, 고종의 밀명받은 대한독립의군부 조직에 의한 여러 독립운동 단체의 파생, 고종의 승하때문에 일어난 3.1운동등은 불법.강제의 을사조약과 한일병합을 거치며, 국권을 수호하겠다는 한국인들의 폭 넓은 지지속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는 연속적인 결과를 낳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근대와 현대에는 고종의 을사조약무효(따라서 불법.강제의 한일병합도 무효), 대한민국 임시정부(대일선전포고, 한일병합.을사조약 무효), 해방후 미군정법령에 따른 성균관 재건, 조선성명 복구령에 따라 전국민이 유교국 조선의 한문성명.본관 의무등록으로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 복구,국사 성균관(성균관대로 정통승계, 현재 6백년 넘는 역사와 전통을 국내외에서 인정받고 있음)교육을 정신적 구심점으로 삼아야 할것입니다.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승계대학인 성균관대입니다. 중국의 문화대혁명으로 세계종교 유교가 위기에 있지만, 유교의 세계종교 자격이 있는 세계사를 반영해야 하기때문에 교황윤허로 설립이 기획된 예수회(귀족출신 이나시오 사제가 설립한 예수회는 교황청의 실세로 세계적으로 교황윤허대학은 별로 없음)의 서강대는 국제관습법상 국사 성균관 자격가진 성균관대[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다음의 Royal대로 성균관대 출신인 필자(윤진한, 문필가.유학자.사상가)의 사상이며, 유교와 세계종교 가톨릭의 역사적 자격을 바탕으로 공존하고자 합니다. 세계사의 오랜전통의 대학들인 중국 태학(세계 최초의 대학).국자감(원.명.청의 국자감은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로 승계됨), 그리고 서양 최초의 대학인 볼로냐.파리대학의 세계사 자격은 베이징대와 성균관대에 아주 중요합니다. 세계사의 중국 황하문명, 세계종교 유교, 세계 4대 발명품으로 교육되는 중국의 종이.화약.나침판,인쇄술도 중요합니다. 학교교육 전분야에 걸쳐 근대세계의 지배세력이던 서유럽 학자들의 이론으로 이루어진 학교교육(신학.법학.의학및 역사.철학과 고교때의 수학, 세계사, 사회문화, 국토지리.세계지리, 물리.화학.생물.지구과학, 음악.미술등)은 유교경전이나 가톨릭 경전과 함께 세계인의 만국공통어입니다. 성균관대는 일본이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을 받아들여 항복한 후, 미군정당시 성균관을 복구시키기로 법을 발효하여, 임시정부 요인들(고문:이승만.김구선생, 위원장:김창숙 선생)과 남북유림들이 모여 성균관에 대자를 더 붙여 성균관대를 설립(복구설립형식임)키로 결의하여, 성균관장이 성균관대신 성균관대를 미군정에 등록하여 국사로 가르치는성균관의 유일무이 최고대학자격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성균관대로 정통을 승계하기로 하자, 미군정이 향교재단의 재산으로 성균관대 재정에 기여토록 하는 법을 추가로 만들어 주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때 대통령령으로 시작된 한국민족문화대백과발행으로 행정법상 조선 성균관 승계를 추가로 법제화한것. 성대 6백주년 행사때는 대통령.국무총리.교육부 장관 참석하였습니다.

http://blog.daum.net/macmaca/3242

 

[6]. 필자는 국사와 세계사, 헌법.국제법 중심이라, 대중언론이나 입시지의견은 반영치 않습니다.국사,세계사 기준이 옳음. 법이나 교과서자격이 없으면, 입시점수!. 왜구잔재대학은 주권.자격.학벌이 없음.Royal성균관대(국사 성균관 자격, 한국최고대)와 서강대(세계사의 교황반영, 국제관습법상 성대다음 Royal대 예우)는일류,명문끝. 法(헌법,국제관습법).교과서(국사,세계사)>>>주권.자격.학벌없는 왜구잔재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의 입시점수는 참고사항.​http://blog.daum.net/macmaca/3252

학벌과 달리, 조선성명 복구령으로, 유교국가 조선의 한문성명.본관을 의무등록하는 행정법.관습법상 유교도인 5,000만 한국인 모두. 그리고 그 다음은 한국에 주권없는, 성씨없는 점쇠賤民일본 천황. 그 뒤에 경성제대 후신 왜구 서울대(점쇠 賤民이자,불교국가 일본에서, 하급군인들이 새롭게 옹립한 불교 Monkey 일본 천황이 세운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마당쇠賤民.부처 Monkey처​럼 창조신을 부정하고, 하느님보다 높다는 불교계 일본 신도를 바탕으로 천황제 유지). @서울대이기고 점쇠賤民일본천황뒤 서울대 마당쇠賤民자리 차지하려면,서울대를 대체하였다는 50년정도의 대중언론 기사장악과, 입시지 위치확보要. 그러면, 주권.자격.학벌없이 새로운 마당쇠.개똥이 賤民대학이 되어, 대중언론이나 입시지에서 Royal성균관대나 Royal 서강대(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로 설립이 기획되어 세워진 귀족사제 이나시오의 예수회 계통 대학.국제관습법상 성대다음 Royal대 예우)에 접근하는 현상을 겪게 될것. 생각이나 말로는 가능하지만, 대중언론.입시지 항거자격도 어려움. 그러나, 현행 헌법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정통성이 반영되었기 때문에, 임시정부 요인들이 개인적으로 설립한 대학들이, 말로 하면서 주권.학벌없는 일제 잔재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나 그 추종세력을 부정하는것은 필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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