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寶梅(봄에...) 2016. 2. 16. 16:45

참으로 오랫만에 시댁이었던 왜관에 내려갔던 길이라 ,

남편의 절친들 부부동반 모임을 겸했던 터여서  밤 9시가 다 되어 출발을 하게 되었다.


낮에 지나다니면서 보던 왜관 철교를 밤에 직접보려고 잠시 둘러 보았다.


호국의 다리. 
왜관교(도로), 
왜관철교(경부선 복선), 
경부고속철도 왜관철교등 4개의 다리가 근접해 있는 곳...

규모를 떠나 역사적으로 가장 임팩트 있는 교량이 모인 곳이 이곳 왜관읍 낙동강 교량들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칠곡, 왜관 철교 [등록 문화재 406호로 지정]

 

이 다리는

일제가 1905년 군용 단선 철도로 개통한 경부선 철도교로,

1941년 11월 30일 이곳에서 북쪽 100미터 지점에 510미터의 복선 철교가 가설되면서 경부선 도로로 사용되어왔다.


이 철교는 한국전쟁 당시 [1950~53년] 북한군과 유엔군의 주력부대 사이에 격전이 전개된 중심지역에 있었다.

 

남하하는 북한군을 저지하기위해 미군 제 1기병 사단이 경간 한개를 폭파하였는데[50년 8월 3일 오후8시 0분]

이로써 북한군의 추격을 따돌리고 낙동강 전투에서 승리하게 되면서 북진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 철교는 한국전쟁 격전장의 중요한 상징물로서 역사적 가치가 높아 '호국의 다리'로 불린다.

 

건설된지 100년 이상 된 트러스교로 교각은 I형 콘크리트에 화강암을 감아 의장이 화려하다.


또한

아치형 장식과 적벽돌로 마감하는등 근대 철도교에서 보기 드물게 장식성이 화려하고 보존상태가 양호하여 교량사와 철도사적인 가치도 지니고 있어 2008년 10월 1일에 등록 문화재로 지정하였다.


1953년휴전 후,

목교로 임시 복원된 후, 인도교로 사용해 오다 1979년 홍수 피해를 입어 교각이 유실, 부식, 노후되어 통행이 전면 차단되었으나

1993년에 총 사업비 6억원을 투자하여 총 연장 469미터 전체의 교량을 전면 보수 후, 통행을 재개하면서 군민들의 오랜 숙원을 이루었다.


2011년 6월 25일에 집중호우로 교각 1개가 유실되고 상판 2개[약 100미터]가 붕괴되었으나 2012년 4월 30일 완전하게 복구하였다.


-안내판 인용-




 전투 당시 수없이 많은 적군 아군들이 피흘리며 수장 됐다는 낙동강을 내려다 보니 6.25 용사이셨던 내 아버지 생각에 눈물이 찔끔...


교량 난간에는 피를 나눈 고마운 혈맹국 인, 한국전쟁 참전국가들이 소개되어 있는데
늦은 밤에 비도 오고해서 살펴보는건 생략...

 



다리 중간 아치는 6.25때 부숴졌다고 한다.

실제 낮에 보면 아치 모양이 많이 일그러져 있고, 다리 기둥 곳곳에 총자국이 아직도 선명하다.



약 10분정도 머물렀기 때문에 더 넓은 풍경을 담지 못하고 출발을 서두른다.



낙동강 때문에 다리가 많은건가요? 지형적인 어떤 사유가 있어서 이겠지요?
다리의 야경이 나름대로 아름다운것 같습니다.^^
멀리 칠곡까지 다녀오셨군요. 경부선 철로 이묭하면서
많이 봐왔던 다리인데, 임진각에서 임진강 가로질러서
놓여 있는 자유의 다리와 함께 아름다운 철교이지요. ^^;
배불뚝이님, 대구, 부산은 거의 이 다리들로 지나가지 않나요? 아마도 가장 여건이 좋은 위치라 그럴거라 생각 합니다.
한국전 때의 치열했던 의미를 보존하기 위해 잘 관리를 하는것 같더라구요. ^^
해모수님, 칠곡은 자주 갔던 곳인데 지금은 뜸해요.
왜관철교 근방, 천주교묘지에 시부모님을 모셔서 가까이서 보는데 사진으로 찍어보긴 처음입니다. 더구나 밤에...ㅎㅎ
자유의 다리도 오래전에 갔던 기억이 납니다.
늦게 상경 하면서 다리의 야경을 멋지게 담았습니다.
오래된 철교라 역사적 가치도 있고 다리의 모양이 여러 형태군요.
근래에 놓여진 다리들만 보다 보니 색다릅니다.
수없이 지나다니던 다리인데 사진으로 찍긴 처음입니다. 시간 여유가 있었으면 걸어 보았을텐데 아쉬워요...
다리 중간에 아치 하나는 전쟁때, 부숴진것이라고도 하고 홍수때 망가진 것이라고도 하고...
한강의 화려한 다리와는 사믓 다른 분위기지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