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寶梅(봄에...) 2018. 1. 31. 22:39


김홍도의 병진년화첩 중, 옥순봉도 [사진 빌림]

 
 
 퇴계 이 황이 단양군수로 재임 시,
기녀 두향이 옥순봉을 단양군에 속해 줄것을 간청해 이황이 청풍군수에게 이를 청했으나 거절 당하자
단애를 이룬 석벽에 단구동문(丹丘洞門)이라 새겨 놓았다.
 
이후,
퇴계 이황이 풍기 군수를 거쳐 쇠약해지자 안동으로 낙향한다.

난과 매화를 가꾸며 정갈히 지내던 두향은
1570년 이황이 돌아가시자 강선대옆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는다.
 
옥순봉은 제천 10경중, 제 8경에 속하는 명승지로
퇴계 선생이 '단애를 이룬 석벽이 비온 뒤 솟아나는 옥빛의 대나무 순과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도담삼봉은

단양팔경의 으뜸으로, 남한강 상류 한가운데에 3개의 기암으로 이루어진 섬을 말한다.


 충주댐의 완성으로 약 1/3이 물에 잠기게 되었지만,

월악산국립공원에 이웃하여, 수상과 육상교통이 개발됨에 따라 더욱 각광을 받고 있다.



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鄭道傳)은

단양 도전리에서 태어나 도담삼봉에서 아호를 따 삼봉이라 하였다.

도담삼봉은

강원도 정선군의 삼봉산이 홍수 때 떠내려 온 것이어서 매년 정선에 세금을 내고 있었는데 소년 정도전이

"우리가 삼봉을 정선에서 떠내려 오라 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물길을 막아 피해를 보고 있으니 도로 가져가라."고 한 뒤부터

세금을 내지 않게 되었다는 유래가 전해진다.

세 개의 바위 중 가운데 큰 바위를 남편봉(다른 이름은 장군봉)이라 하고,
오른쪽 바위를 처봉(다른 이름은 아들봉), 왼쪽 바위를 첩봉(다른 이름은 딸봉)이라 부른다.
 
옛날에 금슬 좋은 부부가 아이를 갖지 못하자

남편은 첩을 얻어 아이를 갖게 되었는데, 첩이 아내에게 배를 내밀며 시위를 했고, 화가 난 아내는 돌아 앉아 버렸다.

 
이를 본 하늘에서

남편과 아내 그리고 첩을 그대로 돌로 만들어 버렸다는 전설도 전해져 오고 있다.


가운데 바위 인, 장군봉에는「삼도정」이라는 육각정자가 있다.

 
영조 42년(1766) 가을 조정세 단양군수가 이곳에 능영정을 창건했었는데 폐허되었고

1807년 김도성이 목조 사각정을 건립 보존해오다가 1972년 대홍수로 인하여 유실된 것을

1976년 10월 철근콘크리트 육각정을 신축하고 삼도정이라 명명하였다.


 경치가 좋아 이 곳에서 많은 선비들이 주옥같은 시를 남겼다.



단양 석문(丹陽 石門)」은

석회암 카르스트 지형이 만들어 낸 자연유산으로

석회동굴이 붕괴되고 남은 천장의 일부가 마치 구름다리처럼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형태도 특이하지만, 석문을 통해 바라보는 남한강과 건너편 농가의 전경이 마치 사진 프레임을 보는 듯 하다.

구름다리 모양의 돌기둥 자연경관자원 중

동양 최대 규모로 알려져 있으며  석문 안에 살았다는 마고할미의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등 희귀하고 아름다운 경승지이다.

왼쪽 아랫부분에는 하늘나라에서 물을 길러 내려왔다가 비녀를 잃어버린 마고할미는

비녀를 찾기 위하여 손으로 땅을 판 것이 99마지기의 논이 되었으며, 남한강에는 징검다리를 놓고 건너다녔다고 한다.

 
넓은 논에서는

선인(仙人)들이 농사를 지어 하늘나라의 양식으로 썼다고 한다.


마고할미는

이곳에서 술과 담배,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며 오랫동안 살다가 죽어서 바위가 되었다고 하는데,

석문에는 긴 담뱃대를 물고 술병을 들고 있는 형상의 마고할미 바위가 있다고 한다. 



어둠이 내리면서 도담삼봉엔 불이 들어 오고 중앙고속도로는 한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