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이야기/김경일 교수의 힐링명상

    마하보디 2016. 1. 22. 16:40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서로 미워하며 고단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바쁜 농사철이 되어도 시어머니는 며느리 일을 별로 도와주지 않았고 그러니 며느리 역시 보리밥일망정 넉넉하게 챙겨드리지 않았다. 이웃의 잔치 집을 다녀올 때도 절편 한쪽도 따로 챙겨오지 않았고, 삼시 세끼 보리밥에 된장, 김치가 전부였다. 그러니 시어머니도 며느리 일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서로가 반목하고 증오하면서 힘들게 살았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노인 삽니다, 노인 삽니다.” 하는 소리가 담 너머에서 들려왔다. 귀를 의심했지만 사립문을 열고 내다보았더니 초립을 쓴 한 남정이 천천히 걸어가며 그 소리를 외치고 있었다. 그를 불러 세웠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양식만 축내는 시어머니를 팔아 버리고 싶었다. 남정은 그녀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왔다. 마침 시어머니는 방문을 열고 섬돌로 내려서고 있었다. 먹는 것이 부실했으니 몰골도 흉측하고 기력이 없어 문고리를 잡으며 겨우 움직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초립의 남정은 며느리를 잡아끌더니 귓속말을 했다. “저렇게 허약하고 기력이 없으면 사갈 수가 없습니다. 살도 좀 찌고 원기가 회복되면 사가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총총 걸음으로 시야에서 사라져 갔다.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팔고 싶은 생각 밖에 없었다. 그러자면 잘 먹여야 했다. 당장 그날 저녁부터 보리밥이지만 여느 때보다 꾹꾹 눌러서 더 많이 담았고, 멀건 된장국이지만 건더기를 더 넣어 드렸다. 잔치 집을 다녀 올 때면 하나만 주는 돼지고기 편육을 자신이 먹지 않고 가지고 와서는 시어머니께 드렸다. 동짓달 긴긴밤에는 동치미도 가져다 드리고 아껴먹던 고구마도 구워 드렸다. 시어머니는 화색이 돌고 기력도 좋아지고 마음도 편해지기 시작했다. 며느리가 너무 고맙고 착하게 보였다. 하늘아래 이런 며느리가 있는가 싶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 일을 돕기 시작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소여물도 끓이고 마당도 쓸었다. 며느리가 밭일을 나가면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시간이 남으면 우물가에서 빨래도 했다. 며느리가 밭에서 돌아오는 시간이 늦으면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저녁거리도 준비하곤 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한없이 고마웠다. 하늘아래 이런 시어머니가 있는가 싶었다. 


    어느 날 문득 담장 너머에서 소리가 들렸다. “노인 삽니다, 노인 삽니다.” 초립을 쓴 남정이 사립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마침 마당에 있던 며느리가 그를 보고는 까마득히 잊은 기억을 떠 올렸다. 살도 찌고 원기를 회복하면 사가겠다는 남정의 말이 떠올랐다. 며느리는 화들짝 놀라며 뛰쳐나갔다. 그리고는 “무슨 말 같잖은 소리를 하시오. 다른 집에 가서 알아보시오. 우리 집은 시어머님이 안 계시면 집안일이 돌아가지를 않아요.” 며느리와 시어머니는 이미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사랑은 사랑을 낳고 미움은 미움을 낳게 된다. 미운 사람일지라도 사랑을 베풀면 사랑이 되돌아오게 된다. 산다는 것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다. 만남을 통해 기쁨을 느끼고 사랑을 느끼지만 만남을 통해 미움과 고통도 느낀다. 사랑이나 미운 감정을 타인이 나에게 주기도 하지만 나 역시 타인에게 주기도 한다. 스트레스라는 용어가 없던 시절에는 미움이 만병의 근원이라고 했다. 서양의 정신치료에서도 분노가 정신병의 뿌리라고 하는데 그게 그 말이다. 동의보감에도 이도요병(以道療病)이란 말이 있는데 그것은 마음을 다스려 병을 치료한다는 뜻이다. 만병의 근원인 미움을 가슴에 담아두고 살아갈 필요는 없다. 미움의 감정은 버리고 비워야 한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타인을 미워해선 안 된다.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능력과 성품만큼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기준으로 타인을 평가해선 곤란하다. 그리고 나에게 피해를 준 사람일지라도 미워하지 않는 것이 훌륭한 사람이다. 


    새해가 밝았다. 사랑으로 미움을 극복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출처: 경북도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