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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에충실 2015. 2. 10. 16:25

정복규의 호남매일 성씨순례

2013.1.25.금

진원박씨(珍原朴氏)-23,839 

 시조 박진문(朴進文)은 고려시대의 대장군이다. 박혁거세의 후예로 경명왕의 맏아들인 밀성대군 박언침의 13세손이다. 시조의 8세손 박희중이 조선 태종 때 벼슬을 해서 공신에 오르고 진원(장성에 속한 현)군에 봉해졌다. 그 뒤 후손들이 진원을 본관을 삼았다. 진원은 전라남도 장성군 진원면의 지명이다. 구진박씨라고도 한다.

 시조 박진문은 대장군, 그 아들 박효대는 대상, 3세 박 찬은 검교장군, 증손 박성량은 판군기감에 이르렀다. 박희중은 조선 초 문장 뿐 아니라 외교에도 밝아 세종 4년 회례사로 왜국에 다녀왔다. 박희중은 김제의 벽골제를 완공시킨 공으로 그의 송덕비가 지금도 서있다. 후에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와서 후진교육에 힘쓰는 한편 갑선(甲船)을 만드는 일에도 앞장섰다.    박희중의 아들 박 휘는 전남 보성에 자리를 잡아 보성종. 중.계파의 뿌리를 내린다. 시조의 현손인 박 첨이다. 그는 예문관. 춘추관사 등 여러 벼슬을 지낸다. 그 아들 박홍서는 전라도 병마사 수군절도사를 지냈다. 박홍서의 아들 박 흥은 중장랑에 이르렀고, 둘째 아들은 구례현감을 지냈다.

 선조 때 박광전는 진원박씨가 자랑하는 인물이다. 그는 보성계파 후손으로 이퇴계의 문인으로‘주서절요’등의 전수를 통해 대가를 이룬 인물이다. 선조 1년 진사에 급제, 경기전 참봉과 헌릉참봉을 지내기도 했으며 동궁(東宮)의 사부(師傅)로서 선조의 신임이 두터웠다. 함열현감을 지낼 때는 선정으로 민심을 얻었다. 특히 회덕현감으로 있을 때는 옥송(獄訟)의처리가 공정하기로 유명했다고 전한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했다. 당시 난중에 부인을 잃고 노환으로 진중에서 고생이 많았지만 충의로써 독려하여 군세 만회에 성공을 거두었다. 이조판서에 증직되었으며 용산서원에 제향되었다.

 박원효는 장성중파로 13세손이다. 무과를 거쳐 훈련첨정을 지내다 정유재란 때 호남의 왜병과 싸워 전사하였다. 그 아들 박승종 역시 무과에 급제, 상의원 첨정을 거쳐 병마절도사로 임란 때 선조를 호종한 공으로 병조판서에 증직되었다. 또한 1등 공신에 올랐을 뿐 아니라 양소(良昭)라는 시호를 받는 영예를 입기도 하였다.

 박원효와 같은 장성중파이면서 13세손인 박우(朴祐)는 무과에 급제하여 선공감판 겸 첨정이 되었다. 정유재란 때 일본에 잡혀갔다가 21년 만에 예조유문(禮曹諭文) 등을 받고 본국인 66명을 귀환시켰다. 이때 조총과 화약 등을 가져와 후세에 기여하였다. 시호는 충열이다.   

 보성옥산파로 17세손인 박인강은 진사로 병자호란 때 창의하였다. 대서송공파의 박시형은 군자감 첨정으로 있으면서 병자호란 때 박위강과 더불어 창의하였다. 이처럼 진원박씨의 무인 혈통은 임진, 병자 등 국난을 만났을 때 뛰어난 공을 세운 사람이 많았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박승종(朴承宗, 1552 壬子生) : 무과(武科) 선조17년(1584) 별시 병과(丙科), 박춘장(朴春長, 1595 乙未生) : 사마시(司馬試) 인조24년(1646) 식년시 이등(二等), 박봉석(朴鳳錫, 1683 癸亥生) : 사마시(司馬試) 영조1년(1725) 증광시 삼등(三等), 박균(1683 癸亥生) : 사마시(司馬試) 중종8년(1513) 식년시 삼등(三等), 박만부(朴萬富, 1665 乙巳生) : 사마시(司馬試) 숙종16년(1690) 증광시 이등(二等), 박만부(朴萬富, 1665 乙巳生) : 사마시(司馬試) 숙종17년(1691) 증광시 이등(二等), 박광전(朴光前, 1526 丙戌生) : 사마시(司馬試) 선조1년(1568) 증광시 일등(一等)

 박대붕(朴大鵬, 1547 丁未生) : 사마시(司馬試) 선조3년(1570) 식년시 이등(二等), 박사헌(朴士憲, 1629 己巳生) : 사마시(司馬試) 현종10년(1669) 식년시 삼등(三等), 박도급(朴道汲, 1718 戊戌生) : 사마시(司馬試) 영조41년(1765) 식년시 이등(二等) 등 모두 25명이 있다. 무과 1명, 사마시 24명이다.  

 현대 인물은 박성봉(경희대교수, 경희대전통문화연구소장), 박용태(공군사관학교장, 서울항공 전무이사), 박태운(변호사), 박태영(대한교육보험 부사장), 박상선(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박기주(광주면업대표, 대종회장), 박형열(전남도교육감), 박염주(동경흥양전설회장), 박관주(전남체육회부회장, 대종회장), 박중보(재경종친회장), 박성배(미국뉴욕주립대교수), 박춘식(군수사령관,국방부제1차관보), 박형인(전남도내무국장), 박정주(전남도교육연구원장), 박규현(문교부장학관), 박인식(동원산업이사), 박용택(대진관광사장), 박정웅(티파니사장), 박동주(대종회 도유사), 박옥현(대종회 상임부회장), 박태훈(서울지방법원판사), 박양천(외무부과장), 박지환(삼보사장), 박중열(서울종친회고문), 박종현(경희대교수, 음악가), 박판영(한신대교수), 박형호(전남대교수), 박병욱(이학박사), 박우전(대덕연구단지 전자연구실장), 박철재(미국공인회계사), 박형인(동경흥양전설회사사장), 박선주(서울민사지방법원판사), 박형철(크라운제과 지함사장), 박형채(감사원이사관), 박화강(신문기자), 박옥재(신문기자, 5.18광주부상자회장), 박태완(대한교육보험지부장), 박응현(대종회총무), 박홍식(대전경찰서과장), 박혁주(광주직할시청과장), 박용엽(한일은행 국제부차장), 박태유(강동소방서장), 박우종(세무사), 박완주(MBC경제부기자), 박태범(주택공사과장), 박심재(지하철공사 감사관), 박명주(삼신주택사장), 박종주(보험정보센터대표), 박삼규(외과전문의), 박형준(보성의료보험조합장), 박원재(호남대교수), 박우조(여수수산사장), 박하주(한학자), 박용휘(재광종친회장), 박난재(국립마산병원전문의), 박광재(마취과전문의), 박헌재(외과전문의), 박현주(대종회유사), 박용출(한독이사), 박병주(전남중고교장), 박인주(여수여중교장), 박정국(미림상사사장) 씨 등이다. (무순, 전 현직 구분 안 됨)   

 항렬자는 50世 생(生), 51世 기(基), 52世 원(原), 53世 연(衍), 간(?) 위(衛), 54世 이(而), 55世 전(前), 56世 근(根), 57世 춘(春), 58世 형(亨), 59世 만(萬), 60世 상(尙), 61世 덕(德), 62世 량(亮), 63世 원(源), 64世중(重), 65世 현(鉉), 66世 태(泰), 67世 주(柱), 68世 형(炯), 69世 재(在), 70世 용(鎔)이다. 주요파는 ▲종파 ▲중파 ▲계파 ▲보성종파 ▲보성중파 ▲보성계파 ▲장성중파 ▲장성계파 등이다.

 본관 진원(珍原)은 전라남도 장성군(長城郡)에 속해 있는 지명으로 본래 백제의 구사진혜현(丘斯珍兮縣)이었다. 757년(신라 경덕왕 16) 진원현(珍原縣)으로 고쳐서 갑성군(岬城郡: 長城)에 속하게 하였다. 고려 명종 때 나주(羅州)에 이속되어 감무(監務)를 두었다. 1413년(태종 13)에는 현감을 두었고 선조 때 장성(長城)에 속하여 진원면(珍原面)으로 남아 있다. 

 집성촌은 대부분 전남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전남 보성군 벌교읍, 전남 보성군 노동면 명봉리, 전남 보성군 노동면 대련리, 전남 보성군 미력면 덕림리, 전남 보성군 겸백면 사곡리,  전남 장성군 진원면 학림리, 전남 장성군 남면 삼태리 등이다.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진원박씨는 1985년에는 총 4,679가구 19,982명, 2000년에는 총 7,403가구 23,839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3천여 가구, 4천여 명이 늘어났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4,604명, 부산 1,056명, 대구 109명, 인천 485명, 경기 1,229명, 강원 131명, 충북 160명, 충남 387명, 전북 203명, 전남 10,434명, 경북 128명, 경남 414명, 제주 49명이다. 전남 지역에 가장 많이 살고 있었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6,035명, 부산 1,051명, 대구 137명, 인천 1,015명, 광주 4,406명, 대전 352명, 울산 236명, 경기 3,992명, 강원 179명, 충북 285명, 충남 353명, 전북 792명, 전남 4,311명, 경북 170명, 경남 447명, 제주 78명이다. 서울, 광주, 전남 지역에 많이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