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칼럼.좋은글

Neptune 2019. 10. 21. 09:08

 

 

 

똑같이 떡을 나누어 받았는데, 왜 받고 보면 왠지 내 떡이 다른 사람의 것보다 더 작은 것 같아 속이 상할까? 왜 남들은 팽팽 노는 것 같은데 나 혼자서 일을 다 하는 것 같아 억울한 걸까? 사실 직장에서 일하다 보면 똑같은 월급 받고 나만 손해 보는 것 같아 억울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사람들은 끝없이 자신과 남들을 비교하며 사는 습성이 있다. 오죽하면 ‘엄친아’ ‘엄친딸’ 이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이런 비교의 습성은 부모님의 사랑을 덜 받으면 어쩌나 노심초사하며 형제끼리 경쟁하고 비교했던 어릴 적 기억의 흔적이다.

 

집단이 개인보다 더 우위에 섰던 옛 시절에는 희생과 손해를 감수하려는 태도는 미덕으로 칭송받았다. 그러나 개인이 집단보다 우선인 현대 개인주의 사회에서 손해를 보는 행동은 바보들이나 하는 어리석은 행동으로 치부된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사람들은 절대로 손해를 보지 않으려 한다. “미쳤어요? 내가 손해를 보게?” 손해나 희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누구나 할 것 없이 펄쩍 뛴다. “내가 그 사람들을 언제 봤다고 날 희생해요? 그렇다고 누가 알아주기나 한데요?”

손익계산서를 따져보고 자신에게 이득이 없으면 절대로 움직이지 않으려드는 사람들은 이렇게 코웃음을 치며 희생을 평가절하 한다.

 

더구나 절대로 자신을 희생하려들지 않는 이런 풍토는 출산과 육아마저 자신의 것을 포기하고 희생하는 것으로 받아들여 저출산의 심각한 사회문제로까지 이어진다.

이는 인간으로써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의미이면서 기쁨인 부모 되기마저 손익계산서에 따라 포기할 수 있다고 하는 경악할만한 생각임과 동시에, 당장의 이득을 위해 미래 사회까지 위험에 처하게 할 수 있는 위험성을 외면하는 어리석은 생각이다.

어쩌면 지금 손해 보지 않으려는 행동이 훗날 늙어서까지 일할 사람이 없어 일을 해야 하는 고단함을 가져올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런데 어떤 연유에서 현대 사회에 들어서 유달리 사람들은 손해 보지 않으려 신경을 곤두세우며, 희생을 이토록 폄하하는 것일까?

우선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핵가족화와 사람사이의 단기화 되는 만남의 형태를 들 수 있다.

이전처럼 대가족을 이루며 살거나 한 마을이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을 때, 희생은 사람들로부터 오래 기억되었을 뿐만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지 칭송받고 보상받았다. 그리고 희생을 한 사람은 그 집단의 정신적 지주로서 중심을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핵가족화 되어 옆집과의 교류도 없이 지내는 현대 사회에서 희생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행동이 되어버렸으며, 잦은 이동은 훗날에 대한 기약을 무색하게 만들어 버렸다.

둘째, 희생은 나머지 사람들로 하여금 빚진 느낌을 갖게 하고, 희생을 한 사람이 그 대가로 자신의 인생에 깊숙이 관여할 수도 있다는 부담감을 주게 된다. 특히 나르시시즘의 현대 사회에서 어떤 행동을 담보로 빚을 지고 그것 때문에 상대에게 조정 당할지도 모른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가 손해 보래?”라고 하면서, 다른 사람의 희생을 달가워하지도 않는다.

셋째,

현대 사회의 대부분의 인간관계가 파워-지향적(power oriented)으로 되면서, 사람 사이의 관계도 누가 우세한가, 혹은 누가 이겼고, 졌는가 하는 파워게임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관계에서 손해 보거나 희생한다는 것은 지는 것과 동일시되고, 힘이 없는 사람들이 하는 굴종과 동일시된다. 희생이 갖고 있는 인간적이고 긍정적인 측면이나 희생이 주는 기쁨 등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으려 하면서 말이다.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희생

정신분석적으로 보면 희생은 이타적인 방어기제에 속한다. 자신의 공격성이나 파괴적 충동들을 다른 사람을 위한 행동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칫하면 상대방에게 죄책감을 불러일으키고 상대방을 조정하려는 목적으로 잘못 사용될 수도 있다.

상대방의 희생이 부담스럽고 껄끄러운 경우가 바로 이런 경우이다. 그러나 이러한 무의식적 동기가 없는

순수한 희생은 우리가 살면서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기쁨 중의 하나이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기쁨,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기쁨, 그 기쁨은 자신에게 괜찮은 사람이라는 느낌과 함께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손해를 너무 많이 보고 살면 그것은 대인관계나 판단 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손해를 너무 안 보려고 하는 것 역시 일종의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음을 시사한다. 너무 계산적이고 따지기를 좋아하면 주변에 사람이 없게 된다.

야구에서 희생 플라이 혹은 희생번트라는 게 있다. 자기는 죽지만 팀이 점수가 날 수 있도록 하는 타법이다. 야구에서의 희생은 결국 팀의 승리를 통해서 자신에게 보상이 주어진다.

 

 

희생은 희생하는 사람이나 그 혜택을 받는 사람 모두에게 이익을 가져다준다. 집단이나 다른 사람들을 위해 손해를 감수하거나 자신을 희생할 수 있다는 것은 그 만큼의 능력과 여유가 있다는 것이고, 결국 그 자신에게 리더십이 있음을 은연중에 알리는 것이다. 희생은 고귀하다 .아무나 희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한다는 것은 인간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고, 사람을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행동이기도 하다.

 

당신이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일을 했다거나, 손해를 봤다고 느낄 때 그것을 일방적인 희생으로 생각지 말라. 당신이 능력이 있거나 가진 것이 더 많기 때문에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의 희생은 당신을 그 집단의 중심에 서게 하고, 그로인해 당신의 가치는 인정받게 될 것이다. >>>

 

출처33js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