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이야기

    더불어 2021. 1. 23. 18:11

    초등학생들에게 돌 맞아 죽은 청년

    변상철 입력 2021. 01. 23. 14:21 

     

    [피해자 구술, 수상한 섬 수상한 이야기 13] 4.3 사건과 조작 간첩 ③

    [변상철 기자]

     교량이 불에 타버려 건너갈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도선을 준비 중, 조선인 한 사람이 도망치기 시작하자 다른 18명도 갑자기 스미다가와에 뛰어들기에 순사들의 요청에 따라 실탄 17발을 강물을 향해 쏘았음. 강물로 뛰어들지 못하고 도망치려 한 자는 다수의 피난민과 경관에게 타살되었음.
    - <학살의 기억, 관동대지진> 153쪽


    관동대지진 당시 일본 시민들은 조선인들을 소위 '불령선인', 즉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위해를 가할 위험한 집단으로 규정하고 학살에 가담했다. 위의 경우처럼 살기위해 강물에 뛰어든 조선인은 군인에게, 강물에 뛰어들지 못한 조선인들은 민간인에게 맞아 죽었다. 광란의 바이러스가 군중에게 집단으로 감염되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아니 실제 일어난 역사다. 안타깝게도 그러한 학살이 4.3 당시에도 일어났다.

    4.3이라는 악의 광풍은 평범한 이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경찰과 군인을 넘어 평범한 시민, 아이들에게도 학살을 강요하였다. 죽음이라는 협박과 공포에 내몰린 사람들은 살기 위해 군인과 경찰이 시키는 대로 해야 했다. 시민들은 그것이 불법이든, 부정의이든, 비이성적이든 판단하고 행동할 처지가 되지 못했다.

    우리는 탁본을 하는 도중 오경대씨에게 아주 특별한 경험담을 들었다. 경험이라기보다는 잔인한 학살의 기억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바로 4.3 당시 민간인이 민간인을 죽인 끔찍한 이야기다.

     

    6학년이 죽창으로 찔러

     

    ▲   평범한 도로인 이곳은 반세기 전 어린아이들이 알지 못하는 청년에게 돌을 던져야 했던 그 장소이다.ⓒ 한톨

       

    오경대의 구술 =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어렸을 때였어요. 학교를 불태웠다는, 당시에는 폭도라고 불리던 사람들이 잡혀왔습니다. 산사람, 폭도라고 했던 아들하고 그 아들의 엄마였는데, 군인이 잡아 와서 '이 사람이 이 학교(예래초등학교)를 불태웠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 손으로 이 사람들을 처단해야 한다. 그래서 초등학교 1학년에서 5학년까지는 일렬로 쭉 서서 돌멩이 하나씩을 들어라. 6학년은 죽창을 들어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린이들이 그 묶어놓은 폭도라는 남자에게 돌멩이를 하나씩 던졌습니다.

    다 던지고 나서 6학년은 죽창으로 찔렀습니다. 그래도 죽지 않으니까 나중에는 군인이 총을 몇 발 쏴서 죽였습니다.

    저는 그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왜 어린이들에게까지 잔인한 모습을 보여야 하느냐. 지금 생각하면 참 가슴이 아픕니다.

    너무도 잔인한 행동이었지만 그때 당시는 어렸기도 했고,

    그전에 군인들이 동네 구장했던 분을 잡아다가 때리는 것도 몇 번 봤습니다.

    군인들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동네 구장도 그렇게 맞던 시절이니 살려면 시키는 대로 해야지 도리가 있습니까.

    결국 그 구장도 나중에 우리 아버님하고 예비검속이 되어 가지고 이제 돌아가셨지만 어린 마음에 나이 든 구장이 몽둥이로 맞으면서 땅바닥에 뒹구는데도 사정없이 몽둥이로 내려치는데 사람으로서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나 이런 생각이 들었지요. 하지만 어떻게 할 도리가 없잖아요. 어떻게 보면 우리 입장에서 간첩인 사람들을 처단한 거잖아요."

    어린 오경대는 그 구장에게 내려지는 구타의 형벌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간첩, 빨갱이는 맞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정당한 처단이었다.

    오경대의 구술 = "거꾸로 나중에 나에게 간첩 혐의가 씌어질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꿈에도 생각 못 했습니다. 여기서 나고 여기서 국방의 의무를 마치고 열심히 농촌에서 살았었는데 나에게 이러한 불행한 일이 닥칠 거라고 생각 못했는데 그것이 배우지 못한 탓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국 그것은 4.3 사건과 간첩 조작의 큰 연관이라고 생각이 되죠. 아버님이 좌익 활동을 하거나 간첩 활동을 하거나 교육을 시킨 일이 없는데도 국가에서는 제주도 4.3 사건은 아버지도 연관이 되어 있지 않느냐,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오명을 씌우면서 중형을 구형한 겁니다."

    어린 아이들을 학살의 공범으로 만들고, 모두 학살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게 한 것이 대한민국의 작은 섬 제주에서 일어난 역사의 한 부분이었다. 살기 위해 이유 없는 학살에 가담해야 했던, 법과 이성이라는 사회 구조는 이미 그 기능을 상실하고 파괴된 혼란의 시대였다.

    어린 오경대 역시 죽지 않고 살려고 돌을 들었다. 군인들이 불령선인이니 간첩이니 하며 잡아 와 묶어놓은 어느 청년을 향해 돌을 던졌다. 그가 정말 폭도인지, 산사람인지, 어떤 사연으로 억울하게 잡혀 온 청년인지 그는 알지 못했고, 지금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돌을 던졌다. 죽지 않고 살기 위해서라면 돌을 던져야 했다.

    그랬던 그가 수십 년 후에 간첩이라며 돌멩이를 맞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그는 간첩이 아니었으나 간첩이 되었고, 신문에 간첩이라며 대서특필된 그에 대해 국가와 국민, 주변 사람들은 실체적 진실을 확인하려 하지 않았다. 의심은 곧 간첩을 두둔하는 것이고 두둔은 곧 자신이 간첩이 될 수 있다는 것이기에 의심 없이 간첩으로 취급하였다.

    간첩이 되고 난 뒤 그는 더욱더 그날 돌멩이를 맞으며 죽어갔던 그 청년이 떠올랐다.

    그는 청년이 죽어갔던 그 자리를 찾았다.

    이제는 그저 아스팔트가 덮인 도로가 된 그 자리에서 멈춰선 그는 돌멩이와 흙 때문에 탁본이 제대로 되지 않는

    그 자리를 탁본하려 했다. 어떤 모양인지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선명하지 않은 탁본이었지만 그는 정성을 다해 조심조심 탁본했다. 그에게 그 탁본은 예쁘거나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탁본하는 동안 그 청년이 쓰러져가던 그 바닥을 정성 들여 세심하게 만지고 문지르고 어루만졌다.

    마치 그날 쓰러진 청년의 주검을 기억하고 어루만지며 또 다른 용서와 화해, 해원을 하는 듯했다.

    탁본하는 동안 그날의 기억이 좀 더 선명하게 되살아나는 듯했다.

     

    그날 그 청년

     

    ▲   폭로라는 이름으로 처형당한 모자의 사망장소를 찾아가는 오경대 씨.ⓒ 한톨

    오경대의 구술 = "이 밭인지 저 밭인지... 나는 이 밭으로 생각하고 있어. 이 길도 있었고, 이리로 가 가지고 엄마는 저 아래 개천인가 어딘가 가서 죽이고 여기서는 아들이 죽고. 남자는 학생들이 죽이고, 엄마는 저기서 부녀회가 죽였어. 여자들은 여자가 죽이라고 해가지고.

    그니까 사람을 이렇게 묶어놓고 1학년에서 5학년까지는 돌멩이를 하나씩 들라. 그래서 지나가면서 맞추는 거야. 얼굴인지 어딘지 그냥 막 던지지. 던지고 나면 6학년이 죽창으로 찌르는 거야. 그러니까 피가 싹 쏟아질 거 아니야? 그러니까 사람이 이렇게 컸던 사람이 이렇게 작아져. 그래도 꿈틀꿈틀하니까 총으로 쏴 버린 거지.

    그날 모인 학생들이 한 백 명 됐을까. 그냥 학교 불태운 놈이니까 너희들이 죽이라고 총 들고 있는 군인들이 그렇게 시키니까 어떻게 안 할 수가 있어. 이제 그날 그 사건을 아는 (동네) 사람이 전부 돌아가시고 몇 명 안 남았어요. 동년배들은 다... 그런데 얘길 안 해.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 정말 기가 막힌 거예요. 총 한 방 쏘면 되는데 어린애들보고 시켰다는 그거가."

    그 모자는 정말 절차 없이 죽을 만한 죄를 지었을까? 그 모자는 정말 산사람, 폭도, 좌익, 빨갱이였을까? 그날 그 장소에서 돌과 죽창을 들었던 아이들은 지금 성인이 되어 여전히 이곳을 기억하며 매일 이 길을 지나고 있을 것이다. 매일 같이 이 길을 지나면 매일같이 그날의 악몽이 떠오르지 않을까. 오경대는 어떻게 그날을 안고 살아갈까? 너무도 궁금했다. 탁본을 마치고 돌아서는 오경대씨에게 물었다. 그렇게 끔찍했던 일이 일어났던 이 길을 매일같이 다닐 텐데 힘들거나 괴롭지 않으냐고. 어떻게 이 길을 지날 수 있느냐고.

    오경대의 구술 = "잊어버리고 살았지... 그러지 않으면 못살아..."

    잊어버리고 산다는 그 말이 진심처럼 들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잊고 살고 싶지만 잊을 수 없어 괴로워하는 절규로 들려왔다. 그는 잊었다고 하지만 억울하게 간첩으로 조작되었던 자신과 그날의 청년이 겹쳐 보인다는 것처럼 단 한시도 그날의 일을 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는 잊고 싶고, 잊기 위해 그곳을 다시 찾았다. 탁본을 하고 돌아가는 그가 그날의 청년에게서 조금은 위로받고 마음의 짐을 덜었기를 바란다. 그것이 탁본하는 우리의 마음이기도 하다.
     

    이념이 그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은 학설 터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한꺼번에 가족을 잃고도 '폭도의 가족'이란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숨죽이며 살아야 했습니다. 제주는 살아남기 위해 기억을 지워야만 하는 섬이 되었습니다. 그런 말 못할 세월 동안 제주도민들의 마음속에 진실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4.3의 진상규명과 명예 회복이 중단되거나 후퇴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국가권력이 가한 폭력의 진상을 제대로 밝혀 희생된 분들의 억울함을 풀고 명예를 회복하도록 하겠습니다.
    - 2018년 4월 3일 문재인 대통령 추념사

     
    문재인 대통령의 추념사처럼 제주에서의 4.3은 학살 터에만 그치지 않았다. '폭도의 가족'은 다시 빨갱이의 자식이 되었고, 그 자식은 다시 빨갱이, 간첩이 되었다.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은 더 이상 진상규명, 명예회복이 후퇴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했다. 대통령의 4.3 진상규명은 현재형이다.

    4.3때 학살을 피해 도망갔던 사람들, 남한에 원한을 가졌던 그들, 공산주의가 좋아서가 아니라 가족과 친족을 학살했던 이승만을 증오했던 그들, 먹고 살기 위해 밀항했던 제주인들, 이것이 제주 조작간첩의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