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11대왕 중종28(1533)년 명 가정(嘉靖)12년-여흥민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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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흥민씨 자료/조선실록과 여흥민씨

2021. 11. 26.

조선11대왕 중종28(1533)년 명 가정(嘉靖)12년-여흥민氏

자 료 / 하얀그리움

2월 21일 - 관직을 제수하다

조인규(趙仁奎)를 사헌부 집의에, 상진(尙震)을 홍문관 전한에, 민제인(閔齊仁)을 성균관 사성에 제수하였다.
以趙仁奎爲司憲府執義, 尙震爲弘文館典翰, 閔齊仁爲成均館司成。

4월 29일 - 초방을 고쳐 다른 방을 내다

초방(草榜)을 이미 썼는데 고쳐서 다른 방(榜)을 내었다.
【1등 1인은 원계검(元繼儉), 2등 3인은 정언각(鄭彦慤), 한주(韓澍), 이도남(李圖南), 3등 10인은 경혼(慶渾), 임열(任說), 이세구(李世球), 이희손(李希孫), 윤원형(尹元衡), 민구(閔球), 박붕린(朴鵬麟), 이현충(李顯忠), 남궁숙(南宮淑), 김기(金祺)이다. 앞에서 합격하였다가 뒤에 떨어진 자는 곽희영(郭懷英)과 김언부(金彦傅)이다. 앞에서 떨어졌다가 뒤에 합격한 자는 윤원형, 민구, 박붕린, 남궁숙이다.】
草榜已書, 而改出他榜。 【一等一人元紙儉, 二等三人鄭彦懿、韓澍、李圖南, 三等十人慶渾、任說、李世球、李希絲、尹元衡、閔球、朴鵬鱗、李顯忠、南宮淑、金祺也。 前中而後落者, 郭懷英、金彦傅也, 前落而後中者, 尹元衡、閔球、朴鵬鱗、南宮淑也。】

7월 4일 - 관직을 제수하다,

남세건(南世健)을 홍문관 직제학에, 허자(許磁)를 의정부 사인에, 민제인(閔齊仁)을 세자 시강원 필선에 제수하였다.
南世健爲弘文館直提學, 許磁爲議政府舍人, 閔齊仁爲世子侍講院弼善。

9월 7일 - 장원한 민제인에게 가자하다

문신(文臣)의 제술(製述)에서 장원(壯元)을 한 민제인(閔齊仁)과 무신(武臣)의 시사(試射)에서 장원을 한 원송수(元松壽)에게 모두 가자(加資)하였다.
丙午/文臣製述居首閔齊仁, 武臣試射居首元松壽, 俱加資。

12월 20일 - 의주 목사 민제인이 변방의 조치사항에 관해 아뢰다

의주 목사(義州牧使) 민제인(閔齊仁)이 아뢰기를,
"신은 유생이어서 변방(邊方)의 일을 모릅니다. 의주의 건너편 삼도(三島)에 와서 살고 있는 중국 사람을 철거시키는 일은 요동(遼東)에 자문(咨文)을 보냈습니다. 더 와서 집을 짓고 경작하는 자가 있으면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집을 짓거나 경작하지 않을 때에 미리 말해 주면 쉽게 금지시킬 수 있는 형세지만 이미 집을 지었거나 경작한 뒤에 말한다면 금지하기 어려운 형세이며, 계문(啓聞)하려고 갔다왔다 한 뒤에 말한다면 일이 늦어집니다. 그리고 삼도와 의주는 서로 잇닿아 있는데 만일 도둑질하러 오면 구류시켜 두고서 아뢰어야 합니까, 아니면 석방시켜 돌려 보내고 아뢰어야 합니까? 중국 사람을 구류시킨다는 것은 미안할 듯하고, 석방시켜 돌려 보내면 추구(推究)할 때에 근거가 없을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취품합니다." 하니,
전교하였다.
"의주 건너편의 삼도에 살고 있는 사람은 이에 앞서 요동에서 모두 조치하려고 하였다. 더 와서 집을 짓는 자가 있다고 해서 변장(邊將)이 마음대로 금지시킨다면 흔단이 생길 폐단이 없지 않으니, 관찰사에게 보고하여 계문하는 것이 좋겠다. 중국 사람으로 도둑질하는 자는 구류시켜 두고 아뢰는 것이 옳다."
戊子/義州牧使閔齊仁啓曰: "臣以儒生, 不知邊務。 義州越邊三島, 來居唐人撤去事, 移咨遼東矣, 如有加來, 作舍、耕田者, 則何以爲之? 未作、未耕之前言之, 則勢易禁止, 已作、已耕之後言之, 則勢難禁, 而啓聞往復之後, 言之, 則事緩矣。 且三島, 與義州連接云。 幸來偸竊, 則拘留而啓之乎? 放還而啓之乎? 拘留上國人, 似乎未安, 放還則後日推之無據, 何以爲之? 取稟。"
傳曰: "義州越邊三島居人, 前者遼東, 皆欲處置矣。 雖有加來作舍者, 邊將擅自禁之, 則不無生釁之弊。 可報觀察使啓聞, 而唐人若偸竊者, 則拘留啓之, 亦可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