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기자마당

푸른지붕 2012. 11. 22. 09:18

11월 7일, 푸른누리 기자단이 우리의 전통 음악을 지키고 알리는 국립국악원을 찾았습니다. 궁중음악, 선비음악 등 다양한 전통 음악을 배우고, 이동복 국립국악원장과의 인터뷰 시간도 가졌습니다. 기자들이 직접 장구와 북도 쳐보았다는데요, 그 흥겨운 시간 속으로 출동!  

-푸른누리 편집진-

울려퍼지는 우리 기상, 국악!

11월 7일, 푸른누리 기자단은 국악에 대해 배우기 위해 국립국악원을 찾았다. 우리나라의 전통 음악을 살리고 널리 홍보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는 국립국악원에 발을 들인 푸른누리 기자들은 국악과의 만남에 들뜬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직접 찾아가본 국립국악원은 그 규모가 상당히 컸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악의 혼이 존재하는 곳이기 때문인지, 한국의 멋이 녹아있는 것 같았다. 



푸른누리 기자단이 첫 번째로 찾은 곳은 궁중음악실이었다. 궁중음악실은 말 그대로 궁궐에서 벌이던 연회나 잔치 음악을 소개하는 곳이다. 사진이 없던 예전에는 모든 궁궐의 행사를 글 또는 그림으로 표현해두었는데, 우리가 본 그림은 병풍 열개로 이루어진 그림이었다. 이 그림은 고종 왕 51세 생일잔치 때 벌인 춤과 음악을 기록한 것이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사람들이 배를 타는 모습을 재현하며 흥을 돋우는 것이 있는데, 이를 ‘선유락’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리고 일정한 구멍에 사람들이 무용을 추며 공을 넣는 것도 있었는데, 만약 넣지 못할 경우에 이마에 검은 먹을 칠했다고 한다. 이는 ‘포구락’이라고 불렀다. 

▲ 서유락의 모습


▲ 편종


궁중음악을 할 때 쓰이는 악기는 상당히 많고 다양했다. 그 중 ‘박’과 ‘어’는 음악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 ‘박’은 부채 형태이지만 나무로 이루어져 소리를 내며 시작을 알리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해가 떠오르는 동쪽에 박을 놓는다고 한다. 그리고 ‘어’는 음악의 끝을 알리는 악기로 호랑이의 모습과 비슷하게 생겼다. ‘어’는 해가 지는 방향인 서쪽에다 위치하게 했다고 한다. 그리고 궁중 음악에는 아쟁, 가야금, 거문고와 같은 악기가 사용되었다. 아쟁은 활로 긁어 소리를 내었는데, 서양악기인 첼로 소리와 매우 흡사하다고 한다.

궁중음악식을 둘러본 뒤에는 3D영상을 관람했다. 영상은 ‘만파식적’에 관련된 것이었다. 옛날 왜구가 신라를 마구 약탈하던 시절에 두개의 바위섬이 바다에 떠다녔는데, 당시 신문왕은 이 바위섬이 하나가 될 때 두 대나무가 하나가 된다는 사실을 경이롭게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신문왕은 하나가 된 대나무를 이용해 악기를 만들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대금’이다. 대금을 불면 왜구를 물리치고 나라의 평안을 되찾게 해주었다고 하는데, 만파식적을 만들도록 도움을 준 사람은 옛 신라왕 문무왕과 장군 김유신이었다.


▲ 가야금을만드는 과정


기자단이 두 번째로 발을 들인 관람관은 옛 음악과 문화를 골고루 살펴볼 수 있는 곳이었다. 백제의 대표적인 악기는 가야금이다. 또 ‘백제 금동 대향로’를 보면 신선이 사는 삼신산이 나오는데, 이곳에서는 다섯 명의 악사 신선이 현악기, 관악기, 타악기를 이용해 음악을 연주하는 모습이 나온다. 이는 백제의 음악을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고구려의 대표적 음악 기록은 무덤의 벽화였다. 무덤에는 두 가지 종류의 음악 그림을 그렸는데, 하나는 고구려의 음악 그림이었고, 하나는 천상의 음악 그림이었다. 이 그림에는 고구려의 아름다운 음악과 천상의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사후세계를 아름답게 맞이하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마지막으로 신라의 대표적인 음악 기록은 토우였다. 토우는 흙을 이용해 만든 흙 인형이다. 퉁소를 부는 토우인형, 악기를 연주하는 토우인형, 비파를 연주하는 토우인형, 노래 부르는 토우인형 등 종류도 다양하다.

과거에는 신의 마음을 달래거나 굿, 제사를 지낼 때에도 음악을 많이 사용했다. 동해안 별신굿은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업을 종사하는 뱃사람의 안전을 기원하고, 기다리는 이들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위로하기 위한 행사이기도 했다. 이때 꽹과리와 장구, 징 등의 악기가 사용되었다. 두 번째로 진주 삼천포농악은 절기나 명절 때 땅 신에게 복을 빌기 위해 지냈다. 여기에는 나발과 소고, 태평소와 같은 악기가 사용되었다. 마지막으로 북청사자놀음이라는 것이 있는데, 정월 대보름에 탈을 쓰고 춤을 추며 나쁜 일을 몰아냈다고 한다.

▲ 대악후보


세 번째로 찾은 곳은 선비음악실이었다. 선비들은 공부를 하던 중간 중간에 악회 모임을 가지며 노래를 불렀는데, 아름다운 풍경이 보이는 야외나 집안 사랑방에서 악회 모임을 벌였다고 한다. 이 악회 모임의 노래 내용은 대부분이 자신의 다짐이나 의지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고 삼일유가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삼현육각 악대를 불러 축하하는 잔치를 벌이는 것이었다. 행사는 늘 크고 신나게 치러졌다. 그런데 옛날에 가난했던 ‘송만재’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아들이 과거에 급제했음에도 불구하고 돈이 없어서 시를 써주는 것으로 슬픔을 달랬다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는 이 시를 ‘관우희’라고 부른다.

그 다음 푸른누리 기자단이 간 곳은 세종음악실이었다. 세종대왕은 한글과 해시계, 물시계를 만드신 것으로 매우 유명하다. 하지만 세종대왕은 음악에도 적지 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뛰어난 음악적 지식 또한 겸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세종대왕은 동양 최초의 악보인 ‘정간보’를 만들어 ‘용비어천가’에 가사를 붙였다. 그리고 옛 음악의 천재 박연을 시켜 평균 음계를 맞추는 율관을 만들었다. 세종은 절대음감 또한 갖추고 있었는데, 편경의 돌의 음악소리를 들은 후 미세한 작은 차이를 찾아냈다고 한다. 그 차이는 돌이 약간 덜 갈려 일어난 일이었다. 이처럼 세종은 음악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관람을 마친 기자단은 직접 장구와 북을 체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도해주신 분은 이흥구 선생님이었다. 이흥구 선생님은 어릴 적 시골에서 농악 풍장으로 처음 사물놀이를 접했다. 그 후 고1 때부터 국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선생님은 전국농악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고 꽹과리 명인이 되는 등 국악의 대가가 되었다. 우리는 직접 북과 장구를 쳐 보며 국악의 혼을 우리 손으로 직접 느꼈다. 체험 후에 들은 이흥구 선생님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을 울렸다. 


▲ 장구와 북을 배워보는 기자단의 모습


"우리 국악을 관람할 때 내는 가격은 최대 5만원입니다. 그런데 외국 음악, 오페라나 오케스트라를 관람할 때 지불하는 가격은 20만원을 넘어섭니다. 우리나라, 우리 국악의 가격을 낮추는 것은 국악의 멋과 가치를 낮추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국악은 감정에서 음악 소리가 나오는 것입니다."

국악 체험을 하면서 악기를 다루는 방법과 마음으로 악기를 다루는 방법, 모두를 배웠다. 악기를 직접 다뤄보고난 뒤여서 그런지 선생님의 말씀이 더욱 와 닿았다.

 ▲ 이동복 국립국악원장


기자단이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이동복 원장님이 있는 곳이었다. 원장님은 국립국악원에 대해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국립국악원은 여러 차례의 이사를 다닌 후에 88년도에 이곳 서초동으로 왔다고 한다. 그리고 국악원은 서울, 전라북도, 전라남도, 부산 이렇게 네 곳에 퍼져 있다고 하셨다. 국립국악원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들은 후 본격적인 인터뷰에 들어갔다. 다음은 이동복 원장님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Q. 국악을 외부에 알리기 위해서 노력하는 일들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A. 외국에는 연주단을 파견하여 국악을 알리고 있습니다. 미국의 워싱턴이나 독일의 베를린이 대표적이죠. 음악 대가가 많이 살고 있는 독일은 우리나라의 국악을 좋게 평가합니다. 노래, 연주, 춤 등 우리나라의 국악은 고유의 독특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 초에는 천명의 사람들과 가수 싸이가 국악 홍보 영상을 찍었죠. 이 영상은 부채춤이나 태권도, 사물놀이로 우리나라만의 멋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해외 국악 학교, 문화 동반자 사업, 외국인 국악 체험, 국제 국악 워크숍, 국악 강좌 등 많은 사업을 진행하고 있답니다.

Q. 원장님께서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노력한 것은 무엇인가요?
A. 저는 6년 동안 열심히 음악을 공부했답니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기타를 치고 놀았습니다. 하지만 기타를 버리고 앞으로의 진로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 잠을 줄이는 비법을 가지고 있지요. 우선 일어나는 시간은 일정하게 하고, 자는 시간을 매일 5분씩 늦추는 겁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잠이 줄어들죠.

Q. 최근에는 아리랑이 다르게 편곡되기도 하죠? 다른 국악도 달리 편곡되기도 하나요?
A. 아리랑은 우리나라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있습니다. LA에 가면 LA아리랑으로 불리고, 러시아 사할린에서는 사할린 아리랑이 되어 불리지요. 북한사람이 부르는 아리랑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아리랑은 버전이 참 많은 곡입니다.

이동복 원장님의 시원시원한 대답에 기자들은 더욱 열심히 취재에 임할 수 있었다. 푸른누리 기자들은 이번 국립국악원 취재를 통해 국악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하고 배울 수 있었다. 많은 어린이들이 국악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함께 즐기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국악이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로 뻗어나갈 날은 멀지 않았다고 본다.

 

성재경 기자 (서울신자초등학교 / 6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