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 담긴 이야기.../나의 이야기

가방끈 짧은 여자 2010. 4. 7. 15:40

그러니까 30 여년전 쯤  제가 남미에서 고등학교 를 다닐때의 일입니다.

그 때만 해도 한국사람들은 물론 아예 동양사람들을 보는것이 그리  흔치 않았던 때였기에 저는 물론이거니와  그때 이민을 갔던 우리들은 어디를 가던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살아야 했기에 매우 불편한

이민 생활을 하던 그런 때 였습니다.

 

물론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 에서도 저는 유일한 한국 학생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언제나 선생님들께는 물론 전교 학생들로 부터 언제나 큰 관심의 대상 이었고 인기는 물론 동시에 놀림 상대 이기도 했습니다.

 

너네 나라에는 빌딩이 있느냐... 차는 있느냐 ..를 비롯해서 하다못해 옷은 어떻게 입고 살았느냐 라는  마치도 미개한 나라에서 헐벗고 굶주림을 피해 이민을 온것 처럼 묻거나 대할때 ... 어린 마음에 그런 차별적인 대우가 얼마나  견디기가 힘이 들었었는지....지금 고백하지만 저는 부모님과 형제 몰래 언제나 외롭게 혼자  많이 흐느꼇던 아픈 추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아이들의 저의 대한 대우는 달라 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동안 모범적인 저의 학교 생활에서 오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그러나 결정적인 원인은 생뚱맞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언제나 똑 같았던  저의 학교 생활 ...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닐때 매일 점심 시간이면  흘려 나왔던 국민 체조노래...

그와는 대조적으로 제가 다니던 남미의 고등학교 에서는 늘 점심시간이 끝나갈 때 쯤이면 운동장에서 어김없이 흥겨운 최신 유행 가요가 울려 퍼지곤 했습니다.

그 노래는 점심시간이  끝이 났다는 알림 노래이자  모두 운동장으로 집합 하라는 싸인이기도 했습니다.

워낙 정열적이고 흥이 많은 남미 아이들인지라  언제나 우리 학교 아이들은 그 노래에 맞춰 정신이 혼미 해질만큼 온몸을 흔들어대며  코믹하게 춤들을 춰대곤 했던 친구들이 아직도 하나 둘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저의 교실은 2층 교장 선생님 사무실 바로 옆이었기 때문에 아이들이 함부로 떠들고 놀 수 없는 아주 조용한 공간 이었습니다.

저의 점심 시간은 늘 그 곳에서 맘에 맞는 몇몇 친구들과 싸온 점심을 나누어 먹으며 오손 도손 이야기를 나누며 보냈었는데 그 이유는 딱 한가지 귀찮게 따라 다니는 아이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교실에 있다가 노래 소리를 듣고 운동장으로 내려 가려고 계단에 몇발을 내 딧던 순간...

어디서들 날아 왔는지..

왕파리 대여섯마리가  저의 머리 주위를 왱왱 거리며 맴도는 것을 발견 하게 되었습니다.

불쾌한 기분에 손을 올려 파리를 쫒으려 하는 바로 그 순간....

어디서 날라 왔는지 물이 가득 담긴 조그만 물 풍선이 파리를 쫒으려던 내 손에 마주쳐 그만 공중에서 보기 좋게 터져 버렸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입니다만 아이들 몇명이 저를 골려 주려고 마음먹고 저를 기다리고 있다가 저이 모습이 보이자 힘차게 저를 향해 던졌고... 학교 모든 아이들이 그 모습을 지켜 보고 있었던 것이 었습니다.

물 풍선이 공중에서 내 손에 의해 터지자마자  바로  울려 퍼졌던... 우뢰와 같은 아이들의 감탄사.....

 

우와~~아~~~~

 

물 풍선을 맞고 흠뻑 젖어 놀래는 저의 모습을 볼줄 알았던 아이들은 저의 거이 무술 수준의 방어력에 그만 모두들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던 겁니다.

그러나 사실이지 그때 정말 놀랐던 사람은 그 아이들이 아니라 바로 저였습니다.

생각없이 그저 파리때를 막으려 했을뿐인데 ...

어쩌면 그렇게도 절묘하게  각도 하나 벗어나지 않고 물 풍선을 공중 분해 시킥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 쎄게 날아오는 물 풍선을 막은 저의 손은 또 얼마나 아프고 쓰라리던지 .....

정말이지 순간이었지만 저는 그 물 풍선이 터지는 소리가  저의 손이 부러져 나가는 소리인줄 착각할 정도로

얼마나 놀랬는지 모릅니다.

 

엄청 놀란 가슴과  아픈 손 때문에 그만 그 자리에서 주저 앉아 버리려고 하고 있는 순간...

와~~아~~~~

쿵후다

여자 Bruce Lee (이소령) 이다...라고 수군덕 거리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아~ 이 말을 잊을뻔 했습니다.

그 당시  이소령의 영화가 남미 전 지역에서 대 인기를 끌때 였는데 그 영웅적인 그의 무술에 감탄은 물론

동양사람들은 모두 무술을 조금씩은 할 줄 안다는 추상적인 생각들을 모두 하고 있을때 였습니다.

 

그때 그 순간  그 자리에서 주저 앉으려는 저의 생각을 접었습니다.

왜냐하면 아 ~ 이 일을 이용해 다시는 저 아이들이 나를  괴롭히는 일이 없도록 겁을 주어야 하겠다는 꼼수가 마치도 갑자기 전구에 불이 켜지듯 ...저의 머리에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어느 영화에서 봄짓햇던 이소령의 만만치 않은 눈빛을 아이들을 향해 쏘아 보내며

그리고 무게있게 딱 한마디로 결정타를 보냈습니다.

 

어떤 놈이야?

 

가 계단을 하나 하나 내려갈 때마다 한걸음 한걸음씩 뒷걸음질 치던 우리 학교 아이들....

하하하 영웅이되는것은 정말 별것이 아니다 싶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아이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전설과도 같은 뜬금 없는 소문들은 순식간에 일파만파로

번져 나갔는데 그 헛소문은 정말로 엄청난 것들이었습니다.

집에서 제가 쌍절봉 연습을 하는것을 보았다던 아이가 있다는 소문..

이소령의 친적이라는 소문...

한국 갱단에 보스라는 소문...

  

이렇게 해서 그 날 이후로 저의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치근덕 거리던 아이들은 물론 저를 골려 주려는 아이들은 더 이상 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저를 죽자 사자 쫓아 다니던 아이들 역시도 다시는 저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할때 까지 저는 우리반에 평화와 질서를 유지하는 유일한 보스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까지 끝이 났으면 해피 엔딩이 되었을것을...

결국 저는  이러한  잡다한 소문 때문에 결국 커다란 난관에 부딛쳐야 했는데

그 이야기는 2편에서.....

 

 

 

우~~~아!!!
물찬 고무풍선을 공중격파하는 실력은
벽돌보다 힘든데....

우찌 긴손톱가진 여고생은 아니었을끼고... ^(^

2편은
저렇게 굉장한 여자랑 사귈려다가 맞아죽을끼다는
소문까지 번져서.....
무스매 친구가 없는 5춘기를 보내다.....

결국 미국에서 낭군님을 만나게 되었다는
헤피엔드인거 같지요??
그리스도의 편지님,
하하하하 아마도 그럴것 같습니다.
벽돌이나 나무판은 넓적한데 물찬 풍선은 그보다 도 훨씬 작고
그것보다 저를 향해 힘차기 날라 오고 있었다는 점에서....
게다가 손 바닦 으로도 아닌 당수 하듯 거기다가 왼손 옆차기로 공중 격파를 시켰으니...
제가 생각해도 그건 아주 아주 대단한 무술이었지요.. 히~

어쩌지요?... 2편에 대한 그리스도님의 추축은 땡~~ 하셨구요..
아마도 머리 좋고 상상력이 풍부하신 그리스님도 이번에는 절대로 상상을 못하실
그런 황당한 에피소드 이랍니다.
기대 하셔도 좋고요...

서운해 하실까봐...
약간에 팁을 드리자면...귀여운 사기 사건...이라고나 할까요?
그러니 기다려 주세요...
개봉박두.... 입니다 히~

쿵후 학생 이셨네~^&^

혹시 그때도 정화님 을
눈동자 처럼 지켜 주시는분께서
파리를 날리시지 않으셨을까요?

모든 가족들의 기도로
약하디 약한 동양소녀를
지켜주신 그 분!

웅이 어머님,
하하하 그게 그만 그렇게 되어 버리고 말았어요.
쿵후에 쿵짜도 모르는 제가 말입니다.

저는 절대 거짓말은 안했고요..
아니라고 해도 그렇다고 믿고 그냥 조용히 있었드니...원래 진짜 무술가는 과묵하다고
하면서들...
그게..글쎄 조용히 있을수록 더 진짜 같이 되어 버리더라니까요.

정말이지 웅이 어머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도와 주셨던것 같아요.

또 한가지 재미있었던 것은 그동안 약해빠져서 체육시간도 빠졌던 저를 보고 친구들은
어쩐지 정화에게는 너무 유치한 체육 시간이어서 그동안 그렇게 빠졌구나... 하더라니까요.....

4월의 카운드 다운에 들어 가셨겠습니다.
날마다가 좋은 기운 좋은 마음으로 가득하셔서 부디 좋은 성과 얻으시기를 바래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샬롬~


ㅎㅎㅎ 재밌어요. 어서 빨리 2탄을....
awl님,
조금은 유치 하지만 재미는 있지요?
이렇게 여러곳을 돌아 다니며 살다 보니 별의별 경험을 다 겪고 사나 봅니다.


2탄이요?
초안은 벌써 대충 써서 임시 보관함에 올려 놓았는데...
중안(ㅎㅎㅎ 하하하하 제가 만든 단어 입니다.) 이 아직 안끝나서리...히~

곧 올려 놓겠습니다.
2편에서는 정말 awl님의 배꼽이 빠질지 모르니 단단히 준비 하시고 읽어 보시도록 하셔요 ^^*

한국 갱단의 딸이란 소문이아니어서 다행입니다.
그렇다면 아버님이 갱단두목이 되는 거지요.^^
그러고 보니 정화님 모습이 이 중국 영화"와호장룡"에 나오는 <파란여우>의 젊은 시절과 비숫한 데도 있읍니다.
그 여배우는 한참때 홍콩 무술영화에 많이 나왔읍니다.
오래전 캐나다 현지인들과 식사를 하며 그네들을 놀려 먹던 기억이 납니다.
3살때 부터 수십년간 젓가락질을 해서 작은 콩도 집어먹는 것은 물론 날아가는 파리도 가끔 잡을 수 있다고 했읍니다.
회사의 Treasurer 였던 제가 워낙 진지하게 이야기 하니 대부분 믿는눈치였읍니다.ㅎㅎㅎ
캐나다 처음 도착해 초등학교 6학년 시절 아들을 괴롭히던 중국 아이들이 수업후 돌아오다 아들의 태권도(한국에서 Black Belt였음) 발차기 한방에 나가 떨어진후 다시는 괴롭히지 않았다고 합니다.
딸은 성격이 외향적이어 오히려 아이들을 휘어잡고 재미있게 지냈읍니다.
지금이야 웃으시겠지만 정화님이 학교 다니던 시절 정말 외롭고 힘들었겠읍니다.ㅅ.ㅅ
당시 부모님이 아셨다면 얼마나 가슴아파 했을까요
2탄을 기대합니다.^^
JB 선생님,
하하하 그러게 말씀입니다.
하마터면 저의 아버지에게 씯을 수 없는 불 명예 스러운 호칭을 안겨 드릴뻔 하였네요. 하하하

젖가락으로 날아가는 파리도 잡는 다는 말씀을 하시니 ..
오래전 저의 작은 오빠가 라면을 먹다가 이소령 흉내를 내면서 라면 먹던 젖가락으로
공중에 날아가는 파리를 잡은 적이 있었습니다.

오빠는 물론 오빠친구인 종호오빠...그리고 저 모두 불결함에 소스라치게 놀라 파하려다가
그 뜨거운 라면 그릇과 김치 그릇을 홀라당 업헜던 적이 있지요.

6학년때 태권도 Black Belt 였다면 정말 대단한 실력이 아닌지요?
제가 대학생이 되어 미국으로 유학을 오게 되었을때...
미국 사람들은 저에게도 태권도를 아냐고 묻는 사람들이 엄청 많았습니다.
그럴때마다 우리 한국에서는 피아노 교육과 태권도 교육은 필수 교육이라고 대답을 해 주었지요.
물론 제가 할줄 안다는 말은 안했지만 ...
그쯤 되면 사람들은 자유로이 대단한 상상을 하곤 했습니다..

정화가 저렇게 피아노를 잘 치는것으로 봐서 태권도도 엄청 잘하겠구나...하고 말입니다.

선생님,
선생님 말씀대로 저의 청소년 시절은 아주 외로웠었습니다.
부모님 걱정하실까봐... 혹이는 오빠에게 말하면 부모에게 전해 질까봐...
우리는 서로의 걱정을 터 놓고 말해 본적이 없었던것 같습니다.

속으로 삼키고..삭이고 묻히고.. 잊으려 애쓰고... 그러면서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불행인줄 알았는데...
지금 나이가 들어 외로운 아이들과 사람들을 보면 그 사람들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극복할수 있는지에 대해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으니... 이것이야 말로 축복이 아닌가 싶습니다.

가끔 부모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 하시곤 합니다.
그때 속 마음 그대로 다 내놓지 않고 ... 안그런척 하는 우리들의 모습들을 생각만 해도
가슴이 저리신다고요...
하늘같이 높고 바다와 같이 깊은 부모님께서는 이미 다 알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 2탄을 기대해 주세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나름 의미를 찾기에 애쓰는 저의 어린시절의 모습속에
이민 최기에 한 소녀이 아픔과 의지.. 그리고 ..유치의 극치를 달리는 코메디 같은 인생속에서
읽어보시는 선생님께 웃음을 선물해 드릴 수 있을것 같습니다.

정화님 외로우셨을거란 짐작을 합니다. 왜냐면 사위가 어린시절 중미권 나라로 갑자기 이민을 가서 말설고 물서니 성질은 급한데 말은 안되고, 그래서 학교도 일년인가 못가고 정신적으로 공황증세가 왔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도 정화님은 여자라서 조금 현명하게 대처하셨을겁니다. 그래도 이렇게 속깊게 잘 커서 부모님께서 많이 기뻐하시겠어요
awl님,
그렇지요..
그런데 그 시절에는 정말이지 어린 마음에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외롭고 어려웠지만..
그러나 지금 오랜 세월이 지나고 보니 그 때에 격은 일들이 지금 이렇게 굳굳이 살아가는데
큰 밑거름 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그때도 견디고 살았는데...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어려움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냐는 그런 담대함 같은것이라고나 할까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려움을 이길수 있었던 힘이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언제나 저의 뒤에는
부모님의 따듯한 사랑과 보살핌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인것을 압니다.
정말이지 이점에 대해서도 두고 두고 부모님께 감사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그때는 우리가 여기에 왜 왔나? 싶었는데..
그 덕분으로 인해 저는 3개국어를 할줄아는 그래서 어디를 가나 환영을 받는 그런
사람이 되었습니다. ( 그렇다고 3개국어 구사가 다 제대로 완벽한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어떤일이 닥치든지 그 안에는 하나님의 깊으신 뜻이 있다는 것을
이제는 조금 알듯 합니다 awl님.

속깊게 크다니요~
제가 자식중에 제일 많은 걱정을 드렸던 아이였는걸요 히~
해 외 에 나 와 서 고 교 생 활 을 한 분 들 이 라 면 한 두 번 씩 은 겪 는 일 같 아 요 .
저 는 아 니 고 제 동 생 이 중 학 교 다 닐 때 의 이 야 기 와 많 이 비 슷 합 니 다 .
2 편 을 기 다 리 라 고 하 시 니 까 기 다 리 기 는 하 겠 지 만 독 자 들 을 너 무
기 다 리 게 하 지 는 마 시 길 ...
mstiger 님,
아~ 동생분이 중학교서부터 외국 생활을 하셧나 봅니다..
그 분의 마음을 모두 이해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저도 국졸을 하고 이민을 갔는데..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시 국민학교 5학년부터 다니면서
얼마나 놀림을 많이 당했던지...

선생님 질문에 뻔히 다 아는 답도 언어가 부족해서 바보라는 눈치를 선생님과 반 친구들에게
받았을때...

귀먹어리에 거기다다 벙어리..노릇을 하다보니
정말 점점 제 자신이 정말 바보가 되어 버리는것 같았었던적이 있습니다.

게다가 그 당시 저의 성격이 너무나도 소심하고 소극적이 었어서 저의 마음의 병은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더 심했을지도 모릅니다.
동생들은 바로 적응을 했는데 말입니다.

2편 글이 정리 되는대로 곧 올려 드릴께요
개봉박두 입니다 하하하하

너무 기다리시라 큰소리를 쳐 놓다보니 ...
이거 이러다가 재미 없는 2탄 이라고 우리 불친님들께 맴매나 맞지 않을까 조금씩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하하하

그러나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올려 놓는것이니
이해하시고 잘 읽어 주셔요 ^^*
물 론 이 지 요 .
허 구 로 쓰 는 게 아 닌 우 리 가 살 아 가 는
진 솔 한 이 야 기 는 어 느 것 하 나 도 재 미 (?) 가 없 는 것 은 없 읍 니 다 .
재 미 라 는 말 은 우 스 개 소 리 나 , 뭐 그 런 류 의 글 에 서 받 는
한 낱 웃 음 으 로 흘 려 버 리 는 느 낌 과 는 다 른
진 지 한 우 리 들 의 삶 의 모 습 에 서
만 날 수 있 는 즐 거 음 이 란 뜻 입 니 다 .

모 두 가 살 면 서 경 험 을 했 을 수 도 있 고 ,
아 니 면 공 감 할 수 있 는 일 이 기 때 문 이 지 요 .
재 미 가 있 을 까 , 없 을 까 그 런 걱 정 을 하 면 서
쓰 실 필 요 가 전 혀 없 읍 니 다 .
안 심 하 시 고 편 히 사 실 대 로 만 쓰 시 면
읽 는 사 람 들 은 대 부 분 공 감 을
하 리 라 믿 어 요 .
mstiger님,
님의 말씀에 저도 같은 마음입니다.
우리가 살아온 환경과 문화가 다 다르기에 이렇게 서로의 도 다른 삶의 모습을 통해서
때로는 동감하고 때로는 함께 웃고 울고 ...하면서
그렇게 ...서로를 통해 또 배우고 그러면서 사는 것이 아니겠는지요?

그러고 보니 힘이 납니다.
제가 겉모습과는 달리 매우 소심한 면이 있어서..
가끔 혼자 스스로 민망해지고 작아 질때가 있습니다.

이런글들을 올려도 될까? ...하는점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올리고 싶은 일과 사연들이 너무 너무 많아서 ...
주채가 안될때도 있고요...
(하하하 정말이지 요즘 이곳의 날씨 처럼 변덕이 죽끓듯 합니다.)

그런대요 제일 큰 문제라고 할수 있는것이 있다면 아마도 그것은
저의 글 표현이 자유스럽지 못하다는것...
아마도 그것때문에 늘 망설이고 늦어지고 .. 그러는것 같기도 합니다.

열심히 완성해서 올려 놓겠습니다.
mstiger님께서 절대 상상하시지 못했던 그런 일들을 말이지요....

이번주는 여름날씨 처럼 활활 타오르더니 오늘부터 원래의 봄날씨로 돌아 온것 같습니다.
너무 일찍 여름 옷을 꺼내 놓았나 봅니다...

좋은 주말 보내셔요...^^*
푸하하 참 재밌습니다.
게다가 절묘한 배경음악까지!!!
요즘에 이 곡... tv cf에인용되어서 bg로 깔리고 있는데요.

오지호씨가 선전하는 오징어짬뽕이에요
에블바디 오징어 짬뽕 화이팅~ 하면서 노래가 나와요 ㅎㅎ

마지막엔 "화끈하게 풀린다! 확 풀리지요!(지호)"

이렇게 나온답니다 ㅋㅋㅋ
저 노래 정말 재밌어요 ㅎㅎ
작은여우님,
재미있게 읽어 주셨다니 고마워요.
노래가 절묘 하지요?
제가 아는 노래중 쿵후에 관한 노래는 딱 이곡 한곡 밖에 없어서리...
그런데 어찌도 이렇게 오래된 노래를 작은여우님께서 아시나 했는데...
역시나... 광고 뒷배경 음악으로 나와서 인것 같습니다.

제가 작은여우님 만했을때..
정말로 대 유행을 하던 노래 였던거랍니다.

그 당시 미국 연속극 (제목은 잘 생각이 나질 않는데요..) 에 타이틀 곡이기도 했지요.

그후 이노래는 바디 트레이닝 센터에서 또는 춤곡으로 많이 사용하기도 했지요.
아~~ 또 있어요 그 당시 디스코텍에 가면 언제나 인기 춤곡으로 쿵짝 쿵짝
흘러 나오던 음악이가도 했답니다.

웁스~~~ 여기서 제가 그 당시 디스코텍 갔던것이 다 들통 나 버렸네요? 하하하하
ㅎㅎ 저는 아빠의 영향으로
영화에서도 익히 들어왔던 노래에요!!
또 몇번씩 이런 옛날 노래도 들려주신답니다..
아빠와 영화보는 것도 좋아해요^.^

아줌마도 디스코텍을 갔었어요?!
흠... 바른생활 아줌만줄 알았는데...
우리 엄마 아빠는 첫만남이 007이라는 나이트였대요...ㅋㅋㅋㅋ
아줌마가 갔으니 저도 나중에 가봐야겠어요 ㅋㅋㅋ
작은여우님,
하하하 저의 디스코텍 생활은 남미에서 고등학교를 다닐때 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말이 디스코텍이지 남미의 생활 자체가 어디를 가거나 쿵짝 쿵짝 문화 였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나서 제가 고등학교를 마치고 미국, 미시건에서 대학을 다닐때 호기심으로
따라 간적이 있었지요.
그런데 그 당시 제가 동안 이었고 또 키가 작아서 어린아이로 오해를 받아 문턱에서 입장 거절을 당한 적이 있었어요.
증명서를 소지 하고 있지 않았던 지라 친구들이 사정 사정해서 손 들에 빨간 도장을 받고
들어 갔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리고 그후로는 가지 않았습니다.

자존심이 상해서 말이예요 하하하하
2편이 너무 기다려지네요.
잼난 이야기 속에 숨은 '가짧여'님의 눈물도 살짝 엿보이고요.

hilarious님,
hilarious님의 말씀대로 그 당시에는 참으로 견디기 어려웠던 슬픔들이 많이 있었지요.
그러나 지나고 보니 지금은 그것 조차도 참으로 재미있는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어려운 시절이 있었듯이 ...
그리고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었었다는것을 알듯이 말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그러면서 배우면서 어른이 되어 가는것 같습니다 . 그렇지요? 히~
하나 궁금해 지는게 있어요
이민을 몇 살에 어디로 가셨기에 이렇게 험난한 아이들에 놀림을 당하셨나요

풍선을 막았는데 왜 손이 그리 아프셨다는 건지요
풍선은 그저 얇은 고무에 불과했을턴데요

정말 야무지게 물리칠 수 있는 게기가 되어서
이 글을 읽으면서 왜 이제사 이 글을 접하게 됐지 했거든요
글을 가끔 가끔 올리셔서 그런가 싶었구요

암튼 장하십니다 요

황금빛님,
아마도 11살쯤 되었던것 같고 처음에는 Argentina 로 갔는데..여건이 수월치 않아
이웃에 나라인 Bolivia로 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는 중학교는 Argentina에서 맞추었지요.
참고로 Bolivia라는 나라는 한국의 6.25 당시의 생활을 하는 그런 미개한 나라 였습니다.
물론 빈부의 차이가 심한 나라였고 대 부분 외국인들이 부유하게 살았습니다.

순식간에 날아온 물 풍선은 정말 아팠습니다.
자세하게 몇일을 아파했는지는 모르겟지만 ... 확실히 기억하기에는
물 풍선 맞았던 날은 손이 벌겉게 부워 올랐었고 몇일 얼얼 햇드랫습니다.

사실 이 글을 올리게 된 사연은...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어느 모임에 갔다가 우연치 않게 이 생각이 나서 이야기를 했는데
모두들 재미있다고 말씀 하셔서 ...
저의 블로그에 까지 올리게 되었어요.

그러니가 재탕을 한셈이 되는거지요 히~

IGOO ~~ 장한일은 아닌것 같지만 그리 칭찬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황금빛님 ^^*

PS. 황금빛님께서 칭찬해 주실때마다 행복한것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



어린 나이에 이민을 갔으니
가끔 말씀하시는 한국에 대한 여러 부분이 익숙지 않는 부분이 있을거라는 거 이해해요

제가 미국에 갔을 때에
거기서 만난 사람이 박정희 대통령 당시에 나왔데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어느 시대에 나왔느냐에 따라서 그대로
한국에 대한 것이 묶여서 모른다고 하는 말을 들었거든요

그래도 한국 사람으로써 잘 하시고 계시는 거예요
좀 이상하다 하더라도
서로가 이해하면서 대해 주면서 지내야 하지요

본토배기라고 해서 뭐가 달리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되거든요
서로 포용하고 이해하면서 지내는 것이
사람 살아가는데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늘 생각나는 대로 글을 올려 놓으시면 저는 즐겁게 보고 있거든요
저는 이렇게 즐거운 글을 접하는 분을 만났다고 하는 거
행운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걱정 마세요 아셨지요

늘 건강하시고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시고
승리하시는 나날이 되시길 바라겠습니당 ~~

황금빛님,
말씀이 옳으신것 같아요.
제가 기억하고 있는 한국도 박정희 대통령 당시 였던것 같아요.
물론 육영수 여사가 돌아가셨을때는 한국에 있었습니다만...

학교와 교회 밖에 모르던 단순했던 제가 기억하는 한국은
순박하기 까지 하지요.
그리고 외국에 나와 여러 나라를 다니게 되며 또 미국 사회에서 유학생활을
하다 보니 모르는것이 너무나 많아 살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또 적응하고..
하기를 참으로 오랫동안 한것 같아요.

물론 그것으로 인해 많은 것을 격고 배우는 계기가 되었지요.
하기는 지금도 배우고 또 배우고 그러면서 살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제가 겪었던 일들은 참으로 여러가지이고
그래서 이렇게 황금빛님에게 즐거움을 선사 할수 있게 된것 같아요.

표현이 부족해도 늘 재미있게 읽어 주시고..
함께 울고 웃고 해 주시는 황금빛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황금빛님도 늘 건강하시고 늘 기쁨이 충만 하시기 바래요.
고맙습니다.

ps. 어제는 인터넷 접속이 수월치 못해 답글을 드리지 못했어요
죄송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