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미옥의 시와 사진 이야기

사진은 詩를 쓰고 詩는 사진을 찍고

복효근 디카시집 『허수아비는 허수아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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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2020. 7. 10.

 

 

[시인의 말]

 

시의 촉수를 자극하는 장면을 만나면
사진에 담았다
거기에 담긴 기억과 느낌을 소환하여 시를 썼다
시와 사진의 혈맥이 섞여 한 몸이 되는 방식이다

 

사소한 일상에서 시를 발견하며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였다

 

의미 있는 일이었으며
발견과 깨달음의 작은 기쁨들이 함께하였다

 

 

 

시와 사진의 혈맥이 섞여 한 몸이 되다    

 

 

애지 출판사 (2020년)

 

 

닭싸움

 

싸움닭 두 마리가 목깃을 부풀리고
서로를 노려보는 풍경 저쪽
짝다리 짚고 지켜보는 사람들 있다
싸움으로 흥정하고 챙기는 사람들 있다

 

피 흘리는 한반도가 어른거렸다

 

 



◆ 책소개 ◆

1991년 계간 시전문지 ≪시와 시학≫으로 등단한 이후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등 10여 권의 시집을 통해 탁월한 시적 기량을 펼쳐 보였던 복효근 시인이 등단 30년을 앞두고 이번에는 디카시집을 펴냈다. 다소 이름이 생소한 ‘디카시’는 스마트폰 디지털 카메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을 포착하여 찍은 영상(사진)과 문자를 함께 표현한 새 형식이다. 언어예술이라는 기존 시의 범주를 확장하여 영상과 문자를 하나로 결합한 멀티 언어예술로 규정되고 있다. 사진과 함께 언어로 표현된 시는 5행을 넘지 않는 짧은 형식으로 SNS 시대에 걸맞은 시적 소통의 한 영역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시인은 시집의 ‘시인의 말’에서 “시의 촉수를 자극하는 장면을 만나면 사진에 담고 거기에 담긴 기억과 느낌을 소환하여 시를 썼다.”고 말하고 “시와 사진의 혈맥이 섞여 한 몸이 되는 방식”임을 밝히고 있다. 디카시의 의미규정과 부합되는 대목이다.
시인은 사소하게 보이는 일상에서 소재를 취하여 결코 사소하지 않은 의미와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사진과 시로써 이를 형상화하고 있다. 가령 싸움닭에게 싸움을 시키고 이를 팔짱끼고 지켜보는 사진에서 피 흘리는 한반도를 그려낸다거나, 봄이 되어 쉬고 있는 도끼자루에 나팔꽃 덩굴이 감아 오르는 장면에서 평화의 메시지를 빚어내는가 하면, 주변의 동식물 사진으로부터 나와 우리의 정체성을 묻기도 한다.
공광규 시인은 복효근의 이러한 작업을 보고 “복효근의 시적 재능과 기량이 디카시에 와서도 꽃을 피우고 있다. 그의 디카시는 비유적이고 암시적이다. 시사적이고 정치적이다. 우화와 철학이 공존한다. 재미있다.”고 말하고 “한국 디카시는 복효근에 의해 비약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학교 현장에서도 디카시가 교과서에 소개되고 아이들의 창의력을 새롭게 펼쳐 보일 수 있는 창작활동의 한 장르로 자리 잡아가고 있음에 비추어 시인의 이번 시도는 디카시를 쓰고자 하는 학생들은 물론 시적 자기표현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들에게도 한 전범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 저자소개 ◆

복효근
저자 : 복효근
1991년 계간 시전문지 ≪시와 시학≫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시집으로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버마재비 사랑』, 『새에 대한 반성문』, 『누우 떼가 강을 건너는 법』, 『목련꽃 브라자』, 『마늘촛불』, 『따뜻한 외면』, 『꽃 아닌 것 없다』, 『고요한 저녁이 왔다』 등이 있으며 시선집 『어느 대나무의 고백』과 청소년시집 『운동장 편지』, 교육 에세이집 『선생님 마음 사전』을 출간하였다. 편운문학상, 시와 시학상, 신석정문학상 등을 수상 한 바 있다. 작지만 야무진 시를 쓰자는 시 창작 동인 〈작은 詩앗 채송화〉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남원 대강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넥타이

 

올가미를 닮았으나
죽음보다는 죽임의 혐의가 농후하다

죽이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검투사의 검 같은

 

 

 

 

기다림

 

물질하러 바당에 들어간 어멍 기다려
한 켤레는 바당만 바라보고
또 한 켈레 한 짝은 벌써 집 쪽으로 돌아섰다
삼 년이 돼도 여전히 보랏빛 새 신

 

 

 

 

없는 새가 아름답다

 

돌에 새긴들 천 년을 가겠느냐
쇠로 빚은들 만 년에 남겠느냐

 

바람에 흩어지고 물결에 뭉개져도 흔적도 없어질
그래서

 

꽃잎을 닮은 새의 족적

 

 

 

 

 

 

 

책에 나와 있지 않은 것

 

곤줄박이를 알기 위해

조류도감을 펼쳤을 때

때마침 곤줄박이 한 마리가 책 위에 앉았다

 

진짜는 책 밖에 있다고

 

 

 

 

 

순례

 

동아줄로 꼬인 번뇌의 길

일보일배 온몸으로 걷는다

다시는 못 올 길

성지가 아닌 곳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