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재님의 뜨락

동사모 2010. 12. 16. 03:57

잘 익은 가을빛을 받으며 돌계단을 한 개씩 천천히 걸어올라 석굴암에 다다랐다.

일흔의 나이를 오가는 그들은 미국에서 먼 길을 나선 '박물관 트러스트(Museum Trust)'들이었다.

 

여느 관광객과는 달리 한국에 10여일을 머무는 그들의 행보가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필라델피아 박물관의 부관장 등을 비롯한 미국의 미술관·박물관 큐레이터와 함께 와서 한국의 미술품을 구입한 뒤

박물관과 미술관에 기증하기 때문이었다.

 

트러스트는 산업혁명을 통해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룩했던 영국에서 1895년 변호사 로버트 헌터 등

세 사람에 의해 결성된 '내셔널 트러스트(National Trust)'가 그 시작이다.

물질적 풍요가 인간의 존엄과 삶의 질을 더 이상 개선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무분별한 개발과 자연환경 파괴,

그리고 자연 문화유산의 독점적 소유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시민 스스로 탄생시킨 단체였다.

 

이 운동은 1907년 내셔널 트러스트특별법의 제정으로 내셔널 트러스트가 확보한 자연문화유산에 대해서는

개인이나 국가의 소유가아닌 '시민의 유산'으로 사회적 소유가 실현될 수 있는 계기를 맞게 됐다.

시민의 유산은 '양도불능의 원칙'이 보장됨에 따라 '영원한 보전'이 가능해질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시민이 적극적으로 가치를 판단하고 선택해 가치가 높은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을 확보,

시민의 소유로 영구히 보전하고 관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국은 며칠 뒤 윤보선 생가에서 한국의 내셔널 트러스트 창립 10주년 기념행사를 연다.

 트러스트들의 이번 방문으로 경주에 살고 있는 한국화가의 작품이 미국의 박물관과 미술관에 가게 되었다.

트러스트들은 큐레이터들이 신중하게 고른 작품을 기증할 뿐 작품의 선택은 그들의 몫이 아니었지만,

자신의 기부가 아름답게 쓰여지는 것에 대해 충분히 행복해 보였다.

 

100년 전통의 그들의 활동을 마냥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10년의 초석 위에라도

이러한 문화적 가치의 선택과 보전이 가능해지기를 기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우리 스스로가 중심에 있을 수 있음을 깨닫고 행동해야 한다.

 

이경숙(동재민화연구소장) 2010-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