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재님의 뜨락

동사모 2010. 12. 16. 04:06

곱게 물든 단풍만큼이나

대구 황금복지관 어르신들의 마음은 행복하고 따스한 열기에 들떠 있었다.

'일흔의 작품전'에 그동안 마음을 다한 작품을 걸어놓고

서로 축하하고 축하를 받는 시간이었다.

 

애써 완성한 작품에 대한 뿌듯한 성취감은

어르신들의 얼굴과 표정을 햇살받은 가을단풍처럼 화사하게 만들었다.

특히 민화를 처음 만난 어르신들이 1년의 짧지 않은 시간을 통해 조금씩 익히고 배운

민화의 아름다움과 의미를 느끼고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무엇보다 나의 행복이 되었다.

 

또 '한글쓰기'전에서는 칠십 평생 처음 배운 한글로 써내려간 편지들이 소개됐다.

편지 내용은 지나온 생에 대한 아픔을 고해성사처럼 써놓은 것이지만 글씨체는 어느 대가의 글씨가

이처럼 한 획 한 획 진정을 담아 쓸 수 있을까 싶었다.

 

이처럼 문화는 일상생활의 공간에서 소통하고 마주침으로써 공공성과 정당성을 갖게 된다.

단 한 번의 화려한 이벤트는 쉽게 잊어지지만 지속적으로 오랜 시간 한 개인과 마주친 문화는

개인을 통해 다시 재생산된다.

그런 재생산이야말로 그 사회의 정체성을 형성해 나가는 주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기초과학을 지원해야 과학의 미래가 있듯이,

우리 문화의 자생력을 회복하고 우리 문화의 정당성과 일상성을 획득하려면,

느리지만 천천히 이처럼 기본적인 만남에 충실해야 한다.

 

아파트의 주거공간이 뜻있는 건축가들에 의해 한식의 구조와 접목하고 있거나

민화그림의 공간구조를 아파트의 공간에 적용하려는 일련의 움직임들이

바로 전통문화의 일상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의미로 읽혀진다.

 

이미 사라졌거나 사라지려고 하는 전통생활 속의 아름다움이 새롭게 회복된 전통의 공간에서

아이들이 생활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처음엔 어색하게 붓을 든 개구쟁이 아이들도 1년의 시간동안 익숙해진 손길로 종이와 붓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모란꽃 한 송이의 아름다움보다 그들 마음 속에 꽃 필 우리 문화의 미래를 그려본다.

 

사람마다 어느 순간 고향을 그리워하듯,

전통은 결국 우리가 그리워해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경숙(동재민화연구소장) 2010-10-27

 

 
 
 

동재님의 뜨락

동사모 2010. 12. 16. 04:01

가을엔 전시와 공연, 그리고 다양한 문화행사로 풍요롭다.

특히 관심이 있는 문화행사가 있을 때에는 은행잎이 부챗살 끝자락부터 노랗게 물들듯이

마음은 속살부터 설렌다.

이번 가을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하는

'고려불화대전 - 700년 만의 해후' 특별전이 마음을 들뜨게 한다.

 

논문을 쓰기 위해 불화를 공부하던 시절,

복잡하고 화려하게만 보이던 불화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수도 없이 도록을 넘기던 순간이었다.

연구의 결과도 없이 답답하던 시간, 문득 수월관음도의 아름다운 자태 앞에서 전율을 느꼈다.

이전에도 보아왔던 고려불화의 한 페이지 앞에서,

 갑자기 전율을 느꼈던 경이로움을 잊을 수가 없다.

어느 한순간 그림이 영혼을 흔드는 강렬한 느낌이었다.

수도 없이 만나는 작품 앞에서 또 그런 순간이 오기를 기다렸지만

그런 순간은 다시 오지 않았다.

 

뭉클하고 뜨거운 감동 앞에서 수월관음의 화집을 수도 없이 쓰다듬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전시를 보러갈 계획에 마음은 숙연하기까지 하다.

 

 

이번 전시회에는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고려불화가 61점이나 온다니 더욱 놀랍다.

현재 남아있는 고려불화는 160여점. 그 중 일본에 130여점, 미국과 유럽에 20여점이 흩어져 있다.

 

 

국내의 고려불화는 2005년에 일본에서 구입하여 보물 제1426호 지정된 수월관음도를 비롯하여

10여점밖에 되지 않는다.

 

단 한 점을 빌려 오더라도 유물의 섭외과정과 운반과 설치가 까다로운데,

 이 작품들이 한꺼번에 온다는 것에 관계자들의 노고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G20 정상회의에 때맞추어 열려 우리문화의 정수를 보여 줄 수 있어 더욱 그 의미가 깊게 느껴진다.

 

 

고려불화 중에 특히 관음보살의 별칭인 수월관음의 아름다움은 그 이름만큼 신비롭기만 하다.

인도의 성지인 보타락가산의 신비로운 바위산을 배경으로 달빛을 받은 관음보살의 발 아래,

한 송이 푸른 연꽃이 떠있다.

그 푸른 연꽃 봉오리의 가느다란 세선 사이에 갇힌 채 다시 탄생하기를 간구하는

사람의 모습을 실제로 볼 수 있을지,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누기가 어렵다.

 

 

이경숙 (동재민화연구소장) 2010-10-20 

 
 
 

동재님의 뜨락

동사모 2010. 12. 16. 03:57

잘 익은 가을빛을 받으며 돌계단을 한 개씩 천천히 걸어올라 석굴암에 다다랐다.

일흔의 나이를 오가는 그들은 미국에서 먼 길을 나선 '박물관 트러스트(Museum Trust)'들이었다.

 

여느 관광객과는 달리 한국에 10여일을 머무는 그들의 행보가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필라델피아 박물관의 부관장 등을 비롯한 미국의 미술관·박물관 큐레이터와 함께 와서 한국의 미술품을 구입한 뒤

박물관과 미술관에 기증하기 때문이었다.

 

트러스트는 산업혁명을 통해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룩했던 영국에서 1895년 변호사 로버트 헌터 등

세 사람에 의해 결성된 '내셔널 트러스트(National Trust)'가 그 시작이다.

물질적 풍요가 인간의 존엄과 삶의 질을 더 이상 개선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무분별한 개발과 자연환경 파괴,

그리고 자연 문화유산의 독점적 소유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시민 스스로 탄생시킨 단체였다.

 

이 운동은 1907년 내셔널 트러스트특별법의 제정으로 내셔널 트러스트가 확보한 자연문화유산에 대해서는

개인이나 국가의 소유가아닌 '시민의 유산'으로 사회적 소유가 실현될 수 있는 계기를 맞게 됐다.

시민의 유산은 '양도불능의 원칙'이 보장됨에 따라 '영원한 보전'이 가능해질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시민이 적극적으로 가치를 판단하고 선택해 가치가 높은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을 확보,

시민의 소유로 영구히 보전하고 관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국은 며칠 뒤 윤보선 생가에서 한국의 내셔널 트러스트 창립 10주년 기념행사를 연다.

 트러스트들의 이번 방문으로 경주에 살고 있는 한국화가의 작품이 미국의 박물관과 미술관에 가게 되었다.

트러스트들은 큐레이터들이 신중하게 고른 작품을 기증할 뿐 작품의 선택은 그들의 몫이 아니었지만,

자신의 기부가 아름답게 쓰여지는 것에 대해 충분히 행복해 보였다.

 

100년 전통의 그들의 활동을 마냥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10년의 초석 위에라도

이러한 문화적 가치의 선택과 보전이 가능해지기를 기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우리 스스로가 중심에 있을 수 있음을 깨닫고 행동해야 한다.

 

이경숙(동재민화연구소장) 2010-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