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재님의 뜨락

동사모 2010. 6. 10. 16:34

비가 내리데요, 초록숲 사이로......

나무들이 서로 손을 뻗어서 촘촘히 푸른 그늘을 엮고 있더군요.

더운 여름날 시원한 바람을 품을 그늘을 짜고 있었어요.

숲길 옆에 패랭이꽃도 다소곳이 피었구요. 조금은 새침하게 뽀족한 꽃잎을 펼치고

작지만 단단한 허리 곧게 세운 패랭이 꽃이었어요. 아직 여리기만 한데

 시집가야 하는 어린 색시처럼 작고 곱기만 하네요.

패랭이꽃은 대나무처럼 변치 않고 늘 푸르른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서 민화에서는

 청년(靑年)을 상징하기도 하고, 돌에서 자란 대나무와 닮았다고 '석죽(石竹)'이라고 불리기도 한답니다.

꽃부리를 단단하게 하고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이 당당하기도 한데,

겨울에도 지지 않아 굳은 절개를 상징하기도 한답니다.

하지만 이렇게 점잖은 이름을 두고 ‘패랭이’,‘패랭이’ 한다는 군요.

 패랭이는 뭇 백성들의 머리에 주로 썼던 모자의 일종인데,

패랭이꽃의 모습이 그 모자를 거꾸로 놓은 모습과 같다고 붙여진 이름이라는군요.

저는 시집갈 날 받은 후로 바깥출입을 삼가고, 이렇게 수만 놓고 있답니다.

무릎위에 동그란 수틀을 괴고 숲길에서 만난 패랭이꽃을 수놓습니다.

가지는 곧고 단아하게 꽃은 속심을 두어 톡톡하게 맺히게 해야겠지요.

쪽 샘 에서 생 쪽으로 염색한 옥색천위에 나무가 그늘을 짜듯 패랭이 꽃수를 놓고 있어요.

꽃을 둥글게 수를 놓다보니, 꽃시계가 되었네요.

아직 얼굴도 익지 않은 어린 신랑이 이른 새벽에 “지금 몇 신가?” 하고 묻는다면

꽃시계 베개를 보며 아마도 “꽃이 피는 시간이에요”하고 답해야 할 것 같아요.

 베개를 품는 오랜 시간동안 늘 꽃피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가난한 살림이지만 골무는 10죽은 해야겠네요. 노랑저고리 오지랖 깃도 곱게 바느질해야 하구요.

실이 모자라면 내리는 실비 한줄기 빌려 수놓아야겠어요.

빗줄기에 간지럼 타듯 잎새들이 춤을 추네요.

 

패랭이 베갯모      

 

 

 

 

 
 
 

동재님의 뜨락

동사모 2010. 6. 10. 16:24

꽃이었다.

벚꽃, 도화꽃들이 다투어 피어 어제 까지 오르내리던 통도사 암자의 오솔길이

 꿈길처럼 아득한 것은 꽃 때문이었다.

 맑은 물소리도 더욱 빨라져 춘면가(春眠曲)를 부르는 아리따운 여인에게 홀리듯 발걸음은 땅을 잊었다.

 민화에서도, 베겟모에서도 가장 많이 나타나는 것이 꽃이다.

9세기 중엽 주경현의 당조명화록에 등장하여 금수 전반을 가리키는 의미로 쓰여진 화조화(花鳥畵)는

 특히 신혼의 안방을 장식하는 중요한 소재였다.

화조화 병풍이 둘러쳐지면 그 공간은 금방 꽃이 피고 새가 노니는 따뜻하고 환상적인 공간으로 바뀐다.

오른쪽부터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순으로 배열되어 있는 한 틀의 병풍을 둘러쳐두면,

밖에는 흰 눈 가득 쌓인 한겨울인데도 방안에서는 철철이 피는 꽃들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병풍의 첫 첩에는 주로 송학도(松鶴圖)를 두었다. 오복가운데서도 장수가 으뜸이라

장수를 상징하는 송학도를 제일먼저 둔 것이다.

그리고 봄을 알리는 매화가지에 한 쌍의 다정한 소쩍새를 마주보게 그려 넣었고,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첩은 빠지지 않았다. 석류는 꽃보다 열매를 충실히 그려 다자(多子)를 기원하였고,

그 뒤로 노안도(蘆岸圖)는 가을의 정취와 더불어 노년의 평안을 기원한다.

오동나무아래 봉황은 주로 화조 병풍의 말미를 장식하며, 한 쌍의 봉황처럼 일평생 걱정 없고

고귀하게 살기를 바라는 뜻을 담았다.

이처럼 꽃과 새를 중심으로 한 화조화는 파르르 금방이라도 사라져 버릴 것 같은

찰라의 풍경을 열어 보여준다. 그러나 그 순간은 ‘영원’을 꿈꾼다.

꽃은 ‘역동성’과 ‘한순간’을 보여주지만 그것은 살아 있음(生)을 보여주는

가장 아름다운 표상이다.

베갯모의 한 모서리에는 일심(一心)이라고 썼고, 반대쪽에는 백년(百年)이라고 수놓았다.

한철 지고 마는 봄꽃 위에 한마음으로 백년해로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한 땀 한 땀 푸른 물결을 이루었다.

맑은 개울물위로 복숭아꽃 한 잎 따라 흐르는 봄이었다.

 

 도화문 배갯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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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모 2010. 6. 10. 16:01

톡! 동백섬의 길섶에서 꽃 떨어지는 소릴 듣는다.

진녹색의 잎 사이로 점점이 붉은 점 뿌린 듯 핀 동백꽃.

바다의 비릿한 내음조차 차디 찬 겨울공기에 박하향처럼 얼어붙었건만

 동백의 붉은 마음은 어쩌자고 저리도 붉게 피어올랐을까.

아직 그 붉은 꽃잎 견딜 한줄기 빛조차 여리기만 한데.....

문득 “동백 아가씨”의 노래 한 소절이 떠오른다. “......그리움에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

저리도 붉은 색들을 그리움으로 멍이든 색이라고 노래하다니.....

.그리움은 수평선의 안개 같은 것 인줄만 알았다.

문득 눈가에 습기 맺히는 그런 아련함이 아니라 그토록 붉고 선연한 것이 그리움 이었다. 

겹겹이 쌓인 꽃봉오리 터지는 시간 알 수 없듯이 사랑이 오는 시간 알 수 없지만

꽃 지는 모습 이렇듯 선연 한 것 은 아직도 다하지 못한 사랑,

그 붉은 마음 그대로 간직한 채이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꽃잎이 떨어 지는 게 아니라 꽃! 떨어지는 동백꽃.

옛 여인들은 멀리 길 떠난 임을 기다리며 회문(回文)을 수놓았다.

어떻게 읽어도 같은 글귀가 되는 시를 수놓아 임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눈빛으로도 임에게 갈수가 없고, 비단결 같은 목소리조차 들려 줄 수 없을 때,

사무치는 마음 그 진심을 전할 수 없을 때, 임에게로 가는 단 하나의 길을 수(繡)로 내었다.

동백섬을 건너는 다리위에 동백꽃을 가슴에 모아 쥔 석상처럼 하염없이 기다리는 일 밖에 할 수 없을 때,

옛 여인들은 동짓날 길어진 해에 자수의 일선(一線) 더하여 좁은 바늘귀에 비단실을 꿰어 비단길을 낸다.

오색의 비단길을 수놓아 임에게로 갈수 있다면 베갯모 한 자락에 붉은 동백꽃 피우고 또 피우리라,

그 꽃향기 바람에 실려 임에게 소식 전해줄 것을 믿으며......

단 하루를 만나기 위해 일 년 내내 베틀에서 베를 짜는 직녀처럼,

동백꽃 붉은 꽃잎을 밤새 수놓는다. 임에게로 가는 단 하나의 길을 내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