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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쿨릭스 2006. 5. 11. 13:58

백남준 미술관 건립 기념 세미나. 오랜 만에 강석희 선생을 뵙다. "아, 내가 오늘 시간이 없어 발표가 끝나면 바로 내려가야 하거든. 근데 자네 발표 듣고 싶었는데, 미안하네. 발표문은 자료집에 들어 있지? 내려가면서 읽어 볼께." 서울대 음대에서 정년퇴직하시더니 계명대 음대로 내려가신 모양이다.

 

1.

 

1부에서는 강석희 선생의 발표가 흥미로웠다. 프라이부르크의 포르트너에게 사사했다'는 공식 프로필의 실체(?). 어느날 자신을 찾아온 백남준을 향해 포르트너가 당신이 쓴 곡을 보여달라고 하자, 백남준은 미리 가져간 가방에서 망치를 꺼내어 피아노를 부수려고 했다고 한다. 순간 포르트너가 신속히 제지하면서 "당신과 나는 음악적 방향이 너무 다르니 다른 선생에게 가 보라"고 한 게 전부라는 것.

 

어느 독일 비평가의 글을 보니 포르트너가 "백남준은 나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현상"라 표현했다고 하던데, 그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이제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한번의 sprechstunde를 갖고 "다른 선생에게 가보라"는 얘기를 들은 것이 전부인데도, 백남준은 즐겨 자기가 '포르트너에게 사사했다'고 떠들고 다녔다. 이것도 백남준식 유머의 일부일까?

 

강 선생은 백남준 작업의 음악적 배경을 인정하지 않는 눈치. 하긴, 둘은 음악적(?) 뱡항이 너무다르다.  그에게는 백남준과의 만남이 상당히 기분나빴을지도 모르겠다. 백남준이 의뢰하는 곡이 오죽 하겠는가? 그가 연출하는 황당한 퍼포먼스에 명색만 음악감독으로  배치되는 것도, 작곡을  장난이 아니라 진지한 활동으로 여기는 강 선생에게는 모욕이었을지 모르겠다.

 

2.

 

1부가 백남준을 직접 만났던 원로들의 증언이 주요한 내용이었다면, 2부의 발표자들은 이론적인 측면에서 백남준에 접근했다. 백남준을 '네오다다'로 포지셔닝하는 유준상씨의 발표, 플럭서스 이후의 백남준의 행적을 정리한 이정우의 발표, 백남준의 비디오 작업에 관한 박신의씨의 발표가 있었고, 이어서 백남준 이후를 짚어보는 나의 발표가 있었다.

 

백남준의 독창성으로 알려진 부분이 이미 다른 사람들에 의해 선취되어 있었고, 백남준의 예술적 성공 역시 실력이라기보다는 그의 화려한 인맥관리의 효과라는 주장으로 점철된 이정우의 발표는 나를 약간 짜증나게 했다. 이 친구는 왜 이렇게 꼬였을까? 평소에 '아방(가르드)'한 것을 좋아하는 그는 독창성의 저작권의 원소유자를 찾아주기에 바빴다. 이 모더니티도 내게는 부담스럽다.

 

굳이 그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백남준이 '비디오 아트의 효시가 아니'라는 주장은 널리 퍼져 있다. 사실 폐쇄회로의 사용, 비디오의 활용, TV 모니터를 오브제로 활용하는 등 백남준이 처음 한 것으로 알려진 대부분의 실험은 그에 앞서, 혹은 적어도 그와 같은 시기에, 다른 작가들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백남준의 작업의 의미가 조금이라도 감소할까? 

 

3.

 

중요한 것은 (1) 다른 작가들이 미디어를 어떤 맥락에서 활용했으며, (2) 미디어의 활용이 그들의 작업에서 얼마나 일관적이며, (3) 미디어를 활용한 그들의 작업이 어떤 이론을 동반하고 나왔는가 하는 것.  이 세 측면을 고려할 때에 백남준을 '미디어 아트의 창시자'로 보는 데에는 아무 무리가 없다. "새로운 것은 요소가 아니라 배치다."

 

문제는 평가의 기준. 백남준을 60년대에 일어난 2차 모더니즘에 위치시킬 때,  그의 작품들은 이미 주어진 모더니즘의 code에 따라 이루어진 message의 작성으로 떨어진다. 이때 그는 다른 플럭서스 예술가들과의 비교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백남준이 message의 작성자가 아니라 새로운 code의 창시자라는 것. 백남준이 갖는 작업의 가장 큰 의미는 모더니즘을 넘어서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유준상은 어느 비평가의 말을 빌려 '뒤샹-케이지-백남준'의 계보를 얘기한다. 케이지와 백남준을  비교하면, 사실 케이지가 개인적 역량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날 게다. 하지만 미적 주체성의 죽음을 목도한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의 '주관적' 역량이 아니라 그들의 작업이 후대에 끼친 '객관적' 영향이 아닐까? 어쨌든 백남준은 미디어 아트의 패러다임을 만드는 데에 성공했다.

선생님, 이 글을 퍼갑니다. 다른 사람들은 볼 수 없게 비공대로 담아두겠습니다. 부디 저의 무단 펌질을 허용해주시길 바랍니다.
비밀댓글입니다
재미있는 글이네요.
백남준도 학력위존가요?

글 담아갑니다.
정말로 백남준선생님은 와국에서 더 인정하는것 같아요. 저는 그 분 작업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미술사적으로 인정할겅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은 너무 고상?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