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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쿨릭스 2006. 5. 12. 21:28

혼자 내기를 걸었다.

그리고 졌다. 

  

 

어린이정경

 

 

 

 

기억 속의 우리 집은 너무 많다. 어떤 기억에서는 뒷뜰에 옥수수가 자라고 있고, 어떤 기억에서는 뜰에 수세미 넝쿨이 자라고 있고, 어떤 기억에서는 바로 집앞에 커다란 돼지 축사가 있다. 워낙 이사를 많이 다녀서 그런지 동사무소에 비치된 주민등록표의 주소란이 모자랄 정도. 아버지가 가난한 개척 교회의 목사였으니 남의 집에 세 들어사는 주제에 우리 집 문앞에는 늘 교회 간판이 붙어 있었을 게다. 우리 집은 다른 집과 뭔가 다르다는 게 어린 시절에는 늘 창피했다.

 

늘 이리저리 이사를 다니다가 우리 집을 갖게 된 게 1970년, 그러니까 만 일곱 살 때의 일. 그 해의 추석날 밤이 생각난다. 바닥 여기저기에 철근이 죽순처럼 삐져나온 집터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송편을 먹으며 휘영청 밝은 달을 바라봤다. 어렸을 적에 대부분의 기억이 밝지 못하지만, 그날 저녁만큼은 정말로 행복했던 것 같다. 제 집을 갖는다는 것의 의미도 모를 때이니, 그 행복감은 아마 아버지, 어머니가 느끼던 것이 묻어난 것일 게다.

 

집이 완성되어 입주하던 날의 기억은 없다. 어쨌든 새로 지은 집은 그 동네에서는 그래도 가장 근사해 보였다. 비싼 붉은 벽돌로 벽을 쌓고, 목조 골조의 지붕에는 단단한 기와를 올리고, 시멘트 벽돌로 집을 두른 담장 안에는 작은 마당도 있었다. 아버지는 거기에 산에서 뜯어온 야생의 잔디 옷를 입혔다. 담장 밑의 화단에는 봉숭아, 채송화, 나팔꽃, 과꽃, 분꽃, 맨드라미와 코스모스가 피고, 장독대 옆에선 호박이 자라던 게 생각난다.

 

제비의 영아살해

 

어느날 처마 밑에 제비가 날아들어왔다. 우리가 '도끼다시'라 불렀던 매끈한 콘크리트 바닥 위로는 흙과 똥을 떨어뜨리던 제비는 집이 완성되자, 그 안에 예쁜 알을 낳았던 모양이다. 어느날 새끼 제비 몇 마리가 흙집 위로 주둥이를 내밀고 있었다. 장마철이었던 어느 날, 새끼 제비 한 마리가 바닥에 떨어져 바둥대고 있었다. 사다리를 갖다 대고 다시 제비집 안에 넣어주었지만, 잠시 후에 보니 그 놈이 다시 바닥에 떨어져 있다.

 

장마철이라 먹이가 없어서 그랬을까? 아무래도 어미가 약한 놈을 일부러 떨어뜨리는 것 같았다. 제비 새끼들도 약아서, 가만히 보면 늘 먹는 놈만 먹고, 못 얻어먹는 놈은 계속 제 차례도 못 찾아먹는다. 못 먹을 수록 힘이 약해지니 결국 도태당할 수밖에. 높은 곳에서 다시 떨어진 불쌍한 녀석은 이번엔 숨이 끊어져 있었다. '파람초'라는 이름의 시큼한 캔디의 플라스틱 원통에 불쌍한 녀석의 사체를 담아, 꽃밭 한쪽 구석에 고이 묻어주었다.

 

지금이야 그게 나머지 새끼라도 잘 기르려는 어미의 합리적(?) 선택일 수 있다고 이해를 하지만, 당시에는 어미가 제 새끼를 죽일 수 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어쨌든 떨어진 제비의 다리를 고쳐주면 박씨를 물어다 준다는 얘기가 어쩌면 엉터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후 어떤 이유에선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제비집을 철거해버렸고, 이렇게 한번 집을 치워버리자 제비들끼리도 서로 연락이 되는지 다시는 제비가 날아들지 않았다.

 

오징어의 자살

 

어린 시절 또래의 아이들이 너무 거칠고 드세다고 느꼈다. 같이 놀면서도 그 아이들에게 속한다는 느낌을 별로 받지 못했고, 실제로도 약간의 따돌림이 있었던 것 같다. 특히 편을 둘로 갈라 놀이를 할 때, 인원이 짝수라면 괜찮은데 홀수일 때가 문제였다. 그 애들은 그런 수학적으로 불행한 사태에는 당연히 내가 빠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나는 그것을 그냥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나는 이런 대접 받는 게 목사 아들이라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언젠가 옆 동네 아이들과 축구를 할 때의 일이다. 그 동네 아이들보다 우리 쪽이 한 명이 많았다. 동네 대표팀 선발은 당연히 실력에 따라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리저리 출장할 기회를 놓치다 보면 당연히 공을 차는 실력도 떨어지고, 그러면 그럴수록 다시금 선발의 기회는 더 멀어지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아이들 세계에도 무자비한 자연의 법칙은 그대로 적용되어, 나는 또 다시 덩치 작은 새끼 제비꼴이 되고 만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이 순진하다는 말을 안 믿는다.

 

따돌림을 당하다 보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집단에게 잘 보이고 싶어진다. '오징어'라는 놀이를 할 때의 일. 몸집이 작은 나는 존재가 있으나마나한 '깍두기' 신세. 이때 상대편의 에이스 철모가 깽깽이 발을 하고 옆을 지나간다. 순간, 나는 그를 향해 몸을 날려 카미카제 공격을 해 버렸다. 나 하나 죽어 상대의 에이스를 잡을 수 있다면, 팀에 얼마나 도움이 되겠는가. 하지만 이 카미카제 공격은 분명 규칙의 위반은 아니지만 분명 정상적인 것도 아니다. 그날 나는 우리 팀 아이들에게까지 욕을 먹었다.

 

사라짐의 미학

 

밖에서 놀다가 집으로 들어오면 이 놈의 집구석이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다. 특히 큰 누나가 문제였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매일 싸돌아다니기만 해서 아버지가 거의 매일 난리를 쳤다. 나 같으면 그렇게 매 맞고 야단 맞았으면 귀찮아서라도 그냥 집에서 공부하고 있겠다. 그렇게 매 맞고도 기회만 생기면 다시 밖으로 새나간다. 공부 못해 한이 맺힌 아버지는 하라는 공부도 안 하는 딸이 이해가 안 됐던 모양이다. 그런데 굿판이 한 번 벌어지면 자기만 괴로운 게 아니라 온 집안이 다 괴로워야 한다.

 

그때는 내가 그냥 고아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왜 사람은 태어나기 위해 부모를 가져야 할까? 그냥 엄지공주처럼 혼자 꽃에서 태어나면 안 되나? 게다가 인구도 많다며 웬 놈의 아이들을 이렇게 줄줄이 까질렀을까? 게다가 낳으려면 좀 인간성 좋은 것들로 골라 낳을 것이지, 식구들이라고 하나 같이 얼굴만 봐도 지겨운 존재들. 도대체 나를 위해서 세상에서 좀 사라져주면 안 되나? 물론 그 자들도 살기 위해서 이 땅에 태어난 존재들, 내 소망이 아무리 간절해도 그걸 들어줄 리 없다.

 

그럼 어떻게 한다? 한 가지 방법이 있다. 그들이 세상에서 사라지기를 거부한다면, 내가 사라지면 된다. 어디로? 새로 지은 우리 집에는 다행히 나만의 공간이 있었다. 바로 다락방이다. 부엌 위에 판자를 올려 만든 그 조그만 공간은 나처럼 세파에 지칠대로 지쳐(?) 현실의 맥락에서 떨어져 나온 낡은 물건들이 모여 있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게 피곤할 때면 언제나 다락방에 올라가 이 잡동사니들 틈에서 묘한 연대의식을 느끼며 나만의 놀이와 공상을 즐기면서 지루한 시간을 보내곤 했다.

 

다락방

 

켠켠히 쌓인 먼지와 낡은 물건에서 나는 시큼한 냄새로 가득찬 어두컴컴한 다락방에는 백열전등이 하나 걸려 있지만 낮에는 조그만 창밖으로 흘러들어오는 자연광만으로 조명은 충분했다. 바닥의 판자들 새로 난 조그만 틈으로 아래에 있는 부엌에서 벌어지는 일을 파악할 수 있고, 신문지로 도배된 다락방 천장의 구멍을 통해 목조로 된 천장의 구조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면 네 개의 방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감시할 수도 있으나, 그 입구에 쥐똥이 잔뜩 널려 있어 그 너머로 가보지는 않았다.

 

골목을 향해 난 조그만 창을 통해 마을로 드나드는 이들의 동태를 감시할 수 있었다. 가끔 황당한 일도 있었는데, 아직까지 선명하게 기억나는 일이 있다. 어느날 다락방에 있는데 골목에서 날카로운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후다닥 나가보니, 한 아가씨가 혼비백산해 도망가고 있고, 흑인병사 하나가 까만 얼굴에 하얀 이빨을 드러낸 채 징그럽게 웃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시커먼 물건이 들려있었는데, 아마도 골목에서 소변을 보다가 지나가는 아가씨에게 그 물건을 들이댔던 모양이다.

 

다락방 창 바로 앞으로는 초가집의 지붕과 마당이 보였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집에 살던 누나가 나를 좋아했던 것 같다. 어느날 피아노를 치고 있는데, 내 옆에 앉더니 "나는 피아노 치는 애가 좋다"고 말했다. 그때 너무 가까운 거리에서 불어오는 그의 숨결이 부담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나보다 겨우 한 살이 많았지만, 그 나이에는 여자들이 발육이 더 빠르지 않은가. 그 누나는 분명히 '이성'의 코드로 나를 대했고, 아직 발육이 덜 된 나는 그게 딱히 싫은 건 아니지만 좀 거북하게 느껴졌었다.

 

낄낄....
개인사-남의 일기를 훔쳐본듯 하네요.성장기 소설의 한부분 같기두하구요.더 사실은 저의 어린시절의 한 부분을 다시 보는 듯 한... 저의 어머니는 문맹 이시지만요.저는 어릴때 항상 깍두기였어요.몸이 약해서(그게 결핵이였더란 것을 최근에 알았어요) 아이들 ...무서웠어요.놀이가 장난 아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