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조종사의 사회

미라쿨릭스 2006. 5. 15. 09:58

 

어렸을 적에 즐겨 만들었던 포커삼엽기(Fok DR1). 포커삼엽기의 붉은 색 도장은 '붉은 남작'(red baron)이라 불렸던 만프레드 폰 리히트호펜과 관계가 있다. 적들은 그를 '붉은 악마'(le diable rouge)라 불렀다. 붉은 악마의 효시는 따로 있었던 셈.  

 

 

만프레드 폰 리히트호펜. 귀족 가문의 장남은 군대에 가는 전통에 따라 입대한 그는 기병대를 자원했으나, 1차대전의 참호전에서 기병대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처음으로 정찰기에 타고 비행을 해 본 그는 전투기 조종사가 되기로 결심을 하고, 후에 오로지 전투기로만 구성된 부대(Jasta)를 창설하기도 한다. 그는 마지막으로 격추당할 때까지 모두 80여대의 적기를 격추시킨 에이스 중의 에이스. 금발의 미남이어서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가 격추시킨 비행기들의 시리얼 넘버를 적은 트로피. 저 시리얼 넘버 하나마다 조종사들의 생명이 걸려 있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한 가지 위안이 있다면, 리히트호펜의 경우 추락하는 적기를 끝까지 추적하여 사격을 하지는 않았다는 것. 덕분에 몇몇 조종사들은 격추되고도 생명을 부지할 수 있었다 한다.

 

 

포커삼엽기 옆에서 동생 로타르 폰 리히텐슈타인과 함께 서 있는 리히트호펜(오른쪽). 동생은 1차대전에서 살아남은 후 1922년에 추락사고로 사망한다.

 

 

1917년 공중전 도중에 기관총이 머리에 스치는 부상을 입은 리히트호펜. 옆에 서 있는 여인은 동생 케테 오터스도르프. 이 사고 이후 '붉은 남작'은 더 이상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고 한다. 

 

 

1918년 4월 21일 그의 마지막 비행을 위해 조종복을 차려 입는 모습. 이것이 그가 살아서 찍은 마지막 사진이 된다.

 

 

마지막 출격을 할 때 리히트호펜이 탔던 것과 동일한 기종. Fok DR 425.  리히트호펜의 죽음에 대해서는 아직 이견이 분분하다. 공식적으로는 아서 로이 브라운이라는 영국군 조종사에게 격추되었다고 하나, 최근에 비행시뮬레이션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실험을 한 결과 그를 죽음에 몰아넣은 것은 지상에 있던 어느 호주군 보병의 기관총 사격으로 드러났다고 한다.

 

 

 

격추된 직후 어느 호주군 병사가 그린 리히트호펜의 포커삼엽기.

 

 

호주군과 영국군 병사들이 붉은 남작의 비행기를 조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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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관하기 전 마지막으로 촬영한 붉은 남작의 모습.

 

 

 

 

1918년 4월 22일 리히트호펜의 장례식. 영국공군(RAF)은 최고의 예우를 갖춰 붉은 남작의 장례를  치러주었다. 

 

 

영국공군은 아무 방해 받지 않고 독일군 진영 상공으로 날아가 붉은 남작의 죽음을 통보하는 문서를 떨어뜨려주었고, 독일공군 역시 영국군의 허락을 받고 그가 묻힌 곳 위로 날아가며 무덤 위로 애도의 화환을 떨어뜨려주었다고 한다. 리히트호펜의 무덤. 프로펠러로 된 십자가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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