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詩 I

코알라 아빠 2020. 11. 17. 18:50

形影神(형영신)은 田園詩人(전원시인) 陶淵明(도연명)의 시 三首幷序(삼수병서) 중 1편이다.

形影神(형영신)은 몸, 그림자, 정신을 상징한다.

 

貴賤賢愚, 莫不營營以惜生, 斯甚惑焉. 故極陳形影之苦, 言神辨自然以釋之. 好事君子, 共取其心焉.

(귀천현우, 막불영영이석생, 사심혹언. 고극진형영지고, 언신변자연이석지, 호사군자, 공취기심언.)

 

서  문                                                 

 

귀하고 천하고 현명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막론하고 온 힘을 기울여 자신만 살려고 애를 쓰는데,

이는 매우 미혹된 것이다. 그러므로 몸과 그림자의 괴로움을 상세하고 빠짐없이 분별하여 그 미혹을

풀어낸 것이다. 이 일을 좋아하는 군자들은 함께 그 마음을 취해야 한다.

 

哲理的(철리적)인 관점에서 쓰인 形影詩(형영시) 3수는 시인의 나이 49세 때 쓴 작품이다. 시인이 처한 시대는

佛敎神學(불교신학)이 널리 유행했었던 때이며, 당시 名僧(명승)인 慧遠(혜원)이 廬山(여산)의 東林寺(동림사)에

主持(주지)로 있을 때 《形盡神不滅論(형진신불멸론)》, 《萬佛影銘(만불영명)》을 저술하여 淨土宗(정토종)의

敎義(교의)를 선양하였다. 이 일을 계기로 본시에서 도연명은 자신의 관점을 명백하게 밝히고 있다. 東晋(동진)

말년에는 佛敎(불교), 道敎(도교), 玄學(현학) 사상이 범람하였다. 정토종은 ‘神不滅論(신불멸론)’을 선양하였고,

불도를 믿으면 輪回를 거쳐 來生의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 도교의 일대 계파인 五斗米道(오두미도)

煉丹術(연단술)로 신선이 되어 永生할 수 있다는 것을 널리 알렸다. 현학은 무위자연관으로 인해 현실성이 없는

공허한 사상으로 인식되어가고 있었으므로 高官 및 귀족들은 사치와 향락을 추구하였다. 또 名敎(명교)로 인한

악영향이라고 한다면, 지식인들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명예를 추구하는 경향을 부추겼다는 점이다.

이 시에서는 이러한 일련의 일들을 겨냥하고 있으며, 당시 성행하고 있던 미신적 요소들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또 기타 정상적인 생명을 방해하는 잘못된 관점도 함께 비평하고 있다.

 

 

形贈影(형증영): 몸이 그림자에게 주다 1首(수)

 

위인최영지, 독부불여자

適見在世中, 奄去靡歸期.

 

적견재세중, 엄거미귀기

奚覺無一人, 親識豈相思.

해각무일인, 친식기상사

但餘平生物, 擧目情悽洏.

단여평생물, 거목정처이

我無騰化術, 必爾不復疑.

 

아무등화술, 필이불부의

顧君取吾言, 得酒莫苟辭.

고군취오언, 득주막구사

하늘과 땅은 영원히 존재하고

자연산천도 언제나 변함이 없다.

초목은 자연의 이치에 의해서

서리와 이슬을 맞으며 성하고 시든다.

사람이 가장 영특하고 지혜롭다고 하지만

초목의 영고성쇠처럼 홀로 탈바꿈하지는 못한다.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을 방금 전에 보았다면

어느 한 순간 세상을 떠나 다시 돌아올 수 없다.

그 누가 한 사람이 없어졌다는 걸 깨달을 것이며

친척이나 지인들인들 어찌 생각할 수가 있겠는가.

다만 살아생전에 사용했던 남겨진 물건들을

눈을 뜨고 바라보면 애처로움에 눈물이 난다.

신선이 되어 올라가는 도술이 내겐 없으니

필시 그렇게 되리란 법을 의심치 않는다.

원컨대 그대는 내 말을 잘 듣고서

술이 생기면 마음대로 사양하지 말게나.

 

〔작품 감상〕

 

이 시는 形(형), 즉 육신이 그림자인 影(영)에 대해 말하고 있는 형식이다. 하늘과 땅, 산천은 영원히 존재하고,

초목은 서리를 만나 시들어도 봄비를 만나면 다시 살아난다. 하지만 만물의 靈長(영장)이라고 하는 사람은 한

 세상을 떠나면 다시 돌아올 수 없기에 초목보다도 못한 自生의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처럼 필연적인 유한

성의 이치를 따라 삶을 이어가고 있는 정처 없는 나그네 인생이지만, 오히려 사람들은 천년만년 살 것 같은

마음으로 죽음을 자신의 일이 아닌 타인의 일로 착각한다. 일단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죽음과 동시에 세인들의

마음에서 점차 잊혀져가지만 단지 그가 생전에 사용했던 남겨진 물건을 보며 그에 대한 서글픔을 느낄 뿐이다.

나의 형체인 육신은 하늘로 오를 수도 없고 그림자 또한 나의 마지막 귀착점을 의심할 필요가 없다.

신선이 되어 불로장생하는 술법도 지닌 게 없으니 이 모두가 자신과는 현실적으로 거리가 먼 이야기일 뿐이다.

언젠가는 모두 떠나야하는 짧은 삶이라고 한다면, 서로 통쾌하게 술을 마시며 흉금을 털어놓고 잠시나마 모든

것을 잊고 환락을 즐기며 인생의 근심을 풀어보자는 내용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影答形(영답형):그림자가 몸에 대답하다 2首(수)

   

 

 

〔작품 감상〕

 

이 시는 그림자가 형체에게 대답하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늙지 않고 오래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신선의 道는 결국 구할 수 없는 不通의 길임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림자와 형체를 줄곧 지금까지

괴로움과 기쁨을 함께 해 온 合一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 사람이 죽음에 이르면 불꽃처럼 사라지는 것이기에

생전에 三不朽(삼불후), 즉 덕을 세우고(立德), 공을 세우고(立功), 후세에 남길만한 좋은 말을 남기는 것

(立言) 등의 행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儒家(유가) 학자들이 주장한 관점이기도 하다.

 

神釋(신석) 三首: 정신을 풀이하다 3수

   

 

〔작품 감상〕

 

천지의 조화는 본래 사심이 없고 편애함이 없으며, 만물은 모두 나름대로 일정한 규율을 가지고 있다.

우주는 무궁하지만 인간의 삶은 유한하다. 유한성으로 대변되는 生死의 문제는 고금에 걸쳐 오랜 시간

사람들이 고민해온 話頭(화두)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佛家(불가)에서 말하는 無常을 떠올릴 수 있다.

인간은 태어나면 반드시 죽게 마련이지만 도연명은 현실과 속세를 해탈하여 초연하게 살고자 했다.

≪涅槃經≫에

“세상의 모든 것들을 보건대, 살아있는 것은 모두 죽음으로 돌아간다. 수명을 오래도록 누린다 해도

때가 되면 소진되게 마련이다. 무릇 왕성한 것은 반드시 쇠함이 있고, 만남은 이별이 있게 마련이다.

젊음은 오래 머물  없고, 왕성한 기운도 병들게 되니, 일체 중생의 괴로움은 돌고 돌아 쉼이 없도다.

세상의 모든 것은 무상하며, 모두가 즐거운 것은 없다.”

一切諸世間(일체제세간), 生者皆歸死(생자개귀사). 壽命雖無量(수명수무량), 要之當有盡(요지당유진).

夫盛必有衰(부성필유쇠), 合會有別離(합회유별리), 壯年不久停(장년불구정), 盛色病所侵(성색병소침)

衆苦輪無際, 流轉無休息. 三界皆無常, 諸有無有樂.) 라는 말이 있다. 여기에서 시인은 자연의 이치에

순응해야한다는 관점을 제기하고 있다. 예술적인 면에서 形影神(형영신) 3수는 寓言(우언)의 형식을

사용하고 있으며, 이 三者사이에 서로 회답하는 형태로 논술을 전개한 것은 기발한 착상이면서 이 시의

특징을 대변하고 있다. 풍부한 哲理性을 바탕으로 시의 구성이 생동감 있게 이루어져 意趣가 넘쳐난다.

사람이 天地人 三才(삼재) 의 지위에 속해 있듯이 정신 또한 形影神 중 하나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음을

긍정하고 있다. 정신과 육체는 천연적으로 구비된 것이므로 육신이 서로 의탁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슬플 때나 기쁠 때를 막론하고 늘 함께 하는 합일의 존재이다. 이 시에서는 이 모두가 각자 개성을 지닌

독자적인 형상으로 부각시키기고 있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漢詩 I

코알라 아빠 2020. 11. 17. 18:40

[감상 포인트]

위 - 원시(源詩), 아래 - 현대 중국어, 즉 백화문(구어체)으로 해설한 것임.

 

歸去來兮 귀거래혜    ☜ 원시(源詩)

, 돌아가자.

回去,                   ☜ 백화문(현대 중국어)

 

田園將蕪胡不歸 전원장무호불귀 

고향 전원이 황폐해지려 하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

快要荒了,么还不回!

 

旣自以心爲形役 기자이심위형역 

지금까지는 고귀한 정신을 육신의 노예로 만들어 버렸다.

然自认为心志被形体所役使,정신이 육체의 노예가 되어버렸다 해도

 

而獨悲 해추창이독비 

어찌 슬퍼하여 서러워만 할 것인가.

悲?

또 어찌하여 혼자 걱정하고 슬퍼하고 있는가

 

悟已往之不諫 오이왕지불간 

이미 지난 일은 탓해야 소용 없음을 깨달았다.

认识去的错误已不可挽救

 

知來者之可追 지래자지가추 

앞으로 바른 길을 쫓는 것이 옳다는 것을 깨달았다.(미래의 일을 아직 쫓을 수 있음을 알았다

知道了未的事情可追回

 

實迷塗其未遠 실미도기미원 

내가 인생길을 잘못 들어 헤맨 것은 사실이나, 아직은 그리 멀리 가지는 않았다.

在是入迷途不算太

진정으로 길을 헤메었지만 아직 멀리 가진 않았다

 

覺今是而昨非 각금이작비 

이제는 깨달아 바른 길을 찾았고, 지난날의 벼슬살이가 그릇된 것이었음을 알았다.

经觉悟到今天而昨天

이제야 오늘이 맞고 어제가 틀렸음을 깨달았다

 

舟遙遙以輕 주요요이경양 

배는 흔들흔들 가볍게(경쾌하게) 흔들리고

快地飘荡

 

風飄飄而吹衣 풍표표이취의 

바람은 한들한들 옷깃을 스쳐가네,

徐徐地吹着上衣

 

問征夫以前路 문정부이전로 

길손에게 고향이 예서 얼마나 머냐 물어 보며

向行人打听前面的道路,

 

恨晨光之熹微 한신광지희미 

새벽빛이 희미한 것을 한스러워한다

恨晨光这样微弱迷离

 

乃瞻衡宇 내첨형우 

마침내 저 멀리 우리 집 대문과 처마가 보이자(고향의 집(좋지 않은 집)이 보여)

的陋屋,

 

載欣載奔 재흔재분  

기쁜 마음에 급히 뛰어갔다.

我高得往前直奔。

 

 

僮僕歡迎 동복환영 

머슴아이 길에 나와 나를 반기고  

童仆喜地前迎接,

 

稚子候門 치자후문 

어린 것들이 대문에서 손 흔들어 나를 맞는다

候在家

 

三徑就荒 삼경취황 

뜰 안의 세 갈래 작은 길에는 잡초가 무성하지만,

庭院小路虽将

뜰안의 작은 길은 황폐하지만

 

松菊猶存 송국유존 

소나무와 국화는 아직도 꿋꿋하다.

却喜中松菊存。

희원의 소나무와 국화는 아직도 그곳에 있다

 

携幼入室 휴유입실 

어린 놈 손 잡고 방에 들어가니

我拉着幼进内室,

 

 

有酒盈樽 유주영준

언제 빚었는지 항아리엔 향기로운 술이 가득

屋里着盛酒的酒樽。

방안에는 술이 가득 찬 술 항아리가 놓여져 있다

 

引壺觴以自酌 인호상이자작 

술단지 끌어당겨(가져와) 나 스스로 잔에 따라 마,

酒杯自斟自

 

眄庭柯以怡顔 면정가이이안 

뜰의 나뭇가지 바라보며 웃음 짓는다.

看着庭院里的使我开颜

뜰안의 나뭇가지를 바라보니 정말 기쁘도다

 

倚南窓以寄傲 의남창이기오 

남쪽 창가에 기대어 마냥 의기 양양해하니,

靠着南窗寄托着我的傲世情怀

 

審容膝之易安 심용슬지이안 

무릎 하나 들일 만한 작은 집(좋지 않은)이지만 이 얼마나 편한가.(도리어 편안함을 느낀다)

得身居陋室反而容易心安。

 

園日涉以成趣 원일섭이성취 

날마다 동산을 거닐며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본다.

天天在子里散步自成趣,

날마다 뜰을 거님을 기쁨으로 삼고

 

門雖設而常關 문수설이상관 

문이야 달아 놓았지만 찾아오는 이 없어 항상 닫혀 있다.

园门却常常闭关

뜰에 문은 달아놓았건만 늘 닫혀있다

 

策扶老以流憩 책부노이류게 

지팡이에 늙은 몸 의지하며 발길 멎는 대로 쉬다가,

拄着手杖或漫步或悠随处休息,

지팡이를 의지하거나 천천히 몸 닿는 곳으로 가 휴식을 취한며

 

時矯首而遐觀 교수이하관 

때때로 머리 들어 먼 하늘을 바라본다.

地抬起头来远处看看。

 

雲無心以出岫 운무심이출수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를 (자연스레) 돌아 나오고,

云烟自然而然地山洞出,

 

鳥倦飛而知還 조권비이지환 

날기에 지친 새들은 둥지로 돌아올 줄 안다.

鸟儿飞倦了也知道回

 

影翳翳以將入 영예예이장입 

저녁빛(햇빛이)이 어두워지며 서산에 해가 지려 하는데,

日光暗太阳将快要下山,

   

撫孤松而盤桓 무고송이반환 

나는 외로운 소나무를 어루만지며 서성이고 있다.(소나무에 기대어 돌아가는 것을 잊었다)

摸着孤松而流忘返。

 

  

歸去來兮 귀거래혜 

돌아왔노라.(돌아가자)

回去

 

請息交以絶遊 청식교이절유 

세상과 사귀지 않고 속세와 단절된 생활을 하겠다.(세상사람들과의 사귐을 끊겠다.)

我要断绝与外人的交游。

 

世與我而相違 세여아이상위 

세상과 나는 서로 인연을 끊었으니(등지었으니)

然世俗我乖相悖,

 

復駕言兮焉求 복가언혜언구 

 가마(벼슬길)에 올라 무엇을 구할 것이 있겠는가.(구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还驾车出游有什可求?

   

悅親戚之情話 열친척지정화 

친척들과 정담을 나누며 즐거워하고,(정담을 나누니 진실로 마음이 즐겁구나)

间说说知心话儿叫人心情欢悦

  

樂琴書以消憂 낙금서이소우

거문고를 타고 책을 읽으며 름(답답함과 걱정)을 달래련다.

读书可藉以解消愁。

 

農人告余以春及 농인고여이춘급 

농부가 내게 찾아와 봄이 왔다고 일러 주니,

我春天已经来临

 

將有事於西疇 장유사어서주 

앞으로는 서쪽 밭에 나가 밭을 갈련다.

要到西去耕耘田

 

或命巾車 혹명건차 

혹은 장식한 수레를 부르고,(어떤이는 천으로 둘러싼 수레를 끌고)

有的人着篷布小

 

或棹孤舟 혹도고주 

혹은 한 척의 배를 저어(어떤이는 작은 배를 젓고)

有的人着一叶小舟。

 

旣窈窕以尋壑 기요조이심학 

깊은 골짜기의 냇물을 찾아가고(굽이굽이 깊은 골짜기 냇물 따라 산으로 가거나)

而沿着婉的溪水入山谷,

 

亦崎嶇而經丘 역기구이경구 

험한 산을 넘어 언덕을 지나가리라.(험함 산의 작은 길 따라 언덕을 넘는다)

而循着崎的小路走山丘。

 

 

木欣欣以向榮 목흔흔이향영 

나무들은 즐거운 듯 생기있게 자라고,

得欣欣向

 

泉涓涓而始流 천연연이 

샘물은 졸졸 솟아 (세차게) 흐른다.

泉水始涓涓奔流。

 

善萬物之得時 선만물지득 

만물이 때를 얻어 즐거워하는 것을 부러워하며,

慕物得逢天

 

感吾生之行休 감오생지행휴 

나의 생이 (바야흐로)머지 않았음을 느낀다.

自己的一生行将罢休。

 

已矣乎 이의호   

, 인제 모든 것이 끝이로다!(끝이구나!)

算了

 

寓形宇內復幾時 우형우내복기 

이 몸이 세상에 남아 있을 날이 그 얼마이리.

寄身于天地间还有多少日!

이 몸이 천지간에 기대어 있을 날이 얼마나 있으리요

 

曷不委心任去留 갈불위심임거류 

어찌 마음을 대자연의 섭리에 맡기지 않으며.

何不放下心听凭生死?

 

胡爲乎遑遑欲何之 호위호황황욕하지 

이제 새삼 초조하고 황망스런 마음으로 무엇을 욕심낼 것인가

么还要遑遑不安想去里?

어찌하여 초조하고 불안하게 아직도 어디를 가려 하는가

 

富貴非吾願 부귀비오원 

돈도 지위도 바라지 않고,

企求富不是我的心愿,

부귀를 바라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오

 

帝鄕不可期 제향불가기 

죽어 신선이 사는 나라에 태어날 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寻觅仙境不可期冀。

신선이 사는 나라를 찾는 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懷良辰以孤往 회양진이고왕 

좋은 때라 생각되면 혼자 거닐고,(좋은 날씨에 혼자 나가거나)

只盼好天自外出,

 

或植杖而耘 혹식장이운자 

때로는 지팡이 세워 놓고 김을 매기도 한다.

或者手杖在田去除草培苗。

지팡이를 밭가에 세워놓고 김을 매고 묘목을 재배하러가기만을 바랄 뿐이요

 

登東皐以舒嘯 등동고이서소 

동쪽 언덕에 올라 조용히 읊조리고,

登上东边的高声长啸

동쪽 언덕에 올라 소리높여 읊조리고(휘파람 불고)

 

臨淸流而賦詩 임청류이부 

맑은 냇가에서 를 짓는다.(맑디맑은 유수를 보며 를 읊는다)

对清清的流水吟诵诗篇。

 

聊乘化以歸盡 요승화이귀진 

 조화의 수레를 탔다가 이 생명 다하는 대로 돌아가니,

姑且着大自然的化走向生命的尽头

 대자연의 변화를 따라 생명의 끝으로 가리니

 

樂夫天命復奚疑 낙부천명복해의 

주어진 천명을 즐길 뿐 무엇을 의심하고 망설이랴.

天安命有什么值怀

천명에 따라 분수에 맞게 살면 의심할 것 무엇 있으리

 

 

  - 全 文 -                             

 

陶淵明(도연명)은 철학을 생활화한 시인으로 동진(東晋)과 송(宋)의 왕조 교체기를 살았다.1)

후한(後漢) 말기 이래의 정치 사회적 혼란은 위진남북조(魏晋南北朝) 기간에도 계속되었고

위나라를 이은 서진은 전쟁과 대립으로 얼룩졌던 삼국을 통일하였지만, 황제들의 무능과

이민족의 침략으로 단기간에 막을 내렸다.2) 이민족에게 중원을 빼앗긴 채 남쪽의 건업(建業)에 도읍을 정한 동진은 혼란이 극심하여 100년여 동안에 크고 작은 반란과 전쟁 그리고 농민봉기가 계속되었다. 도연명이 살던 시기에 재위했던 동진의 제왕 다섯명 가운데 네 명이 폐위되거나 살해당한 사실이 이러한 혼란을 대변한다. 그리하여 결국 유유(劉裕)에게 멸망당했던 것이다. 도연명은 혼란한 시대를 살면서도, 그 속에서 좌절하거나 불의에 타협하지 않았다. 현실과 사회를 중시하는 유가와, 자연과 개인을 강조하는 도가로부터 각각의 장점을 조화해 낸 그의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젊은 시절에 유가로부터 영향을 받았으나 은거 생활을 한 후에는 도가에 경도되었으며 특히 장자(莊子)의 영향이 지대하였다. 그의 사상 중에서

특기할 만한 것으로 그의 생사관과 자연관을 들 수 있다. 그는 생사를 자연의 운행에 따른

한 과정으로 보고 삶에 연연해 하거나 죽음에 초조해하지 않았다. 이는 생사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것을 강조한 장자에게서 영향 받은 바가 크다.

 

장자는, "기(氣)가 변하여 형체(形體)가 생기고, 형체가 변하여 생명이 있게 되었다. 지금 다시 변하여 죽게 되었으니 이는 교대로 춘하추동의 사시가 진행되는 것"이라고 하여 죽음이란

'자연에 순응하는' 한 과정임을 설파하였다. 그의 「잡시(雜詩)」 제7수에는 이러한 생사관이

잘 나타나 있다.

 

내 집은 잠시 머물다 가는 여관이요, 나는 떠나가야 할 나그네 같구나.
떠나가서 어디로 향할 것인가, 남산에 본래의 집이 있다네.3)

 

생전에 살던 집은 잠시 머무는 여관이니 때가 되면 옛 집, 즉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도 자연의 변화에 따라가는 것일 뿐이다. 안연지는 도연명의 죽음에

대한 태도를 언급하여, "죽는 것을 '돌아가는 듯'이 여겼다"고 하였다.

도연명의 자연관은 도가의 무위(無爲)4) 개념에 근거하고 있다. 도가에서 본 자연은

만물의 주재자(主宰者)가 아니다. 만물은 원래 그러한 이치대로 스스로 생성,소멸한다.

다음 시구에서 도연명의 도가적 자연관을 살필 수 있다.

조물주는 사사로이 힘씀이 없어, 만물이 저절로 성대히 드러난다.

5)

-「형영신(形影神) 신석(神釋)」

 

대균(大鈞)은 자연의 다른 이름이다. 만물은 도(道)의 구체화(具體化)로서 저절로 번성한다. 이는 장자가 말한, "하늘은 사사로이 (만물을) 덮어 주는 것이 아니고, 땅은 사사로이

실어 주고 있는 것이 아니다"는 철리(哲理)를 시로 형상화한 것이다.

도연명은 '안빈낙도(安貧樂道)', '고궁(固窮)'6) 등 유가에서 획득한 진지함으로 도가의 말류인 방탄(放誕)7)이나 신선 추구에 빠지지 않고 노동을 중시하여 생활을 위한 근면을 강조했다. 또 순응자연(順應自然), 달관(達觀) 등 도가에서 획득한 지혜로 유가의 말류인 허위적 명교(名敎)8)나 세속에 물들지 않고 유가, 도가의 철학을 취사선택하여 자신의 인격과 사상을 이루었다고 하겠다.

순응자연의 실천

그는 전원에서 직접 농사지으며 그 감회를 시로 표현해냈는데,「고향집에 돌아옴」5수가 대표적인 예로 제1수에서, 전원으로 돌아와 느끼는 해방감과 만족감을 담백하게 그리고 있다.

 

귀원전거(歸園田居)

 
少無適俗韻 性本愛丘山

誤落塵網中 一去三十年

羈鳥戀舊林 池魚思故淵

開荒南野際 守拙歸園田

方宅十餘畝 草屋八九間

楡柳蔭後簷 桃李羅堂前

曖曖遠人村 依依墟里煙

狗吠深巷中 鷄鳴桑樹顚

戶庭無塵雜 虛室有餘閒

久在樊籠裏 復得返自然

 

내 어렸을 적부터 세속과는 맞지 않았으니, 성격이 본 자연을 좋아하였다.

잘못하여 세속의 먼지 속에 빠진지 벌써 삼십년

새장에 갇힌 새는 옛 수풀을 그리워하고 못속의 물고기는 옛 연못을 그리워한다네

남쪽들가의 황무지를 개간하여 못난 삶을 지키려 전원으로 돌아왔으니

사방택지는 10여묘에 이르고 초가집은 8,9간 정도라

느릅나무와 버드나무는 처마뒤에 그늘을 드리우고 복숭아와 오얏나무는 앞마당에 늘어서 있지

가물가물 멀리 마을 부락이 보이고 한적한 동네에 연기는 하늘하늘

개 짓는 소리 골목 깊은 곳에서 들리고 닭 울음소리 뽕나무 가지에서 들리네

집 마당에는 먼지도 없고 빈 집은 한가로움이 넘치니,

새장속에 오래 갇혀 있다가 이제 자연으로 돌아온 거라네.9)

 

전원으로 돌아오니 갇혀 있던 새가 풀려난 것 같은 자유를 느낀다.

벼슬살이에 구속되어 있다가 자연으로 돌아와서 바뀐 것은 더러움과 번잡함이 없는 외부환경이자 또한 자연의 본성을 따르는 내면의 심경이다. 자연과 융화된 모습이다. 그는 벼슬길에 나선 것이 자신의 본성을 위배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그러한 구속에서 벗어나는 것이 자연으로의 복귀이다.여기에서의 자연은 도가에서 말하는 '원래 그러한 상태'와 그 상태가

구현된 공간, 즉 전원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은거의 의미가 여기에 있다.

초월과 달관의 자유인

도연명의 시에는 세속적 욕망을 초월한 달관의 자세, 즉 천진(天眞)에 대한 추구를 보이는

시들이 많다. 「술을 마시며」 제1수에서, 인생에서 곤궁과 영달(榮達)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으니 곤궁에 초조해하거나 영달에 집착하지 말 것을 강조한다.

 

쇠락과 영달은 정해져 있는 곳 없이, 서로가 교대하며 함께 하는 것이다.
소생(邵生)의 오이밭 일이, 어찌 동릉후(東陵侯)로 있을 때와 같으리오.
추위와 더위가 갈마듦이 있듯이, 사람의 사는 길도 언제나 그렇다.
통달한 사람들은 그 이치를 아니, 아아 다시는 의심하지 않으리.
홀연히 한잔 술을, 해 저무는 저녁 기분 좋게 든다.10)

 

동릉후로 영화를 누리던 소생(邵生)이란 사람도 곤궁해지자 오이를 길러 생계를 유지하였다. 추위와 더위가 교대로 바뀌듯이 인생의 쇠락과 영달도 이렇게 바뀐다. 이러한 이치를 깨달은 자라면 그 때문에 마음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집착으로부터의 초월이다.

삶과 죽음의 문제도 그렇다. 도연명은 시 「귀거래사」에서, '그런대로 자연의 변화를 따라 생을 마감할 것이며/ 천명을 즐길 따름이니 다시 무엇을 의심하겠는가?"하고 읊는다.

자연의 이치는 마음으로 체득할 수 있을 뿐,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이를 깨닫고 그것을

'말을 잊음'으로 증명해 보인 시가 「술을 마시며」 제5수이다.

 

사람들 사는 곳에 오두막집 엮었으나, 수레와 말의 시끄러움이 없다.
묻노니 그대는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마음이 초원(超遠)하니 땅은 절로 외떨어진다.
동쪽 울 아래에서 국화를 따다가, 멀리 남산을 보게 되었다.
산의 모습이 저녁 되어 아름다운 가운데, 새들과 더불어 돌아간다.
이 가운데에 참뜻이 있으니, 따져 말하려다 이미 말을 잊었다.11)

 

마음이 담담하면 외적 조건은 자연히 초월(超越)된다. 여기에서 엿볼 수 있는 세계가 자연의 외물(外物)과 한 덩어리로 존재하는 물아일체(物我一體)12)이자 달관의 경지이다. 국화, 남산, 날아다니는 새, 시인 자신이 모두 하나가 된 경지이다. 도연명의 위대함은 바로 농촌에서

그저 진실하게 살아가는 가운데 도(道)를 체득한 점에 있다. 말없는 가운데 자연의 본질을

체득하고 순응하는 것이 도가 사상의 핵심인 것이다. 도연명은 노자와 장자가 말로 전하고자 했던 도를 몸으로 실천한 사람이라고 하겠다.

소나무와 국화를 좋아했던, 지조의 상징

도연명은 혼란기를 살면서도 절개를 굽히지 않았다. 그는 역사적으로 지조를 위해 곤궁함을 감내하거나 목숨을 초개와 같이 여긴 이들을 높이고 기렸다. 은(殷)ㆍ주(周) 교체기의 백이(伯夷)와 숙제(叔齊), 자기를 알아준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 형가(荊軻), 늙어서도 고궁

(固窮)의 절개를 견지했던 영계기(榮啓期) 등이다. 그는「술을 마시며」 제2수에서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

 

선한 일 많이 하면 보답이 있다는데 백이, 숙제는 서산에서 살았네.
선과 악이 진실로 보답 받지 못한다면, 무슨 일로 부질없이 그런 말을 내세웠나.
영계기는 90에도 새끼 띠 하였는데, 하물며 젊은 시절의 굶주림과 추위쯤이야.
고궁(固窮)의 절개를 믿지 않는다면, 백대 후에 장차 누가 전해 주리오.13)

 

상단의 4구와 하단의 4구에서 의미가 반전되고 있다. 상단에서는 백이, 숙제 같은 사람이

굶어 죽고 영계기 같이 도를 깨달은 이들이 추위에 고생했으니 적선(積善)의 의미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회의하고 있다. 그러나 하단에서 이를 반전시켜서, 어려움 속에서도 굳게

절개를 지켜 훌륭한 이름을 남겨야 한다고 하였다. 백이와 숙제는 은, 주의 왕조 교체기를

맞아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바를 따르고자 죽음도 개의치 않았다. 진ㆍ송의 교체기를 살았던 그는 이 때문에 더욱 백이, 숙제와 같이 절의를 지킨 사람들에게 경도되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절개를 소나무, 국화 등 자연물에 빗대어 드러내곤 한다. 공자가,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드는 것을 알게 된다"고 하였듯이 소나무는 사시사철

푸르름을 잃지 않는 데서 변함없는 절개를 상징한다. 도연명은 「술을 마시며」 제4수에서,

 

홀로 선 소나무를 만나게 되어, 날개 거두고 멀리에서 돌아왔다.
거센 바람에 무성한 나무 없는데, 이 그늘만이 유독 쇠하지 않았다.14)

 

라고 하여 소나무가 풍파에 지친 자신에게 의지처가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귀거래사」에서는, 동산의 오솔길은 거칠어졌으나 소나무와 국화는 그래도 남아서 자신을 반기고

있음을 읊는다.15) 도연명은 소나무와 마찬가지로 국화에 대해서도 어려움에 굽히지 않는

절개를 배우고자 하였다. 「화곽주부(和郭主簿)」 제2수에서, 서리를 무릅쓰고 피어 있는

국화를 소나무와 함께 칭송하여 '서리 아래의 호걸'이라는 것이다.

 

향기로운 국화는 숲에 피어 빛나고, 푸른 소나무는 바위산 위에 늘어서 있다.
이 곧고 빼어난 모습을 간직한 채, 우뚝하니 서리 아래 호걸이 되었구나.16)

 

다른 꽃들은 시들어 떨어지는 계절에, 서리를 무릅쓰고 피어나는 국화 및 푸른 잎이 지지

않는 소나무의 기상을 칭송하고 있다. 힘든 시대를 살았던 도연명에게 소나무와 국화는

바로 마음이 서로 통한 벗이었다.

 

그의 시는 평생에 걸쳐 이룩한 그의 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다. 도연명은 유가와 도가의

가르침을 잘 조화시켜 삶을 영위한 전형적 예이다. 이렇게 조화된 인격에서 깊고도

감성이 풍부한 시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도연명 시의 가치

첫째는, 오언고시(五言古詩)17)의 완성이다. 오언고시는 한나라 시대에 유행했던 민가체

(民歌體)의 시, 즉 악부(樂府)가 5언(言)으로 정형화하면서 나타난 시체이다.

그는 전원에서 체득한 삶의 이치를 담담히 그려냄으로써 5언시의 서정성과 예술성을

최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도연명에 이르러 완성된 5언시를 바탕으로 남조를 거치면서

형식적 기교가 강구되어 당(唐)나라 시대에 이르러 근체시가 출현한 점을 고려할 때,

도연명 시의 문학사적 의의는 자못 크다고 하겠다.

둘째, 전원문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는 점이다.『시경(詩經)』이래 농사를 읊은

시가 많이 있었지만, 농사는 단순한 소재로 등장할 뿐이었다. 그는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전원과 자연에 대한 감회를 써냄으로써 중국 문학사에 처음으로 '전원문학'을 등장시켰다.

이후 전원은 시인들에게 중요한 주제가 되었다.

셋째, 이상향(理想鄕)의 제시다. 도연명은 『도화원시(桃花源詩)』의 「병기(幷記)」에서, '도화원'이라는 이상향을 그려냈고 그때부터 도화원은 동양적 유토피아의 전형이 되었다.

넷째, 후세 사람들에게 이상적인 인격의 본보기를 제시하였다는 점이다. 도연명은 세상을

떠난 직후부터 많은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았는데, 그것은 문학적 성취 못지않은 그의

인격과 절개 때문이었다. 송나라 때의 문호 소동파(蘇東坡)는, "내가 도연명에 대해 어찌

그의 시문만을 좋아하겠는가? 그 사람 됨됨이에 있어서 진실로 느끼는 것이 있다"고 할

정도로 도연명의 시 못지않게 그의 인품을 좋아했던 것이다.

 

그리고 소통(蕭統)은 도연명을 무척이나 좋아하여, 최초로 도연명의 시문(詩文)을 모아

『도연명집(陶淵明集)』을 편찬하였다. 도연명보다 1세기 정도 뒤에 살았던 소통은,

남조 양(梁)나라의 황태자 -양나라 무제(武帝) 소연(蕭淵)의 장자 - 로서, 유명한 시문

총집(詩文總集)인『문선(文選)』18)의 편자이다.

우리나라에 도연명의 시가 소개된 것은 삼국 시대로 추정되는『문선(文選)』의 전래를

통해서이다. 이후 우리 선인들은 도연명의 시문과 그의 인격을 애호하였다. 특히 고려시대

말기 시대 상황과 어울려 그 정도가 심하였는데, 이는 왕조 교체기에 처했던 지식인들이

도연명에게서 그 인품과 절개를 배우고자 했기 때문이다.

대표적 인물이 '여말삼은(麗末三隱)'이라고 불리는 포은(圃隱) 정몽주, 도은(陶隱) 이숭인, 목은(牧隱) 이색이다. 이색(李穡)은 조선 시대로 접어든 이후에는 은거 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의 생애와 문학은 도연명과 공통되는 점이 많다.

'시의 품격은 사람의 품격에서 나온다'고 하였듯, 도연명의 문학이 후대에 끼친 영향과

그의의 인격이 후대에 미친 영향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그의 높은 문학적

성취는 고상하고 위대한 인격에서 나왔던 것이다.

 

인생에서 성공이란 무엇일까? 만일 도연명이 유가적 이상에 따라 벼슬길에서 영달하였다면,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형상화한 훌륭한 시들이 과연 나올 수 있었을까?

지혜로운 삶이란 무엇일까?
집착을 버리는 것이다. 그래야 부질없는 갈등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서 우리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지조를 버리고 일신의 편안함을 추구할 것인가, 절개의 견지를 위해 고통을 감내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판단은 평소의 수양된 인격에서 나온다. 인격 수양의 방법은 도연명같은 선현들의 가르침을 공부하는 것이다.

 

『한역(韓譯)도연명 전집(陶淵明全集)』, 차주환 옮김, 서울대학교출판부 2001.

 

[각주]

1) 위진 남북조대의 동진(317~420), 송나라(420~479) * 수나라의 중국통일(581년)

2) 위는 220년부터 265년까지, 서진은 265년부터 317년까지 존속했다.

3) 家爲逆旅舍, 我如當去客. 去去欲何之, 南山有舊宅.

4) 인위적 조작이 없는 상태이다.

5) 大鈞無私力, 萬物自森著.

6) 곤궁함에 꿋꿋하여 마음에 변화가 없는 것을 말한다.

7) 사회 질서나 규율을 무시하면서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일컫는다.

8) 명분(名分)을 중시하고 강조하는 가르침을 일컫는다.

9) 少無適俗韻, 性本愛丘山. 誤落塵網中, 一去三十年. 羈鳥戀舊林, 池魚思故淵. 開荒南野際, 守拙歸田園. … 戶庭無塵雜, 虛室有餘閑. 久在樊籠裏, 復得返自然.

10) 衰榮無定在, 彼此更共之. 邵生瓜田中, 寧似東陵時. 寒暑有代謝, 人道每如玆. 達人解其會, 逝將不復疑. 忽與一觴酒, 日夕歡相持.

11) 結廬在人境, 而無車馬喧. 問君何能爾, 心遠地自偏. 采菊東籬下, 悠然見南山. 山氣日夕佳, 飛鳥相與還. 此中有眞意, 欲辯已忘言.

12) 자연 속에서 상대와 나에 대한 분별을 초월한 경지이다.

13) 積善云有報, 夷叔在西山. 善惡苟不應, 何事空立言. 九十行帶索, 飢寒況當年. 不賴固窮節, 百世當誰傳.

14) 因値孤生松, 斂翮遙來歸. 勁風無榮木, 此蔭獨不衰.

15) 三逕就荒, 松菊猶存.

16) 芳菊開林耀, 靑松冠巖列. 懷此貞秀姿, 卓爲霜下傑.

17) 중국 고전시의 한 장르. 칠언고시(七言古詩)와 함께 고체시(古體詩)를 대표하는 시의 형식.

18) 『문선』은 중국에서 현존하는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된 시문총집으로 모두 30권이다. 선진(先秦) 시대에서 양나라 때에 이르기까지 130인의 작품, 700여 편의 시문을 수록하였는데, 역대로 문인, 학자들의 애호를 받았다. 주석본으로 당나라 시대 이선의 『문선주(文選注)』가 유명하다.

 

 
 
 

漢詩 I

코알라 아빠 2020. 11. 17. 18:35

*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이상향'을 '무릉도원'이라고 하죠. 서양의 '유토피아'에 해당하는 무릉도원의 원전인

도화원기를 감상해 볼까요? 도연명은 중국인들이 숭상하고 좋아하는 문인이죠. 중국 역사상 가장 혼란기라고

할 수 있는 '위진 남북조시대(220~581)' 동진 출신이죠.  

 

晉太元中,武陵人, 捕魚為業,緣溪行,忘路之遠近;忽逢桃花林,夾岸數百步,中無雜樹,

芳草鮮美, 落英繽紛;漁人甚異之。復前行,欲窮其林。林盡水源,便得一山。

山有小口,彷彿若有光,便舍船,從口入。

初極狹,纔通人;復行數十步,豁然開朗。土地平曠,屋舍儼然。有良田、美池、桑、竹之屬,

阡陌交通,雞犬相聞。其中往來種作,男女衣著,悉如外人;黃髮垂髫,並佁然自樂。

見漁人,乃大驚,問所從來; 具答之。便要還家,設酒、殺雞、作食。村中聞有此人,咸來問訊。

自云:「先世避秦時亂,率妻子邑人來此絕境,不復出焉;遂與外人間隔。」

問「今是何世?」乃不知有漢,無論魏、晉!此人一一為具言所聞,皆歎惋。

餘人各復延至其家,皆出酒食。停數日,辭去。此中人語云:「不足為外人道也。」

既出,得其船,便扶向路,處處誌之。及郡下,詣太守,說如此。太守即遣人隨其往,尋向所誌,

遂迷不復得路。南陽劉子驥,高尚士也,聞之,欣然規往,未果,尋病終。後遂無問津者。

(http


진(晋)나라 태원(太元) 조에, 무릉(武陵) 출신 한 어부가 있었는데, 하루는 시내물을 따라 너무 멀리 들어갔다가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그때 문득 복숭아 숲을 만났는데, 좁은 계곡물길 따라 수 백 보를 전진해도 모두 복숭아

나무뿐이었다. 향기로운 풀 아름다운데, 복숭아 꽃잎 어지럽게 흩날려, 어부가 매우 이상하게 여겼다.

다시 앞으로 나가면서, 복숭아나무 숲 끝까지 가보려고 했다. 
숲이 끝난 곳에 수원지(水源池)가 있고, 자그마한 산이 나타났다.

산에 조그마한 굴이 있었는데 밝은 빛이 있는 듯하여 배에서 내려 동굴 안쪽으로 들어갔다.

굴 입구가 매우 좁아 사람이 간신히 지나갈 수 있었는데, 다시 수십 보를 더 들어가니 넓고 확 트였다.

땅은 넓고 평평하고, 집들도 잘 정돈되어 있고, 기름진 땅과 아름다운 연못, 뽕나무와 대나무 등이 있었다.

밭 사잇길은 사방으로 통하고 닭 울고 개 짖는 소리가 도처에서 들렸다. 이 곳에서 오가며 농사짓는 것과 

남녀 옷차림이 모두 바깥 세상과 같았다. 노인과 어린아이가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했다.

그들은 어부를 보고 몹시 놀라며 어디서 왔는가 물었다. 어부가 자세히 대답하자, 지기들 집으로 초청해

술상을 차리고 닭을 잡아 먹기를 청했다. 마을에 이런 사람이 와있다는 소문을 듣고, 마을 사람들이 모두

찾아와서 자세히 물었다.

그들은 스스로 "선조들이 진나라 때 난을 피해 처자와 동향 사람을 거느리고, 세상과 단절된 이곳으로 왔다

다시 나가지 않았소. 그래서 바깥 세상 사람과 왕래가 끊겼소"라고 말 하고서 (어부에게)물었다.
"지금이 어느 시대입니까?" 그들은 한나라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몰랐고, 위와 진나라는 말할 것도 없었다.

이에 어부가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을 상세히 말해주자, 모두 놀라며 탄식했다.

다른 사람들도 그를 자청하여 술과 음식을 대접했다. 어부는 며칠동안 묵은 후 작별 인사를 했다.

마을 사람들이 그에게 부탁했다. "바깥 사람들에게 이야기 할 것이 못됩니다." 

어부는 그곳을 빠져나와 배를 타고 전에 왔던 길을 따라 돌아 오면서 곳곳에 표시를 해놓았다.

마을에 돌아와 태수를 뵙고 이러한 사정을 이야기 했다. 이에 태수가 곧 사람을 보내, 그가 온 곳을 따라

표시한 곳을 찾았으나 끝내 길을 잃고 찾지 못했다. 
남양 사람 유자기는 인품이 높은 선비였다. 이 이야기를 듣고 기뻐하며 그곳을 가보고자 했으나 끝내 찾지

못하고, 이로 인해 죽고 말았다. 그 후로는 이 나룻터를 찾거나 묻는 이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