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山을 꿈꾸며

아름다운 美山으로 향한 내 소중한 꿈을 담는 공간

17 2022년 02월

17

카테고리 없음 아흔 아홉 날의 아침과 백 번째의 밤

여보, 당신 없이 아흔 아홉 날의 아침을 맞이했고 지금 당신 없는 백번 째의 밤을 보내고 있어 깨어있는 밤이 길수록 당신을 눈물로 쏟아내 당신은 줄줄 흐르다가 마침내 진득한 고약처럼 내게 다시 붙어 당신이 그렇듯 내게도 그리운 건 특히 당신 그래서 당신에게 밥 먹이듯 매일 당신의 전화기를 충전해 그립다그립다 하며 그리고그리던 당신 꿈을 꾸었어 함박눈 종일 내리는 숲길에서 당신 기다리는 꿈 끝내 당신은 오지 않았지만 나는 슬프지 않았어 꿈속에서 당신 기다리는 동안 설레고 행복했거든 그리고 고마웠어 당신 없이 맞이할 백 번째 아침이 다가오고 있어 수리봉 자락, 오목한 산등성이 우리들의 꽃피는 언덕으로 예쁜 해가 떠오를 거야 나는 영원히 당신 안의 해 되어 줄게 당신은 나를 감싸는 동그란 무지개 - 해무리가 ..

17 2022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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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숨은 남편 찾기 놀이

미산에 들어왔다. 까만 틀, 액자 속 빙긋이 웃고 있는 사람 서로 그리운 사람 둘이 숨바꼭질 한다. 술래는 언제나 내가 당신, 꼭꼭 숨어라 찾는다~ 냉장고 냉동실문 열었다. 먹는 것보다 얼리는게 많았던 봉지더미 속 지퍼백에 가지런히 담겨있는 옥수수 당신, 여기 있는 거 알고 있었다. 십년이 가도 백년이 가도 절대로 녹지 않게 꽁꽁 언 채로 다음엔 안방 지나 찜질방, 문 빼꼼 여는 순간 아하, 당신 바로 찾았다. 커다란 유리병 속 돌배주, 머루 효소, 오미자 식초, 취하도록 달콤하고 새콤한 향기 십년이 가고 백년이 가도 절대로 썪지 않게 향기, 즙, 꽁꽁 재워진 채로 거실문 열고 살금살금 신발장 문 열다. 투박한 은범의 신발 아래 칸 크기 다른 상자들 노란 뚜껑 우유병 딸기 살 때 함께 온 빨간 플라스틱 ..

11 2022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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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사 후 첫 생일

지난 1월 8일은 남편의 생일이었다. 사 후 첫 번째 생일이라 시댁과 친정 식구들이 모여 조촐하게 생일상을 차려주었다. 음력 12월 6일, 만 63세. 더 이상 나이 들지 않는 남편, 케잌엔 초를 꽂지 않았다. 손뼉치며 생일축하 노래도 불렀다. 부디 흠향하고 지상에서 못다한 폼나는 삶 천상에서 누리길 간절히 바랐다. 어느새 두 달이 지났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사망이라는 글자가 박힌 서류들을 떼어 들고 세상에 남아있는 남편의 이름을 지우고 남편이 주인이었던 모든 것 들을 내 것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모질어진 나를 남편이 너무 섭섭해하지 않길 바라면서 여보, 나 잘하고 있는 거지? .

01 2022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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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새해를 맞으며

오늘도 대룡산에서 솟아오른 해는 금병산과 열세살 은범이가 뛰놀던 안마산을 지나 삼악산으로 넘어갔어 하늘은 연보랏빛 구름은 분홍빛으로 물들이고 빨간 빛으로 따스히 산등성이를 어루만지는 노을을 바라보노라니 슬펐어 눈물이 났어 당신은 죽을 만큼 아팠고 그래서 떠났지만 나는 살 만큼 슬프고 살 만큼만 울어 어느새 오늘이 가고 내일이 왔어 새해를 막 건넌 거야 당신과의 삶은 멈추었지만 아름답지 않은 게 하나도 없었던 우리의 추억을 무수히 되돌리며 나, 잘 살아낼게 그렇게 당신도 나랑 살자 나를 잊지 않겠다던 당신 안녕~ 나도 당신 잊지 않을게 그 곳에서 잘 지내

24 2021년 12월

24

카테고리 없음 결혼해 줘서 고마웠어

여보, 일 년 중 밤이 제일 긴, 동지 지나 12월 23일, 오늘은 우리의 서른일곱 번 째 결혼 기념일이야. 아무 날도 아닌 것처럼 하루를 보내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밤을 맞이하려니 당신이 있을 것 같은 미산이 너무 그립더라. 산방 너른 창에 당신이 좋아하던 크리스마스 전구를 밝히고 나, 솔직해지기로 했어. 파스냄새 배인 당신 베개 안고 소리 내어 펑펑 울어볼래 지난 서른여섯 번의 결혼 기념일을 정성껏 챙겨준 당신은 늙지 않는 소년 이었어. 나를 기쁘게 할 기발한 일들을 어쩜 그리 잘 생각해내고 작전처럼 실행하던지 나의 미지근힌 반응에도 당신은 항상 행복해 했어. 그때 내가 더 호들갑 떨며 기뻐해주지 못한 게 미안해. 생일 아침마다 당신에게서 받는 편지는 읽고 또 읽어도 달콤했는데 이제 당신을 잃고 보니..

19 2021년 12월

19

카테고리 없음 여보, 울지 마요

여보, 울지 마요 / 왕은범 해도, 별도, 달도 당신이랑 내가 좋아하는 꽃들도 언젠가는 다 져요 내가 말 했잖아요 때가 되어 지는 것들은 다 아름답다구요 헤어짐이 조금 더 빠르고 늦을 뿐 누구나 다 하나로 왔다가 하나로 가는 것이라구요 내가 당신 곁을 조금 더 빨리 떠날 것 같아 미안하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슬피 울진 말아요 나 죽어도 다시 그대 위해 고운 구절초로 철마다 피어나리니 그대여 내 사랑하는 안해여 이제 그만 눈물을 멈추어 주세요 2021. 10. 12 (전화기 메모지에서 옮긴 글) 밤 새 눈이 내렸어 구절초 하얀 꽃잎같은 눈 당신과 반질대도록 앉아있던 그네에도 온갖 꽃씨를 말리던 평상에도 눈이 소복했어 주목나무 아래, 나를 그리고 내가 그리는 당신에게로 눈을 쓸며 갈 때 좀 울었어 가을은 당신..

13 2021년 12월

13

카테고리 없음 임종 전 남기는 말

1. 미산 집은 처분 혹은 유지 2. 춘천에 작은 아파트 한 채 구입(엄마 집) 3. 병세 악화되면 입원시키고 연명치료는 하지 않는다. 4. 죽거든 화장하여 미산 숲에 뿌릴 것 5. 연금, 저축, 자동차, 기타 동산 및 부동산은 모두 엄마 명의로 이전할 것 6. 사망후 카톡 주소록에 있는 지인들께 부고하고 장례식 마친후 다시 감사 인사 드릴 것 7. 장례 후 시간 내서 내 블로그 인연님들께 나 대신 감사의 인사 전할 것 8. 영정 사진이 필요할 경우 컴퓨터 사진 파일에 저장되어 있는 스냅사진 사용할 것 9. 완성하지 못한 내 소설 `열 세살 은범이`, 시집 '병 시인, 아픈 시인의 노래` 출판을 마무리 지어주면 고맙고 10. 홀로 남은 엄마를 절대 외롭게 하지 말고 자주 전화드리고 찾아뵈올 것 11. 소..

04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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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눈에

눈에 / 왕은범 꽃을 담자, 이젠 구절초는 왜 가을에 피어야 하는지 내 가을은 아즉 멀기만한데 하는 수 없지 눈에 담아 눈물로 키워내 눈물꽃이라 이름 지어주고 구절초인 양 고이 품어 주어야지 이젠 내 모든 꽃들을 내 두 눈에 담아야할 때 눈에 담아 두고 눈물로 키워야할 때 2021. 8. 10. 오후 6시 ( 전화기 메모G에서 옮겨 적은 글) 내 귓속엔 아직 당신의 신음 소리가 산다. 그 신음이 너무 아파 울고 있던 나에게 ' 여보, 아직은 울 때가 아니야~ ' 휴지 수북이 쌓이도록 밤새 코를 풀더니 당신은 코로 울고 있었구나 그렇게 눈물로 꽃을 키우고 있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