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해 줘서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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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2. 24.
여보,
일 년 중 밤이 제일 긴,
동지 지나 12월 23일,
오늘은 우리의 서른일곱 번 째 결혼 기념일이야.
아무 날도 아닌 것처럼 하루를 보내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밤을 맞이하려니
당신이 있을 것 같은 미산이 너무 그립더라.
산방 너른 창에
당신이 좋아하던 크리스마스 전구를 밝히고
나,
솔직해지기로 했어.
파스냄새 배인 당신 베개 안고
소리 내어 펑펑 울어볼래
지난 서른여섯 번의 결혼 기념일을
정성껏 챙겨준 당신은
늙지 않는 소년 이었어.
나를 기쁘게 할 기발한 일들을
어쩜 그리 잘 생각해내고
작전처럼 실행하던지
나의 미지근힌 반응에도
당신은 항상 행복해 했어.
그때 내가 더 호들갑 떨며 기뻐해주지 못한 게 미안해.
생일 아침마다 당신에게서 받는 편지는
읽고 또 읽어도 달콤했는데
이제 당신을 잃고 보니
당연하다 여겼던 당연한 게 세상엔 없네.
꿈에도 나타나지 않는
간절하게 그리운 당신,
나랑 결혼해 줘서 정말 고마웠어.
영원히 사랑해~
-
혜숙님의 글을 다 읽기도 전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네요.
답글
왜 안 그러겠어요.
미산님께서 기념일이면 플래카드 직접 만드셔서
축하의 메시지로 축하해 주셨는데요.
그때는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이 지금은 그리움이고 사랑이지요.
세상 어느 누구보다 사랑을 많이 받으셨기에
그리움이 더 크실 줄 믿습니다.
소소한 것으로 혜숙님을 기쁘게 해 주신 것 중의 또 하나
야외 테이블에서 식사를 할 때면
들꽃을 꺾어 병에 꽂아 식탁 한편에 놓아 주시곤 했지요.
그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았던지요.
잘 차려진 식탁보다 미산님의 애정이 담긴 들꽃이
얼마나 감동이었는지요.
원래 사랑하는 이는 꿈에 나타나질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너무 서운해하지 마시고 힘내시고 따뜻한 겨울 보내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