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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2. 21. 16:34
<에밀 졸라의 초상>의 배경은 관망적이 아니며

김광우의 <마네의 손과 모네의 눈>(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보수주의를 옹호한 후퀴에르는 잡지 『르 나시오날 Le National』에서 전통적인 사실주의 회화를 두둔하면서 조형주의를 창조한 마네의 지나친 자유를 비난했다.

“<에밀 졸라의 초상>의 배경은 관망적이 아니며, 졸라가 입고 있는 바지는 천으로 만든 것이 아니다.”

마네가 이 그림을 졸라에게 주었을 때 졸라는 그다지 흡족해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작품은 졸라의 절친한 고향 친구 세잔이 그린 졸라의 모습과 비교할 만하다.132
졸라의 제자였고 또 비서로 지낸 폴 알렉시스가 졸라에게 책을 읽어주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간단한 스케치만 되어 있는 졸라의 모습은 그림 전체와 어울리지 않게 대조를 이룬다.
세잔, 졸라, 알렉시스 세 사람 모두 엑상프로방스 출신이었다.
이 작품은 졸라가 타계하고 여러 해 후에야 졸라의 다락방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
세잔은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들을 파기했는데 미완성의 이 그림이 남아 있는 게 흥미롭다.


이 그림은 또한 마네가 그린 <자차리 아스트뤽의 초상>133과 비교되는데 졸라의 초상에 비하면 아스트뤽의 초상에는 화가의 이기심이 덜 나타나 있다.
별명이 ‘잘생긴 신사’인 오랜 친구 아스트뤽은 시인, 작가, 작곡가로 평론을 썼고 나중에는 조각가가 되었다.
그는 졸라가 등장하기 3년 전 1863년부터 마네의 우군으로서 변론에 앞장섰다.
마네가 마드리드로 여행을 떠난 것도 그의 충고에 의해서였으며 일본 문화에 박식한 그가 마네에게 일본 판화를 소개했다.
아스트뤽은 마네의 성실한 후원자 중 한 사람이었지만 아스트뤽 부부가 이 그림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 오랫동안 마네의 화실에 방치된 채 있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와글와글 철현학회 모셔갑니다. 감사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