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사진 자료

☎문정화병항아리 2019. 7. 3. 16:00



 

사진으로 보는 베트남 파병

 

 

 의무·공병 부대에 이어 1965년부터는 전투 부대가 파병되기 시작한다.

채명신 소장을 지휘관으로 하는 맹호부대를 파병하면서 예하의 군수 지원 부대인

십자성부대와 함께 주월한국군사령부를 창설했다.

 

 

 

 

 

 

 

 




파병의 결과와 의의




 

1964년 9월 의무요원 130명과 태권도 교관 10여명의 파견을 시작으로
1965년 2월 공병부대인 비둘기 부대가 장도에 오르고 뒤이어 청룡·백마·맹호부대 등
전투부대를 파병해 73년 철수할 때까지 31만 여명이 참전했다.
8년여 동안 평균 주둔 인원은 5만명.

 

미국의 용병이라는 국제사회의 싸늘한 시선을 피할 수는 없었지만 참전으로
많은 경제적 이득을 본 것은 사실이다. 
1965년부터 1972년 까지 한국의 기업들이 베트남에서 얻은 수익과 군인,
노동자들이 받은 인건비 등은 7억5000만달러에 달했다.
이 기간 한국은 또 베트남과의 무역으로 2억8000만 달러를 벌어들인다.
이 밖에 참전 조건으로 미국으로부터 1억5000만달러의 차관과

한국 상품의 대미수출 확대를 약속 받았다.

남의 나라 전쟁에 남의 나라 젊은이들 대신 참전한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피 흘린 대가였다.
사상 처음으로 우리 군대를 해외에 보내 한국전쟁 때 미국에 진 빚의 일부를 갚았다는 점과
국군의 현대화와 전력 증강을 기할 수 있었다는 점 등도 베트남 파병의 성과로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참전의 상처는 깊었고 후유증도 컸다.
5000여명이 목숨을 잃고 1만600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베트남에는 아버지 없이 자라야 할 수많은 한국인 2세 ‘라이따이한’들이 남았고
귀국한 군인들은 고엽제 피해에 시달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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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위선양과 대견한 대한의 국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