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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명문가스토리가문>김정국(金正國)옹의 역경 스토리텔링[storytel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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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9. 13.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의 주인공  김정국(金正國옹)


2017년 3대가 병역의무를 모두 이행하여 병역명문가로 선정된, 1927년 2월 25일생으로 대구광역시 죽전동에 거주하는 김정국(金正國)옹의 역경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을 시작합니다. 



<김정국(金正國)옹과 아들>



인생 출발

조기 결혼이 성행하던 시절,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기 위하여 17세의 안동부인을 맞아 18세에 결혼하여 가정을 꾸렸습니다.

보릿고개 시절이라 남의 농사를 지으면서 그당시 “변소 푸~이~~소”라는 직업이 있었으니, 어나이에 그것으로 가정의 책임을 다하며 오손도손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열심히 살았습니다.


잠시의 이별로 가족을 뒤로 하고 애국의 마음으로

6·25가 발발하여 여기저기서 병력이 부족하여 젊은 사람들을 동원할적 미력하나마 국가가 우선이라는 마음으로 전투병 자원을 하였으나, 농사를 지었던 건장한 체격이라 특수경찰대(이하,특경대)로 차출되어 기본훈련을 받고 바로 전선으로 투입되었습니다.

한치앞도 알 수 없는 급박한 상황의 전투인지라 북한 괴뢰군 패잔병들을 색출하여 가족과, 대한민국을반드시 내가 지켜야 된다’ 라는 일념하나로 애국의 마음이 용솟음쳤습니다.



<청춘예찬 기자와 대구경북청 이연주 (전)담당과 김정국(金正國)옹>


역경의 시작

1. 1951년 9월 30일부터 1952년 6월 8일까지 경북 특수경찰대 소속으로 괴뢰군 소탕작전인 성주 가야산 전투에 투입되었습니다. 긴박하고 열악한 환경과 빈약한 무기는 우리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였지만, 잠도 설친채 오직 내나라 대한민국을 사수하여야 한다는 일념뿐이었습니다.

지휘관의 인솔로 2개 중대와 타지역 부대와 합류했지만, 인민군 패잔병들의 숫자와 무기가 우리들보다 앞선 까닭에 치열한 전투를 벌였지만 많은 사상자를 발생시켰습니다.


사망자들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서 대한청년단 일행들이 학교운동장에 사체 모두를 모아 합동 화장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개개인 가족을 확인할 수 없어서 합동화장을 하였슴에도 불구하고 개울가나 산에는 인민군들이 인정사정없이 갈겨대는 기관총 발사로 사체들이 여기저기 난무했습니다.


2. 영덕 형제봉 전투에서는 1개 중대에 기관총 1정과 개인화기인 M1소총이 전부였습니다. 괴뢰군 패잔병들은 막무가내 공격과 지나가는 마을 주민들을 학살하고 마을전체를 전멸시키면서 먹을 양식들을 약탈해 가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지원병력이 도착하지 않아 거의 기진맥진하여 산으로, 들로 아군 지원병을 기다리면서 수색하던

도중 인민군들의 습격을 받아 희생이 컸습니다.


은신중 먹을 물이 없어 소변을 받아 연명하면서 싹트는 전우애는 어느 세상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인간관계로 엮어졌습니다. 몇 명의 인원으로 길을 잃어 헤매던 중 오두막집을 발견하고 도움을 요청 하였는데, 여러날을 굶어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노인이 건낸 된장국을 구데기가 둥둥 떠있는 된장국인줄도 모르고 배를 채우는 모습에서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하룻밤 도움을 청했으나 노인은 신병의 위험을 느낀다고 떠나라는 재촉에 어두운 산을 이용해 쪽을 향하여 수일간 행군 끝에 드디어 아군에게 구조되었으나, 몇일을 굶은 까닭에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너구리죽’이라고 일컫는 음식과 밥을 먹은 후 과식하여 기절을 해 버렸습니다. 3일만에 깨어나 볏짚속에 눕혀져 널부러져 있는 모습에서 ‘살았구나’라는 안도를 하게 되었니다.



<김정국(金正國옹과 아들 부부와 함께>


드디어 후방으로

전쟁은 훈련이 필수입니다, 또한 은폐를 잘하여야 합니다. 몇 안되는 우리들의 전우애는 특별했습니다. 서로 얼싸안고 살았음에 감사하면서. 치열한 전투중에 허리를 다쳤지만 치료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본대에 합류하고 나서야 치료를 할 있었습니다.


동산병원(당시 경찰병원)에 동료들과 입원 치료하던 중 김성수 부통령이 입원한 경찰들에게 사과를 선물로 주어 맛있게 먹다가, 전투중에 전사한 동료들 생각에 목이 메어 입원한 동료들부둥켜 안고 얼마를 울었는지 지금도 생각하면 목이 메입니다.


집을 잊고 휴가도 없이 빡빡한 훈련으로 가정을 돌볼 시간이 없었음에도 묵묵히 가정을 챙기고 살았던 부인에게 감사함을 전합니다.


그 후

경찰국 경무과 소속으로 대구서. 남대구서. 포항서. 선산서 등에서 근무중 1967년 관절염으로 의원 면직되기까지 오로지 국가에 충성하고, 사회질서를 지키는데 헌신하였습니다. 그 결과 많은 표창이 주어짐에 감사하며, 이웃을 위한 나눔활동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병역명문가로, 3대가 당당히 병역의 의무를 다하고, 이 나라의 영예로운 병역명문가로 선정되었음에 감사드립니다.



<손자의 생일 축하 꽃바구니>


"할아버지 생신 축하드립니다" 아름다운 꽃바구니 속에는 지나간 세월의 할아버지를 응원하는 손자의 마음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지난 세월을 돌이키면서 생생한 현장처럼 그날을 기억하는 김정국(金正國)옹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며, 자랑스러움으로 더욱 더 건강하기를 기원해 봅니다.


바라는 소망이 있다면

정부에서는 실질적인 혜택으로 우대하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생사의 기로에서 국가와 민족을 수호한 전쟁영웅들에게 베푸는 혜택이 미약함에 당당하게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자존감을 심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태극기만 보아도 뭉클해지고 숙연해지는 우리들의 심장 소리를 들어 주었으면 합니다.

경험과 체험으로 생사의 기로에서 싹튼 전우애를 되새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를 희망합니다.


후기

우리는 생생한 현장을 실감했습니다.

김정국(金正國)옹증언으로 그 당시의 상황을 한편의 영화로 재현해 봅니다.

힘들고 지친 몸으로 살기 위한 몸부림, 국가와 민족을 수호하기 위한 몸부림. 우리는 이분에게 애국을 배웁니다.

묘한 인연인듯 합니다. 장남 김팔경(金八經)씨가 박창명 전 병무청장과 동기라는 사실에 또한 인연의 소중함을 봅니다. 아주 넓은듯 하던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귀한 인연을 만나기에, 우리는 진실과 정직

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참 삶을 기억하게 합니다.






<공동취재: 청춘예찬 부모기자 김태수, 홍성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