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암당 고우(古愚) 대종사님을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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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9. 6.

 

봉암사 2차 결사(한국 불교의 본래 모습과 수행 전통 회복을 위한 정화 운동)를 주도했던 선승(禪僧) 은암당(隱庵堂) 고우(古愚) 스님께서 지난 08월 29일 오후 3시30분 경북 문경시 소재 봉암사(鳳巖寺) 동방장실에서 노환으로 입적(入寂)을 하셨습니다. [법랍(法臘) : 60세 & 세수(世壽) : 84세]

 

 

 

 

 

 

 

 

은암당 고우 대종사(隱庵堂 古愚 大宗師)님

상적광토(常寂光土·변하지 않는 광명의 세계)에서 극락왕생(極樂往生) 하시기를 비옵니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2021.09.04.18:38, 佛弟子 [柳又太] 올림

 

 

 

 

 

은암당 고우[古愚] 대종사님은 ...  

고우(古愚) 스님은 1937년 경북 성주(星州)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꿈은 작가(作家) 였다. 군(軍) 복무를 하다가 폐결핵(肺結核)에 걸렸다. 제대 후에 방황을 하다가 생(生)을 포기하는 심정으로 26살에 김천시 소재 수도암(修道庵)으로 출가했다. “불교 공부를 해보니 너무 재미가 있었고, 폐결핵 약(藥)도 버렸는데 병(病)이 저절로 나았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당대의 강백(講伯)인 고봉(古峰) 스님과 관응(觀應) 스님 등으로 부터 '불교의 뼈대'를 배웠다.

이후 고우(古愚) 스님은 당대의 선지식 향곡(香谷) 스님이 주석한 '묘관음사 길상선원'을 찾아가 참선을 시작했다. 이후 전국의 제방선원(諸方禪院)을 찾아 다니면서 평생 수행자의 삶을 살았다. 1980년 신군부(新軍部)가 정화를 명분으로 불교 지도부를 모두 축출했다. 주요 사찰의 주지(住持) 스님도 다 쫓겨 났다.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서 수좌회의(首座會議) 결의로 고우(古愚) 스님은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을 맡기도 했다. 그 공백이 정비되자 다시 산(山)으로 돌아갔다. 고우(古愚) 스님은 '각화사 태백선원장,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 조계종 원로의원' 등을 역임했다.

 

[각주] : 1.고봉 스님 - 고봉경욱(古峰景昱.1890~1961) 스님 - 일제강점기 때 내적으로 수행(修行)에 몰두하고 외적으로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데 정진했던 스님(僧) 이셨다. 

2.관응 스님 : 관응당(觀應堂) 지안(智眼.1929~2004) 스님 - 관응 스님은 조계종 종정(宗正) 법전스님, 봉은사 조실 석주 스님, 동화사 비로암의 범룡 스님 등과 더불어 선승(禪僧) 1세대로 꼽히고 있다.

환갑(還甲)의 나이에도 '도봉산 천축사 무문관'에서 6년여 동안이나 두문불출(杜門不出) 하며 수행정진(修行精進)한 사례는 현재까지 승가(僧家)에서 회자되고 있다.

 

 

 

 

 

 

생전(生前)에 반려견(伴侶犬)과 함께 사찰 외곽지역에서 포행(布行)을 하시고 계신 고우(古愚) 스님

 

 

 

 

 

생전(生前)에 경상북도 봉화군 봉성면 금봉2리 소재 금봉암(金鳳庵)에서 고우(古愚) 스님을 인터뷰(Interview) 한 적이 있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이 코앞 이었지만, 금봉암에는 연등(燃燈)이 단 하나도 걸려 있지 않았다. 고우(古愚) 스님은 “형식을 통해서 본질로 향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곧바로 본질(本質)로 들라’고 말하는 쪽이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금봉암(金鳳庵)]에는 제사(祭祀)도, 기도불공(祈禱佛供)도, 연등(燃燈) 접수도 받지 않고 있었다.

 

 

 

 

 

 

 

고우(古愚) 스님께서 생전(生前)에 경상북도 봉화군 봉성면 소재 [금봉암(金鳳庵)]에서 기거(起居) 하실 때 

 

 

 

 

 

고우(古愚) 스님은 금봉암(金鳳庵)에 머물면서 찾아오는 이들을 구별 없이 맞이했다. 가까이서 또는 멀리서 오는 이들에게 선뜻 차(茶)를 건넸다. 그리고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법문(法文)이 따로 있나. 이게 법문이지.” 고우(古愚) 스님은 상좌(上佐)의 시봉(侍奉)도 받지 않았다. 그렇게 형식(形式)과 권위(權威)를 거부했다.

 

 

 

 

 

 

 

생전(生前)에 검소하고 자애로우셨던 '은암당(隱庵堂) 고우(古愚)' 대종사님 

 

 

 

 

 

마침 ‘부처님 오신날’이라 “부처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고우(古愚) 스님은 “마음이 곧 부처(佛) 입니다. 진짜 부처님이 오신 날은 육신(育身)이 태어난 날이 아닙니다. 깨달은 날입니다. 깨닫기 전에는 결코 부처님이 오신 것이 아닙니다. 석가모니도 깨닫기 전에는 고뇌하는 인간(人間) 이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깨달은 후에는 달라집니다. 자유자재(自由自在)한 존재, 그 자체로 있는 겁니다”라고 답했다.

이어서 고우(古愚) 스님은 “형상(形象)만 본다면 부처가 아닙니다. 본질(本質)만 봐도 부처가 아닙니다. 형상과 본질을 함께 봐야 비로소 부처입니다”라고 강조했다.

인터뷰(Interview)를 하기 며칠 전에 인도(INDIA)의 한 요가(YOGA) 수행자가 “한국의 선불교(禪佛敎)를 알고 싶다”며 금봉암을 찾았다고 했다. 고우 스님이 “인도에는 요가 수행의 고수들이 많지요?”라고 물었더니, 요가 수행자는 “몇 달씩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꼼짝도 하지 않는 이들이 많습니다. 대단한 분들이죠”라고 답했다.

이에 고우(古愚)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눈(眼)을 감았을 때 찾아오는 평화는 진짜가 아닙니다. 눈(眼) 뜨고 생활하는 이 자리에서 고요하고 이 자리에서 평화로워야 합니다. 눈(眼)을 감았을 때만 고요하다면, 그게 바로 공(空)에 떨어진 자리이죠.” 일상속에서 통하고, 생활속에서 통해야 진짜 선(禪)이라는 지적이다.

 

 

 

 

 

 

 

2021.09.02 .. 오전 10시30분 [영결식(永訣式)]이 경상북도 문경시 소재 봉암사(鳳巖寺)에서 거행됐다. 

 

 

 

 

 

고우(古愚) 스님은 선원(禪院)의 선방(禪房)만 수행처가 아니라고 했다. “지지고 볶는 일상보다 더 훌륭한 법당(法堂)은 없습니다. 형상(形象)을 붙들고 있는 나를 매 순간 볼 수 있으니까요. 그런 나를 비우면 본질을 볼 수 있습니다. 본질(本質)을 보면 모든 것이 평등(平等) 하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신분이 높은 사람도, 낮은 사람도, 지혜가 많은 사람도, 적은 사람도 모두가 평등함을 알게 됩니다. 여기에서 불교(佛敎)의 위대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이말 끝에 고우(古愚) 스님은 ‘똥 푸는 사람’ 일화(逸話)를 꺼냈다. 부처님 당시에 똥을 푸는 사람은 인도에서 천민 계급이었다. 부처님이 지나가면 똥 푸는 사람은 늘 도망쳤다. 하루는 부처님이 불러서 물었다. “왜 도망가느냐?” “황송해서요” “무엇이 황송한가?” “제가 천민(賤民) 이라서요.” 그 말을 듣고 부처님이 말했다. “신분이라는 건 많이 가지고, 힘 있는 사람들이 만들었을 뿐이다. 거기에 속지 마라.”

이 말에 똥 푸는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렇게 되물었다. “신분에 높낮이가 없음은 알겠습니다. 그래도 제 직업은 천하지 않습니까?” 이 말을 듣고 부처님이 말했다. “국왕이나 대신도 국민을 괴롭히면 천한 놈이고, 남을 위하고 자기를 위하면 누구라도 고귀한 사람이다.”

 

 

 

 

 

 

산문(山門)을 지나서 고우(古愚) 스님의 법구(法具)가 운구(運柩) 되고 있습니다. 

 

 

 

 

 

고우(古愚) 스님은 이 일화(逸話)에 담긴 의미를 짚었다. “평등함을 알면 열등의식도 풀립니다. 주위를 보세요. 지금 우리 사회의 직업에 대한 열등의식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모두가 평등함을 깨치면 자신의 일에 대한 가치와 의미를 알게 됩니다. 이 사실은 굉장한 것입니다.”

“그게 왜 대단하냐?”고 물었더니 고우(古愚) 스님은 이렇게 답했다. “자기 일의 가치와 의미를 알게 될 때 그 일을 정말 열심히 하게 됩니다. 그럼 부(富)와 명예(名譽)는 물론 인격(人格) 까지 저절로 따라옵니다. 그게 순리(順理) 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돈만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그래서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판을 치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고우(古愚) 스님은 마음 공부에 대해서 짚었다. “불교의 수행은 고행(苦行)이 아닙니다. 오히려 즐거움 입니다. 갈수록 자기를 알고, 인지한 만큼 자유로워지는데 왜 고행(苦行) 이라 합니까. 진리(眞理)에 대한 이해와 믿음이 부족한 사람이 억지로 하려고 하니까 고행이 되는 겁니다. 수행(修行)은 커다란 즐거움(樂) 입니다.”

고우(古愚) 스님은 조계종(曺溪宗) 원로이면서도 대중과 소통을 마다하지 않았다. 오히려 먼저 손을 내밀고 늘 마음 공부의 즐거움을 일깨우려 했다. 그 연배에서 보기드문 분(스님) 이었다. “깨달음이 멀다(어렵다)”고 물으면 고우(古愚) 스님은 항상 “설사 깨닫지 못하였다 하여도 그 이치(理治)를 아는 것만으로 상당한 자유(自由)를 누릴 수 있다”고 강조를 하였다.

 

 

 

 

 

 

 

고우(古愚) 스님의 법구(法具)는 인로왕번(引路王幡)앞세우고 많은 만장(輓章)이 뒤를 따르며 봉암사 다비장(茶毘場)으로 옮겨진 가운데 장엄염불(莊嚴念佛) 속에서 거화(炬火) 됐다.

[각주] : 인로왕번(引路王幡) - 죽은 사람의 저승길을 인도한다는 인로왕보살(引路王菩薩)의 이름을 쓴 [기(旗)]를 말한다.

 

 

 

 

 

 

장례(葬禮)는 5일장이며 대한불교 조계종 전국선원수좌회장(全國禪院首座會葬)으로 치뤄졌다. 영결식(永訣式) 및 다비(茶毘)는 9월 2일 오전 10시30분 경상북도 문경시 소재 봉암사(鳳巖寺)에서 거행됐다. 다비식(茶毘式)은 '불교에서 돌아가신 스님(僧)을 화장(火葬) 하는 장례의식((葬禮儀式)' 입니다.

 

 

 

 

 

 

 

2021.09.02 .. 고우(古愚) 스님의 [다비식(茶毘式)]이 경북 문경시 소재 봉암사(鳳巖寺)에서 엄수됐다.

 

 

 

 

 

고우(古愚) 대종사님의 초재(1재)는 9월 4일 [봉암사]에서 거행된다. 2재는 9월 11일 봉화 [금봉암]에서, 3재는 9월 18일 충주 [석종사]에서, 4재는 9월 25일 공주 [학림사]에서, 5재는 10월 2일 봉화 [축서사]에서, 6재는 10월 9일 고양 [흥국사]에서, 마지막 49재는 문경 [봉암사]에서 봉행된다. [출처] : 불교인사이드

 

 

 

 

 

 

 

고우(古愚) 스님께서 생전(生前)에 기거(起居) 하셨던 경북 봉화군 소재 [금봉암(金鳳庵)] 현판(懸板) 

 

 

 

 

 

경상북도 봉화군 문수산 소재 축서사(鷲棲寺) 조실이자 장의위원장(葬儀委員長) 무여(無如) 스님은 "고우(古愚) 큰스님의 자애로운 음색이 지금도 사부대중(四部大衆) 귓가에 생생한데 홀연히 본래 자리로 돌아가시어 금일 영결을 보이시니 남은 후학들은 황망한 심정으로 애도의 심지를 밝힌다"며 영결사(永訣辭)를 낭독했다. 무여(無如) 스님은 "고우(古愚) 큰스님, 부디 상적광토(常寂光土·변하지 않는 광명의 세계)에 오래도록 머무르지 마시고 속환사바(俗寰娑婆) 하셔서 맹목중생(盲目衆生)을 올곧게 인도(引導) 하시고 다시 선화자(禪和子)의 가슴을 따뜻하게 적셔주기를 앙청(仰請) 한다"고 바랐다.

 

[각주] :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 있는  가지 제자(弟子).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우바새(優婆塞.출가하지 않고 불제자가 된 남자), 우바니(優婆尼.출가하지 않고 삼귀, 오계를 받아 불제자가 된 여자) 의미하 말이다.

 

 

 

 

                                                                                                                                언제 : 2021.08.29 

                                                                                                                                어디에서 : 중앙일보에서 발췌

                                                                                                                                글 : 백성호 종교전문기자

                                                                                                                                사진 : 연합뉴스 & BBS NEWS 외 기타 

                                                                                                                                글 추가 : 남덕유산 Blogger 

                                                                                                                                한문 : 남덕유산 Blogger 

                                                                                                                                각주 : 남덕유산 Blog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