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팅에서 만난 그녀 돈 빌려달라는 말에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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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꿈꾸는 사람들

2010. 8. 17.

오빠, 병원비가 부족해요. 도와주세요…

글 | 검사 김지용 (창원지검)

 

 

병두씨는 2007년 8월경 인터넷 채팅사이트에서 A라는 여성과 인터넷 채팅을 나누다가 친해졌고, 자주 전화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A는 한번도 만나지 않은 병두씨에게 부모가 이혼을 해서 이모의 도움을 받고 사는데 가정형편이 어려우니 돈을 빌려주면 꼭 갚겠다고 요청했습니다. 남을 의심할 줄 모르고 착하기만 했던 병두씨는 비록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A의 딱한 사정을 생각하여 돈을 빌려주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A는 그 이후에도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합의금이 필요하다.’, ‘생활비가 필요하다.’, ‘병원에 입원을 했는데 병원비가 필요하다.’며 그에게 계속 돈을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병두씨는 마음이 좀 불편하기는 했지만 A의 말을 듣고 계속 돈을 송금해 주었는데, 그 금액은 점점 커져만 갔습니다.

 

2007년 10월 말 경 A는 병두씨에게 신세를 졌다며 돈을 갚을 테니 만나자고 먼저 전화를 했습니다. 기분이 좋아진 그는 약속 장소에 나가 A를 기다렸지만, 시간이 지나도 A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A의 친척 언니라는 사람이 전화를 하더니, “A가 납치 되었다. 납치범이 돈을 요구하는데 돈을 보내주면 A가 풀려날 것 같다.”며 납치범이 보낸 문자메시지 내용을 그에게 보냈습니다. 이를 그대로 믿은 병두씨는 A가 납치에서 풀려날 수 있도록 또다시 돈을 보내주고 말았습니다.

 

그 무렵부터 병두씨가 A에게 전화를 걸면 A가 아닌 B,C,D,E라는 이름을 쓰는 여성들이 등장하여 그에게 생활비, 치료비 등의 돈을 요구했고 또한 그가 돈을 보내주지 않으면 A와는 더 이상 연락을 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협박까지 했습니다. 당시 A에게 수천만원을 빌려준 상태였기 때문에 병두씨는 그 돈을 받기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이 돈을 더 보낼 수 밖에 없었고, 결국 그는 총 129,566,800원의 돈을 송금했습니다.

 

그 후, A,B,C,D,E등의 여성은 병두씨와 연락을 끊어버렸고, 무엇에 홀린 것처럼 돈을 보낸 이유를 스스로도 납득할 수 없었던 상황에 이르게 된 병두씨는 자신의 행동을 탓하며 눈물만 흘렸습니다.

 

 

 

 

어머, 저는 핸드폰이랑 통장만 빌려준 것 뿐이에요!

 

2007년 8월, 이 사건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위 사람들 중 실명으로 밝혀진 사람은 A뿐이었는데요. A는 경찰 조사에서 “2007년 2월경 보도방에서 만난 D라는 사람이 핸드폰과 통장, 체크카드를 빌려달라고 해서 빌려준 것뿐이지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 이라고 진술하였습니다. 진술 이후 A는 종적을 감추었고 이 사건은 두 차례나 기소중지가 되었다가 2009년 11월 초, 다시 수사가 재개되었습니다.

 

당시까지 경찰에서 진행된 수사 내용은 A의 ‘D라는 사람에게 통장, 핸드폰, 체크카드 등을 양도했다.’는 진술뿐이었고 피해자와 나눈 통화내역이나 CCTV촬영 자료 등은 1년 6개월이나 지나 이미 폐기된 상태였기에 증거를 수집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경찰에서 피해자가 돈을 송금한 A의 명의 계좌에 대한 입출금 내역 분석 및 인출된 수표에 대한 계좌추적 결과 A가 돈의 일부를 사용한 것이 확인되어 다시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A는 이에 대해 “신용불량자인 D의 부탁으로 수표를 인출하고 배서를 한 것”이라고 변명을 하였고, 경찰에서 더 이상의 수사가 진행되지 못한 채 검찰로 송치가 되었습니다.

 

사건 송치 후, 기록을 검토하면서 입출금 내역상 A의 오빠, 모친에게 돈이 송금된 내역 및 수표를 발견했습니다. 이를 추적한 결과, A가 사용한 수표 중에는 F라는 사람이 배서를 한 것을 확인하게 되었는데요. 이를 근거로 A에게 “D가 통장, 체크카드를 갖고 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D가 당신의 오빠와 모친에게 돈을 송금할 이유도 없고 또한 F라는 사람이 수표에 배서를 할 이유도 없다.”며 A의 변명을 추궁하여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A는 더 이상 조사를 받지 못하겠다면서 검사실을 나가버렸습니다.

 

 

 

 

A는 분명 이 사건과 관련이 있어!

 

위와 같은 A의 태도를 보면서 A가 이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심증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까지의 확인 내용만으로는 A를 기소하기에는 부족하였기 때문에 A를 기소하기 위해서는 D라는 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A의 진술이 거짓임을 밝혀야 했습니다.

 

A가 알려준 D가 사용했다는 핸드폰 번호의 가입자 인적사항 확인 결과, 피해자가 두 차례에 걸쳐 A의 부탁으로 돈을 송금한 G라는 사람과 명의가 일치했고, G에 대한 범죄경력조회결과 G는 이 사건과 동종의 범죄로 지명수배 중이었으며, G의 사진을 판독한 결과 G가 바로 A가 말한 D의 인상착의와 똑같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결국 2010년 4월, G를 체포하기에 이르렀고, G는 검찰에서 “A와 함께 이 모든 일을 도모했고, 검찰에 소환될 경우 해야 할 진술 내용 등에 대해서도 상의했다.”며 서로 입을 맞추는 등 증거인멸을 시도한 정황까지 모두 확인되어 결국 G는 이 사건으로 구속영장이 발부되었습니다.

 

G의 구속 후, A는 검찰에서 G와 대질 조사를 하면서 “G가 자신에게 형을 살고 나오면 죽여 버리겠다. 같이 반반씩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하자.”라는 취지로 협박을 했다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이 역시 허위인 것이 드러났고 결국 범행의 주범은 A와 D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2010년 5월, 피해자가 진정을 제기한 이후 약 1년 9개월이 지나서야 A에게도 구속영장이 발부되었습니다.

 

 

 

 

진술의 진위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객관적 증거의 수집

 

이 사건은 범죄자들이 통장을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고 변명을 하면 수사기관에서 이를 확인하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미리 알고, 그 과정 중에 말을 맞추는 등 증거를 인멸하고 연락을 끊어버리는 방법으로 수사의 맥을 끊고,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통화내역과 CCTV등의 물적 자료등이 폐기되면서 수사에 어려움을 겪게 한 사건이었는데요.

덕분에, 앞으로 이러한 사건을 수사하는데 있어 진술의 진위 여부 확인 보다는 우선적으로 객관적인 증거를 수집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좋은 교훈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피해자가 진정을 제기한 후 약 2년이 흘렀지만, 결국 그 실체를 파악하여 인터넷 사기범죄자들을 구속하는 등 범죄를 척결했다는 점에서 값진 경험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외로운 사람의 마음을 꾀어 좋아하는 척 접근을 한 후 이런 사기를 감행했다는 사실이 다소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한 사건이었습니다.

 

모든일러스트 = 아이클릭아트

 

 

이 글은 창원지검 검사들의 고군분투 이야기 ‘熱과 誠을 담아’

‘거짓말, 거짓말, 그리고 또 거짓말’이라는 제목의 글을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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