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여성판사의 죽음은 미스테리로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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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블기 이야기/힘이되는 법

2010. 11. 20.

올해 치러진 52회 사법시험 2차시험 합격자 800명 중 약 42%인 337명이 여성으로 집계되었습니다. 사법시험 합격자 중 여성비율은 계속 증가하고 있는 추세인데요. 갈수록 법조계에서 여성의 파워가 드러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성 파워는 어제 오늘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지금의 여성들이 자유롭게 사회활동을 할 수 있도록 몇 십년 전부터 발판을 마련해 준 분들이 계시는데요. 그래서 오늘은 ‘우리나라를 빛낸 최초의 여성 법조인’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한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 여성의 권리개선을 위해! - 故 이태영

 

 

 

故 이태영 변호사의 1991년 모습 Ⓒ연합뉴스 2007. 1. 18.일자

 

한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인 故 이태영 변호사, 그녀는 한국가정법률상담소를 세우고 여성에 대한 불평등, 인습에 맞서 싸운 인물로 유명합니다. 이변호사는 1946년 32세 되던 해 여성으로는 최초로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하였고, 1952년에는 사법고시에 합격한 첫 여성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이 야당인사라는 이유와 이승만 전 대통령의 여성관 때문에 판사로 임용이 되지 않고 한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변호사사무실을 개업하자, 그녀의 표현대로 ‘법과 인습에 눌려 우는’ 여성들이 찾아와서 억울함을 호소 했고, 이를 계기로 1956년 여성법률상담소(현 가정법률상담소)를 열게 되었습니다.  

 

▲1957년 이태영 변호사(왼쪽 세 번째) Ⓒ경향신문 2005. 3. 30일자

 

그녀는 생전에 가족법 개정 및 호주제 폐지를 위해 힘쓰는 등 많은 여성들의 권리개선을 위해 힘썼습니다. 1957년 설립된 가정법률상담소를 중심으로 가족법 개정운동에 나선 것이 양성평등을 향한 본격적인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여성해방운동과 민주화운동 등에 헌신한 공로로 막사이사이상, 유네스코 인권교육상, 국민훈장 무궁화장, 제1회 법을 통한 세계평화상, 제3회 세계법률구조상, 세계감리교 평화상 등을 받았으며 지난1998년 자택에서 별세했습니다.

 

 

 

한국 최초의 여성 판사와 미스터리 변사사건 - 故 황윤석

 

황윤석 판사 Ⓒ법률신문 2010.01.20 일자

 

이름만 들어서는 왠지 남자일 것 같은 故한 황윤석 판사는 한국 최초의 여성 판사입니다. 아버지의 권유로 법을 공부하게 되었고, 1952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한 후 스물셋의 나이로 제3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하게 됩니다.

 

그 후 1954년 서울 지방법원 판사에 임명됨으로써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판사가 되었는데요. 1960년 세계 여성 법률가 회의에 참석하거나 이듬해 여성 문제 연구회 실행위원을 선임하는 등 여성 법조인으로써 임무를 해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1961년 4월 21일 오전 9시경 그녀는 서울시 자택 방에 숨진 채 발견됩니다. 그녀의 죽음으로 인해 여론이 들썩였고, 검찰은 사건의 중대성을 고려하고 수사에 착수했으나 시체해부 결과 ‘베나드릴(Benadryl : 항히스타민 알레르기 치료제)’이라는 약물이 검출되었을 뿐이었습니다. 이렇듯 황윤석 판사의 사안이 뚜렷하게 규명되지 않자 사람들의 관심도 커져갔으나 때마침 5.16 군사 쿠데타가 발생해 묻혀버리고 말았다고 하네요. 지금의 과학수사 기법이라면 그녀가 맞이한 의문의 죽음에 대한 실체를 밝힐 수 있을까요?

 

 

 

한국 최초 여성 대법관의 아름다운 퇴임 - 김영란

한국 최초의 여성 대법관은 바로 김영란 전 대법관입니다. 올 8월 대법관 임기(6년)을 마친 터라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김영란 전 대법관 Ⓒ신동아 2010.10.25일자

 

그녀는 1979년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81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후 서울민사지방법원에서 판사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1983년에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과에서 석사학위 취득, 1993년 대법원 재판연구관이 되어 5년 동안 근무, 이후 부장판사생활을 했습니다. 2004년 8월 23일 국회는 김영란 대법관 후보에 대한 임명안을 통과시켰고, 이로 인해 김영란은 사법 사상 최초의 여성 대법관인 동시에 22년만의 40대 대법관이 되었습니다.

 

김영란 전 대법관은 퇴임 후 대부분의 대법관이 변호사로 개업하는 관례를 깨고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겠다고 했는데요. 대법관 경험을 살려 사회에 기여할 방법을 찾아보겠다는 말로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기도 했습니다. 사회적 지위를 이용한 부도덕이 문제가 되고 있는 요즘 김영란 전 대법관의 이런 순수한 결심이 만은 이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 것 같네요.

 

 

 

한국 최초의 여성 검사 - 국회기획재정위원회 조배숙

한국 최초의 여성 검사는 조배숙씨입니다. 1980년 사법시험 합격 후 검사로 활동하다 몇 년 후 판사로 전관하여 서울고등법원에서 판사를 지냈고 1996년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여 법조 3륜을 모두 거친 법조인으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조배숙 의원과 반기문 UN 사무총장 Ⓒ국회의원 조배숙 홈페이지

 

변호사 개업 후 여성변호사회 제3대 회장을 역임했고 민주평통 자문위원 등 다양한 경력을 쌓은 뒤 2000년 정계에 입문하여 현 국회기획재정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습니다.

 

 

 

한국 최초의 여성 법무부장관 - 강금실

한국 여성 최초의 판사, 검사, 변호사, 대법관도 있지만 ‘최초’의 여성 법조인에서 이 분을 빼 놓을 수 없습니다. 바로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입니다.

 

그녀가 장관으로 재직시에는 개혁적인 업무 추진과 재치 있는 언사로 주목을 받았다고 하는데요. 특히 강금실 법무부장관의 소신 있는 행보가 인기를 얻으면서 '강효리'란 별명을 갖기도 했습니다. 이름 그대로 법무부라는 당시 딱딱했던 이미지와는 다르게 화려하고 멋스러운 패션 스타일로 법무부의 패셔니스타로 떠오르기도 했답니다.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의 패션 Ⓒ세계일보 2004.7.29.일자, 브레이크 뉴스 2010.07.18일자 , 제주의소리 2010.03.17 일자

 

2003년 2월, 국내 첫 여성 법무장관에 취임한지 1년 5개월여 만에 법무부 장관 자리에서 물러나던 강 전 장관은 퇴임하던 날의 심경을 “너무 즐거워서 죄송합니다.”라고 표현했다고 하는데요. 유머와 위트가 가득 묻어나는 한마디였지만, 지난 법무부장관으로 지내던 나날이 얼마나 고되고 힘들었을지를 말해주고 있는 표현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법무부 장관 사직 후 2009년에 평화방송의 3부작 라디오 다큐멘터리의 진행을 맡기도 하는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활발한 행보를 걷고 있으며, 현재는 법무법인 ‘원’의 구성원변호사이자 한국인권재단의 이사로 활동 중입니다. 장관의 임기가 끝났다고 그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언제나 새로운 일을 찾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 다가가는 발 빠른 행보가 참 좋아 보이네요!^^

 

 

 

법조계의 여성파워!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돋보여

 

 

여성 최초 법조인들을 보신 소감이 어떠신가요? 걸어온 길은 모두 다르지만 같은 여성 법조인으로서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정직하고 바른 법조인의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모두 존경할 만 한 분들인 것 같습니다.

지난 2008년에는 고(故) 이태영 변호사가 첫 여성변호사로 등록한 지 54년 만에 1000번째 여성 변호사가 탄생했다는 소식도 있었는데요. 여풍은 이제 시작인 듯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여성들의 법조계 진출과 더불어 보다 많은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길 기대합니다.  

 

글 = 이예라 기자

故 이태영 전 변호사 사진 = 연합뉴스, 경향신문

故 황윤석 판사 사진 = 법률신문

김영란 전 대법관 사진 = 신동아

조배숙 전 검사 사진 = 조배숙 의원 홈페이지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 사진 = 세계일보, 브레이크뉴스, 오마이뉴스

일러스트 = 아이클릭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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